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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00화 (200/258)

# 200화 역괴 (1)

영묘?毛.

건강하고 깨끗한 모발을 가진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살점을 탐한다는 괴이를 가진 요괴妖怪. 그러나 괴이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인간의 겁에 의해 탄생했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가 될 수도 있으나 반대로 머리카락이 없는 자들을 발모시키기도 한다.

즉, 두려운 괴이가 현실화된 놈들은 흉괴이다. 난 요괴들이 여우 자매들처럼 지구의 생활에 모두 완벽히 적응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을 요계를 넘어 지구에 넘어오게 한 건 이처럼 끔찍한 흉괴가 되는 걸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종족들보다 훨씬 지구와 가깝게 지낸 요계의 존재들이기에 충분히 적응하리라 생각했다.

젠장, 거만한 착각이었는지도.

설마 요계를 떠나 지구에서 흉괴가 될 줄이야.

영묘는 기척을 숨긴 날 알아차리지 못했다. 난 놈이 하수구를 넘어, 현관을 넘고 그자의 방문까지 도달할 때까지 잠자코 지켜봤다. 놈의 머리카락이 스멀스멀 수백 마리의 뱀처럼 기어간다. 젠장.

“야.”

사람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놈에게 말했다. 영묘는 머리카락을 쭈뼛 세우며 경계했다.

“내가 누군지 아니?”

영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 덤비려 든다.

사람의 살점도 조각 낼 와이어 같은 머리카락. 그러나 난 손쉽게 놈을 낚아채고 이 집에서 벗어났다. 내 손에 묶인 놈은 발버둥 치며 머리카락으로 날 해치려 했으나 내 살가죽을 뚫진 못했다.

인적이 없는 야산까지 달려간 난 머리카락을 헤집어 한 개의 눈을 찾았다. 영묘는 머리카락으로 이루어진 요괴. 본체는 눈알로, 머리카락에 숨겨져 있다.

“내가 누군지 아냐고.”

눈을 마주 보며 야옹이의 힘을 끌어올렸다. 놈은 그제야 알아차린 듯했다. 머리카락들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내 시선을 피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렀다.

[괴… 괴왕이시여.]

“하아.”

짜증 난다.

자유를 줬다. 성가시고 귀찮았지만 내가 왕이 되어 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뭐지? 엿 같은 일들만 만들어 낸 꼴이잖아.

난 서서히 샐러맨더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왼손에 불꽃이 피어오르자 놈은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발악했다. 내가 요괴를 믿은 건, 그들 사이에서도 흉괴라 하여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들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다니.

머리카락이 타들어 간다.

비릿한 냄새에 역겨워졌으나 난 참고 놈을 천천히 죽였다. 이건 경고다. 요괴들의 이야기들은 국괴에 의해 널리 퍼져 나갈 테니, 요괴들은 지천괴왕의 분노를 똑똑히 느낄 것이다.

[괴… 괴왕이시여, 부디, 부디 용서를…….]

놈은 괴로워하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더한 분노가 일었다.

샐러맨더의 불을 더 끌어올렸을 때였다.

[전 그자의 꾐에… 크악, 넘어갔을… 뿐입니다. 괴왕, 괴왕이시여!]

불꽃이 꺼졌다.

난 무표정하게 놈을 쳐다봤다.

“네가 아는 걸 모두 말해.”

영묘는 말했다.

자신은 그저 꾐에 넘어갔을 뿐이라고. 지천괴왕의 권세는 지구에 미치지 않으니 흉괴가 되어도 벌할 자가 없으며, 인간들의 오만함에 억눌린 분노를 풀어도 지당한 대처라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한다.

“흉괴를 만드는 놈이라.”

크아악!

난 다시 불꽃을 피워 놈을 태워 없앤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인을 제공한 놈이 있단 그 말이지. 우선 놈들부터 만나 봐야겠다. 과연 이에 동조하는지, 방관하는지, 반대하는지는 직접 알아보면 되겠지.

*

일본은 예로부터 신들의 나라라 불렸다. 요괴의 개념이 뿌리박힌 동아시아에서도 특히 요괴를 신으로까지 떠받드는 문화는 일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우 자매에게 전해 듣기론 대요괴들은 대부분 일본에 둥지를 틀었다고 했다. 한국엔 ‘무시무시한’ 존재가 살며, 중국엔 ‘성가시고 귀찮은 것’들이 있어 일본이 제격이었다나.

난 아이치현의 기소木?산맥 깊숙한 산세까지 찾아갔다. 이곳에 그가 있다. 대요괴 중 하나로 요계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요괴였으나 권력욕이 없어 지천괴왕이 되려고 하지 않아서 나와 마주친 적은 없다. 그의 괴이는 산신, 혹은 천구天狗라 불렀다.

기소산맥 깊숙한 곳, 험하게 자라난 산세를 헤치며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안개가 몰려들고 빼곡히 자란 나무들이 사라졌으며, 졸졸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괴이의 시작에 어깨를 으쓱하며 물줄기를 찾아 안개 속을 걸었다.

한참을 걸었을 때였다.

인적이 닿지 않은 깊은 산악에 어울리지 않은 거대한 저택이 나타났다. 일본풍 저택으로 대문엔 불교를 상징하는 만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리 오너라!”

난 대문을 거칠게 두들기며 소리쳤다. 하지만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난 헛기침을 한 후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이리 오너라! 문지기여, 이곳의 주인께 괴왕이 왔다고 전하거라!”

이번엔 반응이 있었다. 큼지막한 대문이 열리며 덩치 큰 새 두 마리가 쫑쫑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새들은 어느새 팔다리가 돋아나 마치 조인족처럼 변했다. 하지만 이종족이 아닌 천구를 섬기는 요괴들이다.

[넌 어디서 굴러먹던 요괴더냐!]

녀석들은 삼지창을 내밀며 위협했다. 난 짐짓 점잖은 태도로 대답했다.

“괴왕이라 하지 않았느냐.”

[흥, 어딜 속이려 드느냐. 괴왕께선 그런 생김새와 기운을 풍기지 않는다.]

하지만 놈들의 삼지창은 점점 밀고 들어와 내 어깨까지 툭툭 건들었다. 난 태연히 녀석들을 마주했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요괴는 타고난 괴이로 정해진다. 난 그때보다 더 강해졌으니, 당연히 내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대치만 할 순 없으므로 날 직접 내 힘을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에헴!”

요괴들의 괴이를 보면 꾸짖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흩어지게 하거나 사라지게 하거나, 또한 죽이기까지 한다. 아득한 격을 가진 자가 자기보다 아래의 존재들을 꾸짖으니, 흔히 이걸 갈喝이라고 부른다.

난 크게 숨을 쉬고, 강력한 기운을 담아 소리쳤다.

썩 이리 나오지 못하겠느냐!

못하겠느냐!

못하겠느냐!

천둥처럼 울린 내 목소리는 저택을 진동시켰다. 두 문지기들은 기절했고, 대문엔 금이 갔으며, 저택 안의 수많은 요괴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건 내가 가진 힘이 아닌 지천괴왕으로서의 격, 수많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요괴들에게 통용되는 괴왕으로서의 힘이다.

잠시 후, 한 요괴가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내게 날아왔다. 그자가 천구였다. 코가 길고 크며, 불그스름한 얼굴에 도사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그는 산신이라고까지 불리는 대요괴다. 그는 날 알아보고 내 발치까지 날아와 고개를 숙였다. 난 천구에게 말했다.

“다른 대요괴들을 이곳 저택으로 소집하라.”

[명 받들겠나이다.]

권위주의는 질색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요괴로서의 격은 평범한 상식과는 궤를 달리해 내가 존댓말이라도 쓴다면 괴왕으로서의 격을 낮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새삼 요괴들이 평범한 생물과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닫네. 천구는 곧바로 산새들을 시켜 일본과,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 전역에 자리를 잡은 대요괴, 또한 천둥새와 같은 서역의 대요괴들까지 불러 모았다. 그동안 난 천구의 대저택에서 대접받으며 대요괴들이 모두 모이길 기다렸다.

며칠이 지났을까, 마침내 대부분의 대요괴들이 천구의 저택에 모였다.

*

북산에서 설녀들의 여왕과 검은 곳의 수령괴들. 백귀야행의 두목과 산신, 연못의 왕과 검은 비녀. 그 외에 많은 대요괴들이 천구의 저택에 도착했다. 난 그들을 불러 모든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그들은 흉괴를 만들어 내는 요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놈의 괴이는 역괴라고 하였다.

요괴들의 이념에 반대되는 요괴라 하여 역괴.

난 천구를 비롯한 대요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괴에 대해 이해했다. 역괴는 지천괴왕처럼 단 하나의 괴이만 있으며, 지천괴왕이 요괴들의 전체 의지를 대변한다면 역괴는 이념에 반대되는 요괴라 요괴들이 따르고자 하는 현실과 반대의 현상을 유도한다고 했다.

즉, 그렇다면 영묘는 놈의 속삭임에 넘어가 흉괴가 되었으니 다른 요괴들의 이념은 지구에서 인간들과 조화롭게 살려고 한다는 건가?

대요괴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말했다.

[저와 저의 아이들, 그리고 우리들은 모두 적응과 조화에 대하여 이해하며, 그 뜻을 따르고자 합니다. 현실과 어울리지 못해 괴이의 이야기로만 남았던 우리들이 실존하게 되자 요계에서 있었던 관념은 서서히 달라졌지요. 하지만 역괴, 그자는 그런 우리들을 혐오하고 거부하며, 괴이하고 두려운 존재로 남길 원했습니다.]

영묘 외에도 역괴의 꾐에 넘어간 요괴들은 많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 정도 피해로 그칠 수 있었던 건 요괴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은 변절되어 흉괴가 된 자신의 동족을 날 대신하여 처벌한 것이다. 난 그들에게 자유를 줬으나 정작 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죄책감이 들었다.

이 일은 내가 할 일이다.

“그자는 어디 있느냐?”

[그자는 갑비국의 가장 높은 산에서 흉흉한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천구가 역괴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갑비국의 가장 높은 산, 즉 후지산을 뜻하는 거겠지. 난 당연 그자를 처벌하는 건 지천괴왕의 의무라 말하며 내일 역괴를 벌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요괴들은 자신도 따르겠다고 했다.

[오래된 옛날로부터 시작하여도 요괴들이 이처럼 같은 이념을 가진 건 처음입니다. 그러니 역괴의 힘도 단결된 이념만큼 역천逆天의 힘을 얻었을 겁니다.]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안다.

그럼에도 걱정한다는 건 역괴가 그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겠지.

“내가 누구더냐.”

하지만 방해다.

대요괴들의 힘은 크지만 오히려 날 제약할 수도 있다. 내가 그들의 생사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난 절대 부러지지 않을 강철처럼 굳세게, 응당 위에 서는 자라면 가져야 할 기개로 말했다.

“내가 지천괴왕이다.”

문득 원장님이 생각났다.

물론 그녀는 이처럼 오글거리는 장면은 만들지 않았으나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당당하게 서 있었지. 지천괴왕으로서의 내 모습은 어쩌면 원장님에 대한 동경의 투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난 안내역 요괴만을 데리고 후지산의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이계의 전이로 인해 지구의 거대한 자연 중 일부는 강렬한 진화를 이룩했다. 브라질의 아마존이 그랬고, 일본의 후지산 일대가 그랬다.

깊은 수해를 자랑하던 후지산의 숲은 이젠 정말 미로처럼 엉켜 평범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는 죽음의 숲이 되었다. 역괴는 그곳에 있었다.

그곳과 가까워지자 내게도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건 어떤 기운의 확장이었다.

불길하고 꺼림칙한 기운, 요괴들에겐 역괴의 속삭임이나 인간들에겐 재앙의 징조이다. 폭발적으로 급증한 일본의 자살 사건들의 원흉이 놈이다.

놈은 날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후지산에 올랐을 때, 놈이 스스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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