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19화 (219/258)

#219화 가짜 소녀

오랜만에 마물원에 손님이 찾아왔다. 아주 특이한 조합의 손님이었는데 딸과 아빠,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아빠 쪽은 중년의 남자로 평범한 한국인이었으나 딸은 조금 특이했다. 분명 겉모습은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평범한 소녀였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하다.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수 없으나 행동거지가 부자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시선 없는 눈동자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둘은 닮았다.

첫인상에 부녀 관계인 걸 알 만큼.

그러나 그들이 관리실에 들어오고 나서 나와 인사를 나누고, 차를 대접한 뒤 내가 잠시 이세계에 볼일을 보러 간 원장님을 불러올 때까지도 둘은 서로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부녀 관계가 서먹한 경우는 많다지만 단지 어색한 수준을 넘어 서로를 무시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들은 원장님을 뵈러 왔다.

차원 통신기로 원장님에게 연락을 취해 원장님을 찾아온 인간 손님이 있다고 말하자 곧바로 지구로 귀환했다. 기다리던 손님인 것 같았다.

“다정 씨, 그 아이에게 마물 우리를 구경시켜 줘요.”

원장님은 손님을 원장실로 초대했는데 나더러 아이 돌보기를 맡겼다. 역시나 지금까지도 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은 질색이었으나 한 명에다가 말수가 없는 부끄럼쟁이 아이 정돈 그다지 힘들 것 같지가 않았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녀석을 불렀다. 이름부터 물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이의 아빠가 나서더니 제 딸을 등 뒤에 숨겼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니, 날 뭐로 보는 거야.

내가 못된 사람처럼 보였는지 딸아이와 대화 한번 나누지 않던 중년 남자가 갑자기 나서더니 딸을 과보호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상해서 팔짱을 끼며 그를 노려봤다.

“그는 괜찮아요.”

당연하겠지만 원장님은 내 편을 들었다. 대화는 곧 끝날 거라며 잠시 동안만 헤어져 있으라고 하자 중년 남자는 탐탁지 않는지 머뭇거리며 제 딸을 놓아줬다. 그런데 이상하게 딸이 그리 걱정되었다면 무언가 말이라고 건넬 법한데, 그는 딸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날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내비친다. 이상한 남자, 이상한 아빠다.

더군다나 원장실로 들어가기 전,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아무렴, 내가 이 녀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어린 소녀를 두들겨 패기라고 할까. 난 대꾸하지 않았다. 딸을 아낀다고 해서 처음 보는 날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다니. 정말 꼴불견이다.

손님이 원장실로 들어가고, 둘만 남은 난 머리를 긁적이며 녀석에게 말했다.

“안녕. 어… 음, 이름이 뭐니?”

이 또래의 아이들은 보통 대단히 사납거나 부끄러움이 많아서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난 이름을 물었고, 녀석은 ‘정나리’라고 했다.

나리를 데리고 마츄 우리로 향했다. 이미 검증된 바가 있는, 어린아이에게 확실히 통하는 마물인 마츄다. 잠시 시간 때우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인형 좋아해?”

마물 우리를 열고 들어갔다.

분리된 공간이 접촉되며 마츄 우리로 향하는 포탈이 생성된다.

“좋아하는 것 같다고?”

우리에 도착하자 난 준비해 둔 사탕수수를 꺼냈다. 사탕수수를 든 난 마츄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신이었다. 눈을 빛내며 우르르 몰려드는 마츄들. 마치 털신들이 기어오는 것 같다. 몇 년 전 처음 녀석들을 맡았을 땐 수십 마리에 불과했으나 번식을 통해 이젠 수백 마리에 다다른다. 녀석들은 폴짝폴짝 뛰며 사탕수수를 빼앗으려 했지만 어림도 없다. 사탕수수를 흔들자 자석에 이끌리듯 털북숭이들이 따라온다. 수백 마리가 저러니 하얀 파도가 치는 것 같다. 마츄들은 사탕수수에 대한 먹성을 부렸으나 그런데도 착해 빠져 가지고 내 몸을 밀치거나 덤비지는 않았다.

“너도 해 볼래?”

나리는 싫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사탕수수 포대를 여기저기 뿌려 줬다. 땅이 젖은 평야를 지나 언덕에 올랐다. 그곳은 원장님이 가끔씩 티타임을 즐기는 곳으로 언제나 과자와 차가 구비되어 있었다.

딸기잼이 발라진 쿠키와 초코 칩이 박힌 쿠키, 둘 중에 어느 걸 먹겠냐고 물어보니 나리는 초코칩 쿠키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막상 쿠키를 건네도 먹진 않았다.

나리는 뭘 물어도 시큰둥했다.

난 오기가 생겨 녀석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가 아는 모든 키덜트적인 지식들을 동원했다. 내가 생각해도 소름 돋지만, 난 저 나이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리 뭐 시기 파라라든가, 프리즘 뭐시기 스톤이라든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젠장, 수집가 섬에서 너무 많이 놀았나 봐.

“요즘 얘들은 어떤 걸 좋아하니? 너 룬룬변신마녀 알아?”

녀석은 아무 대꾸 없었다.

난 저 나이 때의 아이가 이런 애니들을 단 한 개라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내가 알고 있는 여자아이 취향의 만화들을 하나씩 읊었는데, 놀랍게도 녀석은 10년 전에나 유행했던 만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좋아하는 것 같다니…….”

이상한 녀석이다.

그러고 보면 녀석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말하거나 할 때도 ‘것 같다고’만 했다. 딱 확실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나도 눈치 챈다. 녀석은 평범한 소녀가 아니야.

“잠시만.”

문득 깨달았다.

난 입을 다물고, 녀석을 바라봤다.

그만 돌아갈까.

알겠다고 한다.

젠장.

“너…….”

레테의 강물을 마신 부작용으로 며칠 동안 감각들이 둔감해졌다고 해도 어찌 깨닫지 못했지.

지금까지 내가 한 질문에 녀석은 소리 내어 대답한 적이 한 번도 없잖아.

“넌 누구니?”

이름을 묻는 게 아니었다.

사람과 같은 생김새를 한 소녀, 나조차도 사람이라고 잠시 착각했던 아이. 하지만 녀석은 교감하여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마물이었다.

난 살짝 놀란 마음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누구냐고.

어떤 ‘존재’냐고.

그 순간, 소녀는 천천히 제 본모습을 드러냈다. 몸이 녹아내리며, 어떠한 생물의 형상도 아닌 기묘한 ‘액체’로 변했다. 그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떤 마물인지는 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들이 인간의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거지?

*

손님들이 떠나고 원장님에게 물어봤다.

“저 애, 인간이 아니죠? 아니, ‘종족’이 아니겠죠. 분명…….”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이어서 대답했다.

“맞아요. 슬라임이에요.”

슬라임, 평소엔 액체 같은 몸으로 늪지대 같은 곳을 헤엄치다가 먹잇감을 발견하면 그 모습으로 의태하여 동족처럼 행동하며 먹잇감을 안심시킨 후, 잡아먹는다. 속임수를 쓰는 마물들 중 유명한 녀석이지만 흔한 마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슬라임이라기엔 너무 이상했어요.”

슬라임은 대상의 겉모습만 흉내 내는 의태 마물로, ‘도플갱어’처럼 대상을 완벽히 따라 할 순 없었다. 교감의 힘을 가진 나라면 슬라임을 보자마자 아무리 잘 의태하고 있어도 곧바로 알아차린다.

그러나 ‘나리’라는 이름을 가진 슬라임은 슬라임이라는 걸 내가 의문을 가지기 전까지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마저도 만약 녀석이 직접 제 본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인간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특별한 슬라임이에요.”

원장님이 말했다.

그 아이는 슬라임 중에 가장 희귀하고 특별한 존재로서, 완전 변형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우주에서 단 한 개체만이 존재하는데, 용들이 부르길, 미씽 슬라임이라고 한다. 미씽 슬라임은 의태의 수준을 넘어 변형을 이룩하면 심지어 드래곤조차 속일 수 있으며, 드래곤처럼 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드래곤이 되어 막강한 힘을 쓰진 못하나, 그 기운의 ‘형질’은 똑같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마물인 것이다. 원장님은 재밌는 얘기를 들려줬는데, 드래곤들의 전용마법 중 ‘폴리모프’가 미씽 슬라임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고도 했다.

“가끔씩 먹이 공급을 위해 마물원을 찾아와요. ‘대가’는 착실히 지불하기에 나로선 반가운 손님들이죠.”

난 어린 소녀와 소녀를 데리고 온 중년 남자를 생각했다. 둘은 부녀관계라고 생각했을 만큼 닮았다. 그러나 딸은 슬라임이었다. 그러면 그 슬라임은 무엇을 흉내 내고 있었던 걸까.

“그 아이… 아빠… 사정이 있나 보군요.”

원장님은 날 바라봤다.

“궁금해요?”

“네.”

막연하게 느끼기에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몹시 궁금했다. 잠시 침묵하던 원장님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

참 쉬운 이야기였다.

한 남자가 전이에 휩쓸려 이계 비경에서 딸을 잃었다. 목숨을 건 수색 끝에 결국 딸을 찾았으나, 그곳엔 한 마리의 짐승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짐승의 아래엔 자신의 아이의 시신이 놓여 있었고, 짐승은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점점.

짐승은 딸처럼 변해갔다.

그런 이야기다.

불편하고 먹먹해서 짜증 나는 슬픈 이야기.

##어느 헌터의 경험담.

이계가 전이되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그 소식을 접한 헌터 집단 ‘스칸도니아’ 길드의 헌터들은 한탕을 노리기 위해 이계 비경을 찾았다. 우연찮게 얻은 정보라 이계비경엔 아직 다른 헌터들과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

“금구백사……!”

신속하게 비경을 탐험하던 그들은 어느 깊숙한 늪지대에서 꼬리에 거대한 쇠구슬을 단 어마어마한 크기의 하얀 구렁이를 발견했다. 금구백사라 하여, 암시장에서 한 개체에 30억을 호가하는 값진 마물이었다. 스칸도니아 길드의 길드장은 오랜만에 만난 대어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즉시 포획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들이 포획 그물을 설치했을 때, 갑자기 늪지대 끝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하필 지금 등장한 방해꾼에 스칸도니아 길드장은 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탐색했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길드나 정부 요원들은 보이질 않았다. 나타난 건 그저 이 상황에 검은 턱시도나 입고 등장한 겉멋이 든 동양인 헌터 한 명뿐.

길드장은 정보의 중요성을 알았다. 그의 머릿속엔 수백 명에 다다르는 중요 헌터들에 대한 얼굴의 생김새가 기억되어 있다. 따라서 그가 희미하게나마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헌터에 길드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자신들처럼 운 좋게 이계 비경을 발견한 초짜 헌터겠지.

스칸도니아 길드의 길드장인 자신은 랭커, 이번 년도 새로이 갱신한 랭킹에서 무려 25위를 차지한 베테랑 중에서도 초베테랑 헌터다. 데리고 온 길드원도 랭킹 546위의 무공 유저, 일명 ‘옥갑탄사’와 랭킹 972위의 ‘실눈의 잭’ 모두 유능한 부하들이다.

그가 아무리 초짜 헌터라고 해도 자신들을 모를 리 없으며, 모른다고 해도 압도적인 무력 앞에선 알아서 물러가리라 생각했다.

죽일 생각은 물론,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으나 30억이란 거금은 초짜 헌터에게 불운한 기억을 심어 주는 것 따윈 망설이지 않을 만큼 충분한 금액이었으니까.

“저놈이!”

“이런…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스칸도니아 길드장이 상황을 파악할 무렵, 동양인 헌터가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금구백사를 제 쪽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이대로 대어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 길드장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초짜 헌터에겐 충격이 크겠지만 이 바닥의 생리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길드장이 턱시도 남자의 지척까지 다가가 자랑하는 무기 ‘대호마륜’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이 무기 하나로 랭커 25위에 올랐다. 그 어떤 괴물과 능력자도 이 무기만 있다만 두렵지 않았었다. 그러나 문득 고개를 돌려 동양인 헌터가 자신을 바라봤을 때, 길드장은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그는 느꼈다.

자신을 랭커로 만들어 준 날카로운 감각의 ‘경고'를.

“이놈!”

“미안하지만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멈춰.”

멋모르는 두 부하가 달려든다.

길드장은 침착히 그들에게 말했다.

“제발.”

부하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 왜 그러냐고 되묻는다. 당장 쥐어박고 싶었다. 망할 녀석들, 어찌 눈치 채지 못하는 건가.

그는 베테랑이다.

대전이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헌터가 ‘헌터’라고 불리기 전부터 이쪽 생활을 시작한 그는 착실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살아남아 결국 랭커가 된 건 자신을 수많은 위기에서 구해줬던 ‘감’ 때문이었다. 이치를 벗어나도,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남자는 자신을 구해 줬던 자신의 감을 가장 신뢰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제 감을 믿기로 했다.

‘저자, 위험하다. 몹시!’

헌터로서의 축적된 경험과 타고난 위기 감각이 그에게 말해 준다.

그는 위험하다.

마치 저번 회담에서 한 자릿수 랭커를 만났을 때처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압도적인 위험!

그 위험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굴복하는 것뿐!

이제 멍청한 두 부하들도 깨달았는지 자신과 같이 머리를 숙였다.

“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동양인은 코웃음을 치더니 금구백사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 순간 몸을 휘감던 공포가 사라지며 랭킹 25위의 베테랑 헌터는 그만 축축한 늪에 주저앉고 말았다.

“뭐였던가.”

그는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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