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아, 여왕이시여 (5)
“여왕님에게 제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까요? 난 그저 노래하고 싶을 뿐인데. 엉엉.”
눈물이 많은 우딸리깔딸리들은 코코미가 울자 따라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진의는 잘 알았다. 확실히 다른 방식이지만 인간과 같이 지내길 원했다. 하지만 그 마음가짐이 애매하다고 느껴졌다. 인간들은 녀석들이 생각하는 만큼 착하지 않아. 조금 더 지켜보면 녀석들도 알겠지.
*
결국 회사는 폐업하고 그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뻔한 전개라서 놀랍지도 않았다. 분명 녀석들을 아직까지 좋아해 주는 팬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다.
“마지막 콘서트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해 주고 싶었다. 난 내 돈으로(나중에 원장님에게 청구할 거지만) 작은 콘서트장을 빌렸다.
인터넷으로 홍보도 했다. 티켓값도 착실히 받는 콘서트다.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녀석들을 위한 배려였다. 고작 몇 명밖에 오지 않을 테지만 마지막 무대가 흐지부지하게 끝났으니 이번 콘서트로 제대로 마무리 지었으면 했다.
콘서트 날까지 그들은 부단히 연습했다.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니 팬들에게 보답할 거라며 처음으로 라이브 무대를 준비한다나.
마침내 당일이 되었고,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예상보단 많이 왔지만, 기껏해야 수십 명의 관객만이 입장했다. 하지만 트루러브 3인조들은 들뜬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고, 그 순간 그날 겪었던 야유보다 더 큰 함성이 울려 퍼졌다. 고작 수십 명이 내는 함성이라곤 믿을 수 없게 우렁찼다.
“내가 지켜 줄게!”
“우오오! 영원히 우리들의 요정으로 남아 줘!”
“코. 코. 미!”
“레. 미. 미!”
“키. 니. 미!”
평소 같으면 뭔 지랄이냐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의 표정은 너무 진지했고, 발악에 가까운 응원들이 어딘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걸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확실한 건 종을 초월한 무언가가 있음은 분명했다. 혐오가 조장된 사회에서 이만한 응원이라니.
“모두, 고마워!”
트루러브 3인조는 엉엉 울며 고맙다고 소리쳤고, 그에 팬들은 형광봉을 흔들며 환호했다.
“문 라이트 러브, 시작할게!”
마침내 노래가 시작되고 코코미가 첫 소절을 불렀다. 목소리는 좋으나 박치에 음치, 가끔씩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곡성 같은 게 섞이는 게 듣는 게 괴로운 실력이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라 무대는 엉망이었다.
“정말 겉모습만 보나 보네.”
하지만 팬들에게 그건 중요치 않은 듯했다. 실력 없는 아이돌이라고 열광하며 일일이 가사에 맞추어 호응해 준다. 난 ‘문 라이트 러브~’라는 가사에 맞추어 뱅글뱅글 팔을 돌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 정도 수준이면 도리어 순수하게 느껴질 지경인데?
*
정말 내가 이런 것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원 포인트 레슨으로 가르쳐 줄 테니까 모르면 물어봐.”
테러 사태가 발생하기 전 녀석들은 어느 작곡가에게 노래 한 개를 받았는데, 들어보니 꽤 괜찮은 곡이었다. 후크송에 중독성이 짙고, 노래가 어렵지도 않다. 난 이 곡을 며칠 뒤 있을 지상파 음악 방송 무대에 선보여야 한다.
발단은 콘서트 이후, 예정된 ‘이변’에 의해서다. 망한 줄 알았던 트루러브는 TOT 엔터의 모회사인 일본 굴지의 거대 기획사 소속이 되었다. 물론 알아보지 않아도 원장님의 힘이라는 걸 알았다.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논란거리인 트루러브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게다가 스케줄도 하나 잡아 줬다. 무려 아침 시간대, 지상파 방송의 음악 무대. 일본의 유명 가수들이나 설 수 있는 대단한 무대다.
단, 조건이 있었다. 신곡으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일 것. 이건 원장님의 장난인지 아니면 협상의 결과인진 알 수 없었다. 왠지 전자일 것 같긴 하지만.
“자, 따라 해!”
노래는 어찌어찌 구했지만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해야 했다. 인간 정다정이라면 무리겠지만 다행히 내겐 마물의 힘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일을 맡았을 때부터 왠지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내 사랑은 담지 못할 거야~”
“내 사랑은 담지 못할 거야~”
난 음치인 코코미를 상대로 꾀꼬리같이 맑은 음색으로 노래를 가르쳤다. 마력을 최대한 적게 운용한 채 마물의 특징만을 빌리면 이런 것도 가능했다.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청아한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춤 동작이 어색하잖아. 어깨를 더 높게!”
타래딱새의 매혹적인 춤사위를 적용할 수도 있고.
“우린 작으니까 더 격렬하게 춰야 해. 동작을 더 크게!”
“흐아, 프로듀서님. 잠시 쉬고…….”
“닥쳐. 무대까지 쉬는 시간은 없다.”
포근이의 기운으로 오랜 레슨에 힘들어하는 녀석들을 강제로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난 내가 가진 온갖 재주를 이용해서 트루러브 3인조를 가르쳤다. 헛된 시간일 수도, 쓸모없는 노력일 수도 있으나 콘서트장에 있던 사람들, 그들은 진심이었다.
노래와 춤으로 혐오를 넘는다는 건 진부한 생각이지만 옛날 노래를 좋아하는 난 평화를 노래하던 많은 가수들을 기억했다.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we are the world’를 처음 들었을 때의 난 분명 다른 것보다 가수와 노래에 집중했었다.
며칠 지옥훈련이 지나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트루러브가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TV 지상파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
어느 아이돌 그룹,
그리고 그 그룹의 노래.
그것만으로 혐오와 갈등이 해소될 리는 없다. 하지만 성공적인 무대를 끝마친 이후, 트루러브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축제 공연에도 초대받게 되었고, 그 공연의 무대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가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랑과 평화에 대하여 노래한 ‘내 사랑은 담지 못할 거야’는 은근한 인기를 받으며 차트 인에 성공하기까지도 했다.
작은 날개짓이지만 바람은 점점 커져 갔다. 우딸리깔딸리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종족 가수들도 테러 사태 이후 활동을 하지 못했었는데, 어느 수인 가수가 평화에 대해 노래한 곡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며 의외의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유튜브 등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나를 혐오하지 마세요. 우린 당신들을 사랑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영상들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고작 노래 한 곡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번져 간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트루러브의 곡은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그 후 난 녀석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대신해서 여왕님에게 너희들의 목소리를 전해 주겠다고. 그날이 오면 날 위해 같이 목소리를 내어 줄 수 있냐고. 녀석들은 웃기만 하더니 대답 대신 놀라운 일을 벌였다.
그날 잡혀 있던 TV 프로그램에 나와 여왕을 언급하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버린 것이다. 여왕에 대해 모르는 인간들은 어리둥절해했지만 방송을 통해 우딸리깔딸리들에겐 전해지겠지.
*
마지막 일은 가장 성가시고 거북하게 느껴졌다. 우딸리깔딸리들은 그들을 변절자라고 불렀다.
카우토소 목장에서도, TOT 엔터에서도 우딸리깔딸리들에게 그들에 대해 물어봤으나 좋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난 우딸리깔딸리들은 다수의 생각에 반대하며 여왕에 대하여 제 신념을 이야기하고자 했을 뿐, 여왕 자체를 싫어하거나 부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자들은 다르다.
가장 수가 많고, 확실히 여왕의 강림을 반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에게 우호적인 편은 아니다. 20년의 세월, 그 짧은 세월 동안 지구에 물든 우딸리깔딸리들이 이리 변할 수도 있는 건가? 지구의 영향 중에서 가장 강렬한 요소는 무엇일까. 아마 종교가 아닐까. 다른 세계에서 다른 신을 섬기던 자들마저 지구의 종교의 신도가 되니.
난 그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 텍사스 주로 향했다. 지금 만날 자들은 ‘배움교’라는 신종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이다.
인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우딸리깔딸리들은 심지어 그들만의 종교도 있었다. 여왕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닌 지구의 문화에 물들어 탄생한 사이비 종교가.
이들은 여왕을 부정하고 하나의 신을 섬겼는데, 그 신은 만물을 배우고, 베푸는 신이라고 한다.
종교의 영향력이 꽤 크다. 우딸리깔딸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종족들이 신도로 있다. 과거 미국에서 발생한 이종족 노예 사건 이후로 규모가 더 커졌다는데, 이종족들이 지구의 종교를 따라 해 세워진 곳이라 난 꺼림칙하게만 느껴졌다.
이곳에서 난 할 게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여왕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상’을 저지를 수도 있었기에 원장님은 특히 유심히 지켜보라고 했다.
난 그곳에 신도로 잠입하여 동태를 살폈다. 종교적 느낌의 강압, 예를 들어 하얀 옷을 입고, 하얀 건물에서 살며 하얀 음식을 먹고 젖소를 키우고 밀을 재배하는 등 교내에선 행동이 강제되었으나 그 외에 별다른 건 없었다. 다만 왠지 너무 조용해서 도리어 불쾌했다.
우딸리깔딸리들과 다르잖아. 솔직하고 유쾌하고 엉엉 울기 좋아하던 우딸리깔딸리들과 달리 이들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말이 없었다. 절제된 모습에 광기마저 느껴졌다.
마치 그들의 수동적인 성격이 가장 나쁘게 발현된 것 같았다.
*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며칠 전부터 우딸리깔딸리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왕의 강림이 시작됐어요.]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 원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든 우딸리깔딸리들은 본능적으로 여왕이 강림하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난 광신도들의 행렬에 휩쓸려 그곳으로 향했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우딸리깔딸리들의 행렬은 어느새 지구촌에서 가장 주목받는 뉴스가 되었다.
“신은…….”
마침내 며칠을 걸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난 원장님이 했던 말을 절실히 깨달았다.
“현재의 지구가 감당할 수 없다.”
하늘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마치 태평양 열대 섬의 에메랄드 바다처럼 반짝거렸다. 미국 중부의 사막엔 어울리지 않게 꽃들이 피었다. 아름다운 붉은 꽃들이 만개하여 사막의 모래 위를 장식했다.
난 저 기괴한 현상이 한 존재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주변에 느껴지는 격동하는 마나들이 피부를 저릿하게 만든다. 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쳤으나 꽃들이 피어난 사막 위에선 잔잔하게 흩어지고 만다.
그곳에 약속이라도 한 듯 많은 우딸리깔딸리들이 모였다. 그들 중 내가 만나 본 자들도 있었고, 인간을 적대하는 우딸리깔딸리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 명의 우딸리깔딸리를 따랐는데, 난 저 선두에 선 자가 테러를 주동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헬리콥터 여러 대가 이곳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우딸리깔딸리들이 매섭게 노려봤지만 함부로 덤벼들진 않았다.
“젠장, 부담스럽네.”
걱정하지 않았다. 역시 원장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뉴스에서나 보던 각국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 원장님은 의도대로 협상 자리를 만들었다. 문제는 내가 그 협상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