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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98화 (198/258)

# 198화 자이언트 (4)

다행히 거인들은 내 예상과 다르게 날 폄하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내가 입은 팬티 자체를 놀라워했던 것이다. 자존심을 지킨 난 그들의 반응에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었다.

“저게 뭐지!”

“옷 안에… 옷이 또 있어?”

“저게 뭐야!”

거인들은 엘도라도를 발견한 모험가처럼 흥분했다. 심지어 저 거대한 보석보다 내 속옷을 더 값진 물건처럼 쳐다보기까지 했다.

설마하니 거인들은 위생관념이 아니라 단지 속옷이란 개념이 없어 입지 않았던 건가? 난 으쓱하며 궁금해하는 거인들에게 소리쳤다.

“아아, 이건 ‘팬티’라는 거다. 옷 안에 입는 속옷의 한 종류지.”

거인들이 소리 지른다.

“우오오! 말도 안 된다고! 저렇게 딱 달라붙는 옷을 입으면 간지러울 텐데 어떻게 참는 거지?”

생각해 보면 짐승의 뻣뻣한 가죽을 씻은 후 그대로 치마처럼 입는 거인들에게 속옷은 사치겠지. 위험한 세계니 만큼 철강 기술까지 도달했으면서 옷에 대한 발전은 더딘 듯했다. 인간과 다른 관념을 가진 이종족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아니, 이건 마법의 팬티라 안 입은 듯 편하고, 쉽게 더러워지지도 않지. 보아라, 이게 가죽옷처럼 거칠어 보이는가?”

거인들의 반응이 워낙 재밌어 놀리고 싶었다. 지금 난 제 속옷을 자랑하는 미친놈이지만 거인들은 정말 부러운 듯했다.

“보물이다! 보물!”

심지어 족장마저 내 속옷에 군침을 흘리니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만약 거인들이 지구에 전이된다면 우선 속옷 가게부터 보여 주고 싶다. 혹시 몰라, 팬티 한 장이 거인과 인간의 평화를 이륙할지?

*

난 오직 땅콩 박살 하나만으로 결승까지 올랐다. 그러나 마지막 상대는 급소 차기가 통하지 않는 강한 전사다. 난 놈을 처음 봤을 때부터 주시했다.

다른 거인들에 비해서도 머리 하나는 큰(인간의 관점으론 5층 건물만 한 차이) 놈은 잘 단련된 근육질의 몸과 수많은 아수라장을 겪은 듯 뛰어난 반사 신경과 싸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잘 부탁하오. ‘땅콩 수확자’. 거악의 대후란이라고 하오.”

“으음, 잘 부탁합니다. 땅콩 수확자입니다.”

품성도 다소 얼간이 같은 거인들과도 달라 예의가 발랐다. 내 땅콩 수확자라는 웃긴 별명을 진중하게 받아들이면서 제 이름을 밝혔다.

또한 그가 가진 장비도 다른 거인들과 달리 제법 본격적이었다. 허리에 찬 검, 등에 맨 창, 손에 든 거대한 방패. 언뜻 봐도 무량성계의 거인들의 대장 기술론 제작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서 깨달았는데, 그는 무려 ‘팬티’를 입고 있었다! 그도 타지에서 온 거인이라고 하던데 설마 무량성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거인 혹은 무량성계의 거인들 중에서도 ‘워커’가 있다는 건가?

경기가 시작되자 화난 황소처럼 덤벼들던 다른 거인들과 달리 그는 노련하게 내 주위를 돌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 내 힘을 가늠하는 건가. 역시 그는 보통의 거인이 아니야.

“후우.”

거대화의 힘만으론 당해 낼 상대가 아님을 알았다. 난 최대한의 한계까지 마물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대륙거북의 힘을 받아 거대화한 메타소드는 묵직한 거대 몽둥이가 되었고, 희미하게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검을 꺼내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엔 방패를 들어 몸을 보호했다. 내 몽둥이의 공격이 느리다고 판단해 방패로 막아 낸 뒤 검으로 공격할 생각인 모양이다. 노련한 전사는 제 판단을 믿고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방에 끝낸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난 거인이 아니다. 질긴 가죽과 거대한 덩치에서 오는 완력은 흉내 냈을 뿐, 내 진정한 힘은 다른 것에 있다.

예상대로 몽둥이를 추켜들자 놈은 방패를 내밀고 가드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난 망설이지 않고 두 손으로 쥔 몽둥이를 냅다 내려쳤다.

쿠웅!

거산마저 일그러트릴 일격은 그의 방패를 부수고 몸뚱이를 가격했다. 그 여파로 바람이 돌풍이 되어 주변을 휩쓸고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울렸다. 숙련된 거인 전사라도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뭐야? 뭐야! 아무것도 안 보여!”

“어떻게 된 거야!”

돌풍은 흙바람을 일으켜 주변을 휘감았다. ‘거인’의 기준으로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막대한 황사, 지구에선 대도시 하나쯤은 집어삼킬 거대한 모래바람.

“한 번으로 몸의 마나가 모두 증발했어. 하지만 뭐, 굉장하네.”

난 목이 타는 갈증과 몸 전체의 기운이 증발하는 허탈함을 느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강한 거인 전사를 상대로 미적거린다면 도리어 내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방으로 끝내고자 했고, 정말 한 방으로 끝내 버렸다.

어쩌면, 아니 확실히 방금 내 공격은 내가 펼친 힘 중 ‘포식’을 제외하고 가장 강대한 공격이다. 효율은 나쁘지만 역시 거대화의 힘은 내가 가진 마물의 마력 중에서도 사기적인 힘이다.

어느 정도 힘이 돌아오자 황사가 지속되는 틈을 타 몸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마력을 유지할 수 없다.

움직이면서도 내 몸은 점점 작아졌다. 세상이 점점 커지며 마침내 모든 걸 올려다봐야 할 무량성계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가 되어 버렸다.

“응? 여봐라! 반짝이는 돌멩이가 어디 갔느냐!”

황사가 걷히자 족장은 제 옆에 소중히 모셔 뒀던 보석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난 거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석을 짊어진 채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우오오? 웬 개미 한 마리가 돌멩이를 들고 있나이다.”

“아니다. 저건 개미가 아니다! 저… 저건! 소인이다! 소인이야!”

수많은 거인들의 달려오는 꼴을 보자니 차라리 마그마를 분출하는 화산 위가 더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시야를 가득 메운 거대한 놈들이 날 잡아 죽이고자 덤벼드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오금이 살짝 저려 왔다.

“으아, 멀었어요?”

[다 됐어요.]

그러나 때마침 하늘에서부터 찬란한 빛줄기가 내려왔고, 난 그제야 여유롭게 웃으며 몰려드는 거인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추켜올렸다. 거인들이 던진, 열차만큼 거대한 창들이 내게 쇄도했으나 난 느긋하게 날 집어삼키는 빛을 만끽했다.

“나이스 타이밍.”

빛이 순간 번쩍하여 눈을 깜빡 감았다 떴다. 그러자 거인들 대신 보이는 건 기가 찬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원장님. 역시 공간이동 마법, 대단해.

“옷이나 입어요.”

난 보석을 내려놓고 뿌듯한 표정으로 매만졌다. 원장님이 성난 목소리로 당장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보석을 분해시켜 버리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관리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득템’했다. 마물원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며 값진 물건을 보는 심미안이 생겨났다.

보석을 본 원장님이 순간적으로 눈을 반짝이던 걸 캐치했지. 짐작컨대 드래곤도 탐낼 만한 엄청난 보석일 것이다. 뭘까, 먹으면 여의주만큼 엄청난 마나를 선사할까? 아니면 오리하르콘처럼 가공하면 절대 보구가 될지도 모르지. 기대된다.

정말 기대되는걸.

*

망연자실하던 거인들의 위로 무언가가 펄럭거리며 떨어졌다. 누군가가 그걸 주웠고, 곧 이해했다.

“토, 토루타쿤!”

그렇게 거인들은 ‘팬티’를 둘러싸고 다시 토루타쿤을 시작했다.

*

관리실에 딸린 샤워장에서 급히 먼지를 씻어 내고 여유 옷으로 갈아입은 후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원장실로 뛰어갔다.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

요계 이후로 수련을 통해 강해졌지만, 그 후로 정체되어 버렸다. 물론 충분히 강하긴 하지만 내 목표엔 한참을 못 미친다.

인간이 드래곤과 비슷해지는 건 무모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마물원 초기, 늪지대에 빠져 죽으려던 어수룩한 나와 지금의 날 비교하면 세상에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그러니 이 보석은 내 창대한 목적을 위한 큰 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원장님! 이 보석은…….”

문을 벌컥 열고 활기차게 소리치던 난 순간 얼이 빠져 말을 삼켰다. 잠자코 상황 파악에 나섰다. 보석은 온데간데없고 경악한 표정의 원장님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황금원숭이 위수, 단비가 보인다.

“보석, 어디 갔어요?”

원장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녈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욕심 많은 드래곤이 보석을 꿀꺽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젠장, 원장님이 가지겠다고 단언하면 난 어쩔 수 없이 넘겨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융통성 있는 드래곤이야. 어떻게든 설득하면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

“원장님, 그러지 마시고 특별 보너스에 대해서 긴히 말씀드릴게…….”

그때였다.

[내가 먹었슴돠.]

단비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더니 당당히 말했다. 순간 이해하지 못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네가 먹었다고?”

단비는 당당했다.

[맛있어 보여서 먹었슴돠. 뭐, 미안함돠. 으헤헵.]

그래, 정리해 보자.

고기만 처먹는 위수가 내가 가지고 온 보석을 날름 삼켰다 이거지? 난 심호흡을 하며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왜?”

가장 궁금한 건.

왜? 대체 왜? 네가 왜 그걸 처먹어?

[음하핫!]

단비는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기분 좋게 웃어 댔다.

[난 더 강해졌다아! 뿌리가 더 커졌다아! 우오옷, 맛있는 돌, 맛있는 ‘조각’ 우호홋! 우호홋!]

머리가 지끈거린다. 의미 모를 말만 하는 녀석에게선 답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난 같이 있었던 원장님에게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원장님은 여전히 경악스러운 표정을 한 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그제야 보석이 사라진 충격에 눈치채지 못했던 난 원장님의 저 모습이 엄청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뭐지? 막장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여주인공인 양 왜 저러시는 거지?

난 잠자코 이 복잡한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단비는 여전히 깔깔 웃으며 마치 술에 취한 듯 헛소리를 해 댔고, 원장님은 갑자기 ‘노트’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세상에.”

마침내 원장님이 말을 했다.

“뭔데요?”

“세계수.”

“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분명 엘프들의 세계에서 자란다던 신령한 나무였었지? 한동안 얼이 빠진 채 말이 없던 원장님은 많은 말들을 한 번에 내뱉기 시작했다.

“다정 씨가 가져온 보석은 요툰하임의 조각, 그걸 저 위수가 먹었어. 세상에, 세계수였던 거야. 그것도 아홉 세계의 세계수. 특별하다고는 생각했고, 어쩌면 혹시 아닐까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원 세계의 가장 첫 번째 세계수가 나타날 수 있었던 거지? 여덟 번째 세계수, 위장된 세계수 따위가 아니야. 세계를 먹어 확장시키는 힘은 최초의 세계수만의 권한이거늘, 왜지? 세계수는 이미 다 무너졌어. 씨앗은 그가 가져가 다신 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어쩌면… 어쩌면 난 새로운 세계수를 목도하고 있는 건가? 왜?”

무서울 만큼 혼잣말을 하는 원장님이 갑자기 내게 달려오더니 어깨를 꽉 잡고 이상한 말들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빨간 눈동자라 가까이서 보면 무서운데 충혈까지 되어 더 기괴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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