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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72화 (172/258)

#172화 요괴 (8)

“다른 영수님들도 아십니까?”

“요계의 주인들을 섬기는 게 제 업입니다. 비록 그분들은 제 도움이 필요치 않으시지만 전 많은 걸 알고 있지요.”

무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여우 요괴가 다가오더니 그녀의 치마폭을 잡으며 물었다.

“언니, 만마굴의 수호대장군이랑 아는 사이야?”

무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나리야. 난 그가 지천괴왕이 되도록 돕기로 했단다. 그 대가로 이분은 우릴 바깥세상으로 데려다줄 거야.”

“와아, 지구로? 어쩐지. 역시 넌 좋은 요괴였구나!”

난 인상을 찌푸리며 둘의 대화를 들었다. 아니, 대체 언제부터 그런 약속을 했었지? 무녀는 나도 모르는 채무 관계를 만들어 놓았다.

무녀는 신당을 벗어나 나와 같이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하산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제 동생인 금나리, 그리고 전 무녀가 되기 전엔 금송화라고 불렸지요.”

어쩐지 머리색과 얼굴이 닮았다더니 둘은 요괴가 되기 전 ‘여우’였을 때부터 자매였었다. 송화란 이름을 가진 무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여우 자매가 요괴가 되고 나서 일어난 일, 요괴로서 요계에서 지내지만 지구를 그리워하는 동생, 그리고 무녀가 된 자신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첫 만남에 비해 거리가 좁혀진 것 같았다.

“다른 영수님들에게 가는 길을 알려 줄 터이니 모든 일이 끝나면 우리 자매를 지구로 데려가 주십시오.”

송화가 날 도운 목적을 말했다.

난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승낙했다. 어차피 지천괴왕이 된다면 모든 요괴들에게 선택권을 줄 생각이었다. 그녀들이 지구로 오고 싶다면 그냥 그런 것이다.

산 아래의 들판에는 해주주와 다른 요괴들이 내가 오기 전까지 전치나 벌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 팔목을 들어 올리며 구미호의 힘을 받은 징표를 보여 줬다. 역시 요괴는 강한 자를 숭배한다.

우아아아-!

환호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니었으나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

구미호의 힘을 얻었으나 난 구미호 영산의 근처에 머물며 ‘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송화가 경고했다.

내가 오기 전, 구미호의 신사를 노리는 흉괴 한 놈이 있었는데 이제 안개가 걷히고 달이 저물었으니 신당에 침범하려고 든다고 했다. 구미호가 승천했다고 믿는 여우 요괴들은 계속해서 영산에 남아 도를 갈고 닦았다.

놈은 무척이나 강한 흉괴로서 여우 요괴의 천적이니 남은 요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이대로 두다간 아마 모두 잡아먹히고 말겠지.

송화에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자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여우 요괴를 구해 주는 것도, 놔두고 무시하는 것도 내 선택에 달려 있으니 자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이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지랄이네.’

그래서 난 남아서 놈을 마주하기로 했다. 여우 요괴들을 모조리 죽일 뻔한 일을 자책하기 위해서다. 비록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빚 갚는 심정으로 만회하고 싶었다. 게다가 놈은 대요괴, 내 힘을 시험해 볼 기회기도 했다.

구미호의 힘을 받았으나 마나가 늘어나지도, 그녀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콕 집어 말하진 못해도 난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무리들을 땅굴에 숨기고 거미줄로 입구를 쳤습니다. 여우의 술법으로 교묘하게 숨겨놔 놈도 입구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허나… 정말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놈이 홀로 다니는 놈이라고 할지라도 요괴들의 천적과도 같은 놈입니다.”

난 해주주와 송화에게 부탁해서 요괴들과 같이 놈이 오기 전에 꽁꽁 숨어 있으라고 말했다.

난 홀로 싸울 생각이었다. 놈이 정말 해주주 기억 속의 대요괴가 맞다면 다른 요괴들의 힘은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항상 청록색으로 피어오르던 요계의 공기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멀리서 놈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 요괴를 신화에선 이렇게 불렸다.

‘맥.’

코끼리의 코, 곰의 몸, 소의 꼬리, 코뿔소의 눈과 호랑이의 발톱을 가졌다 전해지는 맥은 악몽을 잡아먹는 요괴다. 민간에선 상서로운 요괴로 여겨지나 실제 요계에선 아니었다.

그저 재앙이라 불렸다.

요괴임에도 다른 요괴와 취급이 달랐다. 놈은 ‘괴이를 잡아먹는 괴이’였다. 따라서 요괴들의 천적이며 다른 대요괴들과 달리 홀로 다니나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마치 지나가기만을 빌어야 하는 가뭄과도 같은 재앙이었다. 탐욕스러운 놈의 혓바닥이 핥고 지나간 곳은 더 이상 괴이가 탄생하지 않는다.

요괴들은 놈을 두려워했다. 잡아먹힌다면 괴이가 사라져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청 크군.’

난 혼자 들판에 서서 다가오는 놈을 지켜봤다. 지평선 너머 모습을 드러낸 놈은 지금까지 마주쳤던 그 어떤 요괴들보다 크기가 컸다.

백안마군이 집채만 한 덩치였다면 놈은 아파트였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점점 가까워졌음에도 발걸음은 들리지 않았다. 저 정도 덩치면 지진이라도 일어나야 정상인데 고양이 걸음처럼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맥은 코끼리의 코처럼 긴 코로 주변을 게걸스럽게 핥으며 걸어왔다. 그러자 요계의 청록색 공기가 사라지고 영롱하게 빛을 발하던 도깨비불도 꺼져갔다. 괴이를 잡아먹는다는 게 무엇인지 실감했다.

어느덧 100M 앞까지 다가온 놈이다. 난 홍아를 꺼내어 가볍게 휘둘렀다.

“홍식.”

시뻘겋게 불타는 홍염이 어둠 속에서 강렬히 빛나며 놈에게 쇄도한다. 그러나 놈은 입을 벌려 불꽃을 뜯어 먹었다.

“애매하지.”

괴이를 잡아먹는 요괴라.

그렇다면 괴이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다루는 모든 힘은 다 괴이의 영역에 있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불꽃을 내뿜고 바위를 일격에 부술 수 있어?

“재밌는 실험이야.”

밤이지만 따뜻했던 요계.

그러나 내 주변으로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가 본다면 내 머리는 백발로 하얗게 새어 있겠지.

아이스독의 기운을 끌어올리자 메타소드가 내 키를 넘는 기다란 얼음의 창이 되었다. 추위에 계속 생겨나는 고드름처럼 이 창은 던져도 던져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이다.

“습격하는 벌 떼의 창.”

아프리카의 악명 높은 S급 헌터, 검은 표범에게서 배운 투창의 기술을 발휘했다. 난 연달아 창을 세 번 던졌고, 마치 동시에 쏘아진 것처럼 나란히 날아갔다.

콰지직!

세 개의 창은 공중에서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산탄처럼 맥의 몸에 박혔다. 놈이 아무리 코를 휘두르며 막아 보려고 해도 잘게 쪼개진 얼음 조각을 모두 피할 순 없었다.

그가 가르쳐 준 ‘습격하는 벌 떼의 창’은 먼저 던진 창을 다른 창으로 맞추어 쪼개어 파편으로 공격하는 기이한 창술. 아이스독의 힘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과 잘 어울리는 기술이었다.

“더 커졌네.”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했으나 놈은 제 몸에 박힌 얼음 조각을 긴 코로 빨아들이더니, 덩치가 더 커지고 찢겨 나간 피부가 재생되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홍식을 먹었을 때 크기가 좀 커진 것 같더라니. 괴이를 잡아먹을수록 크기를 키우는 거로군.

화난 놈이 내게 달려온다.

거리가 좁혀져, 이번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저 거대한 녀석과 육탄전을 벌이게 될 지경이었다.

내 힘을 잡아먹어 상처마저 치료하는 놈. 괴이를 잡아먹을수록 더 강해지는 놈. 그러나 죽일 방법은 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확실한 수단이. 배 터져 죽는다는 거, 사실 진짜거든.

난 이 힘을 펼치기 전에 잠시 머뭇거렸으나 망설임은 짧았다. 확신한다. 이 힘은 내가 다룰 수 있어.

화르륵.

촛불같이 작은 불을 만들었다.

그러나 거대한 홍염을 다루는 염화의 고리와 대상을 꿰뚫고 태워버리는 홍식의 불꽃보다도 다루기가 더 버거웠다. 난 심혈을 기울여 힘겹게 불꽃을 쏘아 냈다. 맥은 제 덩치에 비해 파리처럼 작은 불꽃을 망설이지 않고 삼켜 버렸다.

“샐러맨더의 불꽃은 이제 내 팔다리보다 더 잘 다루는 것 같아. 녀석의 불꽃은 따뜻하지만 강렬하지. 오랜만에 포근이가 보고 싶네. 잘 살고 있으려나.”

한 개의 마력.

맥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더니 괴이를 잡아먹는 놈이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저런, 급하게 먹으니 배탈이 났구나.

난 혼잣말을 이어 갔다. 이 순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대륙 거북의 마력은 단지 거대해지는 것밖에 없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힘이야. 그만큼 다루기 까다롭지만 다른 힘과 만난다면.”

두 개의 마력.

토악질을 하는 놈의 입에서 불꽃이 끊임없이 뿜어졌다. 내뱉고 내뱉어도 놈의 배에 자리한 거대한 불꽃은 절대 꺼지지 않았다.

“이 망할 놈의 힘. 젠장, 이토록 무서울 줄 알았다면 연구소에서 까불지 말걸 그랬어. 그래도 뭐, 이 힘은 다른 놈들에게도 공포인 모양이니까. 게다가 이 징그러운 힘도 적응이 되는지 점점 괜찮아지고 있거든.”

‘세 개’의 마력.

처음이었다. 한 번에 세 개의 마력을 다루는 건. 기묘했다. 마나가 늘어나거나 내 그릇이 넓어진 것도 아닌데 세 개의 마물의 힘을 끌어올려도 어떠한 반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힘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기까지 했다. 물론 아직까진 세 개가 끝이다. 그렇다고 한계라는 건 아니지만.

거대해진 불꽃이 전염된다.

맥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괴이를 잡아먹는 맥이 도로 괴이를 뱉어 내고 있으나 불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놈은 점점 커지고 커지다 제 그릇을 넘겨 버렸고, 풍선처럼 ‘터져’ 죽고 말았다.

난 맥의 몸에서 벗어나 휘몰아치는 불기둥을 지켜봤다. 불은 점점 사그라지어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으나 이미 평야는 모두 불타 황무지처럼 되어 있었다.

“인간인가.”

달처럼 하얗게 빛나던 문신의 빛이 멈추고, 난 발라당 자빠져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마물원에 다니면서 아무리 괴상망측한 힘들을 다뤘어도 그래도 난 인간이었다.

믿기지 않아도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확실히 선을 넘었다. 차라리 요괴에 가깝지, 누가 날 인간이라 생각하겠는가.

기쁘지만 약간은 씁쓸해졌다.

*

요계의 소문은 정말 빨랐다.

‘끽끽이’ 혹은 ‘국괴’라고 불리는 요괴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문을 퍼트리고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괴이를 가진 요괴였는데, 해주주의 수하들 중에서도 몇 명이 있어 내가 맥을 죽였다는 소식이 요계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기치 못하게 무리는 점점 커져 갔다. 소문인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요괴 놈들을 쥐어 패 줬더니 갑자기 수하로 받아 달라고 넙죽 엎드리지 않는가?

송화의 안내를 받으며 두 번째 영수가 있는 호금산에 도착했을 땐 내가 이끄는 무리는 벌써 대요괴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규모의 백귀야행이 되어 버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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