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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88화 (188/258)

# 188화 아, 여왕이시여 (1)

세상은 점점 더 미쳐 간다.

이젠 의식하지 않아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을 지경이다. 마물원에서 일하며 항상 미친 상황과 직면하는 나라서 그러려니 하는 거지, 솔직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버티나 싶다.

며칠 전엔 이계의 기술력으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었다가 테스터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규모로 죽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지?

“흠, 우딸리깔딸리.”

이런 세상에서 요즘 특별히 주목받는 사건이 있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테러다.

예전처럼 오크 라덴의 워라이언들에 의해 인간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게 아니었다. 테러를 일으킨 자들은 우딸리깔딸리를 주축으로 한 이계인, 흔히 말해 사회적 약자 계층이다.

이계인들에 의한 테러는 예전부터 간간이 있었으나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젠 보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고 계획적으로 일어났다.

이번 테러 사건들은 그 끔찍한 행위의 잔혹성을 제외하더라도 이상한 점이 많았다. 폭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이 새겨진 하나의 글귀가 있었다.

[여왕이 온다.]

난 그 글귀를 알았다. 아마존의 우딸리깔딸리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원장님에게 보고했을 땐 아직 이른 시기라며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음은 분명했다.

“예감이 안 좋아.”

인터넷 뉴스를 뒤적거리던 난 요즘 들어 유난히 이종족 혐오 기사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의 이종족이 합심하여 테러를 벌이니 전에 없이 큰 갈등을 조장한 거겠지. 이번 테러는 특히 사람들에게 충격이 컸을 것이다.

우딸리깔딸리,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주 작고 귀엽고 착한 녀석들이다. 그로 인해 지랄맞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녀석들에 대한 인식은 무척 좋은 편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만만하다. 착하니까 뒤통수 때리기 좋고, 그런 주제에 제법 쓸 만하니 등쳐 먹기에도 좋다. 물론 사람들이 다 그런 못돼 처먹은 이기적인 새끼들만 있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런 놈들이 백 명 중에 한 놈만 있더라도 악성종양처럼 유독하다는 거다.

지금 사회는 ‘그들에 의한’ 테러로 인해 잠자코 있던 ‘그들에 대한’ 혐오감으로 물들고 있었다. 오늘도 출근하는 길에 환경 미화부 오우거에게 욕을 해 대는 할아버지를 봤다.

더러운 놈이 거리를 청소해 봤자 더 더럽힌다고 했었나? 오크 라덴에서 흉포한 전사였던 그는 지구에선 약자였다.

오우거는 참았지만 할아버지의 욕설은 심해져만 갔다. 난 잠자코 지나가려고 했지만 노인의 입에서 ‘네 고향에서도’라고 시작하는 욕을 내뱉자 결국 말리러 갈 수밖에 없었다.

둘에겐 다행이었지. 할아버지는 세상 하직할 뻔했고 제 명예라는 참을 수 없는 게 건드려진 오우거도 분명 인간을 죽였을 게 뻔했으니, 그는 잡혀서 별다른 법적 절차 없이 사형당했을 테니까.

정말 기이하다. 워라이언도 없는데 이 번져 나가는 혐오와 갈등은 이상하리만큼 전염성이 짙었다. 시발점은 우딸리깔딸리의 저항이었지. 여왕이 온다는 것과 관련이 있나? 정말 예감이 안 좋다니까.

*

그날 오후,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엄청난 일이.

첩보 영화에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국가의 정상이 그리 중요한 존재라면 왜 암살을 시도하지 않는 거지? 대놓고 돌아다니는데 날고뛰는 킬러들이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지 않을까.

멍청한 생각일 수도 있다. 그게 쉬웠다면 세상은 전이 전에도 요지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킬러가 인간이 아니라면. 영화를 보며 참 쉽겠다 생각하여 그걸 실행하고자 마음먹은 이계인, 그럴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진 자라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사에서 정상을 피습한 범인은 제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범인은 착하고 귀엽고 만만하던 우딸리깔딸리였다. 그는 방송국 카메라 렌즈를 또렷이 바라보며, 경호원의 총에 당해 죽어 가면서도 당당히 말했다.

[여왕님이 오신다. 웅크린 자들은 궐기하여 기쁘게 맞이하라.]

충격적인 뉴스는 인터넷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한국 공영방송에도 긴급 뉴스로 보도되었다. 난 눈썹을 구기며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다.

관리실의 문이 열렸다.

“다정 씨, 지금 바로 원장실로 오세요.”

난 감이 빌어먹게 좋다고 생각하며 굳은 표정으로 날 부르는 원장님을 따라갔다. 지금이 전에 말한 ‘때’라는 거겠지.

*

“다정 씨는 아끼는 자들이 있나요?”

원장님이 대뜸 물어봤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친구라고 할 건 없지만 그들마저도 인간은 아니었다.

원장님은 내가 원한다면 몇 명의 인간을 다른 차원으로 피신시켜 주겠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곧 지구를 격동시킬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했다.

래서 누구와의 전쟁이냐고 물으니 우딸리깔딸리에 의한 전쟁이라고 한다. 그 작고 귀엽기만 하던 난쟁이들이 지구를 뒤흔들 전쟁을 벌인다고?

원장님은 근래 마물원에 머물기보다 내게 임무를 시키고 항상 어디론가 출장을 나갔다. 마물보다 더 급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일도 그녀가 바빴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우딸리깔딸리들은 사회적 약자라고 오인되기 쉽지만, 그건 그들의 여왕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여왕?”

원장님이 말했다. 우딸리깔딸리들은 인간에 비해 매우 수동적인 생명체란다. 그들이 착한 것도 사실 심성이 고와서라기보다 스스로 선택하는 걸 미뤄 두기 때문에 그렇게 비추어질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왕’이라 부르는 존재가 있다면 달라질 거라고 했다.

“우딸리깔딸리의 여왕은 그들의 신, 섬기는 신앙에 따라 자비로운 신이 될 수도 무자비한 악신이 될 수도 있는 존재.”

“신이라면 원장님이 누차 말씀하시던…….”

“맞아요.”

신, 신.

지금까지 괴상망측하고 신성스럽기까지 한 존재들을 많이 만나 봤다. 그중 신과 가까운 존재라 하면 신수일 텐데, 녀석들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신과 연관된 적은 없었지.

원장님에게 자주 들어 신이라는 게 지구의 신처럼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님은 알지만 범접할 수 없는 생명체라는 것도 안다.

“지구에서 20년 동안 우딸리깔딸리들은 어떻게 지내 왔을 것 같아요?”

원장님의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공장의 부품처럼 노동하는 난쟁이들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그들을 산타의 요정들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제 장난감 따윌 만드는 단순 노동은 우딸리깔딸리들 노동자들의 작업이기도 하고.

노동자라고 대답하자 원장님은 내가 모르는 일면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끔찍한 사진과 읽기 두려운 자료들엔 강제로 감춰진 비밀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면 전혀 몰랐을 내용이었다. 설마 이 정도로 끔찍하게 이용당하고 있었나.

“우딸리깔딸리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기도가 되어 여왕을 만들었고, 이제 지구로 넘어오기 직전까지 도달했어요. 맞아요. 그녀가 지구로 넘어온다면 자신의 자식들을 위한 전쟁을 일으킬 거예요. 비명을 준 자들에게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고, 그들의 피를 마시며 자식들의 분노를 대신하여 끝이 나기 전까지 싸우겠죠. 인간들이 멸망할 때까지.”

끔찍하고 놀라운 얘기다. 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우딸리깔딸리들이 그렇게 대단한 종족이었습니까?”

원장님이 대답했다.

“그들은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라면 어떤 차원에서든 살고 있어요. 지구에 있는 개체는 일부분이며 여왕이 강림하면 전이가 가속되어 더 몰려들겠죠. 게다가 지구에서 그들의 전설을 기억하는 종족들은 모두 그들의 편에 서서 인간과의 전쟁을 일으킬 겁니다. 지구를 이용할 권리를 위해 기꺼이 싸우겠죠.”

사회적 약자 계층에 의한 반란은 지구의 역사와 같다. 저항의 봉기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문제는 그들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다. 이종족이 새 역사를 만들고 새 시대를 만들면, 인류는 과연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문제점은 심각히 인식했다.

난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 일은 허투루 생각해선 안 된다. 내 역할에 따라 종의 존망이 걸려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인류에게 다행인 건 드래곤이 같은 편이다. 원장님이 날 불렀으니 어떤 일을 맡길 테고, 그 일을 수행하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막죠?”

“협상.”

원장님, 드래곤의 입에서 신기한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드래곤치곤 유해서 거래를 자주하는 편이지만, 그만한 힘이 있는데 협박이 아니라 ‘협상’이라니.

원장님은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궁금한 것에 대하여 말했다.

“협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세계수 때와 같아요. 용은 태초의 맹약에 의해 신의 일에 간섭할 수 없어요. 왜 ‘이탈자’들이 할 것 많은 지구에서 잠자코 조용히 있겠어요? 로드가 두렵기 때문이죠.”

확실히 가진 힘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지. 자유의 여신상을 메이드 로봇으로 개조하거나 고양이 섬을 만드는 건 말이야.

“게다가 여왕은 아무리 용의 말이라도 듣지 않을 거예요.”

원장님은 까칠한 표정으로 머리를 박박 긁었다. 원장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주 드문 일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저런 행동을 취하지.

“하지만… 분명 협상은 협박과 강압에 비해 무척 어렵겠죠. 인간은 아무리 현명한 척하더라도 겪어 보기 전엔 깨닫지 못해요. 지금 그들의 인식에 박힌 우딸리깔딸리들은 너무나 나약하기만 한 존재. 결국 큰 전쟁이 벌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인간은 협상을 제시하겠죠.”

원장님은 인간의 무지몽매한 어리석음을 탓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나도 지구인인데요.

“그나마 다행히도 우딸리깔딸리들은 무자비한 전쟁광이 아니에요. 여왕이 강림하기 전에 혹은 강림한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만큼 이득을 취하면 멈출 거예요. 수동적인 존재인 만큼 마음이 금세 바뀌기도 하니까.”

원장님은 협상에 대해서 내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난 내 역할이 생각보다 더 엄청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중요한 협상의 내용을 대통령이 아니라 내가 해도 되는 거야?

원장님은 협상 카드로 아주 손쉬운 걸 제시했다.

“이제 인간은 확실히 지구의 주권을 포기해야 할 겁니다.”

인간의.

지구 포기 선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어떻게 생각해요?”

“당연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단호하게 느껴졌다.

“안 되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간이 지구를 포기해? 삶의 터전, 그 이상의 의미다. 그냥 다른 나라로 떠나라는 게 아니다. 사태가 진정되기 까지 전이에 안전한 세계에서 지내라는 건. 몇 년, 몇십 년, 몇백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다행인 건 원장님도 내 생각과 같았다.

“맞아요. 당연한 생각이에요. 지구의 역사로 봐도 용납 못 할 일. 이 방법은 오만스러운 회피지 해결 방법이 아녜요.”

원장님의 두 번째 협상 카드는 우딸리깔딸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이었다.

“모든 우딸리깔딸리들이 저항에 참가하는 건 아닙니다. 인간과 어울리길 원하며 전쟁을 막길 원하는 자들도 있어요. 다만 동족의 배신으로 생각해 판단을 망설이고 있어요.”

‘여왕’은 우딸리깔딸리들의 기도에 의해 탄생한 신. 따라서 모든 우딸리깔딸리들을 이해한다. 원장님은 반대하는 우딸리깔딸리들이 있다면 여왕도 물러날 거라고 했다.

“다정 씨는 여왕의 강림을 반대하는 우딸리깔딸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설득하고 규합하여, 여왕이 강림하더라도 분노를 잠재울 수 있도록 확실한 의사를 전하게 하세요. 우딸리깔딸리들의 사회는 존경으로 이루어져 많은 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여왕에게도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거예요.”

젠장.

불길한 예감은 사실 나한테 벌어지는 거였구먼.

“제가요? 우딸리깔딸리들의 지도자가 되라고요?”

“여왕을 알현하여 화평을 제시할 수 있게. 여왕은 자식들이 두 의견으로 갈라지면 판단을 보류하고 사라질 거예요.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예전이라면 혹시…….”

“저도 들은 거라. 으음… 어디 보자, 한 4천 년 전인가?”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난 그들이 증오하는 인간이다. 아무리 인간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설득보단 동족의 분노에 더 공감해 주지 않을까?

“그건 걱정 말아요.”

“네?”

난 깜짝 놀라 되물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한 건데 어떻게 안 거야?

“표정에 다 드러나 있어요.”

“아니, 방금도 마음속으로 생각한 건데요.”

“내가 다정 씨 하루이틀 봐요? 뻔하다니까.”

내가 원장님의 행동에 그녀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원장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드래곤이니 더 심할지도. 설마 진짜 마음을 읽을지도 몰라.

“폴리모프.”

원장님이 말했다.

“마법을 사용할 겁니다.”

나보고 착하고(수동적이고), 작고(정말 작고), 지랄맞은(난 원래 지랄맞긴 하지) 우딸리깔딸리가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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