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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09화 (209/258)

# 209화 세계의 끝 (3)

벌떼를 마주한 것과 같았다.

그것도 거대하고 포악한 몇만 마리의 벌, 그랜드캐니언 협곡만 한 벌집에서 살 것 같은 괴물 벌들. 놈들은 내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얌전히 달라붙어 있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으나 주둥이는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무엇을 먹고 있기에 이런 소리가 나는 걸까, 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앉은 곳은 세계의 끝의 환경 혹은 허공일 뿐인데.

사각.

놈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벌레들이 동시에 주둥이를 멈추며 어떤 곳을 파고들었다. 난 그제야 놈들이 먹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벌레가 기어들어간 자리엔 검은 구멍만이 존재했다. 단지 어두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만이 느껴졌다.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마치 공간 자체를 갉아먹은 것 같았다.

난 침을 삼키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움직여 관심을 끈다면 놈들이 갉아먹는 게 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미이라’의 살인풍뎅이들도 이 녀석들 앞에선 곱상하게 생겼을 거야.

젠장, 원장님은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세계의 끝의 쓰레기장, 찾는다고 해도 놈들을 피해 그곳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갉아먹는 소리가 고막을 괴롭힌다.

점점 주변의 환경이 검은 공백만이 남게 되었다. 결국 난 그들의 식사는 날 먹어치우기 전까진 끝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했다. 천천히 힘을 끌어올렸다. 몸을 가벼이, 스위프트 덕의 힘과 마찰을 최소한, 마츄의 힘을 동시에.

공간을 갉아먹는 수만 마리의 벌레와 대적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저놈들은 마물이 아니다.

아무리 교감이 불가능한 벌레라고 하더라도 목소리를 가진 생명이란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아니었다. 살아 움직이나 생명은 아닌 모순적인 기운을 가졌다.

무생물, 아니 것보다 바람이 불거나 불이 타오르는 등 어떠한 현상처럼 느껴질 만큼 기이한 존재들이었다.

살아 있다고 느껴지지 않으나 죽일 수 있다고도 생각 들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놈들이 원하는 걸 알 수는 없었지만 공간을 갉아먹는 벌레가 서서히 내게 다가오는 이유는 알 수 있었다.

내 안에 마물의 힘이 충만해질 때, 난 긴장으로 굳어진 근육에 힘을 주며 천천히 뒷걸음을 내디뎠다.

한 발자국, 딱 한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위이이잉-!

그 순간, 헬리콥터 소리보다 더 큰, 수만 마리의 거대한 벌레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하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재빨리 입술을 깨물고 극성으로 풍종도보의 경공을 펼치며 도망쳤다.

젠장, 젠장, 젠장!

주변 풍경이 바람처럼 지나가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나 뒤에서 들려오는 날갯짓 소리는 작아지지 않았다. 난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한 채 힘껏 달렸다.

아홉 세계가 뭉친 기이한 세계의 끝을 달리며 무수하게 환경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벌레의 소리는 계속되었다. 결국 뒤를 돌아본 난 뼈 마디마디 차가운 얼음으로 마사지한 듯 서늘한 충격을 받았다.

무너지고 있다.

날 쫓아오는 놈들의 뒤엔, 아무것도 없는 공허만이 남는다.

내가 아무리 도망쳐도, 이 세계 자체를 떠나지 않는 한 놈들은 계속 쫓아오리란 걸 깨달았다.

“젠장!”

도망치던 와중에도 놈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 어느새 내 앞을 가로막았다. 땅에서부터 높은 하늘까지, 모든 공간들이 검은 벌레 떼로 뒤덮이고 말았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빌어먹을, 할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메타소드를 꺼냈다.

“그래, 어디 한번 싸워 보자.”

날 쥐새끼로 비유하는 건 지금 상황이 얼마만큼 궁지에 몰려 있는지 내 스스로 잘 아는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궁지에 몰리면 물어야 한다. 처절함은 사양이지만 살기 위해서 지랄 맞게 저항할 각오는 되어 있다.

힘을 아끼면 안 돼.

어떻게 죽여야 될지 모르니 내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발톱을 꺼낼 수밖에. 그 힘을 강제로 끌어올리자 메타소드의 날이 밤하늘처럼 검어지고, 별들처럼 영롱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망할 녀석, 빌려주기 싫다고 해도 강제로 빼앗을 거야.

물들어간다.

검에서부터 시작된 어두운 물결은 날 물들여 잠식시켰다. 내 몸이 그림자에 뒤덮인 듯 어두워짐을 느낀다. 이건 녀석의 힘, 드래곤조차 알지 못했던 미지의 힘.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치환하여야 간신히 이끌어 낼 수 있었던 마물의 힘.

사각, 사각, 사각.

벌레들이 내게 달라붙었으나, 공간마저 갉아먹던 주둥이조차 내 몸을 뜯어먹진 못한다.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놈들은 날 건드리지 못했다.

“크흐으……!”

이렇게 변해 버린 난, 모든 게 잿빛으로 보였다.

녀석이 내게 힘을 빌려줬을 때와 같았다. 지금 난 모든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콰드득-!

이빨 사이로 확연히 느껴지는 놈들의 질감, 피부로 스며들어오는 무언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알 수 없는 쾌감. 놈들이 먹이사슬에 속하지 못한, 절대 먹혀선 안 되는 존재임을 깨닫지만 내 이빨은 어느새 놈들을 씹고 있다.

그래, 다른 것.

이 지독한 배고픔.

포식飽食을 원해.

*

나와 놈들은 같았다.

서로 먹으려고 든다.

그러나 내 몸은 먹히지 않았고, 놈들은 내게 삼켜졌다. 문득 내가 인간이 아니라 마치, 어떠한, 형용할 수 없는 야수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이빨이 이렇게 날카로울 수도, 발톱이 이렇게 거대해질 수도 있구나.

하지만 상관없었다.

마치, 몇천 년은 굶은 듯 지독한 배고픔을 달래고만 싶을 뿐이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마물의 힘에 정신이 감염되면 내가 내가 아닌 게 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번엔 미라 마물 때와 다르다. 내가 나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정신은 또렷하고 내 모든 감각들이 확실히 전해져 왔다. 마치 이 거대하고 굶주린 짐승이 사실 내 진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벌레들을 잡아먹으면서, 이 검은 짐승이 나임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기묘한 생각을 했다. 호접지몽胡蝶之夢, 내가 이 짐승일까, 이 짐승이 나일까. 분명 지금 이 모습은 야옹이의 힘이 발휘된 내 모습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전, 훨씬 이전부터 내가 이 짐승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돼, 난 인간인데.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자라났는데. 몰아일체 때문에 생겨난 착란인가? 아니, 이상해. 그렇기엔 너무 정신이 맑아.

결국 수만 마리의 벌레들을 집어삼켰다. 그럼에도 굶주림은 계속되었으나 텅 빈 허무의 공간엔 더 이상 벌레들은 보이지 않았다. 난 더 이상 굶주림을 참을 수 없어 힘을 포기했다.

이 힘은 역시나 미라 마물 때와 달리, 내가 그만두고자 하니 아무런 저항 없이 사라졌다. 난 검은 야수에서 천천히 작아져, 원래의 내 모습을 되찾았다.

“역시 이상해.”

기이한 건 한 가지뿐이었다.

수십 년을 살아온 인간의 몸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오히려 방금 전의 검은 야수가 더 ‘나같이’ 느껴졌다는 것. 젠장,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어쩌면 미라 마물 때보다 더 위험한 현상일지도 모르지.

“진짜 배고파.”

야옹이의 힘을 일시적으로 이끌어 냈을 뿐인데 속이 텅 빈 느낌이다. 배고픈 건 둘째치고 몸의 마나가 모두 바닥났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원장님이 구해 주러 와 주시겠지?

지친 나머지 난 발라당 누워 버렸다. 이젠 몰라, 알아서 구해 주지 않으면 굶어 죽어 버릴 거야.

[위험해.]

야옹이의 힘을 끌어올릴 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던 단비가 돌아왔다. 녀석은 내게 위험하다며 경고했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차원 벌레들의 갉아먹는 소리가.

전보다 더 많이.

*

포식의 힘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갉아먹는 소리가 마치 내 목숨 줄을 갉아먹는 것 같다. 난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검은, ‘빈 공간’만이 가득한 세계.

[내가 해 볼게.]

난 나서는 단비에게 ‘네가 어떻게?’라고 질문하지 않았다. 지금 녀석이 유일한 희망이기에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소엔 황금원숭이의 모습을 한 단비가 지금은 어딘가 다르다. 난 잠자코 녀석의 변화를 지켜봤다.

“뿌리…….”

녀석의 다리는 나무처럼 변해 빈 공간에 뿌리를 내렸고, 이내 몸은 나무의 줄기가, 머리와 팔은 가지, 털들은 황금빛 잎이 되었다.

작은 나무.

내 키보다 작은 나무.

그러나 나무가 개화하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무어라 표현하기 애매했다. 굳이 단어를 찾자면 ‘채워지기’ 시작한다.

단비의 뿌리가 뻗어 나가자 허무만이 느껴지는 빈 공간이 충만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뿌리에선 시리도록 차가운 동토의 대지가 그림을 그리듯 순식간에 생겨났고, 어떤 뿌리에선 붉은 화염이 치솟아 용암과 재가 가득해졌다.

그럼으로 아홉 개의 뿌리에서 아홉 개의 세계가 생겨나니 일부분이 소실되었던 세계의 끝이 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마물원에서 지내며 기이하고 놀라운 광경들을 많이 본 나라도, 지금 내가 보는 광경이 비교할 수 없이 믿을 수 없는 기적이라는 걸 알았다.

무너진 공간이 세계로 차오르는 건, 마치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고 느껴졌다.

“세계수… 최초의…….”

원장님에게 이야기는 들었지만 최초의 세계수라고 해도 전에 들었던 세계수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다. 엘프들의 세계를 구해 냈던 세계수가 자연을 변화시켰다지. 그 힘에서 파생된 게 드루이드. 단지 그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초월적인 힘이잖아.

세계가 다시 생겨나자 벌레들의 소리도 잦아들었다. 난 기적을 지켜보며, 황금 잎의 작은 나무를 지켜보며 신성하다고 느낄 만큼 벅찬 감동을 느꼈다.

어느새 벌레에게 먹혔던 대부분의 공간이 회복되었다. 더 이상 벌레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미안. 여기까지인가 봐.]

그러나 검은 공간이 아홉 세계로 가득 차오르기 직전이었다. 나무의 모습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단비가, 내게 미안하다며 말하고 쓰러졌다.

그 순간 차올랐던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벌레들의 소리가 다시 맹렬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난 황급히 단비에게 다가가 녀석을 안았다.

“단비, 단비야.”

녀석의 목소리, 희미하게 들려와.

다행이다. 하지만 실체가 된 단비는 힘을 잃어 위수로서의 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뿌리가 닿지 않아. 미안.]

난 단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괜찮아. 고마워.”

이제 쉬어도 돼.

이미 상황은 끝났어.

녀석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

단비의 힘이 잠시나마 공간을 복구시켰고, 내게 필요한 건 그 찰나의 시간이었다.

“미안해요. 빌어먹을 벌레들이 좌표까지 갉아먹는 바람에.”

어느 순간,

갑작스레 나타난 붉은 날개의 생물을 보자마자 난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래, 모든 게 끝났다. 통신기가 일시적으로 복구되자마자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한마디였으나 어떤 말보다 반가웠다.

날 찾았다고.

원장님은 손짓 한 번으로 벌레들에게 갉아먹힌 공간들을 원래대로 복구시켰고 포탈을 만들어 날 마물원의 관리실로 보냈다.

소파에 앉아 원장님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기절한 단비를 지켜봤다. 다행히 바닥난 마나가 돌아올수록 단비의 기운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

세계의 끝에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원장님은 돌아오지 않았고 단비는 기운이 회복되어 전보다 소 두 마리는 더 먹어치웠다.

아홉 세계의 조각을 흡수한 단비는 확실히 무언가 달라졌다. 녀석이 내 품에서 잠들 때마다 그 힘이 내게로 전달되었는데 그로 인해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정확히는 메타소드가 달라졌다.

“렌티큘러 딱지 같네.”

메타소드, 철검의 손잡이와 날을 잇는 가드(guard)부근에 보석 한 개가 박혔다. 난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 뒤늦게 알아차렸는데 보석은 마치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렌티큘러처럼 각도에 따라 저마다 다른 광채를 냈다. 모두 아홉 개의 광채로 난 이 보석이 단비의 변화로 인해 생겨났음을 알 수 있었다.

메타소드는 내 힘에 따라 모습이 바뀌지만 아홉 빛깔 보석은 달라지지 않았다. 창으로 바뀌나 낫으로 바뀌나 몽둥이로 바뀌나 어느 부분에 딱 박혀서 떨어지지도 않았다.

이 변화로 인해 내 힘이 늘어난 건 아니지만 보다 내 힘을 자유롭게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 뿌리에 세계의 힘을 담던 세계수의 힘 덕일까, 마치 보석이 내 힘을 저장하는 장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마물의 힘을 더 끌어 낼 수 있었다. 내 몸을 그릇이라고 치면 이건 작은 찻잔과도 같다. 메인 음식을 담는 것 외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릇이 생겨난 것이다.

*

며칠 후, 원장님이 돌아왔다.

돌아온 원장님은 마물원의 모든 구역을 통제하는 열쇠를 내게 건네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빠르면 몇 개월, 늦으면 몇 년 동안 자리를 비울 거예요.”

원장님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

그저 옆 동네, 혹은 외국에 있다는 게 아니다. 지구를 떠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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