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헌터 정다정 (2)
난 이세계를 비롯하여 전이로 인해 비틀린 지구의 오염 지역, 이계인들의 마법으로 변이된 도시와 전우주의 온갖 해괴한 것들이 모이는 쓰레기장 혹은 행성만 한 괴물의 똥구멍 속 등 위험한 곳에 스스로 찾아간 적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벌써 피부가 뒤집어질 만큼 위험한 느낌이군.”
하지만 지금은 원장님에게 부탁하여 내 의지로 위험이 득실거리는 이계에 도착했다. 그것도 언제 죽어도 이상치 않을 위험한 이계. 모기가 비행기만 하고, 나뭇잎에 매달린 송충이가 종로타워보다 더 큰 무량성계에 말이다.
다원상을 수상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물론 평범한 시선에선 정신 나간 이유긴 했지만 내 입장에선 이제 지극히 평범한 이유 때문에 왔다.
“덤비는 놈들만 상대해도 수련으론 충분하겠어.”
그렇다.
수련.
사전적 의미와는 약간 다르다.
학문이나 인격 따위를 기르기 위서가 아닌 그야말로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싸우는 것에 있어 특별한 기술과 수단을 체득하기 위해서 왔다.
몇 년 전에 녹물이 나오는 비루한 단칸방 생활을 했을 땐 결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내가 돈이나 출세가 아닌 힘을 기르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며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많은 게 달라졌다.
일일이 의거하면 끝도 없지만 가장 큰 이유는 최근에 발생한 요괴들의 왕이자 대변인인 지천괴왕이 되어 버린 일이다.
지구를 지키는 신수, 용 비스무리한 놈한테 여의주를 받은 후 내 몸은 무언가가 달라졌다. 무슨 폭발적인 상징이 나타난 건 아니다. 그러나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매에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만큼 자라난 건 아니더라도 나의 모든 건 명백히 달라져 있었다.
원장님은 존재력의 상승 때문이라고 했지만 난 내게 일어난 변화를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끔찍한 거수들의 세계로 전지훈련을 왔다.
“첫손님은 네놈들이냐.”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 그러니 가장 먹기 쉬운 먹잇감이다. 무량성계에 와서 잠자코 서 있기만 하자 벌써부터 날 잡아먹고자 괴물들이 덤벼들었다.
우선 처음 상대할 놈은 심지어 원장님에게도 덤벼들었던 흉포한 성질머리의 모기떼였다.
그땐 원장님의 발톱에 찰싹 매달려 벌벌 떨어야 했지만 이번엔 감상이 제법 달랐다. 비행기만 한 모기떼의 습격에도 느긋이 힘을 끌어올리며 대처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행님. 나 행님을 위해 이 한 목숨 버릴 수 있다. 참말이다.]
염화의 고리가 좋겠다고 싶었을 때 황금원숭이 위수 단비가 갑자기 튀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또 왜 그래.”
[걱정하지 마라. 내 두고… 그냥 가도 개안타. 조직이 우선이다 아이가. 존경하는 행님아. 내 쪼만할 때부터 똥기저귀 다 갈아 주고 한 거 이제야 보은 좀 하겠네. 행님아. 됐다, 마! 내 마음 약해지기 전에 빨리 가뿌라!]
어젯밤 한국식 느와르물을 보다가 잤더니 단비는 어느새 영화 속 깡패 말투를 따라 하고 있었다. 녀석이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을 따라 할 때마다 맞장구를 쳐 줬으나 버릇이 들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연기를 하려 든다. 난 귀찮아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하려고?”
어울려 주지 않자 단비도 재미없는지 원래 말투로 돌아왔다.
[맛있는 공기가 있는 곳에서 뿌리로 많은 걸 먹었지. 이제 줄기가 단단해져 가. 잘 봐. 난 많은 걸 품을 수 있어!]
단비의 힘은 드루이드로 발동된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발동시키지 않아도 자연을 바꾸는 위수의 기묘한 힘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쿠르릉-!
지면이 뒤집히고, 바위가 튀어 오르고, 흙이 치솟아 올라 마침내 작은 산을 이룬다. 그 속도가 제법 빨라 덤벼들던 모기떼들은 흙무더기에 집어삼켜져 흙산에 파묻혔다.
“너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냐?”
[이건 아주 작은 가지에 불과해!]
드루이드를 발동시켜 봤자 난 작은 웅덩이 수준의 변화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산을 세우다니. 뭣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내가 달라진 만큼 단비 녀석도 달라진 것 같았다.
쿵-!
과연 무량성계, 생각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산이 솟아오르는 여파 때문에 강한 놈의 시선을 끈 것 같았다. 땅이 울리더니 저 멀리서 고층 아파트보다 더 큰 괴물 한 마리가 날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앗! 내가 만든 가지가!]
단비는 작은 산을 만들었지만 무량성계의 자연에 비하면 야트막한 언덕에 지나지 않는다. 곰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털이 없이 매끈한 가죽에 머리가 세 개나 달린 놈은 뛰어오더니 흙산을 몸통으로 부딪쳐 무너트리곤 고릴라처럼 제 가슴을 두 손으로 두들기며 힘을 과시했다.
‘영역을 침범해서 잔뜩 화가 났네.’
이 주변은 놈의 영역이었다. 기대하던 괴물에 비하여 조무래기 같지만 그래도 제 구역을 가진 괴물이니 만만한 놈은 아니었다.
“조금 아프겠지만 죽진 않을 거야.”
도둑놈이 집주인을 때리는 꼴이지만 난 목적을 이루기로 했다. 미안하니 끝나면 후시딘이라도 발라 줘야지.
쿠오오오!
집채만 한 주먹이 날 강타하기 위해 휘둘러진다. 거대하고 빠른 주먹에 내 몸이 들릴 만큼 강풍이 휘몰아친다. 난 그에 맞설 힘을 펼치고자 내 안에 잠든 그들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세 개의 마력 이상을 동시에…….’
내게 강렬한 힘이 깃들자 킹콩의 일격에도 두렵지 않았다.
쿠오오오!
놈과 내 덩치는 수백 배의 차이였으나 격돌로 날아간 건 놈이었다.
“예상대로야. 내 모든 것들이 격이 달라졌어. 같은 힘이라고 해도 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군.”
난 공격을 막아 내느라 뻐근한 왼손을 스트레칭하며 놈에게 걸어갔다. 단 한차례 맞붙었을 뿐인데 놈은 발라당 누운 채 벌벌 떨며 내게 복종했다. 무량성계의 괴물이라 큰 상처는 없지만 미안하니 후시딘이라도 발라 줘야겠다. 이것도 ‘수련’의 일종이니까. 놈의 배에 올라타 찢어진 가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라크네의 힘에 샐러맨더의…….’
손에서부터 흘러나온 투명한 실들이 마치 붕대처럼 녀석의 상처를 감싸자 피가 멎으며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내 힘으로도 미약한 재생 효과를 유발할 수 있어. 큰 효과는 없어 보이지만 쓸모는 많겠지.
*
무량성계에서 난 무시무시한 기술들을 익혔다. 발가락 한 개로 몸무게를 지탱하는 법, 강한 불에 고기를 태우지 않고 오랫동안 굽는 법을 비롯하여 물이 없는 곳에서 물을 마시는 법이나 거대 모기에 물려도 흉터가 남지 않는 법을 익혔다. 그렇게 난 무량성계와 지구를 오고 가며 수련을 지속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된 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꽤 난해한 일이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될 때까지 일 년이나 걸렸다.
단지 주어진 힘을 완벽히 다루는 것에만 말이다.
그렇게 수련은 ‘일 년’ 뒤에야 끝이 났다. 뭐, 지구의 시간으로 따지면 몇 주일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지구의 하루가 무량성계의 일주일밖에 되지 않네요.”
“며칠 뒤면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같아질 거예요.”
원장님은 내가 어느 정도 수련을 끝마친 것 같다고 말하자 당분간 무량성계로 향하는 포탈은 봉인해야겠다고 했다. 시공간이 비틀려 대격변이 일어나기 직전이라 몹시 위험하다며 말이다.
무량성계는 그 이름의 뜻이 알려 주듯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가진 차원이었다.
그로 인해 몇 안 되게 지구의 시간 축과 크게 어긋난 차원이었는데 그곳에서의 시간은 지구에 비해 한참이나 늦어 많은 시간을 보내도 지구에선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타이밍 좋게도 내가 제법 힘을 다룰 수 있을 때쯤 무량성계의 ‘시간 축’도 지구와 같아지기 시작했다. 그 여파가 오기 전에 수련을 마친 게 다행이었다.
이제 시간과 정신의 방은 이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괜찮다.
‘누가 나처럼 이런 귀중한 경험을 할까.’
생각해 보면 대수롭게 여길 일이 아니다. 오직 드래곤의 가디언인 나라서 할 수 있었던 일이잖아. 역시 말도 안 되는 존재와 친하게 지내면 말도 안 되는 보상을 받는다니까. 물론 그 대가로 다소 참혹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내 힘에 지분을 따지면 불꽃 모유 수유를 포함한 내 인격적 수치심이 큰 차지를 할 것이다.
그걸 견뎌 냈기에, 난 이런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원장님에게 마냥 고마워할 수는 없네. 그래, 나도 참 열심히 노력했어. 아직도 아라크네의 출산을 도와주던 그때가 생생하다. 수유 장면을 들켰을 때도, 돌고래 마물의 그걸 도와줬을 때나 마물 앞에서 덜렁거리며 춤을 췄을 때도. 그리고… 젠장, 그만 생각하자. 그래도 짬이 차서 그런지 원장님도 요샌 그런 잡일은 안 시키니까 다행이지. 다만 임무의 위험도는 올라갔지만 오히려 그게 낫다 싶었다.
여섯 개의 유두보다야 차라리 칼침을 맞겠어.
*
사람 인생이란 게 참 재밌다.
예전엔 헌터를 꿈꿨다. 그 당시엔 비루하게만 느껴졌던 내 능력이지만, 그래도 능력자이기에 당연히 헌터를 꿈꿨던 것이다.
한국의 교섭인이 되어 미지의 문명과 외교적 거래를 하거나 마물 서식지와 던전 등을 탐험하여 이계의 귀중한 보물들을 찾아내는 탐험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고아에 가진 것 없는 내겐 헌터들의 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토록 갈망했던 그들의 삶에서 동물의 마음을 읽는 내 능력은 하찮을 뿐이었다. 좌절만 겪다가 결국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마물원에 이력서를 냈었지.
그 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동경하던 헌터들의 삶이 우습게 여겨질 만큼 아주 판타스틱하고, 위험하고, 멋있고, 수치스럽고, 재밌고, 다소 엿 같을 때도 있는.
지루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 난 헌터들을 동경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헌터 랭킹에 들어가는 유명인사라도 난 담담하게 대할 자신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요계보단 쉬운 일이 될 것 같네요.”
그래서 원장님이 이번 일을 의뢰할 때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헌터’가 되어 ‘다른 헌터’들과 같이 던전을 조사해 달라는 임무를 말이다.
던전은 이계비경과 다르다.
사실 난 왜 던전을 던전이라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 지하 감옥이란 본뜻이 아니라 숙어의 의미가 크겠지. 보통 문화생활에 길들여진 평범한 사람이라면 던전이 뭘 뜻하는진 다 알 테니까. 그러나 내가 직접 겪어 본 ‘던전’은 문화적 의미의 던전보다도 훨씬 끔찍하고 기괴한 곳이다.
그곳은 이계 중에서도 확연히 기괴하며 도무지 자연적으로 생겨났다 납득할 수 없는 인위적인 공간이다. 어떻게 던전 깊숙한 곳엔 보물이 있으며, 보물을 지키는 괴물들이 있을까. 논리론 설명되지 않는다.
원장님은 던전을 때론 드래곤들이 잃어버린 아공간 혹은 우주의 부유물들이 뭉친 곳, 아니면 우연이 빚어낸 구덩이 등으로 설명해 줬지만 드래곤조차 확실히 개념을 정의하지 못하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던전이라 불리는 것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고 위험하며 그곳이 어디에서 온 곳인지 명백히 알 수 있는 던전.
솔로몬의 탑이다.
원장님은 브라질 아마존에서 솔로몬의 탑으로 추정하는 던전이 나타났다고 했다. 영국 카멜롯 때와 마찬가지로 일부만 전이했으나 원장님이 주목한 건 이번 던전이 유일하게 ‘세 자릿수’의 층이 온전히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솔로몬의 탑에는 기묘한 법칙이 있다. 층수가 높을수록 위험하다는 것, 카멜롯에 나타난 솔로몬의 탑의 위험도를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인류에게 큰 재앙이 될지도 몰랐다.
“인간들에게 먼저 발각된 던전이라 귀찮게 됐어요. 그러니 이번엔 다정 씨는 마물원의 직원이나 드래곤의 가디언이 아니라 ‘헌터’로서 작업을 수행하게 될 거예요. 사타리언 공주에게 부탁해서 윙바레사의 헌터로 자리는 만들어 놨으니 일주일 뒤에 브라질 벨렘 기지에서 열리는 소집에 참여하시면 되요. 그 외의 자세한 건 아까 준 자료를 참고해요.”
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뺨을 긁적였다. 원장님이 준 자료엔 이번 일에 대한 위장 신분, 관계, 소집된 헌터들의 정보 등이 있었으나 내가 할 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면 되죠?”
물어보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탑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봐 주세요. 아직까지 ‘600’을 넘는 위험한 자들은 나타나진 않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
원장님은 이번에도 공간 이동 부적을 건넸다. 그러며 의미심장한 말도 건넸는데 ‘600’을 넘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자신을 부르라고 했다. 자세한 건 직접 대면하면 알기 싫어도 알 거라나.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 소집일까지 휴가를 받았다. 짐을 챙기고 관리실 문을 열던 난 문득 생각나 뒤돌아 원장님을 쳐다봤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이 임무에서 원장님이 더 중히 여기는 건 뭐지?
“힘을 숨길까요? 아니면…….”
원장님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왠지 원장님의 목소리가 발랄해서 신나 하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활개 쳐요. 마음껏. 내가 준 목적만을 생각해요. 그 외엔 절대 휘둘리지 말아요. 오호호.”
착하든 나쁘든 어쨌든 간에 역사적으로 봐도 미친놈이 힘을 가지면 골치 아프다.
“헤헤, 하고 싶은 게 많았거든요.”
그리고 난 아주 약간이지만.
솔직히 왼쪽이 정상이고 오른쪽이 미친놈이라 생각하고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오른쪽에 가깝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