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그들의 왕 (2)
“원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강력한 결계로 보호되어 특별 개조된 비행형 골렘(비행기와 비슷하다.)을 타고 오존층을 통해 특정한 경로로만 갈 수 있는 오타쿠 용의 ‘집’.
“용님들은 ‘자기 집’이라고 말할 때 보통 수십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나 제주도만 한 거대한 섬을 말하는 건가요?”
구름을 뚫고 결계를 넘어 드래곤의 영역에 도착하자 에메랄드 바다를 따라 줄지어 모여 있는 작은 섬들이 나타났다. 캣 맘 때와 비슷했다. 오타쿠 용의 영역 또한 ‘집’이라기엔 너무나 광활하고 굉장했다. 아무리 지구가 거대해지고 있다지만 정말 한 존재가 가지기엔 과도한 영역이다.
“보통은요.”
원장님은 내 질문에 웃으며 집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그렇지만 자기들은 넓은 영역을 가지려고 하는 성질이 있어 보통 한 행성을 자기의 영역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즉, 이 군도마저도 ‘집’의 개념으로 오히려 오타쿠 용의 영역은 다른 용들에 비하여 검소한 편인 것이다.
후우.
난 어이없는 미소를 짓다가 마른 입술을 깨물며 비행 골렘 아래를 내려다봤다. 원장님이 그래도 다른 용의 영역에 말없이 침범하는 건 큰 실례라며 오타쿠 용과 연락하였고 이렇듯 그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미쳤군.”
하늘에서 바라본 군도의 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이게 베일에 감춰진 오타쿠 용의 ‘정원’이구나. 오타쿠 용이 사고를 저지를 때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오타쿠 용의 정원은 거대한 피규어들로 장식되어 있을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난 이 엄청난 섬들을 ‘수집가 군도’라고 부르기로 했다. 바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섬들엔 나무나 바위 같은 자연적인 요소는 전혀 없었고, 거대한 인형이나 로봇 따위가 세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섬들을 장식장으로 사용해버린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세워진 인형이나 로봇뿐만 아니라 섬들은 저마다 장식된 피규어에 따라 독특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떤 섬에는 오타쿠 용이 유명하게 된 사건인 ‘메이드로 개조된 자유의 여신상’이 마치 유럽 저택처럼 꾸며진(섬 전체가) 곳에서 차를 따르고 청소를 하는 동작을 반복하는 등 오토마타(자동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었고, 그다음 섬은 섬 전체가 레고 장난감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다음 섬은 무려 호그와트 성 전체가 고스란히 옮겨져 인형들이 두 마법사들의 마법 대결마저 흉내 내고 있었다.
“놀라워.”
테마마크와도 같은 섬들을 내려다보며 난 묘하게 들뜬 기분이 들었다. 거대 인형들은 어마어마한 크기뿐만 아니라 세밀하고 정교한 움직임과 아름답기까지 한 디테일이 환상적이었다.
나도 나름 레고를 비롯한 피규어들을 모으는 수집가로서 이 장식장 섬들을 만든 자에게 드높은 경외심마저 느꼈다. 물론 그는 드래곤이긴 하지만 아무리 막강한 힘을 다루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이 광기마저 느껴지는 컬렉션은 분명 그의 무시무시한 집요함으로 완성된 거겠지.
그가 살고 있는 섬은 가장 마지막 섬이자 가장 큰 섬이었는데, 그곳은 괴짜 수집가의 지나친 욕망이 실현된 무시무시한 섬이었다. 난 그가 아마도 역사 오타쿠, 줄여서 역덕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파리 개선문을 제집의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만리장성을 집의 울타리로, 정원의 장식으로 드문드문 저명한 대성당들도 보였다. 세계문화재 박람회와 같은 그의 집은 분명 우리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적 가치가 깃든 유물을 훔쳐 간 무시무시한 수탈자겠지. 특히 그가 살고 있는 ‘집’은 드래곤에게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비애가 담겨 있는 듯했다.
세상에, 타지마할의 지붕과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이름은 모르지만 분명 엄청난 가치를 지녔을 석불상, 그 외에 몇 개의 세계문화유산을 가져와 섞어 놨는지 모를 기괴하게 생긴 건물이라니!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비참한 심정으로 오타쿠 용의 컬렉션을 집중해서 보고 있을 때 원장님이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올렸다. 다소 화가 나긴 하지만 이제 난 달라졌다.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으니, 캣 맘 때처럼 화를 다스리지 못해 분위기가 싸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저건 석굴암인가? 젠장.”
후우.
아마도 말이다.
*
그를 본 순간 난 예상했던 모습과 딱 맞아떨어지는 첫인상에 헛웃음이 나왔다. 우릴 마중 나온 오타쿠 용은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한 채 개선문에 기대어 장미 한 송이를 입에 물고 똥폼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 원장님이 ‘나부Nabu’라 부르며 인사하자 그는 ‘파르바티’, 원장님의 이름을 부르며 장미를 건넸다.
아주 자연스럽게 원장님은 받은 장미를 바닥에 버렸지만 ‘나부’란 이름을 가진 오타쿠용은 대수롭지 않은 듯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난 그를 만나기 전 나르시시즘에 빠진 수집가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실제 마주한 그의 모습이 내 상상과 비슷했다.
긴 머리에 보라색이나 파란색 등 이상한 머리 색을 하고 있고, 잘생겼지만 어딘가 음침하며, 몸은 삐쩍 말라서 팔다리는 가늘고 키는 큰 남자.
머리 색이 내 예상을 뛰어넘어 무지개색으로 반짝거린다는 것만 빼면 얼추 상상했던 모습과 같다. 내가 그가 이런 모습일 거라 생각한 건 그의 취향과 성격 때문이었다.
원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폴리모프 마법으로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길 원하는지는 조금은 뻔했다. 그는 오타쿠 문화(특히 30~40년 전 아시아권 소문화)에 빠진 용이었으니까. 원장님은 캣 맘과 이야기를 할 때엔 예의를 갖췄지만 오타쿠 용에겐 상당히 냉정했다.
아마 우리 원장님이 서열이 더 높은 듯 보였다. 오타쿠 용이 계속해서 반가움을 표시하며 인사를 시도했으나 원장님은 그야말로 파리 보듯 대하며 무시했다.
“이게 당신의 가디언인가요?”
결국 그는 원장님과 대화를 포기하고 내게 다가왔다. 난 드래곤의 앞이라 살짝 긴장한 채 그에게 예의를 갖추어 위대하신 존재니, 뭐니 화려한 수사를 덧붙여 가며 인사했다.
“아키라.”
“예?”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난 그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카네다… 쇼타로.”
내 대답에 그의 눈썹이 점점 구겨지기 시작한다. 그는 또다시 애니메이션 이름을 말했다.
“에반게리온.”
“이카리 신지.”
이번엔 대답을 빨리했다.
그는 이후 많은 애니메이션의 이름을 불렀고, 난 주인공들을 모두 대답했다. 갈수록 질문의 분야는 점점 커져 거미 인간, 박쥐 인간 등 서양의 코믹스와 범인은 알지 못하는 하드코어한 분야까지 거론되었으나 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이 쓸데없이 진중한 질답 과정에서 원장님이 혀를 차는 소리가 몇 번 들려왔으나 오타쿠 용도,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극도로 연결된 공감대는 그가 지독한 짓을 저지르는 용인 걸 상관치 않게 만들었다.
“넌 좋은 인간이구나.”
마침내 모든 질답이 끝나자, 그는 씩 웃으며 날 자기의 성으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우매한 자들(평범한 시각에선 정상에 가까운)은 결코 발을 들이지 못하는 신성한 곳이나 나라면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단기간에 어이없이 드래곤의 인정을 받은 건 처음이었지만 어쩐지 기뻐졌다. 세상 가장 매니악한 존재한테 인정을 받으니 마치 학계 권위자에게 상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강렬한 첫 만남 이후 원장님과 난 그의 세계문화유산이 결합된 기괴망측한 성에 초대받았다. 온통 고양이 용품이 가득했던 캣 맘의 집처럼 오타쿠 용의 성 안에도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었다.
“메이드 골렘…….”
그의 성 안에 존재하는 인형들은 보다 본격적이었다. 크기는 섬의 피규어들에 비하여 작지만 살아 있는 생물로 착각할 만큼 완성도가 뛰어났다. 난 인형에 내재된 강력한 마나를 느끼며 이 인형들 모두가 다 골렘이라는 걸 깨달았다.
골렘.
원장님도 자주 사용하는 마법 기계들이다. 원장님이 만든 골렘들은 수륙양용으로 이동하며 막대한 힘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탑승 골렘이지만, 이자의 수준은 격이 달랐다.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면 골렘이란 걸 몰랐을 것이다. 드래곤이 취미에 빠지면 이토록 창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마음껏 구경해. 친구.”
어느새 오타쿠 용은 날 친구라 불렀다. 드래곤치곤 상당히 격의가 없는 파격적인 언행이다. 원장님과 오타쿠 용, 아니 ‘나부’는 대화를 나눈다며 2층으로 올라갔고, 난 혼자서 성을 돌아다니며 그의 컬렉션들을 구경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정교한 인형들이었다. 메이드복을 입은 인형들은 내게 차를 따라 주고 쿠키도 구워줬으며,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청소를 하며 ‘오늘 날씨 좋죠?’라며 스스로 내게 안부를 묻기조차 했다.
“아, 네. 날씨가… 좋네요.”
처음엔 신기하기만 했으나 사람과 착각할 만큼 너무나 사실적이라 난 점점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불쾌한 골짜기를 보듯, 인간이 아닌 인형이 인간을 완벽히 흉내 내는 모습이 소름이 끼쳐 왔다. 난 인형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모두 이름과 나이가 있었으며 취미와 특기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난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저처럼 사람과 똑같은 인형들은 자신들이 인형임을 알고 있겠지?
아무 생각 없이 물어봤으나, 그들의 대답은 날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혼자 있고 싶어요.”
인형들은 내 말에 모두 물러갔다.
난 혼자 소파에 앉아 그들의 대답을 곱씹었다. 이 미치광이 오타쿠 용은 대체 뭘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우린 곧 사람이 된다니.”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 같은 인형. 난 설마 이곳에서 이런 공상과학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마음을 가진 사이보그가 자신이 인간인가, 기계인가 고민하는 주제는 고전적인 SF 소설 주제다.
만약 이 주제에 대한 답을 ‘인간이라고 결정 내리면, 지금 이 순간 내가 겪고 있는 혼동이 아주 우스워진다. 그렇다면 드래곤은 생명마저 창조할 수 있다는 거잖아.
*
잠시 후 오타쿠 용과 대화를 끝낸 원장님이 내려와 말했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라고. 난 어차피 노발대발하며 거부해 봤자 결국엔 부탁을 들어줘야 할 테고, 무엇보다 내 개인적인 호기심이 앞서 알았다고 했다.
원장님은 마물원에 돌아갔고, 난 혼자 그가 있는 2층으로 향했다. 저택의 2층은 무척이나 넓었지만 1층과는 다르게 인형들은 없었다.
썰렁한 복도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 이야기를 들었어. 이상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야.”
난 그를 따라 그의 방에 들어갔다.
그의 침실에도 많은 인형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침대 한 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침대 위엔 그것이 있었다.
“말도 안 돼.”
흑발의 동양인.
하지만 사람은 아니야.
아니, 생물조차도 아니다.
그런데 왜.
“내게 말을 거는 거니?”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