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악마 (6)
단비는 거대한 나무가 된 이후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으나 하늘에 나타난 불길한 문을 막아 주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내가 보아도 분명 종말의 한 장면이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내 감상과 마찬가지인 듯했다. 국가 병력과 헌터 협회, 또한 알 수 없는 세력들의 능력자들이 거리에 나왔다. 그러나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첫 전이가 일어나던 그때 당시처럼 말이다.
치익-!
기괴한 장관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통신기가 작동하며 곧바로 원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수가 ‘이형의 문’을 막고 있는 동안 당장 마물원으로 가 ‘케르베로스’를 대면하세요!]
다급한 목소리인 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으나 원장님의 명령이 너무 이해하기 버거운 터라 난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문이 이형의 문이며 아마 열린다면 종말급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단비가 막아 내고 있으나 문이 열리는 건 시간문제, 임시방편일 뿐이겠지. 그런데 왜 원장님이 막으러 오는 게 아니라 마물원으로 가서 케르베로스를 만나라는 거지? 그 끔찍한 괴물 놈을?
“대체 저 문은 뭐고, 왜 케르베로스를…….”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요.]
질문하자마자 원장님은 빠르고 간결하게 설명을 해 줬다.
이형의 문이라 불리는 저건 솔로몬의 탑의 ‘한 층’ 전체가 전이되는 현상이며, 그 자체로도 위험하나, 더한 문제는 대전이의 시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만한 존재력이 아직 여물지 않은 지구의 차원에 전이되면 힘의 이끌림으로 가장 먼저 솔로몬의 탑이 전이, 아니 지구 자체가 솔로몬의 탑으로 전이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왜 케르베로스를 만나야 하냐고 물으니 원장님은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며, 위험한 존재지만 지금은 위기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난 케르베로스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공간 너머’에서도 단지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했던 존재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진 지금의 나라도, 난 그와 마주할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빌어먹게도 선택지는 하나였다.
*
곧장 골렘을 타고 마물원으로 날아간 난 ‘종말급’ 마물을 가둔 마물원의 가장 깊숙하고 비밀스러운 우리로 향했다. 드래곤의 가디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뒤에 지급받은, 원장님이 준 열쇠가 아니라면 결코 열지 못하는 우리다.
난 그중 가장 많은 공간의 뒤섞임과 결계로 보호되고 있는 우리로 향했다. 그 우리는 단지 유리창 하나만 있을 뿐이지만 보는 것과 달리 무수한 공간의 절단이 발생하는 곳이다.
이처럼 공간을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가둘 수 없는 존재다. 대전이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아 몸이 찢겨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으나 약해진 지금도 그의 힘은 강렬했다. 그에게 ‘가둔다’는 개념은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면 공간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르베로스, 솔로몬의 탑 600층의 문지기.
긴장된다.
아무리 나라도 떨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솔로몬의 탑의 괴물들이 기껏해야 100층도 넘기지 못했으며, 솔로몬의 탑의 존재들은 666층과 가까울수록 더 사악하고 강성한 힘을 지녔다는 걸 알기에 600층의 문지기의 힘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네.”
난 유리창 너머의 놈을 바라봤다.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으나 심장이 격하게 두근거렸다.
방금 전 악마 놈을 하나 죽이고 왔다. 그러나 케르베로스는 놈과 비견할 수 없이 공포스러웠다.
[그대.]
눈이 마주쳤으나 전처럼 빨려 들어가 놈에게 허덕이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보다 놈의 목소리가 선명하고, 자세하게 들려왔다. 난 녀석과 대화를 나눴다. 첫 만남이 거지 같아서, 놈이 악마처럼 사악하고 끔찍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난 그의 다른 면모를 엿봤다. 우선, 의외로 그는 솔직했다. 원하는 건 하나였다.
‘날 솔로몬의 탑으로 돌려보내 줘.’
난 그에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원장님이 케르베로스의 상처가 모두 치유된다면 그를 돌려보낸다고 했으니,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의 소망은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그는 내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이제 알겠다. 첫 만남을 상기하며 그가 날 배려했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케르베로스가 날 죽이고자 했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다.
내 교감의 힘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는 사악한 짐승이라기보다 신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고 느껴졌다.
그가 말하길, 그는 자신을 가둔 원장님을 증오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그는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솔로몬의 탑의 이변이 생겼으니 ‘문지기’인 자신이 없다면 결국 운명의 실타래는 끊어지고 말 거라고 했다.
[날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하늘에 나타난 이형의 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힘을 줄 테니, 그 힘을 사용하라고.
난 망설였다. 케르베로스의 힘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지금 상황 자체가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케르베로스의 힘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위기를 경고할 때만 육감을 믿는 건 아니다.
내 감이 어떤 초월적인 영역에 도달했다면, 지금의 내 판단을 믿어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원장님은 케르베로스를 찾으러 가라고 말했고, 저 삼두견이 내 교감의 힘을 속이며 악의를 숨기지 않았다면, 보다 순수한 의도와 목적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아까도 생각했듯이, 빌어먹게도 선택지는 하나였다.
젠장.
난 깊이 심호흡을 한 후 녀석을 바라봤고, 케르베로스의 세 쌍의 눈은 모두 적안을 떴다.
[곧 때가 와, 진의를 깨닫게 될 때, 너와 난 다시 만날 것이다.]
*
검은 뿔의 악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톱니바퀴를 돌려 자신의 세계, 마계의 층을 소환했다. 그 안엔 수만의 굶주린 마인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문이 열린다면 대재앙의 징조요, 종말의 시작이었다.
세계수의 가지가 이형의 문을 닫고자 했으나 아직 성장하지 않은 나무의 뿌리는 이형의 문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세계수가 점점 짓눌러 힘을 잃어 가며, 이형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이내 문 너머로 악마들의 팔이 뻗어질 때였다.
마치 꿈과 같았으며 거짓말과도 같았다.
사라졌다. 하늘은 다시 푸르렀고 햇빛은 화창했다.
하늘에 나타난 이형의 문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고, 서울엔 더 이상 불길함이 잔재되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 또한 그와 동시에 사라져 없어졌고, 재앙을 예견하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예상 못 할 상황에 당황하여 혼란스러워했다.
케르베로스는 문지기다.
그의 힘은 솔로몬의 탑의 분리된 층들을 유지시키고 고정시킨다.
대전이의 여파를 견뎌 낸 것도 그러한 이유다.
또한 그의 힘의 뿌리는 공간의 근본에 있으며, 근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
이형의 문이 사라진 후, 단비가 엉엉 울며 날아와 내 몸으로 기어 들어왔다.
녀석은 많이 아팠다며 울었는데, 정말 서럽게 울어서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녀석 때문에 종말을 한차례 막아 낸 것과 다름없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녀석의 털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녀석의 흐느낌이 점점 잦아들더니, 이내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
[피곤해, 오래오래 잘 거야. 나 깨우지 마.]
“알았어.”
단비는 날 요람 삼아 잠들었고, 난 화창해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케르베로스의 힘이다. 정작 내가 한 일은 없었다. 비유하자면 난 그저 전도체에 지나지 않았다. 녀석의 아주 일부분의 힘이 날 통하여 발현되었고, 그건 교감도 뭣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일부분의 힘만으로도 이형의 문은 사라졌고 그 너머의 ‘층’은 다시 솔로몬의 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난 케르베로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녀석은 정말 문지기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분방한 인간은 결코 이해 못 할 어떠한 사명을 지닌 녀석. 녀석이 원하는 건 단지 솔로몬의 탑 문지기의 역할과 의무뿐이었다.
“원장님은 언제 돌아오려나.”
이제 남은 건 검은 용, 그와 상대하는 원장님.
목소리를 들어보니 꽤 다급해 보이던데, 고전 중인 것 같았다.
설마 질 리는 없겠지만 역시 상대가 상대구나 싶었다.
아무리 원장님이라도 초전박살은 내지 못하는군.
*
“반골의 이무기는 용이 되지 못한다.”
붉은 용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용의 아래엔 부서지는 행성이 있었다.
그리고 폭발하고 부서지고 분해되고 소멸되는 행성의 중앙엔 날개가 찢긴 거대한 검은 뱀이 존재했다. 행성이 폭발할 때마다 무수한 파편들이 뱀의 몸에 박히며 그가 내뿜은 피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머리를 추켜들어 용을 올려다봤다.
“날 이무기라… 부르지 마.”
검은 뱀은 짧은 말을 내뱉으며 피를 토해 냈다.
피는 곧 행성의 파편에 스며들었고, 순식간에 별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브리트라, 가뭄의 뱀. 왕에게 대적하여 날개를 잃은 용.
그의 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원한이 서린 힘이었다.
곧 폭발하는 행성의 중력에서 벗어난 브리트라는 사악한 독니를 번득이며 은하수를 가르며 붉은 용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이 또다시 폭발하는 행성에 갇히고 말았음을 깨달았다.
일방적인 굴욕이다. 비록 날개를 잃었더라고 하더라도 자신은 악룡 브리트라. 그럼에도 발톱 하나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 저 위에 붉은 날개를 가진 자는 공간의 근본, 닿으려야 닿을 수 없는 존재.
“내게 힘을 보태. 증오하는 ‘그’에게 복수를 할 기회를 줄게.”
달콤한 제안,
그러나 브리트라는 수락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그녀 또한 복수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가뭄이 뻗어 나가 주변을 메마르게 한다.
악룡 브리트라가 다시금 속박에서 벗어나 활개 치던 그 순간이었다.
한순간, 그는 산산이 분리되어 우주의 무한한 차원의 연속되는 조각이 되었다.
용이 되지 못하더라도, 용에 가까운 브리트라는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포 단위로 분리되어 우주의 전역에 퍼져 나갔으니 아무리 악룡이라고 할지라도 본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붉은 용 파르바티는 허망하게 사라진, 한때 자신의 ‘동족’이었던 자의 흔적을 침울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어리석은 자, 이무기의 몸으로…….”
파르바티는 알았다.
솔로몬의 힘을 빌리고자 한 것도, 운명의 세 여신에게 다가가고자 한 것도 필시 잃어버린 용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였겠지.
“불쌍한 자.”
그녀의 동정은 진심이었다.
파르바티는 그의 최후에서 자신의 미래를 엿봤다.
왕에게 대적하여 지위를 잃어버린 용의 최후를.
*
이형의 문이 닫힌 이후 몇 시간 만에 원장님이 돌아왔다.
난 상처 하나 없는 원장님의 모습에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우울한 표정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명하며 곧장 원장실로 들어갔지만 말이다.
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물원에서 원장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원장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주일의 휴가는 날 위한 게 아니라 원장님을 위한 것 같았다. 그동안 난 마물원 빈 우리에서 기이하게 생겨난 ‘그 힘’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
이형의 문이라는 게 나타나 경황이 없어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으나 검은 뿔의 악마, 놈이 죽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을 때 놈의 힘의 일부가 내게 흡수되었다. 그로 인해 내 안의 어떠한 힘이 강해졌는데, 몹시 뜻밖의 힘이었다.
마물원 빈 우리.
아무것도 없는 단절된 공간.
그곳에 서서 난 그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내 등에 순백의 날개가 돋아나니 마치 천사의 날개와도 같다.
난 이 현상을 안다. 유니콘의 힘을 받아들였을 때(녀석과 뽀뽀했을 때) 이 날개가 돋아났었지.
이상한 건 그땐 한 쌍의 날개였으나 이젠 날개 아래에 작은 날개 한 쌍이 더 돋아나 4개의 날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힘은…….”
문득 검은 뿔의 악마와 싸웠을 때 이 힘이 있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해 봤다.
흠, 아마 야옹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됐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