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66화 (166/258)

# 166화 요괴 (2)

이곳은 과연 요(妖)계였다.

요계의 공기는 굉장히 특이했다. 지구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선 확연하게 드러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청록색의 공기가 내 코로 들어가 입에서 나오는 것까지 모두 확인이 가능했다.

색깔 있는 공기의 신비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나와 비슷한 기운이 담겨 있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몸에 활력이 돌았다.

“가세, 가세. 곧 때가 온다네! 그러나 조심하게, 조심하게. 잡아먹히기 싫으면!”

난 노래를 부르는 요괴들을 따라갔다.

강어귀를 벗어나자 기괴하고 신비한 광경들이 펼쳐졌다. 가는 곳마다 지구와 이계에서조차 볼 수 없던 기묘한 풍경들이 가득했다.

난 방울방울 녹색 거품들이 비눗방울처럼 피어오르는 비린내가 지독한 늪지대를 지나 자동차 미등처럼 붉게 빛나는 불들이 수없이 펼쳐진 평야에 도착했다.

이곳이 신화의 바탕이 된 곳이라면 저 불들은 분명 도깨비불일 것이다.

요괴들은 평야에 모여 ‘잔치를 열어라’라고 소리쳤고, 그 순간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더니 흙으로 만든 거대한 식탁이 솟아났다.

식탁의 크기는 인간 수백 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넓었는데, 기괴하게 생긴 온갖 요괴들에겐 오히려 좁다고 느껴졌다.

나 또한 휩쓸리듯 요괴의 무리에 뒤섞여 앉았다. 내 옆자리에는 날 백귀야행에 데려다준 여우 요괴가 앉아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으나 그녀는 무심하게 할머니 보따리처럼 생긴 짐들을 풀기에 바빴다.

‘이들은 이종족인가? 아니면…….’

백귀야행의 행렬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난 요괴들을 관찰하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원장님이 말하길 요괴는 ‘불분명하고 기괴한’ 존재들이라고 하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인간들은 딱 봐도 ‘인간’이다. 덩치가 크거나 작거나, 피부색이 희거나 검거나 모두 인간이다. 그러한 점은 다른 종족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크는 오크처럼 생겼고, 엘프는 엘프처럼 생겼다.

그러나 요괴의 생김새는 너무 불분명하여 이렇다 할 ‘기준’이 없었다.

요괴가 만약 어떤 종족을 뜻하는 거라면 그들은 너무 각지각색이었다.

내 옆에 앉은 여우 귀의 소녀, 그 옆에 혼자 10인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지네 인간’, 발이 한 개 달린 외눈의 남자, 몸이 불타고 있는 여자, 비린내를 풍기고 이글거리는 눈을 가진 사람(성별을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그중엔 짐승처럼 네 발로 다니며 얼굴이 네 개 달린 개 인간도 있었고, 인간의 얼굴을 한 나무와 형태를 알 수 없이 마치 바람처럼 흩날리는 듯한 인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교감을 시도해도 그들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고, 사람의 말을 하니 마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괴하고 꺼림칙한 생김새를 본다면 누구나 그들을 괴물로 착각할 것이다.

‘한 가지 공통점은 있어.’

그러나 요괴들에게도 공통분모는 있었다. 그 점은 날 가장 헷갈리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요괴마다 품에 하나씩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지네 요괴는 지네처럼 생긴 무언가를, 여우 요괴는 품에 새끼 여우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들을 마물이라 부르기엔 애매했다. 그러나 또 요괴라고 하기에도 이상한 게 녀석들은 마물처럼 목소리가 희미하지만 들리긴 한다는 것이다.

‘여우야, 여우야.’

난 여우 요괴의 새끼 여우에게 계속 말을 걸었으나 녀석은 날 무시하기만 했다. 교감의 힘으로도 목소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었다. 다만 기묘한 느낌만을 받았다.

요괴들이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이 사실 진짜 요괴가 아닐까? 아니, 둘은 사실 하나일지도.

아무튼 ‘불분명’한 녀석들이야.

“성찬을 차려라!”

식탁이 준비된 건 뭐라도 먹는다는 것이다. 모든 요괴가 자리에 앉자 누군가가 ‘풍악을 울려라’라고 소리쳤고, 그러자 도깨비불이 반짝이더니 음악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악기들이 날아와 연주자도 없이 저절로 연주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신명 나는 동양 고전 음악이었으나 점점 갈수록 이상해졌다. 요계의 신비로움에 취해 있던 난 하우스 스타일의 EDM(Electronic Dance Music)이 흘러나오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요계와 요괴들마저 현대 문물의 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단 말인가?

요괴들은 비트에 맞춰 모가지를 돌리거나 팔 여덟 개를 덩실거리며 저마다 짐을 풀기 시작했다. 난 그제야 그들이 짐에서 꺼내는 것이 먹을 음식과 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넓은 식탁에 가져온 음식을 올려놓고 서로 나눠 먹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여우 요괴는 노란색 경단을 내게 건넸다. 내가 무심코 받아 들자 녀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넌 안 주니?”

상황으로 보면 음식을 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요괴들이 먹는 음식은 내겐 없다. 쭈뼛거리고만 있자 여우 요괴가 놀란 듯 과장된 몸짓으로 소리쳤다.

“어머나! 아무리 괴왕의 탄생을 구경 온 애송이라고 하더라도 반사동(盤絲洞)의 거미 요괴님의 잔치에 음식을 안 가져왔어? 큰일 났네. 거미 요괴님이 널 잡아먹으려고 할걸.”

여우는 호들갑을 떨며 날 일으켜 세웠다.

“이럴 때가 아니지. 곧 마님이 온다고! 얼른 도망쳐! 내가 시선을 돌릴 테니까.”

그러며 꼬리를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난 녀석의 꼬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코를 훌쩍거렸다. 뭘 하려는진 몰라도 이 무리에서 이탈하면 난 혼자가 된다. 요괴들과 당분간은 어울려야 편할 텐데.

“음식은 있어.”

난 가방을 내려놓았다.

요괴들이 이걸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 봐야지.

“술이야?”

가방에서 콜라를 꺼내자 여우 요괴가 살랑거리는 꼬리를 멈추고 관심을 보였다. 난 술잔에 콜라를 따라 건넸다.

“술이 아니네. 그래도 달아. 엑, 따끔따끔. 내 혀와 목을 공격해! 재밌는 물이네.”

한 잔 더 달라는 여우 요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요괴도 콜라는 좋아하는 것 같네. 내 앞자리의 술잔에 콜라를 담아 올려놨다.

요괴들은 음식을 교환해서 먹었는데, 단물이라 하여 내 콜라도 가져갔고 덕분에 경단, 주먹밥, 닭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반사동의 해주주(海州朱) 님이 행차하신다!”

음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음악이 멈추더니 누군가가 목청이 터지라 외쳤다. 그 순간 제멋대로 춤추고 노래하던 요괴들도 행동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엄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요괴들이 무서워하고 있다.

나 혼자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자 여우 요괴가 뒤통수를 잡고 고개를 숙이라고 말했다.

‘강한 기운이 나타났다.’

난 곁눈질로 멀리서 식탁을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를 확인했다. 청록색 안개가 걷히자 해주주라는 녀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으엑, 영락없는 마물이잖아.’

요괴이긴 하나 그녀의 생김새는 아라크네보다 더 기괴했다. 덩치가 집채만 한 거미였는데 몸의 위로 여자의 얼굴이 달려 있었다. 또한 다리가 거미보다 훨씬 많았고, 마치 창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요괴들은 겁에 질렸으나 도망치진 않았다. 여우 요괴가 말했지. 이 행렬은 거미 요괴님을 따른다고. 저자가 이 무리의 우두머리로군.

거미 요괴는 거대한 다리를 천천히 놀리며 식탁을 기어 다녔다. 그러며 식탁 위에 요괴들이 꺼내 놓은 음식과 술들을 모두 한 입씩 맛봤다. 요괴들은 자신의 음식을 먹어 주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고 ‘공물을 바칩니다!’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난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그녀가 음식을 먹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차례가 다가오지만 그런 요괴들은 아직까지 없었다. 난 머쓱하게 내가 꺼내 놓은 콜라를 바라봤다. 이런 걸로 될까.

마침내 거미 요괴가 내 옆자리의 여우 요괴의 경단을 하나 집어먹었다.

이제 내 차례다.

거대한 거미 요괴가 내 앞에 섰다. 녀석은 하얗고 불어 터진 못생긴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난 속으로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쉬이이!

거미 요괴는 입에서 하얗고 빛나는 실을 천천히 내뿜었다. 실은 콜라가 담긴 잔에 닿자 검게 물들더니 이내 콜라를 빨아들였다. 요괴는 콜라를 머금은 실을 다시 입에 넣어 곱씹었는데, 난 녀석의 표정이 점점 가라앉는 것을 보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처먹으니 그렇지.’

콜라를 탄산이 빠진 상태로 먹었으니 맛이 없을 수밖에 없다.

거미 요괴의 얼굴은 못생겼으나 감정은 잘 드러났다. 눈꼬리가 삐죽 올라가더니 팔자 주름이 깊어지고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화난 모양이다.

“히이익!”

여우 요괴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요괴들까지 모두 기겁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시 그녀의 입에서 실이 뻗어져 나온다. 이제 목표는 나였다.

역시 요괴, 준비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잡아먹는다니 해괴하기 짝이 없네.

쉬이이-!

거미 요괴가 벌린 입을 통해 소름 끼치는 이빨을 보았다. 꺼림칙했으나 무섭진 않았다. 난 담담히 지켜보다가 가방에서 과자 한 봉지를 꺼냈다.

젠장, 아껴 놓은 건데.

친절히 과자 봉지를 열고 달콤한 화이트 초콜릿으로 코팅된 동글동글한 캐러멜 과자를 내밀었다. 그러자 실이 방향을 틀어 과자들을 집었다.

“공물을 바칩니다.”

요괴들을 따라 하며 그녀를 지켜봤다. 울퉁불퉁한 얼굴이 서서히 녹아내리더니 거미 요괴는 전과 달리 세상 푸근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맛있나 보다.

거미 요괴는 내 차례를 끝으로 몸을 일으켜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러자 어떤 요괴가 ‘해주주 님이 가셨다, 풍악을 울려라!’라고 외쳤다. 다시 음악이 연주되고 요괴들은 껄껄 웃으며 음식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난 해주주라 불리는 거미 요괴가 지나간 자리를 빤히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기괴괴하다.

‘역시 속마음은 들리지 않았어.’

마물과 이종족의 경계에 있는 그들, 요괴.

비슷한 느낌이라면 마치 엘프들의 위수를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요괴들이 품은 정체 모를 생물들은 딱 잘라 무어라고 말하기 곤란했다. 난 가져온 노트를 꺼내 기록했다. 어디까지나 목적은 요계와 요괴들에 대해서 알아 가는 거니까.

[마물 혹은 요괴와 이종족 혹은 요괴. 둘의 상관관계는 엘프와 위수들처럼 영혼이 깊게 연결되어 있다. 아니, 마치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마물과 깊게 교감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나’가 되듯이 말이다.]

하나가 되다.

하나.

왠지 그 단어에 사로잡혀 난 한참동안 노트를 바라봤다.

*

백귀야행은 낮에 쉬고 밤에 움직이는 형태로 계속되었다.

낮에 요괴들은 깊은 잠에 빠져 웬만한 인기척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틈을 타 난 요계를 둘러보았다.

낮과 밤의 요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와 같았다. 낮의 요계는 지구와 같았다. 나무들이 스산하게 춤을 추지도, 도깨비불이 피어오르지도, 녹색 공기가 일렁거리지도 않았다.

다만 지형은 지구에서 볼 수 없는 기괴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뒤집어진 산과 소용돌이치는 강 따위가 그렇다.

밤엔 백귀야행에 동참하여 ‘성소’라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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