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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93화 (193/258)

# 193화 아, 여왕이시여 (6)

어수선하던 평야가 조용해졌다. 마치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멈추고 침묵한다.

인간과 우딸리깔딸리들은 모두 한 곳을 바라봤다. 에메랄드 하늘이 열리고, 그자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존재만으로 환경이 바뀐다. 붉은 꽃이 만개하던 사막은 이제 울창한 숲으로 자라났고, 사막의 열기로 텁텁하기만 하던 공기가 깊은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상쾌하게 맑아졌다.

여왕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 모습은 가히 강림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다.

종교적인 경향을 떠나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들게 했다. 우딸리깔딸리들은 여왕의 강림에 몸을 숙여 절을 했다.

다수의 목소리에 반대하는 자, 테러를 주동하며 심판을 원하는 자 상관없이 자신의 신에게 경배를 한다. 다만 변절자, 배움교의 우딸리깔딸리들은 목을 꼿꼿이 펴고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난 여왕을 지켜보며 이제는 익숙해진, 초월적인 존재를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강렬한 흥분에 휩싸였다.

여왕이라는 자, 난 그가 어쩐지 신이라기보다 마물에 가깝고, 마물보단 자연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상상과는 달랐다.

여왕에게서 신수와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러나 특정할 수 없는 기묘한 향기를 풍기기도 한다. 여왕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멈추었다.

인간들이 그의 기묘한 생김새에 작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우딸리깔딸리들의 여왕은 가시넝쿨을 몸에 두른 여인이었다.

머리는 싸리 잎처럼 자잘한 잎이 무성했고, 발은 나무의 뿌리와 같았으며, 얼굴은 사마귀 같았고, 몸은 인간과 같았다. 멀리서 보아 확신할 순 없으나 신장은 3미터쯤 되어 보였다.

여왕을 감싼 넝쿨의 가시가 몸을 찔러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피는 여왕이 강림했을 때부터 멈추지 않았고 여왕의 아래엔 어느새 핏물이 고여 붉은 웅덩이가 생겨났다.

이상하다고 느꼈다. 저 모습은 마치 가시면류관을 두른 신과 같지 않은가? 하지만 여왕은 희생과는 연관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그가 흘리는 피는 인간들을 위한 자비는 아니겠지.

“저게 신이구나.”

여왕을 바라보던 난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뭐, 별거 없네. 신이라는 것도. 그러며 난 다급히 원장님에게 차원송신기를 켜고 연락했다.

“어디예요. 여왕 떴어요. 빨리 오세요.”

[다정 씨.]

애타게 원장님을 찾았으나 원장님은 이곳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없었다. 드래곤이 개입하지 못한다는 건 지구에 없다는 걸 뜻한단다.

그 말을 듣자 난 살짝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보험이 끊기고 구호정은 없으며 심지어 구명조끼도 없어.

[지금부터 다정 씨에게 일을 전적으로 일임하겠어요. 괜찮아요. 인간과 우딸리깔딸리들의 관계는 해결한 것과 다름없으니 여왕만 설득하면 되니까.]

저기, 그게 문제인데요.

난 내가 마주해야 할 여왕을 다시 힐끔 쳐다봤다. 워낙 막강한 존재라 첫인상은 경외감만 들었으나 다시 보니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뭐가 여왕인가, 사마귀 얼굴에 가시넝쿨을 두른 괴물이잖아. 게다가 공중에 둥둥 뜬 채 눈도 뜨지 않고 있다. 마치 식물처럼 제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원장님, 여왕의 상태가 뭔가 이상한데요.”

그 모습이 이상해 원장님에게 물어보니 지금 여왕은 아직 의지가 확립되기 전의 태아 상태라고 했다. 저 모습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니 이제부터가 중요하단다.

여왕이 강림하면 우딸리깔딸리들이 모여 목소리를 전하는데 자신이 나서 조율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인류에게 심판을 내리는 두려운 존재가 되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엔 인간과 먼저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으니 반대의 목소리를 전하면 여왕은 심판을 보류하고 다시 사념으로 흩어질 거라고 했다.

난 수많은 우딸리깔딸리 행렬에 섞여 상황을 주시했다. 솔직히 인간 쪽과 대면하자마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여왕의 등장 이후 상황은 내가 알지 못해도 자연스레 흘러갔다.

테러의 주동자는 인간을 증오한다. 인간은 우딸리깔딸리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며 무력시위에 굴복할 만큼 나약하지 않다.

우딸리깔딸리들은 인간의 편견처럼 만만한 종족은 아니다. 하지만 수만 명이 모였대도 지금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당해내진 못한다. 난 인간 측 대표자들 중 몇 명은 알고 있었다.

랭커도 있으며 모습은 드러내지 않지만 갤러해드와 원탁의 기사들의 기운도 희미하게 느껴진다. 분명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큰 전쟁이 일어났을 테고, 우려대로 여왕이 깨어나 인간에게 학살의 심판을 내렸을 것이다.

우딸리깔딸리와 인간, 두 종족의 협상은 의자 여러 개와 탁상 한 개로 이루어졌다. 테러를 주동한 우딸리깔딸리, 그들은 다수를 대변하는 목소리. 그들이 의자에 앉는다. 인간 측의 대표는 역시 강대국의 정상과 장관들이다. 인간을 대표하기보단 여왕이 강림한 곳이 자기 나라의 영토라서 그렇겠지.

협상 자리가 마련된 것만으로도 놀랍기 그지없었다. 새삼 내가 누구의 밑에서 일하는지 깨달았다. 원장님은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판을 짤 만큼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어.

그런데 이럴 거면 내가 왜 필요했지? 지들끼리 알아서 잘하잖아.

“뭐, 온갖 지랄이 득실거리긴 해도.”

물론 이곳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대충 둘러봐도 기척을 숨긴 채 대기 중인 인간들도 느껴지고 내 주변에 배움교 녀석들도 동태가 심상치 않다.

미디어 노출은 금지되었고 모인 자들도 제한적이지만 분명 현재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들이 모인 자리다. 뒷공작으로 온갖 음모들이 판치고 있겠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그걸 걱정할 바에야 앞으로 내게 벌어질 상황을 걱정하는 게 낫다. 어차피 원장님이 알아서 다 해결할 테니까.

이계인의 신, 여왕과 그 아래 모인 수만 명의 우딸리깔딸리. 그들과 협상하기 위해 모인 강대국의 중요 인사들과 발 빠르게 모인 교섭인들. 그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시작되는 회담. 인간에게 불만을 가진 우딸리깔딸리들과 권력을 가진 몇 명의 인간이 마주앉아 입을 연다. 이처럼 기묘한 회담은 대전이로 뒤바뀐 지구에서도 최초다.

난 야옹이의 힘으로 기척을 숨긴 채 주변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주시했다. 회담은 예상외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우딸리깔딸리들의 일방적인 토로 후에 인간들이 의견을 수렴하여 기꺼이 수용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회담을 지키는 자들은 원탁의 기사를 포함하여 강력한 능력자들이었으나 새어 나오는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난 그들의 모든 대화를 먼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마물의 힘, 최고다.

“너무 수월하게 진행되는데.”

인간 측 대표자는 지금 순간을 서로의 교류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날이라 칭하며 발생한 모든 의견은 이후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세계 각국과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난 그 태도에서 사실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모든 협상이 끝났을 거라고 짐작했다.

원장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인간은 직접 겪어 보기 전엔 알지 못한다고.

“어떻게 한 거예요?”

통신기를 켜 원장님에게 물었다.

대답은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단지 그들이 싫어하는 미래를 보여 줬을 뿐이에요. 아하하.]

협박했군. 협박했어.

“이럴 거면 내가 없어도 됐잖아요? 지금까지 나 뭐한 거래요?”

[다정 씨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했잖아요. 물론 난 이런 ‘사소한’ 일은 귀찮은 일로 번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알겠어요. 드래곤의 그 뭐시기 법 때문에 안 된다는 거잖아요.”

[법이 아니라 어기지 못할 약속이라고 해 두죠.]

4개월 동안 다른 종족으로 폴리모프시킨 터라 원장님은 작은 투정 정돈 화를 내지 않고 받아줬다. 난 조금 더 짜증을 부릴까 하다가 역시 그건 아닌 것 같아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우딸리깔딸리들의 불만은 수용되었고, 회담은 이후로도 국제적인 규모로 여러 차례에 걸쳐 다방면으로 개최하겠다고 약속되었다. 그 말은 이종족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역사적인 발언이다.

또한 인간 측은 지금까지 발생한 테러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겠지만 추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우딸리깔딸리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테러에 대한 주제로 회담을 나눌 때 난 꺼림칙한 기분을 느꼈다.

윤리적인 관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 대 인간’이 아니기에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까? 물론 지금 판국에 우딸리깔딸리들을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죽도 밥도 안 되겠지.

이종족 노동과 생활권에 대해서도 협상을 나누며 이종족에 대한 국제법의 초기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법은 있었으나 이종족들에게 실효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회담을 끝으로 그들도 ‘차별금지법’에 보호받게 된다.

성별, 성정체성, 신체조건, 병력, 외모, 나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 등등 ‘모든 영역’에 ‘이계’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니 모든 법들이 새로 개정되거나 영향을 받겠지.

논의가 끝날 무렵이었다.

지금까지 정치적인 영역에서 열을 올렸다면 이제 이 평야에 모든 생물들은 다른 의미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준비하세요.]

원장님이 말하지 않아도 뼈저리게 느껴진다.

여왕.

그가 눈을 뜬다.

“하하하, 뭐야 저게.”

난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원장님의 수작이 우딸리깔딸리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인간들을 위한 거였군.

눈을 뜬 여왕은 천천히 회담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곤충의 눈을 닮은 여왕의 초점 없는 눈이 그들을 둘러본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어느 한곳을 바라봤다. 내가 있는 자리였다.

“날 쳐다보고 있어.”

난 여왕의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모든 걸 꿰뚫어보는 시선처럼 느껴졌다. 왜 날 쳐다보는 걸까.

[넌 내 아이가 아니로구나.]

그때였다. ‘혼잣말’을 하듯 머릿속에 어떤 말이 떠올랐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언어였지만 뜻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여왕은 내게 말을 걸었다. 무척이나 기묘한 감각이 든다. 그는 알았다. 내가 우딸리깔딸리가 아님을.

[그리고 인간도 아니야.]

하지만 그 뒤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인 나더러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 마물과 교감하고 있는 탓에 알아차리지 못한 건가? 여왕은 내 머릿속으로 직접 말을 걸었다. 이곳으로 오라고. 넌 내 아이가 아니지만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이니 저울에 올라갈 자격이 있다고.

여왕의 말은 나만 들린 게 아니었다. 이끌리듯 그의 앞으로 가는 두 존재가 있었다. 다수의 우딸리깔딸리들의 선두에 서 있던 자와 인간을 대표하는 자였다. 나 또한 여왕의 지시대로 그에게로 걸어갔다. 마침내 여왕의 앞에 세 명이 섰다.

[내 아이들아. 바라던 심판을 시작하니 요람에 누워 내게로 오거라.]

그때였다.

여왕의 말이 끝나자 수만 명의 우딸리깔딸리의 머리에서 실처럼 작은 ‘나무줄기’가 돋아나 여왕에게로 뻗어 갔다. 머리에서 피어난 수만 개의 줄기가 파도처럼 휘몰아치며 여왕에게로 몰려드는 모습은 끔찍한 악몽처럼 역겹고 징그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후 벌어진 일에 비해선 양호한 편이다. 갑자기 여왕은 입을 벌리더니 인간 측 대표의 머리를 삼켰다. 난 곧바로 기척을 숨기며 도망치려고 했으나 그 순간 들려오는 원장님의 목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곧 올 테니, 거부하지 마세요.]

거부하지 말라니, 머리를 추파춥스처럼 쪽쪽 빨아 대는 저 행동을 당하라고?

시시씩!

그의 머리를 입에 물었던 여왕은 곧 뱉어내며 고개를 들곤 기이한 울음소리를 냈다. 해칠 생각은 없는지 인간은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 다만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추악한 생물.]

그 뒤, 여왕은 우딸리깔딸리를 삼켰다. 마찬가지로 잠시 후 뱉었고, 여왕은 이젠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아, 불쌍한 내 아이들.]

“시벌.”

다음 차례는 나다.

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지금 내가 여왕의 뺨을 후려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다. 젠장, 상황만 아니라면 극구 사양할 텐데 핑계가 너무 좋잖아.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으니 어떻게 저항할 수도 없어.

“시이이벌.”

난 결국 여왕의 입에 삼켜지고 말았다. 축축한 침과 지독한 입 냄새를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달랐다. 이런 기분 느끼면 안 되지만 포근하기 까지 하다. 이상한 건 입속이라지만 너무 어두운데.

“어?”

그때였다. 빛이 몰려온다. 먼 곳에서 환한 빛들이 몰려오더니 날 휘감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긴장되었으나 난 진정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빛은 점점 더 커져 마침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서서히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그건 목소리였다.

우딸리깔딸리들이 여왕에게 들려준 목소리. 비명과 울부짖음, 고통스럽고 처절하고 답답하다. 참혹하고 비참하며 슬프고 외롭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작지만 따뜻하고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난 그 목소리들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카우토소 목장의 우딸리깔딸리들, 아이돌 3인조 러브트루, 그리고 코코미의 목소리에 반응한 우딸리깔딸리들과 인간과 어울려 지내길 원하는 소수의 우딸리깔딸리들의 목소리.

“목소리를 보탠다는 게 이런 거였어.”

빛이 물러가고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여왕의 입에서 뱉어진 난 일이 끝났다고 직감했다. 여왕은 목소리에 따라 심판을 내린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원장님의 뜻대로 풀렸다. 내가 들은 목소리, 끔찍한 비명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웃음들은 여왕의 판단을 보류할 만큼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하늘을 올려다봤다. 초록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이 원래의 색을 되찾아 가고 있다. 예상대로 여왕은 우딸리깔딸리들을 대변하여 심판을 내리지 않았다. 다시 비명이 가득 차오르면 나타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사막에 생겨난 숲도 낙엽처럼 말라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한다.

“생각보단 쉬웠어.”

난 점점 희미하게 흩어지는 여왕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잘 풀렸다. 생각해 보면 다른 일에 비해서도 쉬운 편이었다. 다행이야, 다행…….

“우린 새로운 신을 위해 헌신한다.”

목소리가 연결되어,

목소리가 들린 후라,

내 감각은 평범한 사람처럼 둔하기 짝이 없었고.

“구시대의 신이 사라져야 광명을 찾으니!”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그럼에도 수작을 부릴까 인간 측은 주시하고 있었지만 미처 그들은 파악하지 못했고.

“재로 돌아가라, 여왕이여!”

무엇보다 여왕이 공격당할 줄은 몰랐기에, 난 그의 가슴과 머리에 철검을 박아 넣는 우딸리깔딸리들을 막지 못했다. 지금 와서 난 그들과 지내며 느꼈던 꺼림칙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상하리만큼 제 의지가 없었던 그들은 여왕에게 제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어.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을까.

아마 처음부터겠지.

작은 몸집의 우딸리깔딸리가 작정하고 기척을 숨긴 채 여왕을 살해하기 위해서 불쾌한 기운을 풍기는 특이한 검으로 가장 방심할 때를 틈타 공격한 건.

모든 게 준비되었던 거야.

“여왕은 그런 걸로 죽지 않아.”

빌어먹을 새끼들, 무지함의 편견으로 고통 받았으면서 왜 제 무지함으로 참극을 일으킨 거지? 배움교의 우딸리깔딸리들은 광기에 휩쓸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했다.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

하늘이 다시 초록빛이 되더니 이젠 검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우딸리깔딸리들의 머리에서 다시 줄기가 자라나 여왕에게로 연결된다.

[날 배신했다.]

시작은 가장 가까이 있던, 여왕을 검으로 찔렀던 배움교의 우딸리깔딸리들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난 줄기를 통해 이동하는 마나의 흐름을 지켜봤다. 그 후 여왕과 연결된 모든 우딸리깔딸리들이 절규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난 수만 개의 줄기에서 뽑혀 나가는 생명들을 지켜봤다.

“단비야.”

철검이 땅속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난 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고, 그 순간 작은 우딸리깔딸리의 몸에서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다.

“지랄 같네.”

난 생명력이 빨리는 카우토소의 우딸리깔딸리들을 바라보며 욕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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