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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16화 (216/258)

# 216화 대방주 (2)

고독蠱毒이란 큰 항아리에 맹독을 가진 독충들을 가득 담아 서로 잡아먹게 한 다음 마지막에 살아남은 한 마리를 저주로 이용하는 주술이다. 독충들은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과정에서 강렬한 원한이 깃드는데, 하찮은 곤충의 원념조차 지독하여 한 마리의 고독으로 일백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고독은 존귀한 생물일수록 원한의 악랄함이 깊어지는데, 그리하여 고독 중에 가장 악랄하고 독기가 강한 고독은 사람으로 만든 인고(人蠱)이다. 인고는 성실하고 심성이 밝은 자들을 사용할수록 억울함이 깊어져 효과가 뛰어난데, 특히 혈연으로 이어진 자들을 서로 죽이게 만들어 천륜을 어기면 그 원통함은 구미호의 살이나 태목소의 정기로도 고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한이 되어 인고가 된 인간은 더 이상 인과율에 속하지 못하게 된다.

부모와 친척과 형제를 죽이며 만들어진 인고는 대천인고戴天人蠱라 하여, 악랄한 원한으로 하늘 아래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용납하지 못하여 침 한 방울로 초목을 썩게 만들고, 혀는 항상 살점을 탐하며 검은 이는 피에 절어져 있다.

그는 인고를 통해 탄생했다.

대방주들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악의를 통해 만들어진 대천인고다.

여섯 번의 인고.

첫 번째의 인고로 인간임을 포기당했고, 두 번째의 인고로 짐승보다 미천해졌으며, 세 번째의 인고로 살의만이 남은 망자가 되었다.

또한 인고의 마지막에 이르려 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자들은 모두 인고의 희생물이 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자식이었던 자와 부모였던 자에게 그 어떠한 일말의 감정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모든 존재들을 저주하는 강력한 원귀가 되었다. 고통을 모르며, 두려움을 모르며, 오로지 만물을 죽이고 저주하는 원통함만이 남은 존재다.

“새로운 먹잇감.”

여섯 개의 머리는 여섯 번의 인고의 상징, 섬뜩한 여섯 쌍의 붉은 눈이 망궁의 어둠에 빠진 가련한 자를 쳐다본다. 인고는 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자연스레 그를 잡아먹으려 들었다. 그가 입을 벌리자 몸이 갈라지더니 거대한 검은 이가 드러났다. 인간의 형상은 죽인 인간들의 가죽, 대천인고의 본모습은 모든 걸 삼키는 거대한 입이다.

남자는 강렬한 불꽃을 피워 대항했으나 인고의 저주는 그 어떠한 힘도 삼켰다. 깃든 원한이 너무나 악랄해 인과율을 벗어나 날카로운 것에 상처가 찢기거나 불에 살점이 타는 등 우주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검은 머리의 사내는 무시무시한 공포 속에서 가진 힘을 다해 용맹하게 맞섰으나 인고의 입은 그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대천인고의 검은 이빨이 남자를 아드득 깨물어 삼킨다. 고름이 가득한 입안에서 남자는 몸집이 산만큼 커졌다가, 불꽃을 피우고, 얼어붙었다가 죽음마저 흩뿌렸지만, 그 모든 힘 또한 인과율에 속해 있으니 모두 검은 이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아드득까드득까드득아드득-!

대천인고는 남자의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내 남자는 인고의 뱃속으로 삼켜졌다. 그곳은 또 다른 고독으로 원통함으로 가득한 망자들이 끝없이 싸우는 고린내 나는 시궁의 바닥이었다. 남자의 저항이 사라지자 망궁엔 심연만이 남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먹잇감을 삼킨 대천인고는 다시 망궁의 어둠에 억울함을 묻었다. 침묵하며, 먹잇감을 그리워한다.

“아.”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어둠에서 그가 다시 일어났다. 먹잇감이 왔기 때문이 아니다.

대천인고는 문득 기이함을 느꼈다.

“아으…….”

그리고 그 기이함이란 감각을 느꼈다는 것에 막연한 공포를 느꼈다. 여섯 번의 인고, 수천 번의 살인으로 닳아 없어진 ‘감각’, 제 부모를 입으로 삼킴과 같이 없어진 사람으로서의 ‘감정.’

“아아…….”

그는 점점 깨달았다.

이 공포.

잊힌 두려움.

“그만, 그만…….”

일찍이.

이전의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먹지 마. 먹지 마. 먹지 마.”

잡아먹히는 자의 두려움.

원통함으로 칠해져 벗길 수 없이 단단한 저주가 된 대천인고마저 제 뱃속에서 일어나는 까마득한 근원적인 공포에 바들바들 떨었다. 그 순간 거듭된 살인으로 잊혔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자신의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던 먹잇감들의 울부짖음. 지금, 자신은 그들 중 하나가 되었다.

콰지직!

대천인고의 입이 찢어진다.

검은 이를 ‘씹어 삼키며’ 나타난 존재는, 어둠보다 더 검은 그림자의 야수. 인과율에서 벗어난 원한마저 날카로운 이로 뜯으며 망자만이 득실거리는 시궁의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짐승이다.

악랄한 원한을 잡아먹은 짐승은 점점 작아졌다. 이내 그림자가 벗겨지고, 그 안에서 인간이 나타났다. 인고의 검은 이에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씹혔던 남자였다. 그는 멀쩡한 몸으로 나타나 자신이 찢어 죽인 검은 이의 괴물을 내려다봤다.

“퉷!”

입에 잔뜩 고인 진물을 뱉어 낸다.

“너무 짜.”

죽음보다 두려운 경험과 그 경험을 선사한 악마를 씹어 삼킨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농담을 던지며 고개를 추켜올렸다.

그러자 하늘에 태양같이 떠 있던 눈동자가 스르르 감겼고, 어둠이 물러가며 찬란한 빛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심연의 세계는 반짝이는 황금으로 지어진 궁전과 하얀 구름이 떠도는 신령스러운 장소가 되었다. 조화를 벗어난 상황에도 남자는 태연히 한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곳엔 황금 궁전이 있었고, 높이 세워진 세 개의 황금 왕좌가 있었다.

“니들이로군.”

하늘 높이 세워진 왕좌에는 세 명의 인간이 앉아 있다. 그들은 웃고, 울고, 무표정한 표정의 기이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을 쓴 그들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아 무엇을 쳐다보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남자는 몸에 꽂히는 기분 나쁜 시선들을 느꼈다.

“대방주.”

남자의 말에 가면을 쓴 자들이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들의 발치로 구름이 몰려왔다. 그들은 구름을 타고 궁전에서 내려와 남자의 앞에 섰다.

남자는 그제야 깨달았다.

저자들의 얼굴, 가면이 아니라는 걸.

*

곽운은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천명을 맡길 생각이 없었다. 대방주들을 죽이는 건 오로지 기천수호문의 문주인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명령이며, 감당해야 할 운명이었고, 희생해야 할 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둥지에 침입한 자를 어둠만이 가득한 망궁에 갇히게 만드는 분리 주술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방주들이 흩뿌린 망궁의 어둠은 저절로 대방주들에게 가장 두려움을 선사하는 자, 죽음을 줄 수 있는 자에게 몰려온다.

곽운은 망궁에 도사린 기이한 원귀를 없앤다면 대방주들이 나설 것이며, 그때가 자신과 대방주들의 최후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이건…….’

그의 단전에 경탄할 내공이 휘몰아치고 있다. 대방주들을 만난 후, 즉사 주술이 펼치기 직전. 그 찰나의 시간에 놈들을 죽일 단 하나의 검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비록 두 태양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으나 도성으로서 쌓아올린 무의 정점이다. 주술을 막아 주진 못하나 사악한 대방주들마저 일격에 소멸시킬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망궁을 지키는 원귀라 하기엔 보잘 것 없다.’

그는 어둠에 빠진 후로 수만 망령들과 싸우며 대방주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엔 보잘것없는 망령만이 일어날 뿐 주왕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점점 초조함을 느끼던 그때, 망궁의 어둠에 뜬 눈동자가 스르르 감겼다. 그러자 곽운도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대방주들은 분명 가장 큰 위협, 해를 끼칠 자를 우선 없애리라 생각했다. 그건 예상에 의한 어리석은 판단이 아니었다. 망궁의 비밀에 대하여 철저히 조사하여, 존재력이 가장 강한 적에게 대방주를 안내하는 성질이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망궁의 어둠은 망령만을 불러낼 뿐, 어둠을 지켜보던 눈동자가 감겼음에도 대방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 돼. 이래선!”

곽운은 고함을 내질렀다.

대방주들이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담 침입자들 중 기천수호문의 문주이자 도성으로 인간을 초월한 자신보다 존재력이 더 강한 자가 있다는 뜻이며, 망궁에 침입한 자는 자신과 제자들밖에 없었다. 곽운은 불현듯 떠올랐다. 믿을 수 없으나, 어쩌면 그라면 이런 비틀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묘했다.

첫 만남엔 작은 기를 가졌었으나 그는 용의 수호자, 짧은 시간에 많은 성장을 이룩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넌지시 봉황의 기를 알아본다며 그 몰래 시험을 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존재력이 약하다는 걸 알아냈다.

“정아. 정아!”

그런데도 망궁의 어둠은 그를 택했단 말인가. 소리 질러도 어둠은 가시지 않는다. 망령들이 몰려와 그를 방해한다. 도성 곽운은 스스로 희생하기 위해 이곳에 왔으나 자신이 받아들인 제자를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사실에 막대한 책망을 느꼈다. 그리고 책망은 분노로 커져, 그의 월도는 망궁의 어둠마저 잘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방주들이 수백 년에 걸쳐 만든 결계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

그건 소리 소문 없이, 어떤 흔적과 징조도 없이 날 옥죄어 왔다.

‘엿 됐다.’

너무 다급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의 순간에 난 그저 엿 됐다는 생각만 들었다. 즉시 야옹이의 힘을 이끌어 냈으나 악랄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 이빨의 주둥이 새끼에서 벗어나느라 힘을 쓰는 바람에 검은 그림자는 일어나지 않았다.

좋지 않다.

아니, 굉장히 나쁘다.

아프지도 않고, 방금 전 주둥이 새끼에게 잡아먹힐 때보다 강렬한 죽음의 위기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걸 ‘엿 됐다’ 수치라고 가정한다면, 주둥이 새끼에게 잡아먹힐 때가 7 정도 되면, 지금은 만점, 10점이다. 마치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도중처럼 느껴졌다. 방광이 저릿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뛴다. 결국 그 끔찍한 끝을 짐작할 수 있듯이, 난 죽고 말 거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 어떤 힘을 끌어올려도 몸에 드리운 죽음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가면같이 기괴한 얼굴을 한 대방주들은 날 보며 울고, 웃고, 무표정했다. 난 발악하는 심정으로 놈들을 공격했으나 곧 사라지고 만다. 몸이 죽어 가니 바깥으로 기를 내뿜을 수도 없는 것이다.

젠장, 왜 곽운과 강태풍이 이곳에 없고 내 앞에 떡하니 대방주가 나타나 즉사 주술을 내게 펼치는지 이해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문득 스승님의 말만이 떠올랐다. 즉사 주술은 신이 아닌 이상, 막지 못한다고.

이를 악 깨물었다.

이대로 지랄같이 허무하게, 아무런 저항 없이 죽음이 다가오는 감각만이 느낀 채 죽음을 기다릴 순 없다. 살아야 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

“잠깐.”

난 머리를 긁적였다.

죽는 순간에 오열하며 발버둥 치던 방금 전의 내가 부끄럽게 여겨질 만큼, 난 너무나 멀쩡해졌다. 한순간에 징조 없이 찾아온 죽음은, 마찬가지로 아무런 기색 없이 불탄 것처럼 사라졌다.

“응?”

영문을 몰라 대방주들을 바라봤다.

놈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날 쳐다만 볼 뿐이었다. 황금 궁전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난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즉사 주술, 안 통한 것 같은데.

그때였다.

또 찾아온다.

죽음, 즉사의 주술.

하지만 이번엔 전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 그냥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트를 타듯 살짝 오금이 저려 왔을 뿐이다.

또다시 즉사 주술이 실패하자 여전히 침묵만이 감돌았으나 어딘가 대방주들이 불편해 보였다. 그러니까 진짜네. 힘의 격하에 관계 없이 대상을 반드시 죽여 무림의 패자로 군림하던 대방주들의 가장 큰 무기가 내겐 안 통했네.

“야, 이거.”

난 성큼 걸어갔으나, 놈들은 또다시 기척도 없이 즉사 주술인지 방광을 간질이는 주술인지 뭔지 모르는 걸 펼쳤다.

“말 좀 하자.”

이번엔 찰나였다.

공포는커녕 간지러움만 느끼며 놈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나 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웃음이 터져 깔깔 웃으며 말이다.

저 가면 얼굴, 고정된 표정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웃는 가면 같은 얼굴도, 울고 무표정한 얼굴도, 지금은 모두 한 가지 표정만을 하고 있었다.

가면이라서 표정이 저리 확연히 드러나는가? 무슨 고전 공포 영화 ‘스크림’에 나오는 가면처럼 입을 쩍 벌린 채 당황하는 표정에 기묘하고 압도적이며, 두려웠던 놈들의 첫인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웃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시부랄, 뭐가 어떻게 됐는지 몰라도 이제 좃 된 건 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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