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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84화 (184/258)

# 184화 헌터 정다정 (4)

교섭인A, 브라질 소속 교섭인이다. 남자A 아시아 기업의 고용 헌터, 짜증 나는 유형의 인간이다. 남자B 자유 용병, 빚쟁이. 남자C 랭커. 여자A 사람이다. 여자B 수인이다.

나까지 해서 이렇게 일곱. 단출한 원정대가 결성되었다.

사람 수는 적지만 나름 뛰어난 자들이다. 저마다 하나씩 대단한 특기들도 있어 상황에 따른 대처가 용이한 구성원이다.

평범한 던전을 조사하기엔 부족할 것 없어 보인다. 문제는 지금 조사하고자 하는 던전이 솔로몬의 탑의 일부라는 것. 업계에서 알아주는 그들의 기술은 소용없을 것이며, 헌터C를 제외하곤 제 몸을 간수하기도 벅찰 것이다.

‘저번처럼 성가신 놈들만 아니면 될 텐데.’

난 아마존으로 향하는 트럭에 타 창문 밖을 쳐다보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봤다. 일단 힘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방해도 받기 싫었다. 카멜롯 때처럼 도플갱어라도 나오면 골치 아프겠지. 치고받는 단순한 싸움이면 좋겠는데.

오지 탐험용 개조 트럭을 타고 아마존의 밀림을 헤쳐 나갔다. 창밖의 풍경은 평범했다.

울창한 숲과 동물의 울음소리, 간간이 숲에서 생활하는 원주민들도 보였다. 흔히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있는 아마존의 모습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삼엄한 경계의 검문소가 보였다.

트럭이 멈추고 총기를 든 군인들이 다가와 검문을 시작했다. 헌터들은 움직일 필요 없이 교섭인이 알아서 절차를 수행해 줬다.

검문소를 지나자 드넓은 밀림을 둘러싼 높은 철책이 나왔다. 고압전기가 흐르는 철책엔 마법적인 조치도 취했는지 희미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저건 경계선이다.

무엇을 경계하는지는 뻔하다.

이곳 너머부터가 진짜 ‘아마존’인 것이다.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밀림.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가 브라질이 아직 연합에 가입하기 전이었지요? 우리나라의 도움이 컸다고 들었는데.”

“네. 많은 자본을 투자하셨습니다.”

남자A의 말에 대꾸를 한 건 교섭인밖에 없었다. 남자A는 애국심이 드높은지 근질거리는 주둥이를 참지 못하고 아마존 경계선에 대한 투자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전이 대책 방안에 대하여 자신의 나라가 얼마만큼 입김을 가졌는지 떠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모든 헌터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결국 혼자 말하던 그도 입을 다물고 폰을 만지작거리며 기지에 도착하기까지 잠자코 있었다.

난 창문에 기대어 달라진 풍경을 빤히 지켜봤다. 원주민은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밀림은 이제 암막커튼처럼 하늘을 가려 낮인데도 전조등을 켜야 했다. 나처럼 마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모두가 알았다. 바깥의 밀림에서 느껴지는 생물의 태동은 지구의 숲과 무척이나 다르다는 걸.

“잠시 정비를 한 후 목표 지점까지 걸어서 가겠습니다.”

트럭으로도 더 이상 갈 수 없을 지경이 되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걸어서 가기로 했다. 차에서 내리자 우선 텁텁한 공기가 느껴졌다. 점점 간질거리는 발가락과 서늘해진 뒷덜미, 마물에 익숙한 나라도 약육강식의 사슬에 들어왔다는 걸 느끼며 오싹해질 지경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떠할까.

기지개를 펴고 스트레칭을 하는 척하며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모두 내색은 하지 않아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헌터C를 제외하곤. 흠, 그래도 자신은 랭커라 그건가? 다른 이들은 저마다 챙겨온 도구들을 정비하고 무기를 손질했지만 난 가만히 서서 멍하니 한곳을 바라봤다.

“저곳이네.”

드넓은 밀림에서 수많은 마물이 자아내는 시끄러운 잡음 사이에서, 명백히 이글거리는 살의를 가지고 주변 모든 걸 다 집어삼키려 드는 무언가가 보였다. 놈들에게서 느꼈던 기운과 너무나 흡사해. 확실하다. 저곳에 솔로몬의 탑, 던전이 있다.

“출발하겠습니다.”

아마존 안의 아마존.

우린 이 마물 밀림을 걸어갔다. 밤처럼 어두워 조명을 켰지만 밤이 되면 더 어두울 것이다.

꽤 오래 걸었으나 쉴 시간은 없었다. 던전은 멀었고, 마물 밀림에선 걸음이 더디었다.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도중에 지친 헌터A가 아마존 강을 발견하곤, 진작 강으로 왔으면 됐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역시 브라질 교섭인을 제외하고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너무 멍청한 질문이었다.

이제 저 흙색 강물엔 악어나 피라냐들이 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아니, 산다고 해도 지구의 동물이 아닌 영화 ‘아나콘다’, ‘피라냐’의 괴물들이 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강에서 이동하면 마물 퇴치제의 효과를 받지 못한다. 지금까지 이동하는 동안 주변에서 수많은 마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우릴 습격하거나 다가오지도 않았다.

마물 퇴치 스프레이 덕분이었다. 마물들이 싫어하는 냄새로 녀석들의 접근을 막는 원리인 마물 퇴치 스프레이는 몇 년 전에 개발된 이후 이제 헌터들의 필수품이 되었다고 들었다.

난 지급받은 스프레이를 쳐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기가 차지, 그 아저씨 이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겠네.

정글을 지나며 던전과 가까워질수록 불쾌함은 더 커져 갔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솔로몬의 탑이 풍기는 기묘한 불쾌함을 느끼는지 남자A는 짜증을 내며 상황을 탓했고 여자B는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도 이처럼 꺼림칙한 숲은 본 적이 없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두운 숲에 간간이 나뭇잎 사이로 비추어지는 햇빛이 그나마 반갑다.

우린 몇 시간을 더 걸었다. 일직선으로 간다면 가까운 거리이나 밀림의 환경은 꼬이고 꼬인 미로와 같아서 절벽을 만나거나 폭이 넓은 강을 만나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난 문제가 되지 않았고, 분명 헌터들 중에도 이깟 장애물쯤은 신경 쓰지 않는 자들도 있을 테지만 던전에 도착하기 전까진 모두 얌전히 브라질 교섭인의 안내에 뒤따랐다. 걷기만 하자 발바닥에 닿는 밀림의 흙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졸졸졸 흐르는 소리, 땅이 울리고 진동하는 소리 등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다양한 소음에도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걸음을 멈춘 브라질 교섭인이 베어나무에 X자로 뜯겨진 나무껍질을 가리키며 말했다.

“던전에 가기 위해선 이종족 취락을 지나가야 합니다. 난폭한 자들은 아니나 던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접촉하지 말아 주세요.”

브리핑에서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던전은 이종족 취락 너머에 나타났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숙한 밀림에 나타난 던전을 브라질 정부가 파악한 것도 던전을 발견한 이계의 주민들이 먼저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헌터들은 이종족 취락을 지나가야 하나 긴장하는 자들은 없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이 너머에 사는 자들은 ‘우딸리깔딸리’였다.

우딸리깔딸리, 지구에 가장 먼저 나타난 이종족들 중 하나였고, 지금에 이르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이종족이기도 했다.

그들은 작은 난쟁이다. 다 자라도 어린아이보다 작다.

드워프나 레프러콘도 그들에 비하면 큰 덩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질이 온순하고 자상하고 따뜻하다. 전이 초기엔 그들을 요정이라 부르기도 했다.

우딸리깔딸리들은 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공격적이거나 위험한 건 아니다. 작은 편리함을 주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외에 신체 능력은 작은 난쟁이치곤 인간과 비슷하다. 완력도 같고 체력도 마찬가지다.

즉, 인간에 비해 무엇 하나 특출한 게 없었다.

그들은 동화 속 요정처럼 친숙하게 다가왔고, 이젠 지구의 어느 도시에서나 그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도 가장 흔한 이종족이었다. 하지만 요정이라 부르던 과거와 달리 그들의 대우는 그다지 좋지가 않다.

인간과 비슷한 힘과 지능으로 다른 종족과 달리 사람들은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친숙하게 대했으며, 친숙하다는 건 때론 만만하다는 것과 같았다. 내가 본 우딸리깔딸리들은 항상 사회적 약자 계층이었다.

오우거와 더불어 노동자들이었다. 정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가 아닌 일회성 부품에 지나지 않는 노동자. 그들이 공장에서 죽는다고 해도 뉴스엔 나오지 않는다.

이종족 사회 보장 제도도 실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혜택을 받는 건 ‘잘 적응한’ 이종족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엘프, 오크, 혹은 사타리언들.

요정이라 불리던 자들이 이젠 ‘작고 힘없어서’ 무시당한다. 이것도 적응의 결과인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이라도 세상 참 엿 같다고 느껴질 것이다.

베어나무를 지나 취락에 들어서자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난쟁이들이 보였다. 현대 사회에서의 적응을 포기하고 깊은 숲에서 살아가는 우딸리깔딸리들. 생김새는 정말 요정 같았다. 인간과 비슷하나, 보다 정교한 인형같이 생겼다.

‘던전 때문인가, 눈빛들이 다들 험상궂은걸.’

우딸리깔딸리들이 무시 받는 건 그들의 상냥함에 있었다. 유명한 종교 격언엔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놓으라는 말이 있다.

기묘한 격언이지만 뜻은 참 좋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거라지? 그런 의미에서 녀석들은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놓고, 그마저도 모자라 때리라고 궁둥짝도 내놓는다.

희생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 종족이다. 물론 그 때문에 가끔씩 지랄 맞아지기도 한다.

공장에서 일할 때 직접 경험한 나라서 잘 알았다. 우딸리깔딸리들은 작고 귀엽고 착하지만 때론 지랄 맞을 녀석들이다. 하지만 이곳의 우딸리깔딸리들은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도시의 우딸리깔딸리들과 달리 무척이나 험악한 눈빛으로 우릴 적대하며 살짝 건들면 내 두 뺨을 마구잡이로 패 버릴 것 같았다. 솔로몬의 탑이 내뿜는 불쾌함 때문에 심정이 바뀐 걸까?

우린 조용히 던전이 있는 취락 너머 공터로 향했다. 난 일행의 가장 뒤에서 걷고 있었는데, 취락을 벗어날 때쯤 누군가가 돌을 던져 날 맞췄다. 돌을 던진 우딸리깔딸리가 속삭였다. 귀가 밝은 내가 아니라면 결코 듣지 못했을 작은 목소리였다.

“여왕님이 오고 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평범하게 대처했을 시 그가 한 말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머리를 긁적이며 여왕이라고? 뭐지? 하면서 원장님에게 나중에 물어보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난 공격이 목적이 아니었대도 내게 돌을 던졌으며, 의미 모를 말을 한 놈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자비로움은 없었다.

“뭐여. 시발.”

일행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히 무리를 이탈했다. 지금까지 존재감이 옅은 야옹이의 힘을 발동시키고 있었으니 내 이탈을 눈치채진 못할 것이다.

놈은 내가 달려가자 크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난 손가락으로 녀석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다시 말해봐. 뭐?”

흉흉한 눈빛이었던 우딸리깔딸리는 이제 동공이 파도치듯 흔들렸다. 겁에 질려 하기에 화를 가라앉히고 천천히 땅에 내려줬다.

“여왕이라니, 무슨 뜻이지?”

난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자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녀석이 대답했다.

“여왕님이 오고 계셔요.”

녀석의 말이 끝나자 우딸리깔딸리들이 합창하듯 따라 외쳤다.

“여왕님이.”

“여왕님이!”

“여왕님이…….”

“……..”

모두 같은 말이었다.

여왕님이 오고 계신다고. 여왕님이 누구라고 물어도 여왕님이라고 대답할 뿐이고, 여왕님이 왜 오냐고 물어봐도 여왕님이 온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계속 물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녹음기를 틀어 그들의 말을 녹화하고 사진을 찍었다. 원장님에게 보여 주면 뭔가 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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