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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32화 (232/258)

# 232화. 천계 (1)

잠에서 깨어나니, 초라한 방이 보였다.

천장은 낡아빠진 나무 골조에 황토 따위가 발라져 있는데, 금이 쩍쩍 가 금방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난 푸석푸석한 짚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옛집, 황토로 빚어올린 초가집이다. 갈라진 황토 벽에 장식이라곤 그림 한 장이 다였는데, 동양화로 그려진 호랑이 그림이었다. 먹으로 그려졌음에도 생동감과 현실감이 넘쳐 대단한 솜씨의 화가가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다.]

그림을 멍하니 쳐다보던 난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목소리를 따라 거실로 생각되는 곳으로 나오자 아무런 가구도 없이 병풍만 세워진 텅 빈 공간이 나왔다. 병풍엔 방에서 보았던 그림과 마찬가지로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역시 굉장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살아 움직이듯 해. 정말 살아 있는 것 같아.

[어이, 여기라니까.]

그림 속에 빠져들듯이 쳐다보던 난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오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나서야 지금 상황이 현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가 곰방대를 문 입을 실룩거리자 수염들이 파르르 떨려 왔다.

[오랜만이군, 괴왕.]

그의 인사에 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는 껄껄 웃으며 나더러 역시 괴왕이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앉지.]

그는 거대한 발톱과 억센 발바닥으로 소반을 들고 왔다.

작은 상위엔 옥주전자와 찻잔이 있었는데, 허름한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난 소반을 사이에 두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그는 내게 차를 따라줬다.

“오랜만입니다, 백두금왕.”

그가 날 초대한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 용건이 있어서 날 부른 것일 테지.

그는 백두금왕, 요계에서 만난 호랑이 요괴들의 왕이자 요선이다. 난 그와 바둑을 두었고, 그의 속마음을 알았기에 손쉽게 이겼다. 그 후 날 지천괴왕으로 인정하며 백두금왕은 천계에 올랐는데, 헤어질 때 날 다시 만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많이 달라졌군.]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아마 내 안에 존재하는 그의 힘 때문일까.

난 마치 그가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 시시콜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담소하며 차를 마셨다. 차는 소박하여 보리 차처럼 구수한 맛만 났지만 오히려 화려하지 않은 맛이 마음에 들었다.

[오호, 대방주, 그 더러운 놈들이 죽었구나.]

“그자들을 아십니까?”

[그럼, 알다마다. 건방지게도 태상노군이 사라진 틈을 타 그의 약을 훔쳐 간 천계의 오물들이지.]

음, 대방주들이 사실 천계인이었다고?

난 그가 본론을 꺼내기 전까지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잡담을 나누고, 차를 마시며 은근슬쩍 천계에 대해서 언급했다.

“천계에 오르신다고 하셨으니 이곳이 천계라는 곳이겠군요. 그러나 어찌 영 초라해 보입니다. 오히려 요계의 강 위의 정자가 더 호강한 느낌인데요?”

옥주전자와 찻잔을 제외하면 다 무너져 가는 허름한 초가집에 지나지 않았다.

백두금왕이니, 요선이니 하는 존재가 살기엔 너무 궁핍했다. 침대조차도 짚 이불로 만들었으니 말 다 했지.

[어쩔 수 없다.]

내 다소 무례한 질문에 백두금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그의 얼굴을 가렸다가 사라진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날 보고 따라오라 손짓했다. 백두금왕은 초가집의 다 떨어져 가는 문을 열고 나갔는데, 따라나서던 난 바깥의 풍경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곳이 천계입니까?”

[그래, 빌어먹을 신선들! 천계가 이런 꼴인데 장군인 내가 어찌 호의호식하겠느냐. 쯧쯧.]

백두금왕의 혀 차는 소리가 이해가 갔다. 이곳이 천계임은 맞았으나 상상하는 것과 완전히 틀렸다. 왜, 신선과 신들이 사는 곳, 하늘 위의 세계라고 해서 으리으리한 황금 궁전과 주지육림을 생각했는데, 정작 직접 대면한 천계는 볼품이 없다 못해 황무지와 다름없었다. 무림처럼 무너진 세계는 아니었지만 온통 보이는 곳마다 모래와 바위로 가득하니 오히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천계라고 부르는 게 더 맞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천계는 황폐해졌지.]

백두금왕이 말했다.

[서왕모가 떠나 복숭아밭과 꽃, 들, 숲이 사라졌고, 태상노군이 사라져 짐승들은 병들어 죽었으며, 영보천존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시작과 끝이 없어졌으니 천계는 그야말로 가뭄이 든 대지에 지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죠?”

그의 하소연을 이해할 수 없어 되물어 보자 백두금왕이 자세히 설명해 줬다. 천계가 이리 황폐화되어 죽어 가는 땅이 된 이유는 이곳에 살던 강한 신들이 모두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많은 장군과 신, 신선들은 ‘열린 문’을 통해 다른 세계로 떠났는데, 역시 그 이유는 대전이 때문이었다.

[천계가 좁았던 게지.]

그나마 남은 자는 백두금왕을 비롯한 요선, 그리고 하급 직책의 신선들이다.

[이제 남은 건 뒷방 늙은이들밖에 없어. 빌어먹을, 그들로선 막지 못해. 천계의 파멸을.]

“…파멸이요?”

난 드디어 백두금왕이 날 천계로 초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백두금왕이 말하길, 예전엔 천계에 신선들을 잡아먹는 온갖 사악한 마귀 악마들이 득실거렸는데, ‘빛나는 자’에 의해 모두 소멸되고 봉인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전이로 인해 신들이 떠나자 신기가 부족해진 천계에 악기가 흘러들어와 마귀들이 부활하려고 하니, 놈들이 나타난다면 얼마 남지 않은 천계의 신선들은 모조리 잡아먹고 마귀들은 더 강성해져 결국 지구를 비롯한 다른 차원까지 해악을 끼칠 거라고 했다.

그는 자기 힘으론 막을 수 없다며 지천괴왕의 힘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난 그의 입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다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오부 코스.”

[뭐?]

이런 일을 마다할까.

“당장 마귀 놈들을 쥐어 패러 가죠.”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황당한 표정으로 날 지켜봤다.

난 당당하게 그의 시선을 마주했는데, 백두금왕은 수염을 파르르 떨며 대답했다.

[그… 그래. 천계의 끈은 연결되었으니 원할 때 올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잡는 그 순간, 난 잠에서 깨어났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내 방이었다.

아니,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침대맡에 놓인 하나의 그림,

그의 집에서 보았던 호랑이 그림이었다.

*

다음 날이 되어 마물원으로 출근한 난 설레고 들뜨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원장님을 찾았다. 커피를 마시던 원장님은 내 호들갑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천계’라는 내 말을 듣곤 뺨을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원장님도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내게 커피를 타 주며 얼른 말을 해 보라고 보챘다.

“씹어 죽일 로드 놈 때문에 난 못 가지만…….”

천계에 대해 이야기하자 원장님은 가고 싶은 눈치였으나 이번에도 역시 ‘로드’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로드에 대해 말하는 원장님의 말투가 보다 신랄해졌다. 전에는 그래도 ‘로드님, 로드, 로드께서’라며 존칭을 붙였는데, 이젠 씹어 죽일 로드 놈이란다. 쌓인 게 많았나 봐.

“다정 씨, 천계의 신들이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했죠?”

“네. 백두금왕, 그의 말이 맞다면요.”

“흐음.”

원장님은 이번 일이 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설명을 해 줬다.

드디어 이제 ‘신들이 사는 세계’마저 대전이로 인해 열리기 시작했다고 하며, 시공간과 법칙과 운명에 의해 분리되었던 신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징조라고 했다. 설명을 하던 도중 원장님은 말꼬리를 흐리며 '만신전'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으나,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며 대답해 주지 않았다. 아직 확실치 않으니 나중에 설명해 주겠다나.

어쨌든 어떤 이유로 분리되었던 신들이 대전이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 원장님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었다. 우딸리깔딸리 여왕만 해도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니 마침내 지구에 신들이 강림하면 첫 번째 대전이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게 될지도 몰랐다.

“그 마귀라는 자들이 천계의 신선을 잡아먹고 득세하여 다른 세계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대전이의 골을 더 넓히게 될 거예요. 다정 씨, 부탁드려요.”

확실히 달라,

전에는 긴장과 두려움, 걱정이 앞섰다면 지금은 솔직히 소년만화의 주인공도 아니고 모험을 즐기게 되어 버렸다. 난 히죽 웃으며 마시던 뜨거운 커피를 내려놓고 말했다.

“차가 식기 전까지 돌아오겠소.”

“지랄 마시고.”

즉시 돌아온 대답에 난 뻘쭘해져 고개를 숙였다.

역시 요즘 원장님, 상당히 사나워지셨어.

*

호랑이 그림은 천계로 가는 입구였다.

난 숨을 가다듬고, 그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림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내 몸을 감싸며,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뜨자 내 방이 아닌 다른 곳이 보였다. 한 번 와 본 적이 있었던 백두금왕의 처소였다. 다만 ‘꿈’에서 건너갔을 때와 달리 이번엔 보다 더 뚜렷했다. 확실히 현실이라는 느낌이다.

“각오는 들었고,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으니 곧장 신선들에게 가겠다.”

백두금왕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보다 확실하게 들려오는 호랑이 왕의 목소리,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는데, 연기는 곧 구름이 되었고, 백두금왕은 아무렇지 않게 구름에 올라탔다. 나도 그를 따라 구름에 올라타려고 했는데 내 몸은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담배 연기로 이루어진 구름은 그야말로 연기였던 것이다.

“착한 사람만 탈 수 있다는, 뭐 그런 겁니까?”

“걸어서 따라올 수 있지 않는가. 수고 좀 하게.”

백두금왕은 날 내버려 두고 구름을 타고 휑하니 떠나 버렸다.

난 입을 앙 다물고 ‘마츄’의 기운과 ‘스위프트덕’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백두금왕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한번 도약할 때마다 그보다 더 높이 날아올랐다. 문득 날개만 있다면 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지만 굳이 그 힘을 이끌어 내진 않았다. 오히려 날개를 파닥거리는 게 더 힘들 것이다.

“이곳이다.”

황폐화된 천계. 가도 가도 모래와 먼지만이 가득한 황무지를 몇 시간 동안 뛰었을까.

마침내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사막 위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 기묘하게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건물은 땅에 지은 게 아니라 지면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상해서 물어보자 백두금왕은 이 건물은 대공론장, 신선들의 회의장이며 원래는 고고히 태양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신성한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힘이 약해져 간신히 지면 위에 떠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건물은 정말 전형적인 ‘옛 시대 동양풍’ 건물이었다. 둥그런 돔 형태의 지붕과 장엄한 기둥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황무지 위가 아니라 구름 위에 떠 있었다면 제법 웅장하고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왠지 간신히 모양만 유지하는 꼴이라 애처롭게 느껴질 뿐이다.

건물의 입구엔 화려한 적색 갑옷을 입은 거인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기운은 천계의 신선들을 지키는 문지기치고는 굉장히 약했다.

문지기들은 백두금왕을 보자 머리를 숙이고 거대한 청동문을 열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길게 펼쳐진 장원이 나타났다. 그러나 꽃과 나무는 시들어 낙엽만 잔뜩이고 연못이었던 곳엔 죽은 생선의 가시들만 가득했다. 장원을 지나 몇 개의 방을 지나고 나서야 난 ‘신선’이라 불리는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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