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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87화 (187/258)

# 187화 헌터 정다정 (7)

돌아가는 길은 어색하기만 했다.

헌터들은 보통 큰 활약을 발휘한 자들과 엮이길 좋아하지만, 내가 한 일은 활약의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오히려 첫 만남이 가장 친밀했을 정도로 날 멀리했다.

그들은 날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여섯 명은 베테랑 헌터치곤 굉장히 얼이 빠진 채 기지까지 돌아오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해하면서도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긴 했다. 내가 누군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졌는지, 윙바레의 고용 헌터라는 직책을 제외하고도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기지로 돌아오자 브라질 교섭인은 일이 끝났다며 대금은 추후 따로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벌써 주차장엔 내 짐을 실은 자동차가 준비되었다. 마치 날 쫒아내려는 듯 용건은 빠르게 끝났다.

벨렘 기지에서 나오자 다른 헌터들은 이미 서둘러 해산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사타리언 부인에게 연락해 전용기를 요청한 난 탑승 시간까지 근처 식당에서 시간을 때웠다. 솔로몬의 탑의 악마를 죽이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일은 터지지 않았다.

그렇게 헌터 일은 싱겁게 끝이 났다. 물론 성공 축하연을 연다고 해도 참가는 할 생각이 없었고, 날 향한 무수한 악수의 요청 따위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헌터 일이 이와 같다면 예상보다 더 재미없는 일인 것 같다. 역시 미디어에서 비추어지는 화려한 면만 보면 안 된다니까.

“재밌었어요?”

“조금요?”

그렇게 마물원으로 돌아온 난 원장님에게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악마를 집어삼킨 게 찜찜해서 검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원장님은 별일 아니라며 그보다 우선인 일이 생겼다고 했다.

“다정 씨와 같이한 여섯 명의 헌터, 서로 아는 사이더군요.”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원장님이 준 헌터들에 대한 정보에도 나와 있는 건데 왜 그러시지?

“네. 아는 사이던데요. 친해 보이진 않았지만요.”

“그래요? 더 이상하군요. 그들의 삶은 드러난 것보다 더 깊이 이어져 있던데.”

영문 모를 소리를 하던 원장님은 내게 몇 장의 서류를 건넸다. 여섯 헌터의 신상이었다.

“이건…….”

다시 서류를 읽어 가던 난 전에 받았던 것과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 모두 몇 가지 경력이 더 추가되었다. 단지 원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남자 A와 B는 사실 군 동기였고, 랭커 헌터인 남자 C는 수인 헌터의 후견인이었다.

그제야 나도 이상함을 느꼈다. 그들과는 이틀 동안 지냈을 뿐이지만, 확실히 친하기는커녕 서로 잘 알지도 못했던 것 같던데. 서류에 따르면 모른 척할 수가 없다. 그게 다 연기였었던 건가?

“그들의 관계는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어요. 그것도 모두 감춘 게 아니라 미세한 위화감도 언뜻 납득이 가게 만들어 놨죠.”

원장님은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와 오랫동안 지내 온 나라서 잘 알았다. 목소리에 높낮이가 없다. 지금 약간 화가 난 상태다.

“함정이었어요.”

“함정이요?”

“다시 검토하지 않았다면 나도 함정이란 걸 몰랐을 거예요. 처음부터 모든 게 다 조작된 거예요. 열강의 개입을 의도시켜 브라질 정부의 조급함을 이끌어 내고, 언뜻 무작위로 소집된 헌터들까지 모두 선별된 함정. 누군가가 일부러 솔로몬의 탑이란 흔적을 남겨 내가 움직이도록.”

원장님이 화가 날 만도 했다.

내가 함정에 걸린 탓에? 하마터면 위험할 뻔해서? 아니, 드래곤인 자신이 함정인 걸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자, 그럼 내가 누군지 알고 함정을 팠는지 아니면 그저 얻어걸린 것인지 알아볼까요?”

원장님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반나절을 하늘을 날아 한국에 도착했는데, 눈을 한 번 깜빡하자 다시 브라질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깔끔하게 마법으로 보내 주지.

*

겨우 반나절, 그 짧은 시간 동안 브라질의 벨렘 기지는 무너져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의 지하에서 살해된 여섯 명의 헌터를 발견했다.

그들 시체는 모두 피부가 썩은 채 심각하게 부패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같은 힘을 가지고 어떤 목적으로 여섯 명을 죽인 것이다.

난 아침까지 살아 있었던 그들의 시체를 바라봤다. 불쾌하고 꺼림칙한 무언가가 등골을 간질인다.

미묘하다. 검은 의도를 감춘 여섯 헌터. 어쩌면 날 죽이고자 했던 자들이 저리 죽어 있으니 정말 미묘한 기분이 든다.

던전에서 내가 힘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 후, 그들의 반응은 부자연스러웠다. 던전에서 나온 이후로도 생각해 보면 이상했었지.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당황한 사람치곤 나에 대한 ‘궁금함’이 없어 보이더니. 아마 그들에게 무슨 의도가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러다 제 눈으로 날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당황했겠지. 결국 임무에 실패해서 살해당했나. 아니, 처음부터 그들은 미끼였는지도 몰라.

그들의 피부는 썩어 문드러져 간신히 신분만 확인할 수 있었다. 증거를 건지기 어려운 상태였으나 원장님은 드래곤이다. 그녀는 인간들은 다루지 못하는 유형의 마법, 상처를 회복하는 복원의 마법을 펼쳤다. 그렇다고 죽은 자를 되살릴 순 없으나 부패된 시체를 살아 있을 적의 모습으로 되돌릴 순 있다.

“검은 날개.”

망자에겐 실례되는 말이지만 깨끗해진 시체들은 어떠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의 등에 새겨진 날개 같은 문신.

“역시 그들이었나.”

“알고 계세요?”

원장님이 말했다.

“일루미나티, 광명의 추종자들.”

대수롭지 않지만 가끔씩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단 한 번 들었을 뿐인 노래의 가사나 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본 광고 그림 따위가 그렇다.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떠오르는 기억이다.

난 ‘일루미나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노래의 가사처럼 쓸모없으나 어쩐지 기억에 남았던 조직의 명칭이었지.

“그것들, 단지 음모론자들 아니었어요? 인터넷 사이트도 있는.”

일루미나티, 솔로몬의 탑을 숭배하는 비밀 조직. 뭐, 인터넷 검색만 해도 나오는 단체니 비밀 조직이랄 것도 없지만.

케르베로스의 우리에 갔을 때 원장님이 말한 적이 있었다. 일루미나티는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원장님이 말을 덧붙였다.

“몇 년 전엔 아무것도 모르는 단순한 머저리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드러난 것과 달리 감춰진 게 더 많은 자들이에요. 그들은 위장된 신분에 정체를 숨기고 있어요. 같은 목적만을 드러냈을 뿐이죠.”

원장님은 일루미나티가 솔로몬의 탑을 숭배하며 탑의 재림을 목적으로 하는 건 맞지만, 드러낸 것과 달리 단지 허풍선 음모론자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이 가진 목적은 상당히 위험해요. ‘600층’ 이상의 솔로몬의 탑을 확보하여 완전한 탑의 출몰을 의도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높은 층의 탑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성가신 자들이더군요.”

원장님은 솔로몬의 탑의 최정상에 오르면 ‘깨달음’을 선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루미나티는 광명의 추종자들이라 불리며 그 깨달음을 갈구하는 자들이었다.

“지금까지 놈들은 자길 방해하는 자가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지만 함정을 팔 정도면 낌새를 알아차린 모양이에요.”

단지 탑에 오르려고 지구에 솔로몬의 탑을 출몰시키는 건 몹시 위험하다며, 당장 없애야 할 해충들이라고 했다.

화난 원장님의 모습을 보며 난 오늘 일루미나티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이란 걸 깨달았다.

“흥. 드래곤이 상대인 건 몰랐던 모양이지만.”

오리하르콘 브로치가 빛이 난다. 원장님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 주변 마나가 격하게 일렁거린다. 난 저 마법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주변에 벌어진 모든 상황들을 초 단위로 파악하고 마나를 추적하는 광범위한 탐색 마법이다. 용만이 사용할 수 있는 대단한 마법으로 일루미나티의 본거지를 찾고 있는 거겠지.

잠시 후 마법을 마친 원장님이 말했다.

“일단 이 일은 미루도록 하죠.”

방금까지 당장 쳐들어갈 기세였으나 원장님은 의외로 한발 물러났다.

“못 찾으셨어요?”

내가 물어보자 원장님은 일루미나티를 조종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냈다고 했다. 그런데 망설일 게 뭐가 있지? 난 머리를 긁으며 원장님에게 말했다.

“카르마 놈들과 엮일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요.”

이제 어영부영한 건 질색이다.

“그냥 다 쓸어버리시죠.”

일루미나티가 자세히는 몰라도 옛날 만화에서 등장하는 사천왕급의 악독한 놈들인 건 분명하다. 전이로 인해 망가져 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없애야 할 새끼들인 것이다.

“와, 진짜요?”

원장님은 내 당당한 태도에 감동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어떤 힘든 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장님은 싱긋 웃으며 되물었다.

“상대가 용인데 괜찮아요?”

마물, 악마, 괴물, 사천왕, 초능력자, 마인부우. 그 정도까진 감당할 만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난 손가락으로 원장님을 삿대질하며 대답했다.

“용?”

원장님의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저 문신을 봐요. 검은 날개, 용의 표식이죠. 어때요. 괜찮겠어요? 난 아직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다정 씨가 괜찮으면 지금 바로…….”

식었다.

솔로몬의 탑에서 날뛴 덕에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했나 보다.

“아뇨. 괜찮아요.”

물론 지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하지. 크리링은 벗어났으니까.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주인공급은 되지 못한다. 손오공, 아니 드래곤은 못 이겨.

원장님은 ‘용’과 ‘용’이 싸우면 지구가 붕괴될 수도 있을 테니 자세한 목적과 정체를 알기 전까진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난 괜히 침울해져 수련을 할 테니 다른 차원으로 보내 달라고 원장님에게 말했다.

젠장, 목표치가 너무 높잖아. 언젠가 내가 드래곤도 이길 날이 올까?

난 ‘검은 날개’를 가진 용에게 죽기 직전의 원장님을 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에이 씨, 상상조차 하기 버겁다. 꿈도 적당해야 꿀 만하지. 어떻게 내가 원장님을 구해.

그럴 날은 없다.

*

다른 세계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난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묵은 때를 밀고 사우나에 갔다 왔더니 목욕탕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목욕탕 안에 괴물들이 있었다.

내가 때를 벗긴 그 자리에.

난 놀라지 않았다.

왜냐면 보자마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맨몸으로 옷도 입지 못하고 도망쳤지만, 난 멍하니 서서 괴물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끔찍하게 생긴 괴물들, 살점이란 진흙을 엉터리 솜씨로 빚어 땅바닥에 떨어트린 듯한 비주얼.

그러나.

저건 나다.

내 때에서 부화했긴 했어도 일단 내 일부이긴 했다.

이유를 몰라 당황하지 않았다. 확실한 이유는 있었다. 저번에 던전에서 내가 삼킨 해삼 새끼 때문이다. 그동안 괜찮아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설마 이제 와서 이럴 줄이야.

난 녀석들을 데리고 경찰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마물원으로 향했다. 마물 처리 헌터들까지 붙어서 귀찮아질 뻔했으나 다행히 들키지 않게 관리실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원장님, 이거!”

난 원장님에게 그것들을 보여 주며 소리쳤다. 그러자 웬만한 일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던 원장님이 노골적으로 혐오했다.

“징그러워.”

[징그러워!]

단비마저 품에서 뛰쳐나와 소리쳤다. 젠장. 물론 징그러운 비주얼이긴 했다. 나와 닮았으나 살점을 뭉쳐 놓은 괴물이다. 게다가 미묘하게 문어 다리처럼 꿈틀거리고 반질거려 더 징그럽다.

“징그러운데 그냥 없다 치고 살면 안 돼요?”

난 싫어하는 원장님을 설득하며 내 몸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진저리 나는 표정을 하면서 마치 오물을 만지듯 나와 저 정체 모를 촉수 괴물에게 이런저런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나까지?”

난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데 왜 나도 오물처럼 대해? 기분 상하게.

이 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며칠 동안이나 마물원 우리에 갇힌 채 생활해야 했다.

“징그러운 능력이에요. 쓰는 건 자유지만 되도록 내 앞에선 보이지 말아요.”

결국 능력을 모두 알아냈긴 했다.

이건 놈의 능력과 같았다. 교감 따윈 하지 않았으나 강제로 내게 먹히는 바람에 연결점이 생겨 힘이 발현된 듯했다.

놈은 몸의 일부를 부화시켜 싸우게 했었지. 나도 힘이 발현되어 무의식적으로 몸의 일부를 부화시킨 것이다. 젠장. 묵은 때를 부화시키다니, 참 역겨운 능력이잖아.

훈련 끝에 힘을 조절할 수 있었다. 이제 원하기만 하면 몸의 일부를 떼어 내 괴물로 부화시킬 수 있었다. 대신 마나가 많이 소모된다. 정말 쓸모없는 힘이다.

“분신이라기엔 애매한데.”

난 만들어 낸 괴물들을 보며 울렁거리는 속을 달랬다. 차라리 문어 촉수 괴물이 낫지. 살색 괴물은 더 징그러웠다.

녀석들… 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들은 탑의 악마가 그랬듯 내 명령을 잘 따랐다. 굳이 뭘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생각을 공유하는 듯 내 말에 따랐다.

원장님은 싫어했지만 그래도 얻은 힘이라 제대로 사용해 보고 싶었다. 난 녀석들을 이용해 마물원 일을 해 봤다. 마물원 우리 청소, 먹이 주기, 성질 더러운 마물들 케어하기.

“생각보단 괜찮네.”

결과는 꽤 만족스럽다.

힘도 나름 센 편이라 그나마 잡일을 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단지 살덩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해삼 악마처럼 병사로 이용할 수도 있겠지.

“혹시…….”

녀석들이 나 대신 우리 청소를 하는 걸 지켜보다가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난 빈 우리로 이동해 떠오른 생각대로 한번 해 봤다.

그리고 며칠 동안이나 앓아누워야 했다. 원인은 주화입마. 정말 오랜만에 마나가 비틀려 버렸다.

생각만 해 본 건데 진짜로 될 줄이야. 이게 뭐람. 무슨 진격의 거인이라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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