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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68화 (168/258)

#168화 요괴 (4)

요괴들은 다른 생물들처럼 생명을 잉태하여 태어날 때도 있으나 자연적으로 생겨날 때도 있으며, 괴이 현상에서 태어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해주주는 반사동의 신선이 거미줄로 빚어낸 자였고, 여우 요괴는 평범한 여우였으나 신통력을 얻어 요괴가 되었다.

도깨비 요괴는 오래된 물건으로부터 탄생했으며 오히려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요괴들이 더 드물다. 이러한 기묘한 존재들인 요괴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요괴란 존재들은 모두 ‘태어날 때’ 요괴를 품는다는 것이다. 내가 마물로 생각했던 요괴는 생물의 개념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요괴를 요괴로 존립시키는 존재였고, 요괴의 근본이며, 요괴의 혼이자 정신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요괴의 근본을 보는 건 굉장히 특이한 일이었다.

요괴들은 자기가 가진 ‘괴이의 존재’를 오로지 자신만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난 여우 요괴가 품은 작은 요괴도 해주주가 품은 거미줄에 감싸진 거미도 보였다.

해주주의 기억으론 요괴가 어디서 온 존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인어들과 달리 그들은 ‘이계’에서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요괴들은 그저 지구에 존재해 왔으며, 해주주의 기억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곳에서부터 요괴들도 시작되어졌다고 여기는 듯했다.

요괴는 요계에서 살며 지구에 영향을 끼쳐도 모두 신화로 남을 뿐 실질적으로 인간들과 관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전이는 그들에게도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지구가 이계와 뒤섞일수록 요계 또한 비틀려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요괴들은 다른 이념을 가진 두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대전이 이후 요계에서 벗어나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옛 신화와 설화의 괴이로 남아야 한다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갈등은 좁힐 수 없는 것이라 지천괴왕, 요계의 왕이 아니고서야 전쟁은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요괴가 이념에 따라 싸우는 건 아니었다. 흉괴라 하여 단지 살육만을 원하는 탐욕스런 요괴들은 왕이 되어 요괴들뿐만 아니라 지구의 인간들도 잡아먹을 사악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왕이 되어 요계뿐만 아니라 지구마저 지배하려고 드는 권력욕을 가진 요괴들도 있었다.

성소에 모이는 대요괴들 중에서도 가장 지천괴왕에 가까운 대요괴들이 있으니, 해주주의 기억에 따른다면 그들은 모두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만약 그들 중 한 명이 지천괴왕이 되어 세상에 나선다면 대전이 이후 발생했던 마물 범람보다 훨씬 혼란스러운 재앙이 될 것이다.

난 해주주의 기억들 속에서 요계와 요괴들에 대해 알아가며 문득 내 힘의 연장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난 마물의 힘을 빌릴 수 있었지. 물론 요괴와 마물은 다르다. 그러나 ‘영수’라 불리는 요괴들은 스스로가 괴이가 된 존재들이라 다른 요괴들과도 본질적으로 달랐다.

괴이의 주인이 있다면 힘을 빌리지 못하나 독단으로 행동하는 영수들이라면 교감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천괴왕은 하늘과 땅을 모두 제 괴이로 물들이는 강력하고 엄청난 힘을 지녔다고 했다.

‘못할 것도 없지. 어차피 흉괴들이 괴왕이 되어 지구에 나타나면 원장님이… 나더러 싸우라고 할 테니까.’

명분은 흉괴들이 왕이 되어 지구에 재앙을 일으키는 걸 막는 것.

하지만 실상 욕심이 가장 컸다.

마물원에서 일하면 일할수록 힘에 대한 탐닉에 빠져들어 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적어도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내가 계속 그녀 곁에서 지내려면 난 강해져야 한다. 물론 고민을 타파할 가장 쉬운 방법은 마물원을 그만두는 것이지만 내 선택지에는 없었다.

전과 달리 힘을 갈구하게 된 건 생존권에 대한 노력 혹은… 자격지심의 탈피쯤 되겠지.

*

단순히 요계에 대해 알아 가는 것과 지천괴왕이 되겠다는 건 각오에서부터 천지 차이가 난다. 그만큼 위험해질 것이다. 난 원장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답은 뻔했으나 일단 보고는 해 둬야 될 것 같았다.

-잘 해내실 거라 믿어요.

역시 대답은 한결같았다. 원장님은 날 믿는다고 하였다. 지금보다 훨씬 머저리 같고 멍청했을 때의 나한테도 믿어 준다고 말하던 원장님이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각오한 일인 만큼 내 선택을 존중해 줬다

-정말 위급할 땐 옷의 안주머니에 있는 그걸 쓰세요.

언제 넣어 뒀는지 원장님 말대로 두루마기의 안주머니에 작은 부적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원장님은 1회용 탈출기라며, 부적을 찢는 즉시 마물원으로 이동할 거라고 했다. 대신 사지가 비틀리지만 죽진 않을 거란다.

“열심히 뺑이 치고 오겠습니다.”

연락을 끊은 난 가만히 요계를 둘러봤다. 지평선 너머 피어오르는 동그란 무지개를 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비율로 표시하면 기대와 설렘 60%, 흥분 60%, 20%의 걱정과 30%의 두려움. 도합 150%의 감정 과다 상태.

“우선 시작은…….”

난 요령이 없다.

요행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니 내 방법대로 빠르게 조져야겠다.

*

여우 요괴는 4성수 중 하나인 구미호를 알고 있었다. 난 독기를 치료 중인 녀석에게 다가가서 말끔하게 치료해 주며 말했다.

“구미호님에게 날 데려가 줘.”

고맙다고 꼬리를 살랑거리던 녀석이 표정을 굳히며 노란 눈알로 날 째려본다.

“왜?”

난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지천괴왕이 될 거야.”

그러나 여우 녀석의 반응은 격렬했다. 녀석은 ‘히익-!’거리며 귀를 뾰족 세우더니 덤불 쪽으로 도망치며 ‘미친놈, 미친놈이다.’라고 읊조렸다.

난 미친놈 타령하는 여우 녀석을 쫓아갔다. 꼬리에서 나오는 안개가 놈의 모습을 가리지만 내게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결국 녀석은 내 손에 잡혔다.

“다 들려, 인마.”

코앞에서도 미친놈 타령을 하는 여우 요괴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녀석에게 악의는 없다. 그저 약간의 거짓말을 할 뿐.

“걱정하지 마. 난 구미호님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데려다주기만 하면 돼. 구미호님이 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뭐? 아니야. 그게 아니야. 난 구미호님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걱정된다고!”

녀석은 바들바들 떨며 또 도망쳤다. 몇 걸음 가지 못해 잡힌 녀석은 제발 날 놓아 달라며 소리쳤다.

“진정해.”

녀석에게 사탕 한 알을 먹이며 진정시켰다. 여우 요괴는 훌쩍거리며 부디 자길 안내인으로 쓰지 말라고 부탁했다.

녀석이 겁먹은 이유는 알고 보니 제 안위 때문이었다. 여우 요괴는 종비 요괴라 구미호란 녀석을 섬기긴 하나 구미호의 괴팍함에 대해선 신랄하게 욕을 했다.

만약 자기가 나같이 힘만 센 애송이(여우 요괴는 내 앞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를 신성한 여우 신당에 데리고 간다면 자긴 구미호님을 지키는 여우들에게 무시무시한 벌을 받을 거라고 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난 여우 요괴에게 내가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안내했다고 변명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녀석은 떨떠름한지 입을 앙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크흠, 어쩔 수 없네.’

요괴들과 지내며 느낀 게 있다.

녀석들은 힘의 순리를 따른다. 강한 요괴를 중심으로 무리가 결성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치 늑대 무리 같다. 강자에 굴복하고, 우두머리를 존중하지.

그래, 악의는 없지만 난 녀석이 날 존중하길 바랐다. 난 여우 요괴의 귀를 잡고 소곤소곤 속삭였다.

그러자 여우 요괴는 또다시 ‘히이익’거렸으나 도망치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백안마군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 녀석은 녀석에게 한 내 말이 진담처럼 느껴졌겠지.

[구미호님이 있는 곳을 알려 주지 않으면 네 꼬리와 귀는 탕으로 끓이고, 몸은 숯불에 넣어 구워 먹어 줄 테다.]

협박을 한 뒤로 여우 요괴는 고분고분해졌다. 날 보는 시선이 맹수를 쳐다보듯 두려움에 떨긴 했어도 말이다. 그래도 날 지켜 주려고 했던 녀석인데 조금은 미안하네.

“사탕 한 개 남았는데 먹을래?”

“히이익!”

이제 말만 걸어도 경기를 일으키니.

*

어쩌다 보니 나는 해주주의 무리를 이끌게 되었다. 요괴 녀석들은 정말 힘을 중요시하여 내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백안마군과 놈의 무리를 일격에 쓸어버린 게 꽤 인상에 깊었나 보다.

해주주는 내가 생명을 구해 준 후부터 날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내 부하라도 된 듯 굴었다.

“황하의 소금쟁이 요괴들입니다.”

오래 살아온 요괴라서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성소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요괴 무리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대부분 거대 거미 요괴 해주주를 보며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지만 지금처럼 오히려 덤벼올 때도 있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야. 전쟁터가 따로 없네.”

“북쪽의 요괴들에겐 제 영향이 미미한 터라 잡괴들마저 분수를 모르고 쟁을 해 오는군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지천괴왕. 왕의 자리가 탐나는 자리긴 한가 보다. 요계 각지에서 몰려든 별 시답잖은 요괴들조차 경쟁자를 제거하겠다고 나섰다. 저 가느다란 다리를 찰랑거리며 뛰어오는 소금쟁이 녀석들처럼.

“나서지 마세요.”

해주주와 요괴들이 맞설 준비를 했으나 난 멈추게 하고 홀로 나섰다. 내 목적은 요괴들을 때려 부수는 게 아니다. 그저 빨리 4성수란 녀석들을 만나고 싶다.

소금쟁이 요괴들 중 가장 뒤쪽에서 가장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 봤자 해주주의 반도 안 되는 기.

무리를 이끌며 다른 무리를 공격하겠다는 건 스스로 죽음을 각오했다는 거겠지.

“홍식.”

붉은 송곳니에 깃든 타오르는 불꽃은 화살처럼 순식간에 뻗어 나가 우두머리 요괴의 몸을 꿰뚫고 불태웠다.

이제 이곳에서 움직이는 자는 불을 끄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금쟁이 요괴의 우두머리밖에 없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만을 바라본다. 결국 녀석은 바람 빠지는 비명을 끝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

정신을 차린 소금쟁이 요괴들은 덤벼 오던 것보다 더 빠르게 도망쳤다.

‘이래선 안 돼.’

승부랄 것도 없이 압도적인 위치에서 압살했다. 이 짓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소문이 퍼져 함부로 날 건드리는 요괴들은 없어지겠지.

하지만 늦는다. 내 목적은 좀 더 빠르고 간단해야 해.

그날 밤, 검은 나무들이 자라난 기묘한 산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산은 영산으로 최초의 지천괴왕이 이룡을 요계에서 몰아낸 신성하고 영험한 산이었다. 이 산에 얼마나 많은 요괴들이 몰렸는지 눈을 돌리는 곳마다 굵직한 기운들이 수없이 느껴졌다. 그러나 불가침 영역 같은 곳이라 싸움이 벌어지진 않았다.

“흑목산은 괴왕과 이룡의 기운이 잔재되어 있으니 대요괴들도 함부로 기운을 발산하지 않는 곳입니다. 잠시 쉬었다 가시지요.”

해주주의 말에 난 마침 잘되었다 싶었다. 일부러 요괴들의 이목을 잘 끄는 탁 트인 언덕에 올라갔다. 항상 곁에 있던 해주주가 이번에도 날 따라나서고 호기심 많은 여우 요괴도 따라왔다.

마물들 중엔 목청이 유난스레 큰 녀석들이 있었다. 마나를 이용한 특이한 발성 기관 때문이다. 시끄러운 놈들이라 좋아하진 않았으나 같은 동족만이 소리를 견딜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깊이 교감했었지.

퍼져 나가는 목소리의 마나에 내가 겪은 마물 중 가장 두려웠던 놈의 기운을 섞었다.

“귀 막아요.”

거미인 해주주는 제 털을 거미줄로 감싸고 여우 요괴는 튀어나온 제 귀를 손으로 꾹 눌렀다.

난 곧바로 끌어올린 마물의 힘을 토하듯이 발산했다.

이 기술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가장 날 나타내는 말이 있었다.

지랄발광.

즉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같은 느낌.

그아아아아악-!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는 흑묘산 전체를 진동시켰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산사태가 일어날 지경이었다. 소리를 내뱉은 나조차도 수백 발의 폭죽 소리를 들은 듯 귓구멍이 따가웠다. 여우 요괴는 기절했고, 해주주마저 발라당 몸을 뒤집은 상태였다.

반응은 곧바로 왔다. 흑묘산에 몰린 요괴들이 저마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내 목소리에 대답했다. 대부분 굴복을 시인하는 의미다.

난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맹수들이 영역 표시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직접 물어봐서 잘 알았다. 굳이 싸우기 싫어서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알려 줄 테니, 알아서 설설 기라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싸워 주겠다며 으름장 놓는 놈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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