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악마 (1)
난 더 이상 사정을 물어보지 않았다. 만약 내게도 복수의 대상이란 게 생긴다면 나 역시 그 시간을 공유하진 않을 것 같았다.
깊어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복수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의 정의관에 대하여 알려 줬다. 용서와 관용으로 구제할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 가여운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손을 더럽히겠다고 했다.
“신부님.”
난 실례되는 질문임을 알았으나 물어보고야 말았다. 지금까지 내게 종교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 ‘신’이 존재함을 분명히 안다.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다.
우딸리깔딸리들의 여왕.
내가 죽였던 신.
분명히 여왕은 실존하였으며 우딸리깔딸리들에게 여왕은 인간들이 섬기는 신과 동일한 개념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신이란 대체 무엇인가. 난 이계의 신들을 언급하며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독실한 종교인은 이계의 전이로 뒤바뀐 이 세계를 어떤 관점에서 지켜보고 있을까.
“전 이계의 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한 신부님도 악마들이 존재함을 아시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신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요?”
대단히 무례한 질문이라 민감하게 반응해도 이해한다. 그러나 김정호 신부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마와 이계의 신들이 존재함으로써.”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럼으로 난 더욱 우리의 신을 믿게 되었지요.”
애매모호한 대답이었으나 난 김정호 신부님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건대 사실 그에게 신이란 존재의 유무의 확실한 답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이 믿음으로써 저리 단단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여전히 난 이해하기 버거웠으나 다른 한편으론 존경심이 들었다. 김정호 신부에겐 어두운 이면이 있었으나 신부로서의 삶은 희생적이었다.
헌터들은 악마를 죽이면 명성과 부를 얻지만 그에게 남는 건 ‘가녀린 자’들의 감사 인사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단지 믿음으로써 택한 순수하고 희생적인 삶이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다정 씨의 마음에도 털어놓지 못한 게 있는 듯한데, 언제라도 제게 찾아오십시오. 말하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이 상쾌해질 겁니다.”
“불가지론자의 고해성사도 들어 주나요?”
“초록색 병 하나만 있으면 다 되지요. 하하.”
술자리가 끝난 시점에선 이미 동이 트고 있었지만, 술기운에 취해 있던 김정호 신부는 곧바로 가톨릭 고아원으로 돌아갔다. 구마사제로서의 일뿐만 아니라 신부로서의 본분 또한 지키고 있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흠. 시간이 나면 고해실을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대전이 이후 다양한 이계의 문물과 생물과 종족들이 지구에 뒤섞였고 지구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멸망의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인류는 어떻게든 적응을 했으며 잡탕찌개가 된 세계에서도 어엿하게 지구의 안방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슬프게도 ‘아직까지는’.
전이가 가속화될수록 기괴하고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 생겨난 인간들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구가 찌개 그릇이라면 미처 담을 수 없는 거대한 건더기들이 이제 슬슬 지구로 넘어올 징조를 보였다. 능히 신이라 불리는 강한 존재들이 말이다.
쉽게 말해 지구와 인류가 겪는 시련이 게임의 스테이지라면, 20년 전엔 LV 1 수준, 지금은 슬슬 LV 10 ‘보스’가 나올 차례라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전이로 발생한 어떤 현상보다도 훨씬 위험하고, 이해할 수 없으며, 강력한 불가지해의 존재들이다. 원장님은 그때가 되면 진정한 전이가 시작된다고 했었지.
“다정 씨.”
점점 징조가 나타나고 있음을 전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난 확실히 깨닫고 있다.
“부산 연안에 솔로몬의 탑이 전이되었어요. 다른 자들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아 놨으니 서둘러 돌려보내야 해요.”
“벌써 나타났다고요?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지 겨우 이틀이 지났어요.”
특히 근래 무엇보다 심각해진 건 솔로몬의 탑이다. 우주의 온갖 해로운 악마들이 봉인된 탑. 악의로 가득한 그곳은 시궁창보다 더럽고 죽음보다 더 절망적인 곳이라지.
지구에 몇 번 나타난 적은 있었으나 보고된 사례는 기껏해야 일 년에 열 건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시작하여 솔로몬의 탑이 불쑥불쑥 자주 튀어나오더니 이젠 며칠에 한 번 꼴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원장님은 내 대답에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오므렸다. 원장님은 어떤 위기가 와도 보통 담담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저처럼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는 건 드래곤인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렵게 여기는 일이 닥칠 때뿐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원장님이 말했다.
“다정 씨는 일단 이 일을 우선 처리해 줘요. 빌어먹을.”
흔치 않게 욕설까지 내뱉으며 원장님은 신경실적으로 커피를 내렸다. 오늘 마신 커피만 해도 다섯 잔이다.
난 오랫동안 마물원에서 일하며 나름의 위기 경보를 만들었는데, 그건 원장님이 커피를 마신 횟수였다.
한 잔이면 평소, 두 잔이면 생각할 게 있음, 세 잔부터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넉 잔 이상부턴 무척 골이 난 상태로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정말 위험하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선 원장님의 심기를 거슬러선 좋을 게 없기에 난 즉시 솔로몬의 탑을 제거하러 간다고 말했다.
“일을 끝내고 나면 마물원으로 돌아와 내가 돌아올 때까지 대기하세요.”
원장님은 ‘로드’의 시선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이젠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겠다며, 솔로몬의 탑이 이토록 자주 전이되는 이유를 찾으러 간다고 했다.
“어떤 놈인지, 감히 탑을 강제로 불러들이려고 하다니.”
아직까지 ‘지구’란 차원은 여물지 않아서 탑의 존재력을 감당할 수 없는데, 분명 이 일엔 탑의 전이를 원하는 배후가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난 즉시 화난 원장님을 피해 골렘을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원장님보다 솔로몬의 탑의 악마들을 상대하는 게 당연히 더 낫다. 드래곤의 골렘은 순식간에 날 부산 연안까지 데려다줬다.
부산, 영도의 태종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 평소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다. 그러나 주말 낮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나를 보아하니 원장님의 결계 때문인 것 같았다.
“벌써부터 냄새가 지독해.”
느껴졌다.
솔로몬의 탑이 내뿜는 강렬한 악의와 불쾌함을. 난 절벽 바위의 기암괴석으로 다가갔다. 겉으론 전혀 알아차릴 수 없으나 분명 이곳에 있다. 나라서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악마의 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여기로군.”
난 절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단단한 바위의 질감이 아닌, 물컹하고 끈끈한, 바위에게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촉감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난 천천히 손을 밀어 넣었다. 내 손은 불쾌한 감촉의 바위 안까지 무리 없이 빨려 들어갔다.
“하아. 이번엔 어떤 엿 같은 놈이 있을지.”
난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뱉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탑은 다른 솔로몬의 탑과 다르게 주변의 환경에 의태하고 있었다.
난 감춰진 입구에 망설이지 않고 몸을 던졌고, 불쾌한 끈적임에도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느껴지는 건 끔찍한 악취와 몸을 휘감는 불쾌한 감촉.
젠장, 마인부우에 흡수당하는 오반이 된 것 같다.
역겨움을 인내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러나 거리가 좁혀지진 않았다. 도플갱어 때처럼 시련을 주는 솔로몬의 탑이 아니라 전에 싸웠던 문어 놈과 같이 탑의 주인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나 아무리 걸어도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
“젠장.”
한참을 걸었을 때였다.
난 뒤늦게 깨달았다.
난 이미 솔로몬의 탑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벌써 탑의 악마를 만났다. 놈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난 조용히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어떤 엿 같은 놈이 나올까 했더니 빌어먹게도 이번 싸움은 역대 가장 역겨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야.”
난 담담히 말했다.
“내가 맛있니?”
놈의 뱃속에 갇힌 것치고는 너무 태연한 반응인가?
망할.
*
예전에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래, 신비한 스쿨버스를 본 이후에 생각했던 것이다. 그 만화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아이들은 작아진 스쿨버스를 타고 사람의 육체에 들어가 몸 속을 탐험했다. 입과 식도를 지나 위와 장을 걸쳐 결국 똥구멍으로 나왔던가?
그걸 보면서 어린 난 이렇게 생각했었다. 난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몸 안에 작아진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을 거야. 정말 무서울 거야.
갑자기 커지기라도 하면?
만에 하나 버스가 터져서 불이라도 붙었다면?
누군가가 발을 잘못 헛디뎌 내 심장에 꽉 발 도장을 남긴다면?
“대체 뭐 하는 놈인진 몰라도.”
물론 놈의 속은 사람처럼 나약하지 않다. 질기고 단단한 벽은 검을 힘껏 찔러도 튕겨 내며 위액인지 뭐인지 산성액을 내뿜어 먹잇감인 날 녹이려 들었다.
악마라 그런지 평범한 생물의 뱃속이 아니라 먹잇감을 잡아먹기 위해 고안된 함정같이 기괴했다.
“먹을 게 따로 있지. 쯧.”
하지만 그뿐이다.
놈은 잘못 삼켰다.
뭐, 내가 놈의 입으로 강제로 비집고 들어간 것이지만, 곧바로 뱉어 내지 않은 건 대단히 후회할 선택이었다. 난 놈의 뱃속에서 커질 수도, 녹일 수도, 독을 뿌릴 수도 혹은 생각도 못 했던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놈을 죽일 수 있었다.
이 더러운 곳에서 나가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할까 고민하던 난 문득 뜨거운 감자를 삼켰을 때가 생각났다. 정말 식도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
화르륵!
난 내 몸으로부터 치솟는 불길을 보며 이 불쌍한 악마를 향한 일말의 동정심이 들었다. 하지만 감히 날 먹으려 들었으니, 역시 아무래도 이게 좋겠다.
“대염화의 고리!”
고약한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
우에엑!
난 목구멍에 가득 찬 놈의 체액을 뱉어 냈다. 빌어먹을 놈이 불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벗어나기 위해 힘껏 살 벽을 터트렸는데, 그 순간 막대한 체액이 쏟아지며 날 휩쓸었다. 솔로몬의 탑, 한정된 공간이라 피할 수도 없어서 고스란히 역겨운 고름 속에서 헤엄쳤다.
놈은 상당히 끈질겨 쉽게 죽지 않았다. 몇 시간이나 놈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고름의 바다에서 고통받았다.
결국 놈이 죽고 탑이 무너지며 나오긴 했으나 몸엔 콧물 같은 체액이 잔뜩 묻은 상태였다. 전신에 달라붙는 끈적거리는 액체는 타르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역겹기 짝이 없었다.
난 재빨리 바다에 입수했다. 악취는 박박박 몸을 씻어 낸 후 샐러맨더의 기운으로 날려 버리고 나서야 괜찮아졌다.
“후우.”
난 다시 내가 들어갔었던 절벽을 만져 봤다. 단단하기만 했다. 솔로몬의 탑이자 악마였던 놈은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었다. 차라리 피 터지게 싸우는 게 낫지, 이런 괴물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네.
“비린내가 왜 이렇게 심해.”
놈의 악취가 가시질 않아서일까. 주변에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진동했다. 난 심한 피비린내를 맡으며 절벽에서 올라왔다.
“어?”
분명 아무도 없어야 했다.
원장님의 결계는 사람의 접근을 차단한다. 유일하게 접근을 허락하는 건 원장님이 허락한 자이거나 감히 용의 결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존재일 뿐.
어지러웠다.
피비린내, 너무 어지럽다.
봉황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제발.
난 그들을 향해 뛰어갔다.
원장님이 접근을 허락한 존재, 솔로몬의 탑의 악마들을 상대하는 오타방의 사제들.
“신부님!”
흥건한 피 웅덩이 위에 누워 있는 그들을 향해 봉황의 기를 흘려 넣었다. 원장님의 결계마저 무너트린 존재, 그들은 그 존재에 의해.
“젠장! 신부님!”
죽었다.
봉황은 죽기 직전의 중상자마저 살리나 죽은 자는 살리지 못한다. 그 사실을 난 잘 알았으나 내 안의 마나가 모두 바닥날 때까지 김정호 신부님의 몸으로 흘려 넣는 봉황의 기를 멈추지 않았다.
기가 바닥나고 나서야 결국 난 손을 거두고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살아남은 자가 없다.
이곳에 파견된 모든 사제가 죽었다. 그들은 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몸의 피를 모두 쏟아 낸 듯 피 웅덩이 위에 누워 있었으며, 이마엔 ‘엑스(X)’ 자가 새겨져 있다.
김정호 신부님과 사제들은 모두 한 놈에게 죽임을 당했다. 난 그의 이마에 새겨진 표식을 보며 강렬한 기분에 빠졌다.
경고.
이건 누구도 아닌.
나에 대한 경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두려워서가 아니다.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무언가 때문이다. 그러나 난 지금 내 심장을 옥죄는 족쇄가 무엇인지 잘 알았다. 난 김정호 신부님의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를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말했었다.
복수의 때가 오면 그 시간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라고.
“원장님.”
통신기를 켜 원장님에게 말했다.
“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난 간신히 인내하며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나만의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