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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83화 (183/258)

# 183화 헌터 정다정 (3)

아마존 하구의 항구도시 벨렘에 도착했다. 소집일은 내일이지만 난 하루 전날에 도착하여 도시를 구경하고자 했다.

“더워.”

전용기에서 내리자 열대 지방의 덥고 습한 기후가 날 반겼다. 입고 온 셔츠를 벗어 허리에 묶고 공항 수속을 끝마치자마자 곧바로 알아봐 둔 식당을 찾았다. 대전이 이후 브라질 최대의 무역도시로 거듭난 벨렘, 과연 서울과는 다른 떠들썩함이 느껴졌다.

“수인들이 많이 사는구나.”

서울에선 보기 드문 수인들이 벨렘에선 흔하게 보였다. 식당엔 여행객들이 많아 줄이 길었다. 브라질까지 왔는데 맛집은 들려야지.

난 웨이팅을 기다리는 동안 갈색 피부의 브라질 사람들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악어 인간이 물고기 가격을 두고 실랑이를 하는 걸 지켜봤다. 대서양의 습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자리가 나 식당에 들어갔다.

브라질 전통 요리를 하는 식당이었는데 웨이터는 뾰족한 부리를 가진 조인이었다. 100헤알 지폐를 팁을 주자 기묘하게도 부리로 팁을 받아갔다. 관광객들을 위한 나름의 쇼라고 생각했다.

음식이 나올 동안 식당 잡지꽂이에서 관광 안내책을 꺼내와 읽었다.

‘신비의 땅 아마존이라.’

난 대전이로 인해 변해 가는 지구를 고스란히 경험한 세대다. 그래서인지 아마존의 변화가 참 신기하게 다가왔다. 브라질 최대 항구 도시가 된 벨렘, 이토록 빠르게 성장한 건 아마존의 자원 때문이다.

아마존은 대전이 전에도 지구의 허파, 세계에서 가장 넓은 열대우림이었지만, 전이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이라는 수식어는 어폐가 있었다. 아직까지 가장 넓은 밀림 중에 하나긴 했지만 이젠 유일한 게 아니었으니까. 지구가 확장되면서 브라질은 자원적인 면에서 큰 수혜를 입었다.

이전엔 환경 파괴로 아마존이 줄어드는 걸 걱정했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히려 국제사회에서도 아마존의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판국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여전히 신비의 땅으로 남아 있다. 대전이 이전의 지구의 신비스러운 비밀이 아니라, 새롭게 나타난 비밀들로 인해서 말이다.

브라질의 지도를 바꿀 만큼 아마존은 넓어졌다. 그리고 그 넓이만큼 인간들이 모르는 비밀들이 생겨났다. 듣기론 부족 생활을 하는 비교적 원시적인 이계인들이 아마존 밀림에 수십 단위로 존재한다고 했었던가? 사회에 적응을 하면 저 웨이터 조인처럼 부리로 팁을 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밀림에 숨어 전이 이전의 삶을 지속할 수도 있는 거겠지.

우습게도 그로 인한 갈등은 벌어지지 않았다. 인간들도, 이계인도 이제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이계의 지식들조차 받아들이기 버거워 뒤로 남겨진 ‘사소한’ 문제들은 신경 쓰지 못하는 거겠지.

“고마워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자 음식이 나왔다. 매콤한 향신료로 조미한 먹음직스러운 요리다. 맛을 보니 보는 것만큼 혀도 즐거웠다. 역시 돼지고기 요리는 어느 나라에 가도 실패하지 않는다. 충분히 맛을 즐기고 나서 들고 온 노트북을 식탁에 폈다.

“잔돈은 팁으로 가져요.”

괜히 눈치 보여 가장 비싼 음식과 술을 시킨 후 내일 있을 소집에 대하여 복습했다.

“흐음.”

이번 일은 제법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원장님은 다 알고 있었지만 드래곤이 알려고 하면 감히 비밀을 감출 수 있는 지구인들이 몇이나 되겠어.

“열강들에게 들키기 싫었나 보군.”

던전을 발견한 브라질 정부의 주도로 소집된 헌터들은 민간 기업이나 개인 자격증을 가진 헌터들밖에 없었다. 정부 소속 교섭인은 브라질의 일등 교섭인밖에 없다.

게다가 비밀 유지를 위해 급박하게 진행되는지 인력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던전의 가치를 두고 외교 전쟁이 일어난다더니 브라질은 던전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고 싶었던 것 같았다.

“기밀 유지 서약서를 쓴다 해도 헌터들 입을 모두 단속하긴 힘들 텐데.”

문제는 개인 헌터를 고용한다고 해서 비밀이 유지되는가. 명성에 관계되어 함부로 비밀을 유출시키진 않겠지만 반대로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따라 명성을 위해 쉽게 발설하기도 할 것이다.

뭐 어련히 잘들 하시겠지. 난 상관없는 일이다.

난 세계 각지에 영향력을 떨치는 굴지의 제약회사 윙바레의 고용 헌터 자격으로 이번 탐험에 참가하게 되었다. 쟁쟁한 경력을 가진 다른 헌터들에 비해서 꿀리지 않는 스펙이었다. 실제론 완전히 어나더 레벨이지만.

“이자는 제법…….”

그러나 소집된 헌터들 중엔 관심이 가는 자도 있었다. 시간이 부족했던 브라질이 던전 탐험을 강행하는 것도 아마 이자 때문이겠지.

“랭커로도 부족할 텐데.”

랭커 한 명이면 웬만한 던전은 무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역시 솔로몬의 탑은 아직 인간들에겐 생소한 개념인가. 랭커급이던 원탁의 기사들도 그리 당했는데 한 명으론 턱도 없을 텐데.

*

벨렘에서 멀지 않은 파라 강의 하류에 아마존을 조사하는 정부 소유 기지가 있었다. 신분 조사와 귀찮은 절차들을 마치고 약속한 소집 시간보다 조금 늦게 기지에 들어서자 이미 다른 헌터들이 도착해 있었다.

홀에서 바로 브라질 정부 소속 교섭인과 이번 일에 대해 브리핑을 나눴고, 아마존에 들어가기 전에 소집된 헌터들과 저녁을 같이하기로 했다.

지정받은 방에서 뒹굴거리다가 음식이 준비되었다는 알림을 받고 식당으로 향했다. 직원용 지하식당엔 나를 포함하여 일곱 명의 사람들밖에 없었다. 차려진 음식들도 다양한 나라의 고급스러운 음식이다. 그중엔 한국인인 내 입맛을 고려한 듯 김치도 있었다. 단지 저녁 식사일 뿐이나 헌터들을 향한 존중이 느껴졌다.

의자는 인원수에 맞추어 일곱 개가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나 이번에도 내가 가장 늦게 와 상석과 가장 먼 빈자리에 앉아야 했다.

언뜻 질서를 지키며 앉은 걸로 보이나 난 헌터들의 미묘한 신경전을 눈치챘다. 원장님의 자료에 의하면 이들 중 몇 명은 서로 구면이다. 다만 원한 관계에 가까운 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상석에 앉은 아시아 기업 헌터와 가장 먼 자리이자 내 맞은편에 앉은 용병 헌터가 그러하다. 브라질 정부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원장님의 자료엔 간단한 서술로 헌터들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저 둘, 사이 몹시 나쁨. 저 용병 헌터는 대부업 회사가 전신인 아시아 기업에게 막대한 빚을 졌으며 아시아 기업의 헌터가 한때 그의 징수인이었음.

재밌는 관계네. 이러다 조사하다 말고 서로 등에 칼침 놓겠어.

그래도 그 둘의 사이를 포함하여 헌터들 간의 문제가 이번 일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내가 주연, 그들은 엑스트라일 뿐이다.

“장관님의 제안에 응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본국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전 브라질의 네르나자루 일등 교섭인입니다. 오전에 자료는 전해 드렸으나 궁금하신 점이 계시면 언제든지 제게 질문하여 주십시오.”

식사 자리는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로 넘어갔다. 브라질 정부 소속 교섭인이자 헌터의 말이 끝나자 아시아 기업 소속 헌터가 그에게 물어본다.

“미확인 던전임에도 소수의 인원만이 차출되었군요. 그것도 정부 요원이 당신뿐이라니, 의도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무례한 질문이었다.

브라질 정부의 무력함을 어필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없다고 들었긴 했다. 자기 목숨을 거는 일들이라 예의범절보단 실리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질문은 나름 합당했다.

“미지수이기에 수는 적을수록 좋지요. 그리고 우린 아무에게나 티켓을 건넨 게 아닙니다.”

교섭인의 대답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부정하지 않고 선거로 인해 혼란스러운 정부의 시국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운용할 인력이 부족하다며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아무에게나 손을 내민 게 아니라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추리고 추린 인재들이라며 치켜세웠다.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소수 인원만으로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설득했는데, 과연 교섭인이구나 싶었다. 그냥 힘이 부족한 걸 저리 포장하다니 말이다.

“단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니 방금 제가 한 말은 괘념치 마세요. 좋은 선택이셨어요. 화린광 파이낸셜에선 탐험에 부족한 물자들을 지원하기로 하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극비로 진행되어 외부 인력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용주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고 있으니 지킬 건 지켜 드려야죠. 다만 추후의 계산에 대하여 저희에게 아주 약간의 시간만 내어 주시면 됩니다.”

난 아시아 기업 소속 헌터, 좋게 말해 기업이지 단지 돈 놓고 돈 먹는 대부업 업체에 지나지 않는 하린광 파이낸셜의 고용 헌터가 브라질 교섭인을 상대로 거래를 시도하는 장면을 무심히 지켜봤다.

시시했다.

난 재미없는 정치를 하려고 온 게 아니다. 빨리 이 지루한 식사 자리가 끝났으면 좋겠다. 음식도 전날 먹은 돼지고기가 훨씬 맛있네.

고용주와 고용인의 신경전은 다행히 금방 끝이 났다. 이제 그들은 잠시 동안이지만 같이 던전을 조사할 동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생각해서 이번 일은 목숨이 오고 가는 작업이라 서로의 ‘힘’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중요했다.

“다시 소개드리지요. 화광 파이낸셜의 고용 헌터이자 국제 표준 3급의 마나를 가진…….”

저자는 남자A.

“마르켈이라 합니다. 자유용병이고, 국제표준으로 치면 4급이고, 특기는…….”

이자는 남자B다.

누군가는 힘을 숨기고 누군가는 힘을 부풀렸지만, 내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름을 외울 필요도 느끼지 못해, A, B, C로 부르기로 했다.

소개가 거의 끝나고 나와 그만이 남았다. 내가 잠자코 있자 그가 먼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다른 이들의 소개엔 나처럼 귀 기울이지 않던 헌터들도 이번엔 다르게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EUCI의 사냥꾼. 검을 다루오.”

그가 유일한 랭커이기 때문이다.

소개는 간단했지만 그럴 만도 했다. 유명한 잡지사들이 모여서 해마다 헌터 랭킹을 정하는 순위에서 그는 항상 20위권 안에 드는 유명인사였으니까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모두 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남자C.”

작게 말했으나 옆자리에 들렸는지 용병 헌터가 날 쳐다봤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내 소개를 시작했다.

“어… 우선 전 윙바레사의 고용 헌터입니다.”

소개가 끝났다.

얼른 이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말 많던 남자A가 질문을 던졌다.

“윙바레사라면 깐깐하기로 유명한 곳인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등급이 어느 정도 되시지요?”

날 유심히 지켜보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지 알 수 없었나 보다. 그는 물론이고 날 고용한 브라질 정부도 내가 누군진 정확히 모를 것이다. 본격적인 헌터 일은 처음이니까.

“등급은…….”

헌터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등급’을 자랑하는 것이다. 무슨 소가 자기 A++받았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우습기 짝이 없지만 어쩌겠는가. 괜히 헌터들을 정상인들이 보면 정신 나간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등급은 각 나라마다 표기법이 다르지만 대부분 숫자로 표시하는 국제표기법을 따른다. 한국도 숫자로 표시했었지. 어디 보자, 몇 년 전에 내가 3급을 받았던가?

“a. n. e. l 등급입니다.”

“에이엔… 잠깐, 뭐라고요? 그런 등급도 있었나요?”

난 그렇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anel 등급이 뭔지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알 리가 있나. 내가 지어낸 거니까.

붙여 읽으면 발음이 저질스러워지지만 나름의 뜻은 있다.

(an)other.

(e)arth.

(l)v.

직역으로 해석했긴 했지만(발음이 마음에 들어) 뜻만 보자면 지구와 다른 수준에 있다는 거다. 솔직히 지금 내 마나를 등급으로 측정할 순 없을 것이다.

허풍 떠는 게 아니라 진짜였다. 기본적으로 마물의 힘을 빌리는 내 힘은 내 그릇에 따라 교감되는 힘이 다르다.

이건 매우 힘든 일이라 마나가 엄청나게 소모되며, 불과 몇 년 전 포근이와 교감했을 때 녀석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3급의 마나가 측정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원장님에 의해 강제된 기연과 내가 찾아낸 기적으로 인해 내 마나는 정말 어나더레벨이 되었다. 순수하게 마나의 양만 따진다면 지구인 중 으뜸이 아닐까 싶다.

“먼저 실례.”

아무래도 자리가 길어질 것 같아 소개만 끝내고 먼저 일어났다. 첫인상은 머저리처럼 심어졌지만 글쎄, 내일이 기대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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