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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79화 (179/258)

# 179화 요괴 (15)

“이놈들이 날 우습게 보는구나! 어디 한번 내 힘을 보고도 사람들을 잡아먹으려 들 테냐? 너희들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달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선비가 밤하늘을 향해 주문을 외자 달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도깨비들은 곧 습격을 멈추고 달아나 두 번 다시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수동 설화.

*

“어디 다시 한번 덤벼 볼 테냐?”

놈이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난 검을 내려놓고 그의 앞에 섰다. 당장 대가리를 걷어차 주고 싶었으나 이를 악물며 적의를 숨기고 박수를 치며 그를 추켜세웠다.

“못 당하겠군. 정말 대단한 신통력이야. 듣기론 네 방망이는 한 번 휘두르면 황금을 만들어 내고, 두 번 휘두르면 모든 걸 사라지게 한다지?”

놈은 당연하다 소리치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도깨비 왕의 방망이가 땅을 두들기자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이 돋아났고, 두 번 휘두르자 다시 산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젠장, 저런 이야기 속의 괴물이니 내가 이기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요계에 익숙해져 놈들의 근본이 무엇인지 잠시 잊고 있었나. 원장님의 말대로,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것’들인데.

“넌 만물의 조화가 제 손에 있다고 했다. 그럼 저 언덕도 없앨 수 있느냐?”

“당연하지!”

놈이 내가 가르친 언덕을 향해 방망이를 두 번 휘두르자 언덕이 지우개로 지운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 저 숲도 없앨 수 있겠지?”

“이놈이 날 시험하려 드는구나. 좋다. 보아라. 이 힘이 도깨비 왕의 요술이다.”

언덕을 넘어 울창한 숲도 마찬가지였다. 놈의 힘은 옛 이야기처럼 기이하게 작용하여 넓은 숲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난 밤하늘에 뜬 달을 가리키며 물었다.

“좋다. 하지만 아무리 너라고 해도 하늘의 이치는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저 달을 없앤다면 네 밑으로 들어가 괴이의 왕으로 모시겠다.”

지금까지 곧이곧대로 행동하던 도깨비 왕은 이번엔 버럭 화를 내며 날 죽이려 들었다. 난 재빨리 물러났지만 내가 있던 자리는 움푹 파여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내가 그때처럼 어리석을 줄 알았느냐?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정수동, 그 망할 인간은 그 후로 다시 찾아가 내가 찢어 죽였다. 날 속이려 들지 말아라. 아무리 신이라고 할지라도 어찌 달을 없앨 수 있겠느냐? 네놈! 혀가 기니 잘라서 까치나 줘야겠다.”

난 덤벼드는 도깨비 왕에게 급히 소리쳤다.

“난 달을 없앨 수 있다!”

“흥, 거짓말!”

“정말이다. 이놈아! 지금껏 귀찮아 놔뒀더니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좋다. 우선 달을 없애고 네놈도 없애 주마.”

내 협박에 놈이 행동을 멈추고 입술을 오물거리곤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처음으로 겁을 내는 모습이었다.

도깨비 왕은 달을 없애지 못하니 내가 해낸다면 자기 또한 달처럼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놈은 일찍이 ‘정수동’이란 인간이 월식을 이용해서 물리친 적이 있는 요괴였다.

그때의 경험으로 이제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지만 괜찮다.

“이, 이놈이! 달을 없애는 건 하늘의 신뿐이다. 그렇담 네가 선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그래. 내가 네놈 도깨비들이 두려워하는 선신이다. 자, 어디 한번 네놈의 눈으로 직접 보아라!”

난 그들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생각했다. 사실 송화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불현듯 이 방법이 떠오른 건 기적에 가까웠다. 내가 아니라면 그 누가 달을 없앨 수 있을까? 물리적인 힘으론 하늘의 달을 파괴하는 건 원장님 정도나 돼야 가능하겠지. 그마저도 온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가능했다.

괴이엔 괴이로.

정말 달을 없애는 건 아니지만,

놈은 제 눈으로 보기에 충분히 달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겠지.

이 힘은 미라 마물과 다른 의미로 상당히 기분이 더러운 힘이었다.

냐앙.

지금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야옹이가 내 그림자에 숨어 길게 울었다. 난 녀석을 진정시켰다. 이번엔 잠시 참으라고 말했다. 음식을 먹지 않는 녀석이 유일하게 잡아먹는 게 이것들이었지.

깃든다.

난 놈들처럼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검을 들어 살점을 도려냈다. 그럼으로 불러냈다. 놈들의, 나의 동료들을.

원장님은 놈들을 이렇게 불렀다.

‘나이트메어.’

한 마리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놈들은 원장님이 지정한 세계를 멸망시킬 등급의 위험한 마물이었다. 놈들은 단번에 죽이지 못하면 전 차원의 악몽으로부터 제 동족들을 불러낸다. 악몽의 벌 떼가 모이면 그곳은 곧 어두운 악몽이 되어 간다.

끼이이-!

날 동족으로 인식한 나이트메어들이 공간을 넘어 이곳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때와 같았다. 나이트메어들이 몰려와 세계가 사라졌던 그때와. 악몽으로 차올라 하늘이 사라지고 끔찍한 어둠이 뒤덮이며 태양은 저물고, 마찬가지로 달도 사라진다. 요계조차도 악몽으로 차올랐다.

끼이이. 끼이이. 끼이이!

곳곳에 악몽의 균합체가 몸을 일으킨다. 도깨비 왕은 점점 악몽에 물들어 사라지는 새하얀 달을 지켜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달이 사라진다. 달이…….”

놈이 겁을 낼 때 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놈은 이제 더 이상 어떤 힘도 통하지 않던 기묘한 도깨비들의 왕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끝이 났다.”

다가가 아무런 힘이 깃들지 않아 철검에 불과한 메타소드로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러자 죽음의 힘으로도 죽지 않던 도깨비 왕은 허무하게 재로 흩어졌다.

“야옹아.”

난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집결하는 나이트메어를 삼키기 시작하는 야옹이를 지켜봤다. 악몽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물들던 어둠이 물러가 요계는 다시 제 빛을 찾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녀석의 배만 부른 꼴이네. 하하하.

후우, 망할.

*

해주주와 다른 요괴들의 시체를 수습해 무덤을 만들어 주고, 마지막 영수를 찾아갔다. 그는 요계의 가장 깊숙한 곳, 무저갱의 아래에 있었다. 난 송화와 같이 무저갱으로 향하는 입구에 섰다.

무저갱이란 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를 뜻하며,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다. 단지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시커먼 심연만 보일 뿐 저 탁하고 더러운 곳엔 영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송화는 나와 같이 무저갱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먼 옛날, 영생에 가깝게 사는 요괴들이 느껴도 무척이나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에도 요괴들은 흉괴가 되거나 지구로 넘어오는 걸 막기 위해 천계의 감시 하에 있었는데, 어느 날 신선들에게 반기를 든 요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스스로 마왕이라고 불렀다.

신과 마왕의 대결은 천계의 신선들조차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마왕은 신선의 피와 살점을 뜯어먹으며 신과 가까워졌고, 신선들조차 재앙이 되어 가는 그들을 막아 내지 못할 지경에 다다랐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개입으로 마왕들은 죽었다. 살아남은 신선들은 다시 마왕이 탄생하는 걸 우려하여 요선이라 하여 강한 요괴를 감시자로 봉하여 요계를 다스리도록 하였다.

그들이 바로 영수들이며 그중 가장 강한 네 영수는 후에 어룡이 요계와 천계를 습격해 왔을 때 힘을 모아 지천괴왕을 탄생시켜 지키도록 했다.

“그는 마왕입니다.”

오래된 요괴들은 모두 아는 이 이야기에도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영수들 중에 마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살육을 즐기는 요괴로서 마왕이 되었으나 마왕이 득세하면 더 이상 죽일 자들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배신하여 천계의 편에 붙은 요괴라고 한다.

천계는 그런 그에게 흉괴들과 싸우는 대봉마장군에 임명했고, 어룡의 습격 이전까지 그는 흉괴들과 싸우며 제 욕망을 채워 갔다.

그러나 어룡의 침입이 발생했을 때 그도 힘을 모아 지천괴왕을 탄생시켰지만 자신의 힘으로도 죽이지 못한 어룡을 죽인 지천괴왕의 힘에 시샘을 느껴 반기를 들다가 괴왕에 의해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듣기론 가장 공포스런 놈이네요.”

무저갱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토록 사납고 잔인한 요괴가 있다면 대체 왜……?

난 한참 동안 무저갱을 바라봤다.

점점 의심은 확신이 되어 갔지만 이해를 하지 못하여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대의 두려움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련은 생과사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것. 망설임은 오히려 독이 되겠지요.”

시간이 지나자 송화가 재촉하듯 말했다. 그래, 이게 정말 마지막 시련이라면 난 망설이지 않는다. 시작은 단지 욕심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지랄 맞을 각오는 충분히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영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용기를 낼 때가 아니었다. 젠장, 결국 난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

“송화, 왜 내게 거짓말을 했죠?”

송화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송화는 태연히 대답했다. 그 점이 소름이 끼쳤다.

“전 그대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목적이 이거였던가?

그러기엔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아.

대체 왜 그녀는 날 지금 와서 죽이려 드는 걸까.

“아니, 이건 거짓이야. 저 무저갱엔 영수는 없어. 그냥 시꺼먼 죽음만이 느껴져.”

순간 짜증이 치솟았다.

답답함에 머리를 헝클이며 송화에게 소리 질렀다.

“젠장! 당신 말만 믿고 무저갱에 떨어졌다면 난 죽었을 거야. 대체 왜? 왜 날 죽이려 했지? 그동안 날 도와준 건 대체 뭐냐고.”

영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 힘이 없었으면 속았을 거야. 난 그녀에게 윽박지르며 이유를 말해 달라고 했다. 손에 쥔 메타소드는 붉은 송곳니가 되었고, 내 적의는 명백히 그녀에게 향했다.

송화라면 내 의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송화는 도리어 기쁜 듯이 웃었다. 마치 지금까지 보여 줬던 모든 감정들이 거짓인 듯 지금 그녀의 웃음은 더없이 진실하게 느껴졌다.

“다행입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인상을 찌푸리며 송화의 말을 기다리던 난 뒤늦게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반짝인다는 걸 눈치챘다. 젠장, 왜?

눈물의 의미를 모르겠다.

송화는 고개를 숙이며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며 무저갱의 시험은 거짓된 시험과 진실한 시험의 경계에서 선택하는 시험이라고 말했다.

“그대는 진실을 마주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럼으로 만나게 될 거예요. 요계에 감춰진 진실의 일각을.”

“뭐? 난 혜안이니 뭐니 그딴 건 없어. 단지 영수가 없다고 느꼈을 뿐이야.”

“방법은 중요치 않아요. 결국 이곳까지 도달한 자는 그대뿐.”

그때였다.

송화가 말릴 새도 없이 무저갱을 향해 몸을 던졌다. 단지 떨어진다면 구할 수 있었으나 무저갱은 순식간에 송화를 빨아들였다.

“아, 씨발!”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며 기감을 끌어올렸다. 무저갱의 아래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송화의 기운이 사라졌다. 젠장, 빌어먹을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왜 자결을 한 거지? 난 답답함으로 사지가 옥죄어 오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송화가 거짓말쟁이라 치고 박고 싸웠다면 마음은 편했을 텐데.

쿠르릉!

허무함으로 무저갱을 멍하니 지켜볼 때였다. 저 깊고 어두운 죽음의 구덩이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다. 그 힘이 심지어 영수들에게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난 급히 야옹이의 ‘부재’의 힘을 끌어올렸다.

무저갱으로부터 기어 올라온 건 새하얀 육신과 기다란 수염, 사슴의 뿔과 뱀의 몸을 가진 자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저자의 모습은 분명.

야옹이의 힘에 숨으면 대요괴조차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왔을 때부터 날 똑바로 쳐다보며 날아왔다. 난 숨을 수 없음을 깨닫고 힘을 거뒀다. 만약 저자가 정말 내가 생각하는 존재가 맞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저항은 헛된 발버둥이다.

그자는 무저갱의 위를 유영하며 녹색의 깊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가디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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