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21화 (221/258)

# 221화 좀비 (2)

릭스틴 연구소의 지하 격리실.

몇 겹의 보안장치를 지나서야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난 강화유리 너머의 감염자를 유심히 지켜보며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감염자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눈알에는 식물의 뿌리와 같은 갈색 실들이 돋아나 있고, 팔다리는 변형되어 길고 가느다랬다. 감염자는 격리실 내의 어떠한 기계에 의해 몸이 속박되어 있었는데, 무언가 실험을 위한 장치인 걸로 보였다.

올리비아는 지친 목소리로 내게 지금 하려는 일들을 설명했다. 그녀를 괴롭게 했던 이유였다. 백신 개발을 목적으로 하지만, 엄연한 인간을 모르모트 삼아야 했기 때문이다.

난 그저 이해한다는 말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올리비아가 겪는 병리학자로서의 갈등은 내가 꾸짖거나 괜찮다고 섣불리 말할 요소는 아니었다.

몇 차례의 실험이 실시되었다.

처음엔 단지 알 수 없는 약물을 주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점점 강도가 높아져 감염자의 신체를 훼손하기도 했다.

“좀비 바이러스.”

난 감염자의 찢어진 팔다리가 새로이 돋아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다.

“자연에서 볼 수 없는 경이로운 재생력을 보여요. 고등 생물의 반응보다 원생동물 쪽에 가까운, 아니 기이하게도 원시적인 식물과 비슷하죠.”

그 후 올리비아는 내게 실험 결과를 보여 줬다. 총 43번의 실험이 기록되어 있는 동영상이었다. 난 실험 자료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감염자는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다. 물조차 마시지 않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에너지원을 획득하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들은 어떠한 반응에도 기초적인 반응만 할 뿐이나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인간에겐 격한 파괴적인 본능을 보인다.

감염자가 피감염자에게 보이는 가학적인 행동은 식인에 이르며 마치 감정이 사라진 듯 잔인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한 시간 내에 이성을 잃고 동공이 붉게 변하며 이내 식물의 뿌리와 같은 갈색 실이 생기는데, 조사 결과 섬유질이 함유되어 있으며 성분 또한 식물과 비슷하다.

초기 발생 시엔 체액으로 전파된다고 판단되었으나 보르네오섬의 봉쇄한 도시에서 감염자가 생겨난 이후 어떠한 미확인 물질로 바이러스를 감염시킨다고 판명되었다.

미확인 물질은 꽃가루와 비슷한 입자의 가루이며, 지구에 없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희미한 마력 반응을 보인다.

또한 지금까지 미확인 물질에 감염되어 병이 발병된 사례로 미루어 보아 동물을 비롯한 이종족들은 면역으로 심각한 수치에 노출되어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오로지 인간에게만 발병되는 현상으로 유추된다.

“후우.”

난 자료들을 읽으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빌어먹을, 내가 한 달의 여유로운 휴가를 취하는 동안 다른 곳에선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레이제도의 어느 섬에서부터 시작하여 순식간에 동남아 전체로 번져 간 바이러스는 끔찍한 피해를 남겼다.

사망자만 수만 명이며 격리실 안의 저자와 같은 감염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

이 또한 시작 단계며 대처를 전혀 하지 못하니 이대로 가다간 지구에선 인간이란 종이 사라지게 될지도 몰랐다. ‘바나나’처럼 말이다.

“젠장.”

마물원의 직원으로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항상 ‘이거 어쩌면 내가 세계 멸망을 막아 낸 영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지만, 막상 직접 실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 이 파국은 미리 막아 낼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원장님이 있었다면 병이 발병하기 전에 원인을 찾아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압되었을 가벼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장님이 없고 내가 휴가를 보낸 것만으로도 이 지경에 이르다니, 새삼 ‘마물원’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 시벌, 지금까지 난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하고 있었던 거야?

“문 열어 주세요.”

내 말에 올리비아가 걱정했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설사 물리더라도 바이러스보다 내가 더 강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올리비아는 농담으로 생각한 듯했지만 사실 정말이었다.

“조심하세요.”

올리비아는 개폐 버튼을 누른 후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하여 아예 보안장치 바깥쪽으로 피했다.

“어디 보자.”

이내 격리실의 두꺼운 문이 열리고, 그 순간 미동도 하지 않던 감염자가 내게 덤벼들었다. 난 그가 다치지 않게 섬세한 손놀림으로 머리통을 조심스레, 아주 살짝 쥐어 잡았다.

감염자는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힘은 곰보다 강했다. 그러나 머리가 잡힌 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떤 놈인지.”

난 천천히 힘을 끌어 올렸다.

내 안의 마나가 충만해질수록.

강제적인 간섭이 가능해진다.

분명 어떤 마물에 의해 발생했을 이 바이러스, 그 근원을 찾기 위하여 난 감염자의 속을 들어다봤다.

격리실에 갇힌 그를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감염자는 인간이라기보다 마물에 가까웠다. 정확하게는 인간이지만 그 안에 마물이 숨어 있다.

아직 부화하지 않은 마물이.

“얼굴 좀 보자.”

손바닥에 넘실거리는 내 마나가 감염자의 머리에 스며든다. 이내 그의 뇌 속에 자리 잡은 ‘알’에까지 깃들었고, 그 즉시 내게 보이기 시작했다. 교감이라기보다 놈의 복잡하게 얽힌 신경 다발 같은 정신을 강제로 헤집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놈이 뿌린 ‘알’을 통하여 난 놈에게 접근했다.

“너였군.”

이놈.

아는 놈이다.

솔로몬의 탑에서 온 악마는 아니나 그에 준하는 흉악한 기생 괴물이다. 내 힘이 놈에게 닿기 전, 놈은 눈치채고 제가 낳은 알에 연결된 ‘정신’을 끊었다. 이러면 지금으로선 나도 놈과 접촉할 방도가 없다.

난 천천히 힘을 거뒀다. 감염자의 뇌 속에 기생하는 알을 터트릴 순 있으나 그러면 ‘숙주’도 죽는다. 그건 해결 방법이 아니다.

“올리비아.”

놈의 정체를 알아낸 난 격리실에서 나와 올리비아에게 내가 알아낸 것을 말했다.

“이건 병이 아니에요. 단지 어떤 끔찍한 마물의 ‘생식生殖 방법’일 뿐.”

올리비아는 당황하며 곧바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타래처럼 엉킨 녹색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더니 비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지도 않은 채 내게 질문했다.

“대체 어떤 마물이 자신의 생식 도구로 수십만 타종을 이용할 수가 있죠?”

“저도 이토록 광범위하게 발생한 건 처음 보지만, 놈들은 그러고도 남을 놈들입니다. ‘악몽’에서 온 마물이거든요.”

솔로몬의 탑은 악마들을 봉인한 곳이다. 그러니 끔찍한 탑의 마물들에게도 고향은 있다. 도플갱어나 촉수 괴물같이 온갖 사악하고 해괴한 괴물들은 ‘악몽’이라 불리는 곳에서 왔다. 기상천외하게도 악몽은 어떠한 세계가 아니다. 추상적인 개념, 악몽은 어떤 자의 꿈이 될 수도 있고 지구의 이면이 될 수도 있다.

이야기가 현실이 된 요괴들의 괴이와 비슷하나 그들에게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에 있어서 크게 다르다.

죽이고 파괴하고 멸망시키고.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

난 예전에 한 번 놈을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원장님은 놈을 이렇게 불렀다.

‘헤롯의 자주벌레’ 라고.

*

헤롯의 자주벌레.

기이한 생식 수단을 가진 기생 마물이다. 놈에게 처음 기생당한 생물은 ‘모체’가 되어 ‘꽃가루’를 흩뿌리는데, 이 가루는 오로지 모체가 된 생물과 같은 종에게만 흡수되며 곧 가루는 ‘알’이 되어 숙주의 몸속에서 기생하게 된다.

알은 숙주의 에너지를 갉아먹으며 영양분을 채우고 이내 부화하게 되는데, 알이 부화하면 숙주는 완전히 죽게 된다. 그 방식이 나나니벌과 비슷하다. 다만 지금 상황은 ‘애벌레’가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알이 심어진 숙주는 모체의 기생 마물과 하나로 연결되어 놈의 명령을 듣는다. 그러다 부화가 시작되면 어미와 분리된 하나의 개체가 되는데, 감염자가 수십만 명이라고 하였으니 저처럼 끔찍한 마물이 수십만 마리가 부화한다는 뜻이었다.

부화한 마물은 곧이어 자가생식을 할 테고, 수십만 마리가 뿌린 알들이 지구를 모두 뒤덮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올리비아는 내 설명을 듣다 참을 수 없었는지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정! 치료 방법은요? 치료할 수 있긴… 있는 거죠?”

난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안심한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현재로썬 감염자들을 치료할 수 없어요.”

“네? 하지만……!”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눈을 부릅뜨며 다시 물어본다. 난 올리비아에게 진정하라고 말한 뒤 찬물을 떠다 주며 다른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기생하고 있는 알을 없앤다면 중간 숙주들 또한 죽고 맙니다. 원래의 인간으로 돌릴 방법은 없어요. 다만.”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

원장님이 그때 헤롯의 자주벌레를 상대로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이 부화하기 전, 모체가 된 숙주를 찾아서 기생 마물을 죽인다면 모체와 연결된 알들도 모두 성장을 멈춥니다. 그러면 아마 감염자들도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인간이 숙주가 된 건 처음이기에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자주벌레에 당한 이종족들은 원장님이 모체 숙주의 기생 마물을 태워 죽이자 모두 금방 원래의 몸 상태를 회복했다. 그러니 인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리비아는 내가 제시한 방법에 인상을 찌푸리며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만 했다.

“결국…….”

찬물에도 답답한 속을 달래지 못했는지 목소리엔 근심이 가득했다.

“이 사태를 막을 방법은 모체 숙주를 찾아 기생 마물을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건가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올리비아는 모체 숙주와 중간 숙주를 구별하는 방법을 아냐고 물었고, 난 두 개체에 차이점이 없어 절대 구별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곤 곧바로 올리비아가 더 절망하여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냉큼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가능해요. ‘목소리’로 알 수 있거든요.”

가능하다는 말에 올리비아는 화색을 했지만, 아직 내 말이 끝난 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모체 숙주에게 직접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진 알 수 없어요.”

난 세상에서 가장 근심 가득한 얼굴이 된 올리비아의 비뚤어진 안경을 바로 씌워 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수십만 명 사이에서 모체 개체를 찾는 건 내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위험할…….”

“하지만, 하지만! 올리비아, 내가 온 뒤로 그 말만 하고 있는 거 알아요?”

자신감은 하나의 차이로 교만이 된다. 바로 근거가 있냐 없냐의 차이다. 그리고 지금 내 자신감은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날 믿어요. 장담컨대 이제 이 일은 감기처럼 별것도 아닌 게 될 테니까.”

*

나 혼자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국제재해대책본부 지휘 아래 감염자들을 막고 있어 이계 비경에 가기 위해선 그들의 허락이 필요했고, 강제적으로 밀고 들어갈 순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세계의 적’이 되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절차를 밞아야 했다.

원장님이 있었다면 입김(물리적이든 정치적이든)으로 알아서 처리해 주셨겠지만, 없으니 내가 직접 만나서 귀찮은 짓거리를 해야 했다. 한시가 급한 시점에서 괜한 시간 낭비였다.

곧 대책 본부 회의가 열렸는데, 난 내 힘을 피력하며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나 별다른 대처 방안도 없는 주제에 그들은 작전이랄 것도 없이 오로지 내 능력에만 의존하는 계획이라며 모두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날 오후, 내 계획이 통과되었다는 고지를 받았다.

예상한 바였다.

내색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당연히 반대할 줄 알고 미리 내가 아는 ‘영향력’을 가진 자들에게 부탁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질병으로 구분된 만큼 윙바레와 릭스틴 연구소, 바스테 병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갤러해드는 기꺼이 날 위해 정치적인 알력을 행사했다. 물론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대책 본부가 엄선한 ‘특공대’와 동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으나 난 그다지 상관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