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좀비 (4)
마침내 발견했다.
수십만 명 감염자와 수백 마리 괴물들 사이에서 불과 몇 시간 만에 찾아낸 것이다. 헤롯의 자주 벌레가 기생하고 있는 모체 숙주는 다른 감염자와 다름없이 행동하며 자신의 수십만 개의 알을 조종하여 내 시선을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놈이 아무리 피하고 숨어도 내게서 도망치지 못했다. 나무가 숲에 숨었다 한들 못 찾아낼 리 없다. 내겐 네놈의 목소리가 들리는걸.
[헤롯을 갉아먹는다. 헤롯을 갉아먹는다. 헤롯을 갉아먹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뚜렷해졌다.
모체 숙주는 발악하며 다른 숙주들에게 공격을 명령했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단지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주변에 뿌리고 기운을 살짝 흘려 넣는 것만으로도 끈끈한 덫이 되어 내게 다가오지 못했다.
“너.”
난 모체 숙주를 바라봤다.
인간, 어린 소녀다.
그러나 이미 죽은 시체다.
이 소녀의 안에 놈이 있다.
제 알들이 부화하면 다시금 새로운 숙주를 찾아 어슬렁거릴 끔찍하고 악랄한 기생 마물이 있다.
[헤롯을 갉아먹어…….]
놈의 목소리는 기괴했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읊조렸다.
원장님은 놈을 헤롯의 자주 벌레라 불렀는데, 그 이유에 대해선 알려 주지 않았다. 다만 아주 오래된 신화와 실존임을 구별하지 못하는 시대에 처음 나타난 벌레라고 한다.
“망할 놈.”
난 놈이 어떤 기원을 가졌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숙주의 이마에 손바닥을 얹고 천천히 내 기운을 집어넣었다. 동남아시아를 공포에 몰아넣고 지구를 멸망시킬 뻔했던 마물이었으나 정작 본체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헤롯의…….]
샐러맨더의 기운이 모체 숙주의 몸속에 깃들자 놈의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놈이 죽으면 부화되기 전의 알은 연결이 끊겨 행동을 멈출 테고, 숙주가 된 인간은 서서히 원래의 육체를 되찾고 그 과정에서 이물질에 지나지 않는 알은 역으로 그들을 건강하게 만들 영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었다.
이제 끝났다.
놈이 죽으면 이 사태는 끝나.
“이상해.”
그러나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등 뒤를 기어 다니는 듯했다. 평소처럼 일을 끝낸 후 느껴지는 개운함이 없었다.
분명 끝난 일이었으나 왠지 내가 놈을 불태울수록 기묘하고 불쾌한 감각은 더 커져만 갔다. 이내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피부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젠장.”
난 이 감각을 외면하지 않았다.
육감이란 걸 믿게 된 건 마물원에서 일하고 나서 부터지만, 날 수차례 구했던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은 이제 오감보다도 신봉하게 되었다.
안 돼.
이 녀석은 죽이면 안 돼.
그 판단의 근거는 단지 내 본능일 뿐.
“기생 마물을 죽이지 않습니다.”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긴장을 풀고 있던 헌터들이 내 말에 몸을 일으킨다. 이번엔 레이디 콘웰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내게 질문했다.
“왜?”
내가 대답했다.
“죽이면 안 돼요. 절대.”
이젠 확신이었다.
절대 죽이면 안 돼.
제길, 마물의 목소리를 듣는 내가 속았던 거야. 빌어먹을 부화의 스위치를 내 손으로 직접 누를 뻔했어.
*
녀석을 ‘죽이는 행위’로 인해 놈과 찰나 동안 연결되었을 때였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마물은 원장님이 상대했던 자주 벌레와 다르다. 더 끔찍하고 악랄하며 교활한 괴물이다.
난 답을 원하는 헌터들에게 내가 알아낸 것에 대해 설명해 줬다. 모체 숙주에 기생 중인 마물을 죽이면 알들이 활동을 중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상태로 활성화되어 성장이 끝나지 않아도 괴물로 부화될 거라고. 놈과 연결되어 놈의 목적을 알았으니 틀림없었다.
헌터들은 내게 방법을 물었다.
어느새 이곳에서 난 사냥개 따위가 아닌 유일하게 사태를 해결할 구원자가 되어 있었다.
“죽일 수 없다면 활동을 완전히 멈추게 할 수밖에 없어요.”
기생 마물과 부화하기 전의 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물이 죽으면 알들은 성장하지 않은 채로 부화한다.
죽이지 않으면 숙주의 영양분을 빼앗아 부화하게 된다. 어느 선택지를 골라도 결국 감염자들은 죽고 알들은 부화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다.
지금 상태를 한시적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기생 마물이 죽지 않은 채 행동을 멈춘다면, 세포처럼 연결되어 명령을 듣는 알들 또한 일시적으로 행동을 멈출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 침착하게 행동했다.
“방법은 있어요.”
부화 스위치를 누르기 전에 알아차려서 다행이다. 교활한 놈은 제 의도가 들통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말을 걸었으나, 난 놈을 멈출 방법을 이미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모든 부분이 기이하게 짝이 없는 놈이라도 약점은 명확했다. 헤롯의 자주 벌레는 낮은 온도에 노출되면 식물이 시들 듯이 행동이 둔해진다.
놈이 말레이제도에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적도 부근의 열대 지방은 놈이 좋아하는 고온 다습한 곳. 이처럼 활발히 제 알을 퍼트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지.
더위를 좋아하는 놈은 반대로 추위에 약했다. 게다다 샐러맨더의 불꽃을 버텨 냈던 강인한 놈이라면 동결시키더라도 죽지 않은 상태로 활동을 멈출 것이다.
난 내 안의 다른 기운을 끌어올렸다. 니플헤임의 강렬한 추위 속에서 사는 녀석들의 기운이 몸을 휘감는다.
“너 머리색이…….”
레이디 콘웰이 걱정하며 내 하얗게 센 머리에 손을 뻗다가 이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보호의 능력을 지닌 랭커마저 휘몰아치는 냉기에 상처를 입었다.
“뒤로 물러나 있어요.”
난 헌터들에게 경고하며 극한의 냉기를 자아내는 ‘얼음의 창’을 들어 올렸다.
“대홍연화(大紅蓮華)”
내 외침과 더불어 투명한 얼음의 창은 점점 붉게 변하였다. 난 창을 모체 숙주의 머리에 찔러 넣었다. 외적인 상처는 없었으나 극한의 냉기는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기생 마물을 순식간에 덮쳤다.
이내 마물이 얼어붙었고, 그 순간 섬에 있던 모든 감염자들의 움직임이 태엽이 끊어진 인형처럼 일제히 멈췄다.
우두커니 멈춰 선 감염자들은 살아 있으나 ‘명령 체제’가 사라져서 활동을 중지한 상태였다.
난 동결한 모체를 짊어진 후 헌터들에게 말했다.
“수고했어요. 당신들 할 일은 다 끝났어요.”
그러자 하이월의 두목이 날 노려보며 말한다.
“그건 어찌할 생각이지?”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이건 내가 들고 가서 잘 얼려 둘게요. 어차피 곧… 아니,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잘 해결됐다고만 생각하세요.”
지금까지 한 일들이 단지 시간만 벌어 준 것에 지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곧 원장님이 돌아온다.
그러면 뭐, 끝난 거지.
난 멈춘 감염자들 사이를 터벅터벅 걸으며 지나갔다. 이제 어울릴 만큼 어울려 줬으니 마물원까지 돌아갈 땐 골렘을 타야겠다.
딸깍.
원장님이 건넨 ‘키’를 작동시켰으니 곧 이 섬으로 골렘이 날아오겠지.
“어딜 가는 거지?”
그때였다.
세 명의 헌터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내게 질문해 왔다.
“그건 가져갈 수 없어.”
“왜요?”
“그토록 위험한 걸 개인에게 맡길 순 없지. 협회의 관리 하에 엄중히 보관해야 해.”
“…릭스틴 연구소로 가져다 줄 건데요?”
“그것도 안 되겠는데.”
난 레이디 콘웰을 바라봤다.
알고 보니 그녀도 한통속이었나 보다. 세 명의 랭커와 부하 두 놈은 확실히 날 적대하고 있었다. 난 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을 바라보다 동결된 모체를 내려놓았다.
“괜찮네.”
난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괜찮네. 기다리는 동안 심심했는데 잘됐어.
*
긴장감이 감돌았다.
세 명의 랭커는 수많은 전장에서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무명의 초보 헌터임이 분명한 젊은 동양인 사내를 상대로도 절대 방심하지 않으며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 줬던 위용은 대단한 것이라 인간을 벗어난 초월자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레이디 콘웰은 랭커들조차도 ‘초월자’라 부르는, 항상 도복을 입고 다니는 한국인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를 경계했다.
세상엔 존재해선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그들은 랭킹 15위 안에 드는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듣도 보도 못한 무명의 헌터에게 지는 걸 상정하고 있었다.
그건 관록이자 지혜였다.
그들을 랭커로 만들게 해 준 노련함이다. 자기보다 강한 헌터들은 있었으나 그들을 겸손하지 못했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헌터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언제나 불가능한 일들을 염두하고 있어야 함을 랭커들은 뼈저리게 깨우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협력했다.
원래부터 협회 소속으로, 만에 하나의 상황이 닥칠 때 서로 협력을 하는 사이였으나, 지금처럼 약속하지 않아도 일제히 공통된 적을 깨우친 건 다정이 보여준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 아무리 불가능을 상정하고 있다고 해도 셋의 랭커가 힘을 합했다.
그들이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다.
랭커로서 그들은 지금 절망을 느끼고 있다.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책망하며 굴욕을 맛봤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이 모든 굴욕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저건 강력한 무기로!’
‘암시장에 팔면 유례없는 가격!’
‘미래를 대비할 중요 자원!’
좀비 사태를 만들어 낸 기생 마물의 모체 숙주. 잔뼈 굵은 랭커들은 본능적으로 그 가치를 알아봤고, 뺏기지 않기 위해 먹잇감을 노리는 이리처럼 서로 협력을 했다.
적은 단 한 명이었다.
젊은 동양인 사내.
힘을 예상할 수 없으나, 랭커 셋 이라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뒷골목의 왕이 그에게 말했다.
“잠자코 그걸 내려놓고 도망쳐라. 그러지 않으면 우린 안타깝게도 널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거 괜찮네.”
하지만 협박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걸어왔다. 성큼성큼, 너무나 당당하여 마치 반갑게 인사라도 나눌 것같이.
세 명의 랭커는 분명 싸울 각오를 했다. 그러나 그가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도 누구 하나 먼저 나서지 않았다.
“다시 말해 봐.”
남자가 질문한다.
질문을 받게 된 하이월의 두목은 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꼈으나, 굴욕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은 협회가…….”
문답 무용.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항상 뼈를 부러트리던 무자비한 사내가 이젠 변명거리를 찾으며 그의 질문에 대답한다. 긴 연설, 그럴 듯한 설득.
“싫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나 짧았다. 남자는 당황하며 동맹을 맺은 두 헌터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자신보다 랭킹은 낮으나 분명 힘은 더 강한 우페포 은예레레가 말을 꺼냈다. 그는 성격이 질풍처럼 사납고 날카로워 두려워하는 자가 많았으나, 지금은 그 또한 혀를 길게 놀렸다.
“싫다니까, 콱 씨.”
그러나 역시, 들려오는 대답은 간결하다.
셋은 자신들이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 싸우고자 각오를 하였는데, 어찌하여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길 부디 저 남자가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비는 걸까?
“아, 왔다. 그럼 난 간다?”
하늘에서 기묘하게 생긴 비행기가 내려오자 그는 모체 숙주를 들고 탑승했다.
이대로 두면 놓치고 만다.
막아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위기를 헤치며 많은 전장을 경험했고, 사악한 악마와 끔찍한 괴물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랭커들은 그가 떠나는 동안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잘 지내.”
마침내 기괴한 비행기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그들은 움직일 수 있었고, 너, 나 할 것 없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랭커들은 알지 못했다.
그저 상대가 믿을 수 없이 강했음을 깨닫고 있었을 뿐.
왜 자신이 덤빌 각오조차 생기지 않았는지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건 ‘존재력’의 차이였다.
다정은 수년 간 마물원에서 지내며 용의 가디언으로서 착실하게 임무들을 수행했다.
언뜻 대수롭지 않는 일들도, 세계를 구하는 중요한 일들도, 사실 용이 그에게 내린 임무들은 모두 하나의 과정이었다.
드래곤이 자신의 가디언을 인정하는 행위다. 비틀림도 많았으나, 치밀하게 짜인 임무들은 다정의 존재력을 높여 줬다. 지금에 이르러 완전히 용의 가디언이 된 그는 그 자체만으로 인간을 벗어난 초월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임무 속에서도 비틀림의 시련이 발생했고, 다정은 용조차 예상하지 못한 위기를 이겨냈다. 지천괴왕이 되었으며 신을 죽였고, 신수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랭커들은 인간 중 최강자였으나 다정은 초월자였으며,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깨닫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한계를 벗어나기 전의 경지라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던 것이다. 만약 그 차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미련한 자였다면 끔찍한 결과를 맞이했을 것이다.
존재력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이라면 모두 느낀다. 다정 또한 면접 때부터 파르바티를 두려워했다. 용이라는 이유를 제외하고도, 처음부터 그는 존재력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존재력은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순 없었다. 감출 수도, 사라질 수도, 혹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양해의 바다’에서 파르바티가 찰나의 두려움을 느꼈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