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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04화 (204/258)

# 204화 그들의 왕 (4)

이곳에서 지내는 건 나쁘지 않았다. 벌써 한 달이 지나도록 서브컬쳐의 바다에서 헤엄쳤으나 아직 수집가 군도에는 많은 대중매체 영상들이 남아 있었다.

파워레인저 1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방영 중인 시즌까지만 봐도 두 달은 걸릴 정도다. 하지만 그의 취향은 편향되어 있었다. 흥미 위주의 미디어와 흔히 소년 만화라 불리는 것들. 예를 들어 파워레인저는 모두 소장되어 있으나 변신 소녀 만화는 드물다.

로맨스 소설이나 순정만화 등은 유명한 걸 제외하면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부가 마니아가 아니라면 모르는 깡통 76호 전권을 소유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한 그의 취향을 알 수 있었다.

“이래선 똑같을 거야.”

특히 그의 서고를 둘러보며 느낀 건데,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만화 어느 매체를 봐도 ‘가족’을 주제로 한 영상들은 없었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은 후로 계속해서 뒤져 봤으나 역시나 가족 영화들은 없었다.

가족 영화 중에도 그가 소장할 만큼 뛰어난 작품들도 많으나 그의 흥미에선 가장 동떨어진 분야인 것 같았다. 미나에게 많은 영상을 보여 주고 체험시켜 줬으나 초콜릿을 제외하고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렇담 더 많은 문화를 경험시켜도 같을 것이다.

수집가 군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나부에게 그의 취향의 정반대의 영상들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뒤에 그는 1920년대부터 시작하여 로맨스 영화의 명작들을 구해 왔다.

“가족 영화들도 구해 주시겠습니까? 음, 신파극들도 괜찮고요.”

그는 못마땅해하면서도 몇 분 만에 구해 오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영화들을 건넸다.

“이런 걸 보다니, 비위도 좋군.”

나부는 감상이 끝나면 한데 모아 불태워 없애든지 바다에 던져 버리라고 말하며 나갔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오래된 테이프를 재생시켜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띄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가 시작되고, 미나가 무표정하게 스크린을 쳐다본다. 인형은 알까, 이 영화들에 담긴 의미를? 평범한 사람들에겐 오글거릴 만큼 감정을 과다주입해 주는 영화들이 그것에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

삼 일째 되던 날, 결국 난 포기하고 미나의 뒤에서 오락기나 두들겼다. 한두 편이면 재밌지, 하루 종일 신파극을 보는 건 괴롭다.

미나는 첫 영화가 시작된 이후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수십 편의 영화를 쳐다봤다. 역시 그것의 목소리는 공백이 길어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언뜻 영화의 절정에선 감정이 일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보모도 아니고 말이야.”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이젠 정말 인형을 데리고 수집가 군도 바깥에서 인간들과 지내게 하는 방법밖엔 없었는데, 그럼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성가셔진다. 용들은 지독하게 끈질기고 시간이 남아도는 놈들이라 어쩌면 몇 년을 데리고 다녀야 할지도 몰라.

난 다음 영화를 재생시킨 후 의자에 앉아 게임을 이어 갔다. 요즘엔 가상현실 게임까지도 나왔다던데, 레트로 게임 특유의 감성은 못 따라 하겠지.

게임을 하던 난 영화에서 끔찍한 비명과 오열 소리가 들려와 힐끔 쳐다봤다. 스크린에 재생되는 장면은 죽은 듯 축 처진 아이를 안아든 채 오열하고 있는 여자. 영화임에도 스크린 너머로 전해지는 비통함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

그때였다.

아아-!

지금까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형이 격렬한 목소리를 냈다. 미나는 영화 속 애통해하는 주인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몸을 떨었다. 이윽고 표정이 없던 미나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눈물?”

그것은 울었다.

인형이 울었다.

난 황급히 영화를 확인했다. [절벽 아래의 인물들]이라는 고전 영화였다.

병에 걸린 자식을 간호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인데, 결국 딸의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적인 영화였다. 난 눈을 감고 집중하여 미나의 마음을 들었다.

일렁이는 감정, 사랑? 슬픔?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기도 해. 난 이 감정을 느낀 적 있어. 깊은, 어떤 것보다 깊고 애틋한. 샐러맨더, 아라크네, 녀석들에게서 느꼈던 감정.

영화를 껐지만 미나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난 입술을 깨물며 그것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기생 마물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가질 수 없는 감정.

지금까지 내가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이것은 사람을 대신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 나부는 사람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죽은 자를 되살리려고 했는지도. 난 송신기를 켜 원장님에게 연락했다.

“원장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난 원장님에게 호문쿨루스 기생 마물에 대하여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원장님은 이내 몇 장으로 정리된 자료를 내게 보내 줬다. 난 인상을 찌푸리며 자료를 읽었다.

“도플갱어도 호문쿨루스의 아종이었군.”

‘호문쿨루스’의 개념을 가진 마물은 꽤 많아 놈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물에게 기생하여 ‘모방자’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도플갱어처럼 숙주를 죽이고 사라지거나 모방했다고 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기생한 자의 모든 형질을 답습하여 죽을 때까지 유지하는 마물도 있었다. 우주에서 가장 희귀한 마물 중에 하나라 원장님조차 마주친 적은 없다고 기록된 놈.

“네크로멘시(necromancy) 호문쿨루스.”

이 마물은 기생하는 자의 기억과 형질을 모방하고, 한번 모방한 이후엔 죽을 때까지 유지한다. 그러나 이 마물이 기생할 수 있는 대상은 정해져 있다.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다.

“죽은 자를 모방한다고 해도 완벽히 따라 하진 못하는군.”

미나가 감정이 없는 이유도, 내가 그것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도 깨달았다. 네크로멘시 호문쿨루스는 죽은 자의 기억을 온전히 잇지 못한다. 다른 것엔 무감정했으나 초콜릿을 좋아하고 ‘모녀’의 비극에 슬퍼했던 미나처럼 말이다.

“나부는 미나를 완전하게 만들고 싶어 해. 대체 드래곤인 그에게 이 사람은 어떤 의미였기에.”

난 미나를 바라봤다. 검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의 여인, 드래곤은 정말 그녀를 사랑했던 것일까? 정말 드래곤이… 사랑을 아는 것일까?

*

“그래, 진전이 있었구나!”

나부에게 미나의 감정 변화에 대해서 보고하자 크게 기뻐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길 도와달라고 저택의 지하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믿을 수 없이 막대한 마나로 가득한 곳이었다. 난 축구 경기장만큼 넓은 지하의 구석구석까지 마법 술식으로 가득 그려진 모습을 보며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나부는 미나를 데리고 왔다.

지하의 한가운데엔 모든 술식이 이어져 있는 거대한 원이 그려져 있었다. 나부는 그곳에 미나를 눕히고, 자기도 옆에 누웠다.

“난 시간이 없어, 친구.”

그 뒤에 이어진 행동들은 너무 경악스러워 난 말을 하지도 못했다. 나부는 대수롭지 않게, 너무 간결하고 간단한 행동으로 왼손을 제 가슴에 박아 넣었다.

이내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그의 손에 들려져 나왔다. 난 보석처럼 보이는 그것이 그의 심장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심장엔 어떤 힘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부족해서 감히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의 앞에선 신의 힘조차 느꼈던 내 감각들이 마비되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젠장, 이 주변에 있는 어떤 것도 날 해치지 않았으나 난 죽을 위기에 처한 듯 힘겹게 다짐하고 나서야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대체 왜?”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이유가 나부에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 질문에 답할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그럴 마음이 없었다면 이 모습을 보여 주지도 않았을 테니까.

“너무 공허해, 어떤 것도 날 채워 주지 못해.”

나부는 제 심장을 쥐고 큰 미소를 지었다. 덧없이 공허한 눈빛만 아니라면 난 그가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심장으로 인해 나의 미나는 강해질 거야.”

나부는 천천히 제 심장의 조각을 떼어 냈다. 거대한 보석 같은 심장에서 그저 한 꺼풀 벗겨 낸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난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저 작은 조각에선 느껴진다. 드래곤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면 심장의 아주 일부분만의 기운만으로 내가 느꼈던 그 어떤 강대한 존재보다 더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지, 난 감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제 심장의 조각을 미나의 동력원, 빛나는 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새하얀 빛으로 지하가 가득 찼다. 빛이 저물고 나서야 난 눈을 뜰 수 있었다.

“목소리가…….”

다르다.

이젠 뚜렷하다.

미나의 감정.

그건…….

날 지켜보던 나부가 목소리가 들 리냐고 물었다. 난 이전보다 뚜렷하게 들린다고 대답했으나, 미나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말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역시.”

나부는 일어나다가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드래곤이 힘에 겨워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아무리 강대한 존재라도 심장의 일부가 뜯겨 나간 건 큰 상처였다.

“확신이 필요했어. 고마워. 다행이다.”

나부는 내게 ‘확신’이 필요했다고 했다. 고맙다며, 다행이란다.

어차피 그는 미나의 감정이 천천히 돌아오길 기다린 게 아니었다. 미나의 마음이 들리는 내가 이 일로 미나의 감정이 뚜렷해졌다고 했으니, 그가 할 일은 정해져 있겠지. 하지만 그건 방금까지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음에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대체 왜?”

난 다시 한번 나부에게 이유를 물었고, 그는 장난스럽게 표정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난 인간이 싫어.”

나부가 말했다.

“하지만 말해 줄게. 넌 내 친구니까.”

그는 지구의 이야기 중엔 재밌는 것들이 많다고 했다. 이 수집가 군도를 만들 정도로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했다.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아니?”

난 안다고 대답했다.

피그말리온, 키프로스의 여인을 혐오하여 스스로 이상적인 여인 그 자체인 조각상을 만들었고, 그는 자신이 만든 그 조각상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난 내 하나뿐인 여인을 내 손으로 부숴 버린 거야.”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분명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내게 들려줬다.

*

나부는 지구의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넘어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엔 빠짐없는 주제가 있었다.

사랑이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한 한 여인을 상대로 기만적인 사랑을 했다. 그저 처음엔 연구욕에 가까운 호기심이었다. 드래곤의 기운이 평범한 인간인 그녈 서서히 죽이고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나부는 그저 곁에서 사랑을 속삭일 뿐이었다. 이건 그저 유희였을 뿐이니까.

그렇게 그 여인은 죽었다.

나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다른 이야기를 찾아가면 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공허함을 채워 줄 자는 오직 그녀뿐이었다는 걸.

“난 내 곁에 둘 완전한 사랑을 원해.”

난 감히 드래곤을, 나부를 가엾게 여겼다. 자신의 처지를 한낱 인간에게 말해 주는 나부의 심정은 아마 외로움이 아닐까.

“인간은 너무 약해. 너무 쉽게 부서지지. 안 돼. 난 지금 당장 나의 그녀의 사랑을 원해.”

사랑은 나와 가장 거리가 먼 분야 중에 하나였다. 반면 그가 느끼는 ‘후회’란 감정은 날 이루는 가장 큰 감정이었다. 드래곤에게 공감을 하다니, 젠장.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

나부는 그날 이후로 미나와 지냈으나 그것은 여전히 인형과 인간의 경계에 서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나부는 결정했다.

“심장의 반을 떼어 내면 나라고 해도 정신을 잃겠지. 힘을 영영 잃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아. 이 힘은 반드시 그녀를 소생시킬 테니까.”

나부가 말했다.

“도와줘. 모든 게 끝나면 이곳은 너에게 줄 테니까.”

저택의 지하, 강렬히 빛나는 마법진의 위에서 나부와 미나가 나란히 누웠다. 나부는 전처럼 제 심장을 꺼냈다. 하지만 이번엔 그의 심장은 한 조각이 아닌 반으로 갈라야 한다. 나부가 심장을 쥐자 주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난 눈을 감고 주변의 기운을 느꼈다.

[무서워! 아악!]

잠들어 있던 단비가 깨어나 소리친다. 이 얼마나 거대한 기운인가, 수집가 군도 전체가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결계 너머 바다, 태평양, 지구 전체가 떨고 있는지도 모르지.

마침내 심장이 반으로 갈라졌다.

나부는 반의 심장을 제 가슴에 넣고, 반을 내게 건넸다. 그의 말대로 그는 정신을 잃었지만 기운은 날카롭게 날뛰고 있었다.

“날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만 정하라고.”

내가 이 심장을 가지고 허튼짓이라도 하면 당장 죽일 기세다. 난 쪼개진 심장을 들고 미나를 바라봤다.

“젠장.”

또 느껴지는 감정.

전과 같다.

넌 또 울고 있구나.

그냥 드래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되는 일이다. 누군가 죽는 것도 아니고, 나부의 예상처럼 미나가 완전히 소생된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난 이 엄청난 테마파크를 소유하게 될 테고 말이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져 나부가 죽더라도 내 알 바는 아니다. 그가 원하던 거였고, 그가 각오한 일이다.

“지랄, 지랄, 개지랄.”

하지만 그러려고 하니 기분이 참 엿 같았다. 난 심장을 내려놓고 머리를 헝클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너의 마음, 깊숙한 곳에.”

검은 열쇠로 열어 미나의 동력원을 꺼냈다. 빛나는 구를 쥐고 마물의 힘을 끌어올리자 서서히 드래곤의 막강한 기운 외에, 무언가 다른 기운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억들을 내게 들려줘.”

그녀가 진정 원하는 걸 듣고 싶어.

난 뾰족해진 부리를 열었다.

안개만이 존재하는 외로운 섬과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그처럼 슬픈 노래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그러자 빛나는 구슬에 서서히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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