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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31화 (231/258)

#231화. 어떤 것

일주일 후, 원장실의 문이 열렸다. 검은 용을 상대한 뒤 우울해 보였던 원장님의 표정이 생각났지만 문을 열고 커피부터 찾는 원장님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말씀드릴 게 있어요.”

“아침밥은 먹었나요?”

“아뇨.”

“토스트, 샌드위치?”

“샌드위치요.”

오랜만에 원장님과 마츄 우리의 언덕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우린 조용히 커피를 마셨는데 난 원장님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원장님은 분명 다를 게 없었으나 내 무당도 울고 갈 직감에 의하면 분명 어떤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검은 용을 죽인 이후 생긴 고민이니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닐 것이다. 궁금하긴 해도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물어봐도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원장님.”

것보다 내 용건부터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원장님에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속이 텅 비자 기이한 무언가가 내게 들어왔으며, 정신과 기억을 잃었던 것까지 모두 다 말했다.

“기억을 잃었다면.”

원장님이 짧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방법을 제시했다.

“세이렌의 힘을 이용해 볼까요?”

역시 그녀는 마물원의 원장님이다. 원래부터 세이렌의 힘을 이용하고자 했었는데 내가 말하지 않아도 원장님은 이미 그러고자 했다. 곧바로 실험은 속행되었다. 커피를 다 마신 후 원장님과 난 인어들의 서식지에 들렸다. 그곳에서 세이렌 무리를 만났고,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내 잃어버린 기억을 재생코자 했다. 하지만 교감의 힘과 원장님의 도움으로도 그날, 잃어버린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기억이 혼선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도달했다. 세이렌의 힘은 드래곤조차 다루기 버거운 위험한 것, 벼룩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되기 전에 교감을 멈췄다. 세이렌의 힘으로도 알 수 없는 건가? 원장님은 세이렌의 힘이 통하지 않자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깊게 생각할 때의 버릇이었다. 그걸 알기에 난 마물원으로 돌아올 때까지 침묵하는 원장님을 따라 입을 다물었다.

마물원으로 돌아오자 원장님은 무언가 알아보겠다며 원장실로 다시 들어갔다.

마물원 우리를 정리하고 인어들에게서 얻어 온 해백초나 마시면서 있자 오후 7시,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원장님이 문을 열었다.

“그건 다정 씨 기억이 아니야.”

원장님이 말했다.

“잃어버린 기억, 다정 씨 기억이 아니기에 떠올리고 싶어도 떠올릴 수 없었던 거예요.”

난 원장님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하루 종일 입을 다물고 있어 목소리가 잠기는 바람에 기침 몇 번을 한 후 대답해야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아니, 내 기억인데 내 기억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지?

알 수 없어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원장님은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말했다.

항상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는 원장님이 붉은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헝클이다니, 꽤 생각이 많았나 보다.

“역시, 아무래도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군요.”

원장님이 다가온다.

난 나도 모르게 움찔하여 뒷걸음질을 쳤다.

나와 있을 땐 기운을 감추고 있던 원장님이 이번엔 스리슬쩍 흉포한 드래곤의 기운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아봐야겠어. 다정 씨, 내게 그 힘을 사용해 봐요.”

난 깜짝 놀라 원장님을 쳐다봤지만 이미 공간은 변화된 후였다. 관리실의 풍경에서 순식간에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아마도 드래곤의 결계, 이곳에선 어떤 흉포하고 위험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해도 지구에 무리가 가지 않겠지.

“에이, 제가 어떻게 원장님을…….”

불길한 예감은 어찌 틀리지 않는가.

난 갑작스레 커진 원장님을 따라 고개를 추켜올려야 했다.

어느새 붉은 날개를 가진 드래곤이 날 내려다보며 입가에 일렁이는 불꽃을 머금기 시작했다.

“농담 아니야.”

원장님은 평소엔 상냥하나 가끔씩 저런 면모를 보이곤 했다.

자신이 드래곤, 그 변덕스럽고 막무가내인 존재라는 걸 자랑하듯이 말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끌어올리세요.”

빌어먹게도 난 지금 검은 뿔의 악마와 싸울 때보다 더 두렵고 심장 떨리는 상황을 마주했다. 위기감도 그때의 수배는 되는 듯하다. 물론 절대로 원장님은 날 죽이진 않겠지만 그와 비슷한 상황 정도야 얼마든지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였다. 그에 맞서 내가 가진 서투른 재주로는 잠시 후, 원장님의 입에서 뿜어져 나올 거대한 힘을 막아 내지 못한다. 결국 하나뿐이다. 원장님의 의도대로, 맞설 수 있는 건 녀석의 힘뿐.

“야옹아.”

이제는 익숙해진, 내 뒤에서 들려오는 야옹이의 울음소리.

기이하게도 검은 뿔의 악마와 싸울 때 이미 한 번 ‘텅 비어 버린’ 경험을 해서 그런지, 이번엔 마력이 가득하여 풍만한 상태에서도 야옹이의 힘을 전보다 더 강렬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것 또한 경험으로 숙련되는 건가? 우습네.

“아, 젠장.”

점점 그 힘이 발현될수록 입에 비린 맛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내 ‘위기감’에 따라 야옹이의 힘은 변화되었다.

젠장, 그래서 그런가?

그래서 이런 거짓된 상황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내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어둡고 불쾌하고 기이한 힘이 뿜어져 나오는 건가? 몸은 솔직하다는 건가? 하지만 원장님이라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이 불쾌한 감각이 사실은 황홀함에 가깝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도 괜찮겠지.

원장님이라면.

하아, 하아, 아파라.

검은 이가 돋아나고.

“원장님.”

[원장님.]

검은 털이 자라나.

[원해요.]

검은 그림자가 뒤덮이니.

[…….]

난 검은 짐승이 되었다.

*

눈을 뜨자 원장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시선을 마주하던 난 조용히 고개를 돌려 턱시도를 찾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있어 손만 뻗어도 됐다.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드래곤은 인간의 육체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태연히 옷을 입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옷은 갈기갈기 찢겼어도 마법 턱시도라서 다행이었다. 평상복이었다면 부끄러움에 수치사했을지도 몰라.

주섬주섬 옷을 갖추어 입고 원장님에게 물어봤다.

“무슨 일이 있었죠?”

나로 인해 발생했으나 정작 무슨 일인지 원장님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래도 예전엔 어렴풋이 기억은 났지, 검은 뿔의 악마와 대적한 이후로 상태가 정말 메롱이네.

“녀석이 나타났어요.”

원장님은 손가락으로 야옹이를 가리켰다. 녀석, 어디 있냐 했더니 원장님을 피해 저 멀리 떨어져서 제 몸을 그루밍하고 있었다. 난 야옹이를 불렀지만 녀석은 오지 않았다. 원장님을 힐끔 쳐다보는 걸 보니 내가 싫은 게 아니라 원장님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혼내 줬죠.”

그렇군. 이유가 있었구나.

이 힘이 야옹이의 힘인 건 안다. 그러나 다른 마물과 비교하여 미치는 영향과 힘의 수준이 다르기에 헷갈렸을 뿐이다. 어쨌든 야옹이의 힘으로도 원장님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구나. 뭐, 당연한 이야기다. 오히려 봐줬다고 해도 야옹이가 저리 멀쩡한 게 신기한 거지.

난 야옹이의 힘을 빌리기 전, 점점 정신과 기억을 잃어 가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몸이 온통 새까만 짐승처럼 변해 가며 어떤 강한 욕구에 휩쓸렸는데, 지금 생각해도 망측하기 짝이 없었다. 주정뱅이처럼 말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원장님, 제가 변하기 전에 뭐라고 말했던가요?”

“네?”

“뭘 원한다고…….”

“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렸어요. 모르나 본데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다정 씨처럼 그리 쉬이 마물과 짐승의 언어를 이해하진 못해요.”

“그래요?”

“기억을 잃기 전이라면 재생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알아봐 드려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내가 기억하는 게 맞는다면 정말 해괴망측한 욕구였기에 원장님에게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헛소리였다.

“어휴, 무슨…….”

난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지끈거리는 머리가 진정되고 정신이 멀쩡해질수록 주변에 일어난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드래곤의 결계라서 다행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없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부서지고 무너지고 타오르고 찢긴’ 흔적들이 가득했다.

“야옹이, 이 녀석이 뭔지 알아내셨어요?”

원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전혀.”

몇 년 동안 원장님 밑에서 일했으나 그녀가 저처럼 확실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건 몇 번 되지 않았다. 드래곤의 드넓은 지식과 경험으로도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는 건가? 문득 ‘캣 맘’이 생각났다. 처음 야옹이를 원장님에게 건네며, 자신도 모르는 기이한 존재라고 했었지.

캣 맘이 원장님도 존경하는 강력한 드래곤임을 미루어 볼 때 확실히 야옹이는 의문점이 가득한 생물(생물과 비슷한) 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눈이 예쁜 검은 고양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하나 알아낸 게 있다면…….”

복잡한 마음으로 야옹이를 보고 있을 때, 원장님이 말을 덧붙였다.

“검은 짐승, 그건 확실히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요.”

멀뚱멀뚱, 역시나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해 쳐다만 보자 원장님이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본래의 힘에 비하면 약하디약한 그림자.”

설명이 부족해, 원장에몽!

“야옹이는 사실… 어떤 무언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지도요.”

원장님이 섬뜩한 얘기를 해 줬다.

“그리고 다정 씨는 교감의 힘으로 그 어떤 것의 그림자를 받아들여, 그 어떤 것의 힘을 미약하게나마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 거죠.”

“야옹이의 힘이 단지 그림자, 그러니까 검은 뿔의 악마니 주술사니 다 쥐어 팼던 검은 짐승의 힘이 사실… X밥이었다고요?”

당황해서 험한 속어를 내뱉고 말았으나 원장님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내게 맞장구를 쳐 주며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 줬다.

“네. X밥이에요. 그 어떤 것에 비하면.”

드래곤이 저리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 어떤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 어떤 것이 지금 현 우주에서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냐가 문제예요. 대전이에 휩쓸려 망각된 고대의 신이거나 어떤 것의 대변자라면… 만약 이 힘을 계속 사용하여, 그 무언가를 불러낸다면 대전이에 비견될 위험이 될지도 모르죠.”

난 당연히 원장님이 더 이상 야옹이의 힘을 사용하지 말라며, 물리적으로도 어떤 제재를 가할 줄 알았다. 대전이에 비견될 위험, 마물원 일을 몇 년 동안 하며 그게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지 난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장님은 오히려 내게 ‘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존재하는 걸 알았으니, 어차피 그러한 존재라면 내가 아니더라도 대전이가 끝나는 무렵 몸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럴 바에야 날 통하여 위험을 감지하고 대처하는 게 현명하다며, 이 힘의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사용해도 괜찮다고 했다.

다만, 그 어떤 것이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원장님은 가디언이자 마물원의 직원인 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구해 주겠다고 했다.

“원장님…….”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도 그 뜻은 절대 대수롭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니 눈물이 많아졌는지, 원장님의 말이 대단히 감동스러워 그만 눈물을 훌쩍이고 말았다. 달려가서 안을까 하다가 그때처럼 맞긴 싫어서 간신히 참았다.

세상에, 난 드래곤에게 그런 의미였구나. 어떤 수를 써서라도 구해 주겠다니. 감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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