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좀비 (3)
헬리콥터를 타고 방어선을 넘어 수십만 명의 감염자들이 우글거리는 이계비경, 죽음의 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더 성가시겠어.”
난 헬리콥터의 아래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원장님이 공간 이동 마법으로 뚝딱 모체 숙주를 발견한 것과 달리 이번엔 직접 일일이 둘러봐야 했다.
“우린 타이만의 영웅이 될 거야. 몸값이 두 배로 뛸지도 모르지. 하하.”
난 낄낄되는 거구의 남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재해 본부가 헌터 협회와 협력하여 엄선한 특공대라더니, 제법 강한 자들이 왔다. 과연 ‘한 자릿수’의 랭커라 그건가. 남자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헌터 모두 시야를 가득 메운 ‘좀비’들을 보면서도 태연하기만 했다.
“준비가 끝나면 상륙한다.”
짜증나게도 리더는 따로 있는 듯했다. 필요 없는 놈들인데 명령까지 하려고 든다. 그래도 괜히 다투긴 싫으니 잠시 어울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헬리콥터가 착륙할 공간이 없어 공중에서 낙하산을 통해 상륙하려고 했다. 모두 낙하산을 메고 강하를 준비하던 그때였다.
“뭐지? 이봐, 대령! 고도를 높여!”
갑자기 발생한 현상에 헬리콥터가 고도를 높인다. 아래 감염자들에게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그들은 입에서 녹색 연기를 내뿜었다.
수십만 명이 동시에 연기를 뿜으니 순식간에 자욱한 연기가 되어 해운처럼 섬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저번과 달라.”
개체마다 차이가 있는 건가?
저건 나도 모르는 현상이었다.
섬을 둘러싼 연기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안력을 키워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마나가 깃든 연기였다.
“시야 확보 불가, 투시경으로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헌터들과 군인들은 군용 장비로 사부작거리다가 안 통하는지, 일시 후퇴를 하려고 했다. 젠장, 시간이 없다는 말을 똥구멍으로 들었는지.
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잦아든다.
이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랜만이야.]
이 힘은 이전부터 내게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겨우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난 그가 내 요청에 응답하자, 조용히 눈을 떠 하늘을 바라봤다.
하얀 뭉게구름이 가득하던 푸른 하늘엔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왔다. 난 구름 너머 언뜻 보이는 물고기의 꼬리에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땐 오해했었어. 미안.
날 삼키려던 게 아니었지.
두두둑-
“엉? 웬 비야?”
먹구름에서 비가 쏟아진다.
그의 헤엄이 계속 될수록 비는 더욱 거세게 내렸다. 우주의 모든 비가 내리는 곳엔 그가 있다. 아니, 그가 있음으로서 비가 내린다.
청동인어, 바루나.
신수의 힘.
오염을 지우는 정화의 비가 마물의 안개를 씻어 내린다. 이내 섬을 둘러싼 안개가 걷히고, 난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멎고, 먹구름이 물러가자 난 기지개를 피며 헬리콥터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몸을 던졌다. 안개 때문에 고도를 높여 몇 천 미터 상공의 높이, 랭커 헌터조차 쉽사리 뛰지 못하는 높이지만 알게 뭐야.
“저 새끼! 낙하산을 안 멨잖아!”
뒤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
쿵!
“아우.”
산기슭, 감염자들이 없는 곳에 내렸다. 정확히는 추락했다. 충격으로 내가 떨어진 자리가 움푹 파이고 거대한 바위가 떨어진 듯 큰 소리가 났지만 난 발바닥만 저릿할 뿐이었다.
감염자들은 해변 쪽에 몰려 있었다. 이제 소란을 듣고 산기슭 쪽으로 몰려올 테니 대비를 해야겠지.
“주니어, 개인 활동은 삼가 바란다.”
곧이어 도착한 다섯 명의 헌터는 낙하산을 내리고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장비 없이 내린 자는 나밖에 없었다.
“장비를 놔두고 왔잖아.”
그들은 감염을 걱정했다. 날 주니어라 부르며 헌터용 보호 장구를 건네는 자는 이번 년도 헌터 랭킹 14위,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출신의 ‘레이디 콘웰’이었다. 랭커 중엔 흔치 않게 서포팅 능력을 지닌 자로서 지금처럼 세계적 재난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우선 찾는 뛰어난 헌터였다.
유명한 자라서 나도 잘 알았다. 콘웰은 전형적인 영웅이다. 레이디 콘웰이 구해낸 재난 사고자만 공식적으로 수천 명에 다다른다.
분명 이중에선 가장 덕망 높은 자이다. 그러나 난 콘웰이 건네는 보호 장구를 무시했다. 딱히 못되게 굴 생각은 없었지만 이번 일은 헌터들과 살갑게 지낼 여유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싸우게 될지도 모르지. 특히 레이디 콘웰의 뒤로 노골적인 적의를 내비치는 네 명의 헌터와는 더더욱.
“안 가져갈 거야?”
“필요 없어요.”
레이디 콘웰은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깔깔 웃으며 내 등을 장난스럽게 두들겼다.
“못 보던 헌터인데, 제법 자신이 있나 보구나. 뭐, 패기 넘치는 젊은이는 싫지 않지. 하지만 조심해. 누나가 지켜 주고 싶어도 이번 일은 느낌이 좋지 않거든.”
레이디 콘웰은 밝은 금발 머리와 어울리는 유쾌한 성격의 중년 여자였다. 내 다소 건방진 태도에도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
물론 자신을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난 무명의 헌터이고, 콘웰은 랭킹 14위, 세계에서 14번째의 헌터니까.
후우, 역시 여러모로 단체 활동은 성가셨다. 난 이들을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반드시 모체 숙주에 숨어 있는 놈의 목소리는 알이 심어진 중간 숙주와 다르다. 들을 수만 있다면, 태워 버리면 끝이다.
“이봐, 빨리 안내해. 냄새를 맡으란 말이야.”
산기슭에서 조용히 ‘목소리’를 듣던 중이었다. 거구의 서양인 남자가 다가와 날 보챘다.
그는 랭킹 6위, ‘하이월의 두목’이란 별명을 지닌 자다. 러시아 마피아 출신으로 지금은 돈만 받으면 무엇이든 해 주는 악랄한 용병 집단의 두목이다. 이곳에 모인 다섯 명의 헌터 중 ‘랭커’를 제외한 조무래기 헌터 두 명도 그의 부하였다.
난 그를 안다.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곽운 스승님과 같이 붕괴된 ‘카르마’의 말단 조직을 소탕할 때 놈의 용병 집단과 자주 마주쳤었다.
그의 조직은 카르마의 분열된 세력을 주워 먹고 급성장했다. 어차피 뒷골목의 버러지들은 완전 소탕이 불가능하니 그나마 ‘건실’해 보이는 놈이 새로운 뒷골목의 왕좌를 차지하도록 놔두었다.
즉, 지금 놈이 이곳에 버젓이 서 있는 건 내 아량 때문이었다.
“쯧.”
난 혀를 차며 그를 무시했다. 그러자 놈이 눈썹을 치켜뜨며 내 어깨를 잡으려고 했으나, 난 더 이상 방해받기 싫었다.
풍종도보의 경공을 밞으며 순식간에 앞으로 뛰어갔다. 단 몇 초 만에 몇 백 미터의 거리를 벌린 난 뒤를 돌아보며 그들에게 말했다.
“뭐하십니까. 굼벵이처럼. 따라오십시오.”
이곳의 헌터들은 단지 날 사냥개로 여겼다. ‘모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추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난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건방지군. 이 일이 끝나면 선후배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겠어.”
그래서 저렇게 쉬이 날 협박한다.
난 뭐, 그러려니 했다. 하이월의 두목은 과연 단지 세력만으로 한 자릿수 랭커에 오른 게 아닌지 금방 날 따라잡았다. 그러나 난 다시 한번의 움직임만으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잘 따라오십시오. 이곳엔 아이를 맡길 탁아소가 없으니 길을 잃어버리면 울든 말든 놔두고 갈 겁니다.”
그는 황소처럼 성난 걸음으로 뛰어왔지만, 난 피식 웃으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야말로 똥개 훈련이다. 장담하건대 지금부터 그는 내 옷깃조차 잡지 못할 것이다.
“이쪽이로군.”
난 노는 건 그만하고 목소리를 더 자세히 듣기 위해 해변 쪽으로 이동했다. 방금 전에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렸으나, 가까이 가기 전까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수십만 명의 감염자 사이에 숨어 있는 놈을 찾기 위해선 직접 좀비 떼 사이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듯했다.
다시 속도를 높여 풍종도보의 경공으로 감염자들이 있는 해변 쪽으로 달려갈 때였다. 난 살짝 놀라고 말았다. 내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는 그를 보면서 말이다.
‘이 자는…….’
그는 풍종도보의 경공을 밞고 있는 내게 뒤처지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그의 달리기는 발이 지면에 닿지 않았다. 거의 날다시피 했는데 그에게서 내 몸이 흔들릴 만큼 강한 강풍이 몰아쳤다.
분명 탄자니아의 ‘우페포(질풍)’란 별명을 가진 ‘은예레레’다. 랭킹 7위의 강자로 ‘검은 표범’과 더불어 헌터 랭킹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프리카인이었다.
떨쳐 내기가 쉽지 않았다.
한 자릿수 대의 랭커, 역시는 역시란 느낌이다. 홀로 상황을 해결하려던 난 살짝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목적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까지 그들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겠어.
*
헌터들과 같이 모체 감염자를 탐색했다.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도달하자 득실거리는 감염자들이 떼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마물의 알의 부화 장소가 된 인간들은 평범한 인간보다 수 배는 강력한 근력과 민첩성, 믿을 수 없는 재생력을 지녔지만, 우리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물론, 랭커들도 감염자들을 상대하지 않고도 충분히 피해서 이동할 수 있었다.
랭커인 헌터들이라 다들 목적은 잘 지켜 주었다. 이번 계획의 가장 중요한 점은 감염자들을 다시 인간으로 돌리는 것이다. 학살이 아닌, 구원이다. 괜한 희생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게 최선임을 그들도 잘 알았다.
“큭, 저놈은 뭐야?”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하이월의 두목은 갑자기 나타난 무언가의 습격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발이 묶이게 되었다.
“좀비 같은 감염자만 있는 게 아니었나?”
강한 헌터마저 긴장하게 만든 습격자, 놈은 괴물이었다. ‘인간’이 아닌 괴물. 숙주를 먹어 치우고 부화한 흉포한 괴물이다.
“빌어먹을, 그런 거였군.”
난 금방 이변을 눈치채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인간들에겐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빨리 부화한 건 ‘숙주’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흔히 능력자라고 불리는 인간 돌연변이들. 기괴한 힘인 ‘마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에겐 없는 마나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심어진 알은 더 많은 양분을 얻었을 테고, 그로 인해 평범한 숙주보다 빨리 부화하게 된 것이다.
괴물은 마치 사마귀와 닮아 있었다. 손이 검의 날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변했으며 얼굴엔 곤충처럼 홑눈과 곁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눈알이 달려 있다.
전에 원장님이 처치할 때 자주 벌레의 생김새를 본 적이 있지만, 저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능력자를 잡아먹고 태어난 변종이라 그런가?
확실한 건, 훨씬 더 위험한 느낌이다.
쿵!
“제기랄! 이봐! 안 도와줘?”
거구의 남자가 괴물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진다. 절대 그가 약한 건 아니다. 그 증거로 공격을 가한 사마귀 놈의 두 팔이 오히려 잘려 나갔다.
그러나 뒤이어 놈과 같은 변종 괴물들 수십 마리가 나타나자, 하이월의 두목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레이디 콘웰이 자신의 신비로운 능력인 ‘보호’로 하이월의 두목을 지켜 주는 동안 우페포 은예레레가 질풍처럼 놈들 사이를 누비며 기다란 검으로 괴물의 머리통을 잘라냈다. 변종 괴물의 힘은 상당했지만, 일류 헌터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이런, 또 몰려드는군.”
한차례 전투가 끝나고, 그동안 말이 없던 은예레레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골짜기의 능선에 있었다.
위이이잉-!
뒤이어 벌레의 시끄러운 날갯짓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골짜기에 숨어 있던 놈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소리였다. 난 족히 수백 마리는 될 법한 괴물들을 바라보며 뺨을 긁적였다.
“능력자가 이리 많았어?”
전이가 가속될수록 지구에 능력자가 많이 탄생한다는 통계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설마 수십만 명의 감염자들 사이에도 이토록 많은 능력자가 있었다니.
괴물로 부화해 버린 그들을 바라보던 난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를 탓하는 건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그래도 빌어먹을 휴가를 보내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헌터들이 싸움을 준비할 때 난 천천히 메타소드를 들어 올렸다. 그들의 고통을 안다. 목소리가 들린다.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기이하게도 아직 모든 정신이 먹히지 않은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원하는 건 알았다. 저런 꼴로 살고 싶지는 않을 것, 그러니 내가 줄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악몽에서 온 놈들이니 이 힘은 통하지 않겠지.”
처음엔 ‘그것’의 힘을 끌어 올렸으나 이내 잠재웠다.
메타소드가 점점 모습을 바꾼다.
붉은 송곳니, 홍아.
그러나 이번엔 모습이 다르다.
확장의 힘을 머금어 붉은 대검처럼 커졌다.
“대염화의 고리.”
난 하늘을 메운 그들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 불꽃은 내 의지에 따라 피어오른다. 발화점은 괴물의 중앙이었다.
“지옥 불 같네.”
난 내가 만들어 낸 불꽃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을 휘감은 불길은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괴물을 재로 만들었다.
검은 재와 연기를 흩뿌렸고, 하늘은 붉게 타올랐는데 그 광경이 마치 지옥의 하늘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애석하게도 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불길이 치솟아 하늘을 태우고 재가 휘날리는 게 왜 저리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불에 타 죽은 괴물들이 재가 되어 땅에 내리자 퀴퀴한 냄새와 더불어 주변이 온통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난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재를 털어 낸 뒤 뒤를 돌아봤다.
“서두르죠.”
멍청한 표정을 한 헌터들은 내가 멀리 가는 동안에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
괴물들의 습격은 헌터들의 인식을 바꾸었다. 그들은 심지어 부화되기 전의 인간마저 공격하려 들었는데 난 그들을 막아 세우며 경고했다.
“인간은 공격해선 안 됩니다.”
거구의 남자, 하이월의 두목이 반발했다.
“FU! 놈들이 인간으로 보이나? 언제 괴물이 될지 몰라!”
그는 아직까지 날 사냥개로 본 걸까. 그를 시험하기 위해 가만히 노려봤다.
칫!
그러자 내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한 유일한 반항은 혀를 차는 것이었다. 난 히죽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암흑가의 왕이 된 자치고는 귀여운 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