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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67화 (167/258)

# 167화 요괴 (3)

결국 챙겨 온 콜라와 과자는 녀석의 몫이 되었다. 난 여우 요괴에게 요괴들이 그들의 단어로 ‘공물’을 바쳐 가며 성소에 몰려드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지천괴왕’

한마디로 요괴들의 왕.

요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자이며 모든 요괴를 대변하는 자라고 했다. 하지만 ‘대전이’ 이후 왕은 사라졌고, 20년이 넘도록 왕좌는 빈자리였다.

요괴들은 요계의 왕이 되기 위하여 치열하게 싸웠고, 그중 수많은 요괴를 통솔하는 ‘대요괴’들이 나타났으나 그들 또한 지천괴왕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천괴왕은 모든 요괴의 힘을 다룬다고 전해졌는데, 요괴 수천을 수하로 둔 대요괴라고 할지라도 모든 요괴를 품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대요괴들의 전쟁으로 요계는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노래가 멈추고 도의가 떨어진 요계에 살육과 죽음을 탐하는 흉괴마저 나타나니 요계는 지옥과 다름없었다.

얼마 전, 결국 사태를 관망할 수 없었던 대요괴들이 도깨비의 주막에 모여 결단을 내렸고, 옛날에 잊힌 신화대로 지천괴왕을 선별하겠다고 천하에 공표했다고 한다.

이것이 백귀야행을 거닐며 요괴들이 한곳에 모이는 이유였다.

이 땅은 요계에서도 가장 신성한 신들의 땅, 괴이가 탄생할 때부터 존재해 오던 영수 네 마리가 지내고 있는 곳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지천괴왕은 영수들의 힘을 받아 요계를 삼키려던 사악한 이룡(?龍)을 죽인 영웅이니, 이번에도 네 마리 영수의 선택을 받는 요괴가 지천괴왕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다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애송이구나. 어흠! 난 ‘구미호’님을 뵈러 가고 있어. 그분은 달기 님께서 죽고 난 후 많은 고통을 받고 계시거든.”

여우 요괴는 네 마리 영수 중 하나인 구미호의 종비(從婢)요괴였다. 난 녀석을 치켜세워 주며 구미호의 정보를 캐려고 했으나 여우 요괴는 구미호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흥미로운데.’

요계는 혼란스러웠다.

그것도 대요괴들이 지천괴왕이 되기 위해 성소로 모이는 시기에 내가 도착했다. 정말 내가 원장님 말대로 트러블 메이커인지, 어쩜 이렇단 말인가. 하지만 걱정보단 흥미가 앞섰다.

이곳에서 본 요괴들의 힘, 네 마리의 영수 그리고 ‘내 힘.’

‘원장님은 알고 계셨던 걸까?’

물론 그녀가 의도했든 안 했든 상관없었다. 난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강해지기 위해서 게걸스럽게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번 일은 특히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

해주주라 불리는 대요괴와 그녀를 따르는 요괴 무리와 같이 다닌 지 며칠이 지났다.

영수의 영역인 성소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요괴들의 행렬과 자주 마주쳤으나, 그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해주주란 자는 제법 요괴들 사이에서 이름난 요괴인 듯했다.

깊은 밤이 되었다.

주황색 나무 몸통에 보라색 잎을 가진, 기괴하게 생긴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난 숲에서 또다시 연회가 열렸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식탁이 세워졌고, 난 낮에 잡아 둔 오리 구이를 꺼내 놓았다.

밤마다 술과 음식을 나눠 먹고 같이 노래를 부른 터라 여우 요괴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하고도 친해졌다. 난 지네 요괴의 독으로 담근 술을 벌컥 마시며 노래에 맞추어 엉덩이를 실룩거렸다. 요괴들의 장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취흥을 즐긴다는 점이었다.

“그게 무슨 춤이야?”

여우 요괴의 질문에 난 두 팔을 새처럼 파닥거리며 날갯짓했다.

“타래딱새의 춤.”

“그거 참 우아하다.”

사람의 눈에 내 몰골은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추잡스러운 남자로 보이겠지만, 요괴들은 제법 보는 눈이 있었다.

그들은 내 춤을 좋아했다. 난 불타는 여인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췄고, 내 주위로 요괴들이 몰려와 북을 치고 장구를 치며 흥겹게 노래했다.

세이렌을 비롯하여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마물들과 교감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노래와 춤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신나욧!]

단비 녀석도 나와 춤을 췄다.

난 멀리 해주주가 수많은 거미 다리를 으쓱거리며 추는 작은 춤사위를 쳐다봤다. 첫날의 인상은 꺼림칙했지만 지내다 보니 그리 못된 녀석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처럼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흥청망청 놀 때였다.

온갖 요괴들이 성소로 몰려들어 정신없이 노는 것처럼 보여도 해주주는 다른 대요괴를 경계하여 보초를 세웠다.

이번 밤 보초를 서는 달팽이 요괴가 진득거리는 몸을 급히 놀리며 달려왔다.

“습격이다!”

달팽이 요괴는 술에 취한 요괴들에게 녹색 액체를 뿜어 대며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상당히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노래가 멈췄다.

해주주가 나선다. 시퍼런 안광을 내뿜으며 달팽이 요괴를 보챈다. 숨을 가쁘게 쉬던 그가 끈적이는 액체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황화관(黃花觀)의 백안마군(百眼魔君)이오! 놈이 습격해 왔소!”

해주주는 백안마군이란 소리를 듣자 날카로운 다리로 주변을 마구잡이로 부수며 분노를 표했다.

“내 자매들을 죽인 원수!”

그와 동시에 다른 요괴들도 몸을 일으켜 무기를 꺼냈다. 여우 요괴는 꼬리를 흔들고, 도깨비들은 방망이를 꺼냈으며, 짐승처럼 생긴 자들은 송곳니와 발톱을 추켜세웠다.

난 그 모습을 보며 뒤로 물러났다. 야옹이의 힘이 깃든 나라서 그 누구도 내 부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으하하! 여기 있었구나, 반사동의 거미 놈아!”

난 잠자코 습격하는 요괴 무리와 그에 맞서는 해주주의 요괴들을 지켜봤다.

황화관의 백안마군이라 불리는 마물은 거대한 지네 요괴였다. 크기는 코끼리의 네다섯 배였고, 꿈틀거리는 수십 개의 다리에선 위험해 보이는 녹색 독극물이 뚝뚝 떨어졌다.

놈은 독과 불로 무장한 요괴 수백을 데리고 등장했다. 독기가 얼마나 강한지 요계의 나무들과 풀들이 놈들의 숨결에 시들어 갔다.

‘살벌하네.’

백안마군이 입을 벌려 독니에서 독을 뿜으니 해주주가 나서 실로 막아 낸다. 그러나 독은 순식간에 실을 녹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근처에 있던 요괴들은 목을 부여잡으며 즉사했다.

‘저게 대요괴들 간의 싸움.’

격렬했다.

요괴들의 싸움은 마물들의 싸움처럼 기괴하고 잔인했으며 인간들의 싸움처럼 교묘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두 세력 모두 전장의 중심에 있는 날 눈치채지는 못했다. 난 내 옆에서 펼쳐지는 도깨비의 요술과 독 요괴들의 독무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크아악!”

“감히 거미 주제에 황화관의 군주를 이기려 드느냐? 네 어미의 어미까지도 내게 잡아먹혔다. 으하하.”

해주주와 백안마군 모두 대요괴였으나 둘의 힘 차이는 명백했다. 해주주를 따르는 요괴들 또한 두꺼비, 지네, 나방과 포자 요괴들의 독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해주주는 지네 요괴의 독에 당해 에프킬라를 뿌린 거미처럼 몸부림쳤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대로 두면 해주주와 해주주를 따르는 모든 요괴들은 죽겠지.

‘녀석.’

난 제가 만든 안개에 숨어 벌벌 떠는 여우 요괴의 모습을 지켜봤다. 주위의 독이 안개를 잠식하는 중이기에 곧 있으면 독에 중독될 것이다. 잠자코 있던 난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을 나눠 먹은 정도 있으니.’

지천괴왕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 전까진 나서지 않으려고 했으나 비록 며칠 동안의 정이라도 할지라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렇게 보면 세상만사 참 우습다. 놈은 해주주를 압도했지만 하필 내가 있을 때 나타나다니… 불합리하고, 불공평하지. 어쩔 수 있나. 내가 해주주의 편을 들든 말든 그건 내 자유니까.

해주주에게 독니를 박아 넣으려는 백안마군의 앞에 서서 난 존재를 드러냈다.

“마!”

초반의 기선 제압을 위해 세게 나갔다. 내가 코앞에 있었음에도 몰랐던 백안마군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것 같았다. 몸을 꿈틀거리며 뒤로 확 물러나더니 이내 내가 소리쳤음을 확인하곤 재빠르게 기어 오기 시작했다.

놈은 시퍼런 혀를 날름거리며 내게 외쳤다.

“괴(고양이) 한 마리가 감히 내 앞에 서? 어디에서 온 놈인지 말해라. 네놈의 뿌리까지 모두 죽여 줄 테니.”

저 머저리 요괴는 그걸 말하라고 하면 내가 말할 것이라 생각하나?

요괴들은 출신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반사동의 해주주, 황화관의 백안마군.

고민하던 난 어차피 요계의 일에 대해 연루될 거라면 잠시 어울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디 보자…….’

출신부터 말하고 내가 누구인지 말하면 되겠지.

“난 만마가 기거하는 만마동의 수호 대장군이다.”

그냥 장군이라 하면 꿀릴까 봐 대(大) 자를 붙여서 수호 대장군이라 외쳤다.

마물원에서의 내 이력은 굉장하다. 어느 상황에서나 그럴 듯하게 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뭐?”

그러자 백안마군은 잠시 독 혀를 날름거리는 걸 잊곤 지네 더듬이를 실룩거리며 표정을 구겼다. 만마동이 어딘지 생각하는 듯했지만 알 리가 있나. 내가 지어낸 곳인데.

쿵-!

난 어리둥절한 놈을 기다려 주지 않고 뛰어올라 뒤꿈치로 놈의 머리를 가격했다. 단순한 공격이었으나 놈은 대가리를 땅에 깊숙이 처박고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오?”

과연 대요괴인지, 놈은 공격을 쉬이 버텨 냈다. 다만 몹시 분노하여 온몸에서 녹색 독액을 내뿜기 시작했다.

분명 놈은 강했다. 베테랑 헌터라도 놈을 당해 낼 순 없을 것이다. 실제로 독은 샐러맨더의 기운이 아니었다면 인간을 벗어난 내 육체에도 위협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놈의 가장 큰 무기는 내게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놈을 죽일 다양한 수단이 내겐 있었다. 예부터 해충은 불에 태워 죽이라고 그랬다.

형의검, 샐러맨더 VER. ‘2’

홍아, 붉은 송곳니가 된 메타소드를 하늘 높이 추켜세우고 샐러맨더의 기운을 끌어올린다. 송곳니는 불에 휩쓸려 이내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간다. 확장의 성질을 가진 대륙거북의 힘이 뒤섞여 훨씬 강력해진 화염이 된다.

‘단비야, 바람.’

불은 바람에 의해 불씨를 키운다.

이 힘, 사타리언 부인의 남편을 가르치며 무공서를 만들 때 고안해 냈다.

내 힘은 보다 정교해진 기술이 되어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해내게 되었다. 이 힘은 형의검, 샐러맨더 VER. 홍식을 이은 새로운 기술이다. 그때 붙인 이름이 염화(炎火)의 고리였다.

한 대상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붉은 숨결 홍식과 달리, 이 힘은 사방을 불태운다.

하늘을 불태울 만큼 거대해진 화염은 내가 홍아를 휘두르는 대로 움직였고, 이내 거대한 불의 폭풍이 되어 고리처럼 내 주변을 휩쓸었다.

막대한 마나가 필요해 오래 지속하진 못하나, 지금은 짧아도 괜찮다.

불의 폭풍이 끝났을 때.

가장 근접해 있던 백안마군의 온몸은 새까맣게 탔고, 그를 따르던 독 요괴들은 목숨을 간신히 건졌으나 극심한 화상을 입어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해주주와 요괴들은 멀쩡했다. 샐러맨더의 기운 자체가 평범한 불과 달리 대상을 구별하기 때문이었다.

“너네 사정에 관련해서 미안하긴 한데 어쩔 수 없었어. 참 불공평해. 음식 나눠 먹은 게 뭐라고.”

놈을 지켜보던 난 몸에 묻은 독액을 털어 내며 자리를 벗어났다.

백안마군은 아직 살아 있었으나 해주주는 그를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날카로운 거미 다리가 그의 몸을 헤집었고, 백안마군은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

전투가 끝나고 해주주가 날 찾았다. 경련을 일으키는 몸으로 간신히 일어나 내게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죽어 가고 있었다.

“독 때문입니까?”

해주주가 대답했다.

“황화관의 지네는 우리 자매의 천적이었다. 난 이제 손쓸 도리가 없이 죽겠지. 그러나 놈을 내 손으로 찢어 죽였으니 미련은 없다. 힘을 숨기고 있던 만마동의 수호 대장군이여, 난 그대가 지천괴왕이 되었으면 하는구나.”

그녀는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 냈다.

“이 비녀는 반사동의 은인이란 표식이다. 나를 따르는 무리를… 네가 이어서…….”

해주주는 말을 내뱉을 힘조차 없어 보였다. 난 가만히 그녀의 죽음을 지켜만 봤다.

날 냉정하다고 생각하려나. 하지만 슬플 이유가 없는걸.

그녀라면 많은 걸 알고 있겠지.

난 그녀의 몸통에 손을 올렸다. 다루기 힘들지만 그때 이후로 이젠 이처럼 사소한 작업은 능히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해주주의 몸에 침투해 있던 백안마군의 독을 찾아내어 샐러맨더의 불로 태워 버렸다. 곧 정화의 불은 중독된 다른 부위로 옮겨 가며 해주주의 독을 모두 정화시켰다.

“아? 내 몸이… 이건……?”

죽어 가던 해주주의 몸에 혈색이 돈다. 그녀는 내가 목숨을 살려 줬음을 깨닫고 영원히 충성을 맹세하겠다고 말했다.

“그보다 말해 주면 좋겠어. 네가 감추고 싶은 비밀들까지 모두.”

가방에서 ‘세이렌의 노래 주머니’를 꺼냈다. 여우 요괴에게선 들을 수 없었던 요계의 이야기들, 녀석에겐 들을 수 있겠지.

주머니를 열자 노래가 흘러나왔고 곧 해주주의 눈이 몽롱해진다. 난 그녀의 머리 위로 피어나는 열매를 지켜보다 입을 벌렸다.

그럼으로 난 요계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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