# 165화 요괴 (1)
“모든 신화에는 뿌리가 있어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던 따분한 어느 오후 날.
“그중 아주 특별한 뿌리를 찾았고요.”
원장님이 대뜸 뜬구름 잡는 소리로 내게 말했다. 난 원장님이 말하는 ‘신화에 뿌리가 있고, 그중 특별한 뿌리를 찾았다’는 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나 마물원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능숙하게 대처하였다.
“그게 뭔데요?”
바로 모르면 질문하는 것이다.
“요괴예요.”
그래도 모르면 다시 질문하면 된다.
“요괴?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구미호 같은 괴물들요?”
더불어 원장님의 대답이 시원찮아도 애써 이해할 수 있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원장님은 그냥 해 본 말에 잘 짚었다면서 칭찬해 줬다. 더 자세히 설명하길 요괴들은 동양권 문화에서 등장하는 신화로 예부터 있어 온 지구에서 벌어진 무수히 많은 작은 전이들의 살아 숨 쉬는 증거라고 하였다.
즉, 구미호나 인면어, 도깨비와 ‘서유기’에 나오는 모든 요괴들까지 실존하거나 실존했던 존재인 것이다.
보통 대전이 이후 마물과 마법이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요괴나 귀신은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이었다. 마물도 있는데 요괴는 없겠느냐 싶지만 가장 큰 요점은 요괴는 대전이 이전에 존재하던 전설이라는 것이다.
나야 마물원 일하며 요괴쯤은 별것 아닐 정도로 괴상망측한 것들을 많이 봐 왔기에 ‘요괴’ 신화가 사실 진짜라는 얘기를 들었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냥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 요괴들은 마물인 거야, 이종족인 거야?’
동양 문화에 녹아든 익숙한 요괴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그 경계가 애매한 녀석들이었다.
“그럼 이번 일은 요괴에 대한 것이겠군요.”
“맞아요. 얼마 전 ‘요계’로 향하는 삼라심천을 발견했어요. 혹시 요괴의 본뜻을 아시나요?”
“음, 풀어서 쉽게 말하면 요사스러운 괴물들이잖아요.”
“자세히는 정체가 불분명하고 괴상한 자들을 뜻하는 거예요.”
원장님은 대전이 이후,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지구의 신화를 조사한 것이라고 했다. 이계와의 조화를 위해서 예전부터 지구에 정착해 온 이계인들의 삶을 참고하기 위해서였다나.
인어들을 비롯하여 많은 신화의 실존을 발견했지만 가장 크고 비밀스러운 신화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것은 동아시아 문화 전역에 뿌리 잡은 요괴 신화였다.
원장님은 요괴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약간 들떠 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마침내 오랫동안 찾아왔던 요괴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자들이 모인 곳답게 무언가에 의해 요계는 감춰져 있어요.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했으나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용의 힘으로도 그곳까지 갈 수 없었어요.”
원장님은 덧붙여 요계로 향하는 문을 강제로 열 수는 있었으나 그렇게 하면 거대한 공간의 비틀림이 발생하여 지구가 폭발할 거라고 말했다.
난 원장님이 다른 용과 달리 분별력이 넘치는 현명한 용임을 다행으로 여겼다. ‘캣 맘’을 생각해 본다면……. 다른 용이라면 강제로 열고도 남지.
“그래요, 그럼 제가 그 요계라는 곳에 원장님을 대신하여 가게 되겠군요.”
척하면 척이다.
이계도 자주 가는 판에 요괴들의 세계라고 못 갈쏘냐.
문제는 난이도다. 이번엔 얼마나 힘들까? 난 이제 무슨 일을 수행하거든 그 일이 얼마만큼 힘든지 물어보리라 생각했다. 각오를 하고 원장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참 당당하게 대답했다.
“몰라요, 하지만…….”
원장님의 입에서 모른다는 소리는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일 중 가장 힘들지 않을까요? 오호호.”
원장님은 함부로 ‘힘들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해 보면 내 딴엔 죽을 만큼(실제로 죽을 뻔한) 힘든 일이라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 원장님이 저렇게 말한다. 즉, 이번 일은 굳게 마음먹어야 할 난해하고 힘든 일이라는 거다.
“알겠어요, 최선을 다해 볼게요.”
그렇다고 난 예전처럼 겁먹고 싫어하진 않는다. 이제 그런 단계는 지났다. 사람은 학습의 동물, 거부해 봤자 쓸모없는 행동이란 걸 알았다.
원장님은 내가 수락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 삼라심천이라 불리는 요계의 문이 있는 신비한 강으로 갈 테니 준비해 오라고 했다.
그 후 주의해야 할 점들을 들었으나 다른 일과 달리 브리핑은 짧게 끝이 났다. 정말 원장님도 자세히 모르는구나.
특히 조심해야 할 건 내가 인간임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난 마법이나 다른 수단이 필요치 않았다. 원장님은 항상 야옹이의 힘을 불러내어 ‘요괴처럼’ 다니라고 했다. 이럴 때 보면 이젠 나를 정말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부를 수 있나 싶네.
“이거 받아요.”
요계로 넘어간다면 할 일은 간단했다. 그곳을 탐험하고 요괴들과 지내며 많은 지식을 쌓고 비밀을 밝혀 오는 것이었다. 원장님은 필요할 거라며 푸른 빛깔의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세이렌의 노래가 담긴 주머니예요. 몇 달 동안 겨우 한 개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그 힘만은 강력하죠. 유용하게 쓰일 거예요.”
세이렌의 노래 주머니 외에도 옷 한 벌을 선물 받았다. 그곳에서 턱시도를 입고 다닐 순 없으니, 원장님은 신화를 참고하여 요괴들의 복장을 만들어 줬다.
두루마기와 한복처럼 생겼는데, 한국 신화에서 나오는 ‘도령 요괴’들의 전통 복장이라고 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편히 쉬어요. 당분간 많이 힘들 테니까요, 오호호.”
“…내일 봬요, 원장님.”
원장님이 들뜨고 신날수록 난 점점 더 무서워졌다.
*
그녀 말대로 난 일찍 퇴근해 치킨과 피자, 탕수육을 시켜 먹고 콜라 몇 병을 가방에 챙겼다. 이계 출장일을 할 때 가장 그리운 것 중 하나가 이 톡 쏘는 탄산이었다.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니 콜라 외에도 껌과 과자 등을 챙겼다. 그 외에 필요한 건 메타소드 한 자루뿐. 어차피 옷은 마법으로 저절로 깨끗해져서 상관없겠지.
짐을 싼 후 마찬가지로 이계에선 누리지 못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그 후 맥주 한 캔을 따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신화의 실존이라면…….”
신화와 전설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결국 이야기는 실존하는 그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니 참고할 만하겠지. 난 ‘위키’에 요괴를 검색했다. 과연 수많은 자료가 떴다.
‘다양하네.’
요괴 종류만 해도 수백, 아니 수천 가지나 될까? 각 요괴마다 이야기도 다르고 착한 요괴, 나쁜 요괴도 있었다. 특히 ‘대요괴’쯤 되는 놈들은 동북아시아 삼국 전체의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구미호 얘는 안 끼는 데가 없네.”
알면 알수록 신기했다.
설마 요괴들이 정말 존재한다니, 대전이 전에도 이처럼 기괴하고 신기한 것들이 있었다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는 건가?
‘신화와 마주하는 거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미묘한 느낌이다. 왠지 설렌다고 할까, 이계는 말 그대로 지구와 다른 곳들이라 생소하기 짝이 없어 아무리 신비하고 놀라운 것들을 봐도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요괴들의 세계는 내게도 익숙하다. 만화책에서나 봤던 그들은 과연 실제로는 어떤 존재들일까.
조금은 기대된다.
물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스펙터클한 상황도 염두에 둬야겠지.
‘야옹이와 교감하면 고양이 귀가 돋아나니 난 고양이 요괴인가?’
*
다음 날이 되었다.원장님은 삼라심천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고 내게 빨간 가죽 주머니 한 개를 건넸다.
“이건 세이렌의 노래 주머니보다 더 조심히 다뤄야 할 거예요.”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은 주머니 안에 그게 들어 있다니 함부로 열면 큰일 나겠군.
“무사히 돌아오길, 내 가디언.”
원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포탈을 넘었다. 난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넘어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곳은 보름달이 뜬 큰 강의 어귀였다.
방금까지 해가 쨍쨍히 뜬 아침이었는데 달밤이 되다니. 얼마나 가까운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대한 보름달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리고 밤이 차오른 거대한 강은 무척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어떻게 하지?”
원장님은 삼라심천에 도착하면 저절로 문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라 했지만 난 잠자코 서 있기만 할 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멀뚱히 서서 찬바람만 맞고 있을 때였다.
[으음, 좋은 냄새!]
매일 잠만 자던 단비 녀석이 일어났다. 녀석은 내 몸에서 빠져나와 강으로 향했다.
“단비야?”
마치 꿀을 향해 가는 벌처럼 녀석은 강을 향해 날아갔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난 녀석이 마치 술에 취한 듯 좋아하는 걸 느꼈다.
난 검은 강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양말이 젖는 걸 걱정할 때가 아니지.
단비를 따라 강으로 걸어갔다.
넓은 강이지만 깊진 않았다.
강의 중간 지점까지 갔음에도 수위는 허리춤에 지나지 않았다.
[저기 가자. 저기 좋은 냄새 나.]
단비는 안절부절못하며 자꾸 어디론가 가려고 했다. 요계로 가는 입구를 찾았나 싶어 녀석을 따라다녔지만 강물만 보일 뿐 다른 건 없었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이래선 안 될 것 같아 제자리에 섰다.
생각해 보자. 요계로 가는 문의 입구는 분명 평범한 문이 아닐 거야. 분명 신비하고 괴상한 방법으로…….
“노래?”
우두커니 서서 생각하던 그때였다.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엔 너무 작게 들렸지만 귀를 기울이자 볼륨을 높인 듯 노래는 점점 더 커졌다. 합창인가?
기괴한 음율, 북소리도 들리고. 착각이 아니야.
[라라라!]
단비가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분명 하늘에서 들려오는데, 허공엔 어둠만이 보일 뿐이다. 마법인가 싶어도 오리하르콘 브로치가 반응을 하지 않아.
대체 어디서 노래가 들리는 거야. 요계든 어디든 문을 빨리 찾고 싶었다. 강물에 옷이 추적추적해져 기분이 나쁜데.
“…엉?”
난 옷을 정리하다가 무심코 강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강물에 비춰진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봤다. 또 강을 내려다보고, 이젠 하늘과 강을 번갈아봤다.
하늘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강에 비춰진 하늘엔 밝게 빛나는 등불을 든 수많은 ‘요괴’들이 있다. 넘실거리는 강물에서 기괴하게 생긴 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흐음.”
난 머리를 긁적이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 강가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만약 문이 아니라면 머리까지 젖게 되어 낭패겠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분명 강물은 허리까지 오는 얕은 물이었지만 머리까지 잠수하자 내 몸이 모두 잠기고도 남을 만큼 깊은 강이 되었다.
“흐하!”
한참을 잠수하여 숨이 답답해질 때쯤, 난 고개를 내밀었다. ‘강 너머의 세계’에 도착한 것이다.
“강 자체가 문이었군!”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난 하늘을 날아다니는 백귀야행의 무리들을 보며 확실히 이곳이 요계임을 깨달았다.
하늘에선 기괴하고 정체 모를 존재들이 저마다 등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떠돌아다녔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으나 점점 행렬이 멀어진다.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난 야옹이의 힘을 불러냈다.
깊이 교감하자 짐승의 귀가 돋아나고 꼬리까지 생겨났다. 고양이 수염까지 자라나 영락없는 요괴의 모습이 되었다.
‘따라가도 될까.’
난 백귀야행을 따라갈지 고민했다. 요괴처럼 보인다고 해도 혹시 모른다. 그리고 요괴라고 생각하더라도 외부인인 날 배척할지도 몰라. 싸우긴 싫은데.
잠시 고민하던 그때였다. 백귀야행의 무리 중, 작은 무언가가 혼자 행렬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점점 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너! 뭐 하니?”
얼굴을 알아볼 만큼 가까워졌다.
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헷갈려 그냥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못 보던 아인데. 백귀야행은 처음이구나? 무리에서 떨어지면 위험해. 잘 따라와!”
녀석은 다시 돌아가려다가 갑자기 돌아왔다. 이번엔 더 가까이 온다.
“어머머, 등불도 잃어버린 거야? 그러니 날지 못하는 구나. 자, 내 어깨를 잡아.”
여우 귀와 꼬리를 가진 소녀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으라고 소리쳤다. 난 조금 맹한 상태로 일단 그녀와 어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요괴겠지? 그러면 품에 숨어 있는 작은 여우도 요괴인가? 녀석의 어깨를 붙잡자 몸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등불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등불이 있어야 하늘을 날 수 있는 것 같았다.
“같이 부르자. 떠나세! 대괴이의 결정자, 지천괴왕을 정하는 신성한 괴리의 신소로!”
지금 내 상황은 참 난감했다.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외국에 툭 떨어진 느낌. 아니, 그보다 백배는 어색한 느낌이다. 다행히도 어찌 됐든 요괴들과 같이 지내게 된 것 같다.
난 백귀야행에 어울려 노래 추임새를 넣으려 했지만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한참 동안 하늘을 날아 마침내 강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자 백귀야행은 끝이 났다. 그러자 노래를 부르느라 정신이 팔렸던 요괴들이 날 발견하곤 우르르 몰려왔다.
난 살짝 긴장한 채 그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새로운 녀석이야.”
“고양이 귀, 고양이족이구나!”
“검은 고양이야. 꽤 재미난 녀석인걸.”
검은 고양이?
난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을 쳐다봤다. 있었다, 내 뒤에 검은 고양이가. 녀석은 대체 언제 따라온 거람.
“성찬식에 데려가자!”
난 서서히 요괴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녀석들은 말이 많다. 그리고 신화와 달리, 나쁜 녀석들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