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06화 (206/258)

# 206화 그들의 왕 (6)

원장님은 드래곤의 자식은 일반 생물과 궤를 달리해서 기묘하게 태어난다고 했다. 아마 생명을 잉태한 부모들조차 그 사실을 몰랐을 거라고 했다.

드래곤과 인간의 혼혈은 우주의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을 희귀한 사건이며, 지식으로 전해 내려오는 종류가 아니라서 그렇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참 기구한 운명이잖아.

“원장님.”

난 정혜연이 드래곤과 인간의 자식이라며 놀라던 원장님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나부는 아무것도 몰랐을까? 답은 간단하다. 원장님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

“왜 지금까지 감추시고 있었던 겁니까?”

원장님이 대답했다.

“난 그 아이의 의견을 존중했어요.”

혜연의 의사를 존중했다는 원장님.

원장님이 말하길 혜연은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아빠’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에 겁을 먹어서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고 했다.

난 아무리 그래도 부모를 만나 보고 싶었을 텐데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보자 원장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듯이 대답했다.

알고 보니 그 겁을 먹게 된 원인은 원장님이었다. 원장님은 그때 대수롭지 않게 드래곤이라면 자기 자식도 실험 대상으로 사용할지 모르니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혜연에게 말했다고 했다. 역시 용은 용이다.

원장님은 내 잔에 와인을 따라 주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정 씨가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니 용기를 내더군요. ‘엄마’를 그리 아끼시는 분이라면 드래곤이라도 괜찮을 거라고.”

난 와인을 원샷으로 들이마신 후 말했다.

“정말요?”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부는 우리 중에서도 특히나 별난 자에요. 그게 이 관계를 견디게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괜찮겠죠.”

원장님의 표정은 미묘했다.

살짝 기뻐하는 듯 미소 짓고 있으나 눈은 침착하다 못해, 약간 슬픈 느낌이었다. 원장님과 오랫동안 지내며 표정만 봐도 대충 어떤 기분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나 분명 저 표정은 전에 없던 것이다. 그러니 원장님은 전에 없던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거겠지.

“그는 어쩌면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된 드래곤일지도 몰라요.”

원장님은 내게 며칠 휴가를 주겠다며 이만 퇴근해 보라고 했다. 난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문득 생각이 미쳐 물어봤다.

“잠깐만요. 만약 나부가 잘못됐다면 이 이야기는 엄청… 슬픈 이야기가 되었네요?”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도망치듯 인사와 같이 뱉어 버리고 냉큼 달아났다.

“원장님도 참 나쁘네요.”

다행히 도망치는 날 잡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의 휴가를 보내면서도 계속해서 원장님의 그 미묘한 표정이 생각났다. 난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

에이, 설마.

부러워하는 건 아니겠지.

*

수집가 군도에서의 사건이 지난 지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히는 몰랐으나 오늘 아침, 누군가가 보낸 소포를 받고 미소를 지었다.

“혜연과의 만남이 잘 풀렸나 보네.”

소포 안엔 나부의 미련이 포장되어 있었고, 그 미련을 내게 보냈다는 건 나부의 미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난 ‘몬스터볼’ 안에 담긴 새하얀 빛을 내뿜는 구슬을 꺼냈다.

드래곤의 마력은 빠져나갔지만 한때 그 강대한 존재의 마력을 품고 있었던 구슬이다. 그 자체만으로 여의주를 상회하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졌다.

상자의 뒤엔 달랑 글귀 하나가 써진 쪽지가 있었다.

[소원은 들어주지 못하나 그와 비슷한 성능이긴 함.]

수정 구슬을 계속 쥐고 있자 빛은 점점 가라앉았다. 이내 구슬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별’이 일곱 개 그려진 주황색 구슬이었다.

“와, 진짜 오타쿠.”

난 구슬을 쥔 채 내게 흘러들어오는 기운을 음미했다. 단비가 기뻐서 미쳐 날뛰고, 야옹이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내 발바닥에 누워 자리를 잡았다.

창 바깥엔 70층 아파트임에도 참새와 같은 잡새들이 가득했다. 어디서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벌레들도 천장에 가득 고였다.

아파트 전체 개의 짖는 소리로 시끄러워진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충만함을 느끼며 기운을 만끽했다.

지금 내게 무척이나 기이한 변화가 찾아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 이런.”

팔이 떨어졌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다시 돋아났으니까.

일전에 카르마 무인에게 잘려 나갔으나 황소 마물의 힘으로 재생되었던 팔이었다.

“윽.”

그 뒤, 내 몸은 많은 게 ‘벗겨지고 찢어지고 소실되었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난 지금 더없이 충만했고 육체란 그릇은 어차피 이제 또 생겨날 테니까.

마치.

탈피를 하듯.

그의 말대로 용신이 짠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진 못했으나, 정말 그에 준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끝났을 때.

애써 받은 휴가가 모두 지나가고 지금까지 민원 들어온 걸 처리하며 경찰서까지 다녀와야 했고, ‘흔적’들을 모아 불로 태워 버려야 했지만. 그 과정들마저도 즐겁게 느껴졌다.

아, 마치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

우주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곳 중 하나, 저무는 별들의 바다에 두 존재가 나타났다. 존재마저 용납 받지 못하여 모든 게 소실되어 가는 바다에서도 둘은 찬란히 제 존재를 뽐내며 은하수 위를 유유히 유영했다. 한 존재는 붉은 빛을, 다른 존재는 녹빛을 가진 별이었다.

“아직도 케케묵은 생각을 가지고 지내는 거야?”

녹빛의 별은 서서히 하나의 형상이 되어 갔다. 그건 녹림이 우거진 날개를 지닌 생물이었다. 그자는 붉은 별을 향해 물었다.

“섭리는 이미 무너졌다고. 파르바티.”

붉은 별 또한 날개가 돋아나 하나의 생물이 되었다. 그건 태양처럼 강렬히 빛나는 화염을 머금은 날개를 지녔다.

“알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우리들의 의무인 걸.”

별들의 정체는 우주의 조화와 섭리를 신봉하며 감시자와 심판자인 드래곤, 그중 별종과 이단아인 나부와 파르바티였다.

나부는 거칠게 날개를 털어 냈다.

그러자 수많은 씨앗이 퍼져 나갔다.

곧 저무는 바다에 숲이 생겨났으나 이내 허무로 사라지고 만다.

“흥, 우리의 로드조차 따르지 않는 의무를? 이제 구닥다리 방식으로 조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드래곤은 너밖에 남지 않았을걸.”

나부의 목소리는 크고 말투는 신랄했다.

“로드께선 의무를 핑계로 우릴 속박하려 들지. 난 처음부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반면 파르바티는 조용히 속삭이듯 대답했다.

“나부, 혹시 로드의 거취를 파악할 방법은 없어? 기록자인 너라면 알 텐데.”

기록자,

파르바티가 주술사라면 나부는 기록자였다. 지혜의 수호자인 그는 많은 걸 알았다. 하지만 반면 모르는 것도 뚜렷하게 존재했다.

“내가 모르는 지식이야. 다만.”

나부는 파르바티에게 거울을 건넸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투박한 청동거울이었다.

“그가 널 쫓으려 하면 거울이 알려줄 거야. 통할진 모르겠지만, 몇 번은 황금 눈을 피할 수 있겠지. 조심해, 파르바티. 그들은 널 포기하지 않았어. 곧 동면의 시기가 오면 지구를 멸망시켜서라도 널 데리고 가려고 할 거야.”

파르바티는 거울을 받아 들며 감사를 전했다. 변절자, 나부. 파르바티에게 있어 그는 신기한 존재였다. 또한 티아마트와 더불어 신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드래곤이다.

“너 또한 로드께서 가만두지 않을 거야.”

파르바티의 말에 나부는, 그 녹림이 우거진 드래곤의 모습으로도 느껴질 만큼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이제 모든 섭리에서 벗어나 아이와 함께 살고 싶어. 평범하게, 평범한… 인간들처럼.”

파르바티는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청동거울을 받아 든 파르바티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공간이동 마법을 펼쳤다. 그때, 나부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네 옆에 인간, 아니 그 어떠한 존재. 힘을 잃었다곤 하나 드래곤인 내게 ‘기억’을 심었어. 드래곤에게 영향을 끼쳤단 거야.”

나부는 여전히 그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자신과 같은 고귀한 취향을 가진 머저리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드래곤의 ‘목소리’에 저항하며 반대되는 행동을 저질렀고, 기억마저 건넸다. 그 힘은 단지 마물의 목소리를 듣는 걸 넘어 드래곤조차 이해 못 할 영역이었다.

“뭐야, 그 녀석. 확실히 이상해. 혹시 ‘그분’께서 유희를 나온 게 아닐까? 영겁의 시간 동안 홀로 지내셨으니 이제 한 번쯤은 ‘바깥’으로 나올지도 모르지.”

파르바티는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정다정’이란 인물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권위에 굴복하는 나약한 사람 같다가도 심지어 대지모신에게조차 욕을 하는 미친 인간. 방정맞지만 의외로 진중하기도 하고, 멍청하지만 뜻이 깊을 때도 있고, 둔하지만 눈치가 빠를 때도 있다.

즉, 절대 그는 ‘그분’이 아니다.

“아니야. 우리들의 신은 게을러 터졌잖아.”

“불경하긴.”

나부는 파르바티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제 세계’로 떠났다. 홀로 남은 파르바티는 지구로 향하는 포탈을 설계하면서도 정다정이란 존재에 대한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분명 이상한 존재이긴 해.’

잊힌 신, 환생한 근본, 어느 곳의 탄생자, 혹은 바깥에서 온 존재일까? 더 지켜보면 알겠지. 파르바티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구로 돌아온 뒤 파르바티는 항상 청동거울을 소지하고 다녔다. 만약 거울에 황금 눈이 드리워진다면 맞설지, 도망칠지 생각하면서.

*

어느 날.

원장님이 조사를 끝마쳤다고 말했다.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어떤 조사가 끝났냐고 물으니, ‘세계수’가 세계의 조각을 얻을 수 있도록 ‘세계의 끝’이란 곳의 조사를 마쳤다고 한다.

“예?”

그동안 정신적으로나 여러모로 복잡한 일들을 겪어서인지 난 곧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원장님은 무량성계에서 거인들에게 얻어 온 요툰하임의 조각을 언급하며 나더러 세계수 ‘단비’를 개화시키는 막대한 역할이 주어졌음을 알려 줬다.

“세계수가 다정 씨를 선택했어요. 보아하니 힘도 빌려주는 것 같군요. 좋아요. 뜻밖의 좋은 연구 소재야. 다정 씨는 마물원 직원으로서 있는 힘을 다해 세계수를 개화시키도록 하세요.”

“제가요?”

원장님은 첫 번째 세계수가 개화하면 전이로 인해 붕괴되어 가는 우주가 안정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즉, 단지 나무에 물을 주는 것, 단비에게 고기를 먹이는 것을 넘어 나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요툰하임의 조각으로 세계수의 뿌리는 탄탄해졌어요. 하지만 조각을 아무리 먹여도 세계수가 개화하진 않을 거예요. 그저 뿌리가 많은 힘을 품고, 더 다양하고 많은 가지를 뻗게 할 수단을 제공할 뿐.”

원장님은 이해하기 버거운 용어들을 써 가며 이번 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장님, 쉽게 말해 주세요.”

“아홉 세계의 조각들은 영양제라고 보시면 돼요. 자라나는 데 꼭 필요한 양분은 아니지만 보다 뿌리를 튼튼하고 줄기를 단단하게 만들죠. 어느 세계에서나 뿌리를 내리도록이요! 작은 매개체가 될 테지만 분명 큰 도움이…….”

“더 쉽게요.”

원장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날 노려봤다. 난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할 일, 세계의 끝으로 가 세계수가 원하는 만큼 ‘조각’을 포식하도록 놔두기.”

“아, 네.”

원장님은 기계적인 말투로 설명을 이어 갔다.

“세계의 끝은 아홉 세계의 찌꺼기가 모이는 곳. 아홉 세계란 양해의 바다와 연결된 무스펠헤임, 아이스 독들의 고향, 니블헤임. 무량성계의 요툰헤임 등 강력한 존재력을 가진 아홉 세계가 연결…….”

“더 쉽…….”

“쉽게라는 말 한 번만 더 내뱉으면 가만 안 둬.”

난 입을 다물며 듣기만 했다.

결국 원장님의 말은 아홉 세계의 찌꺼기가 모이는 세계의 끝이란 곳에 가서 단비가 조각을 마음껏 먹도록 하라는 것이다.

난 가장 중요한 걸 마지막에 물었다.

“위험한가요?”

“고민 많았…….”

젠장, 곧바로 대답해 주지 않고 몇 마디를 더 보태는 걸 보니 정말 위험한 곳인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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