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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35화 (235/258)

# 235화 천계 (4)

연기 구름은 날 산 중턱에 내려주고 사라졌다.

난 오면서 봤던 산 정상 위에 세워진 거대한 누각을 올려다봤다.

금두산의 황금 누각, 독각시대왕의 거처였다. 듣기론 놈은 아직 천계에 ‘인간’이 살 때, 식인을 즐겨 하여 지나가는 나그네를 황금 누각으로 유인해 잡아먹었다는데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기둥을 보니 욕심이 생기지 않고서야 못 배길 것 같긴 했다. 백두금왕은 이번 독각시대왕은 꽤 성가신 상대가 될 거라고 한다. 황풍괴처럼 기이한 재주는 없었으나 괴력으론 마왕 중 최고라 자부하니 굴복시키기 위해선 힘으로 억눌러야 한다고 했다. 그 과정은 야만적이고 단순해야 했다. 마법이나 주술, 또한 신묘한 힘은 사용해선 안 되며, 순수한 힘으로 놈의 뿔을 꺾어야겠지.

난 야옹이의 힘(검은 짐승이 아닌)을 끌어올려 기척을 숨긴 채 조용히 황금 누각을 향해 다가갔다. 산 정상에 세워진 거대한 누각엔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독각시대왕의 기운이라면 넓은 누각에서 혼자 지내는 것인가? 사방이 뚫린 누각이라 안을 잘 살펴볼 수 있었다. 난 누각 기둥 뒤에 숨어 기운을 쫓았다. 이내 나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거대한 생물을 목격했다. 무지막지한 기운이 느껴지는 놈이다. 대가리는 황소인데 몸은 근육질의 남자인 반인반수였는데, 온몸이 청동처럼 은근한 광택이 있었다. 피부색은 푸른색인데 금색 팔찌를 차고 있어 눈에 띄었다. 팔찌에선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으니 단순한 장식품은 아닌 듯했다. 하늘이 어둑하다. 벌써 밤, 아침에 황풍괴를 잡았으니 놈을 잡으면 하루에 두 명의 마왕을 잡는 건가?

“자는 걸 덮친다면 쉽겠지만.”

마왕은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소멸되진 않는다. 사념과 이야기가 있는 한 부활하니 봉인해야 한다. 그리고 봉인하기 위해선 놈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주는 것, 자랑하는 재주에 자긍심을 꺾어 버리는 것이다. 난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놈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네가 마왕 중에 힘이 으뜸이라더니, 어디 한번 나와 붙어 보자꾸나!”

반응은 빨랐다. 기척을 느끼자마자 독각시대왕은 성난 콧바람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나 우악스러운 손길로 내 멱살을 잡았다. 인간을 벗어난 내 육체로도 바둥거릴 뿐 놈의 손을 떨쳐 내지 못했다. 흥, 과연 힘이 센 놈이다. 하지만 마침내 ‘안’엔 딱 알맞은 녀석의 힘이 있지. 기구하게도 놈도 녀석과 같은 ‘황소’였다. 다만, 놈이 마왕이라면 이자는 원시의 신. 순수한 힘으로 마법과 주술마저 찢어 버리는 괴력난신의 마물.

놈의 기운을 끌어올리자 태산처럼 꼼짝하지 않던 놈의 손이 더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난 있는 힘껏 놈의 팔을 잡고 던져 버렸다.

음메에애~!

독각시대왕은 당황하며 긴 울음소리를 냈다. 힘에 밀려 날아간 놈은 황금 누각의 기둥에 처박혔고, 기둥은 이내 박살 나요 지붕이 놈을 덮친다. 그 모습을 보던 난 어깨를 으쓱하며 머리에 자라난 ‘뿔’을 매만졌다. 젠장, 이거 완전 청도 소싸움도 아니고.

[힘깨나 쓰는 놈이로구나!]

예상대로 놈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고 잔뜩 화만 난 상태였다. 황소 대가리를 한 3M의 거구의 남자와, 그에 맞서 황소의 뿔이 자라난 내가 대치하니 솔직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소싸움이네.

[이놈!]

놈이 달려든다. 괴력으로 짓누르기 위해 피하지 않고 다섯 배는 부풀어 오른듯한 근육을 움직이며 돌진에 대비했다. 그러나 놈은 날 공격하지 않고 침대로 달려가더니, 아래에 숨겨둔 기다란 창을 꺼내 들었다.

[감히 내게 도전하려 드니 뭣에 죽는진 알아라. 이 창은 점강창이라 하여 일격에 금뢰장군을 찌르고, 나아가 일십만 천병의 심장을 꿰뚫었다. 받아 보아라, 이놈아!]

마왕들은 신선을 잡아먹고 하늘의 병사를 죽이는 재앙이다. 탑의 봉인에서 풀려난 놈들은 그때를 회상하듯, 황풍괴도 그렇고 나와 상대할 때마다 제 자랑을 하는데, 천병을 몇 명 죽였니 많이 하면서 떠벌렸다. 하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저 엄청나게 강력하다는 것만 알겠다.

“힘으로 억눌러.”

메타 소드는 내 힘에 반응하여 모습을 바꾸기도 하지만 근래 깨달은 게 있었다.

신수가 만들어 낸 신비한 무기라서 인지, 내 힘과 더불어 상상력에 반응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저 뾰족하고 거대한 창에 맞서, 괴력난신 아즈모타카의 힘을 끌어올려 맞서려고 생각하니 똑같은 ‘창’이 생각났고, 곧바로 메타소드는 모습을 변화하여 마치 삼국지의 장비가 다루던 장팔사모처럼 변했다. 난 창자루를 꽉 쥐며 하늘 높이 추켜세웠다. 힘은 힘으로 짓눌러야 놈을 굴복시킬 수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타를 먹인다면 놈도 굴복하겠지.

“파천격破天擊!”

사실 난 무공을 모른다. 곽운 스승님처럼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백 명을 베는 지고한 무공을 펼치진 못한다. 파천격이란 거창한 초식조차 사실 꾸며낸 것이다. 이건 그저 아즈 모타카의 힘으로, 창을 힘껏 내려치는 행동일 뿐이다.

꾸어억!

그러나 놈이 자랑하던 점강창을 부수고 놈의 어깻죽지부터 시작하여 깊은 상처를 남겼다. 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 놈의 몸이 강철보다 강하지 않았다면 반쪽으로 쪼개 버렸을 것이다. 일격에 중상을 입은 놈은 지랄발광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황풍괴와 달리 끈질긴 놈이라 바로 굴복하진 않았다.

“그냥 좀 곱게 뒤져라.”

놈을 쫓아가던 그때였다.

갑자기 오리하르콘 브로치가 빛이 났다.

마법이 펼쳐졌다고 생각한 순간, 내 손에 들린 창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내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평범한 철검이 되었으나 메타 소드는 놈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망치던 놈, 겁먹은 게 아니라 단지 시간 벌이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놈은 손에 팔찌를 쥐고 있었다. 이내 팔찌에서 기이한 힘이 내뿜어지더니 주변의 모든 걸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난 간신히 버티며 믿기지 않는 흡입력을 발휘하는 팔찌를 쳐다봤다.

[으하하, 어떠냐. 아무리 네놈이라도 태상노군의 금강탁은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무슨 능력인지 마치 초강력 청소기 같았다.

빌어먹을 마법인지 단지 내 몸을 빨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내 안에 깃든 기운마저 흡수했다. 젠장,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데.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다. 난 만독구의 무형지독과 더불어 전염과 죽음, 빨아들여선 좋을 게 없는 기운을 내뿜었다. 놈은 곧바로 눈치채고 청소기의 스위치를 껐으나 내가 덤비기도 전에 또 다른 재주를 부렸다.

“시벌, 지랄 시작했네.”

이젠 놈이 황금 팔찌를 내게 던져 버렸는데, 갑자기 커지더니 저항도 못하고 날 감싸 묶었다. 몸을 옥죄는 고리에 뼈가 부러질 듯 고통스러웠다. 젠장, 황풍괴 놈을 상대할 때 너무 쉽다더니, 드디어 지랄이 시작된 건가?

“이따위!”

샐러맨더의 힘을 극성으로 이끌어 내 녹여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황금 팔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을 보던 독각시대왕은 날 비웃으며 소리쳤다.

[그 어떤 불과 쇠로도 자를 수 없는 금강탁이다. 태상노군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보구이니 ‘신’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절대 속박에서 풀려나지 못할 것이다! 으하하, 마침 내 누각이 무너졌으니 널 노예로 부려 다시 세워야겠구나!]

난 놈의 조롱을 무시하고 억죄는 고통을 참아 내며 답을 찾고자 생각했다.

솔직히 옴짝달싹 못 하는 지금 상황에서도 난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귀찮고, 성가시게 느낄 뿐.

굳이 놈을 상대하며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 싶은 굴욕, 마왕은 별 볼 일 없으나 ‘태상노군’이란 자는 정말 대단하고 생각했다. 빛나는 오리하르콘, 그를 마법사라고 해야 하나? 금강탁이란 팔찌는 아티팩트와 비슷했다. 그러나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아티팩트와 격이 달랐다. 심지어 나조차도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풀기 버거웠다. 단지 만들어 낸 도구일 뿐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아깝지만 부수지 못할 것도 없다.

이게 아티팩트라면, 결국 마법이라면.

“선이란 게 있다.”

음뭐어!

[뭐?]

“아슬아슬하지.”

혼잣말에 놈이 어리둥절하며 되묻는다.

난 씩 웃으며 놈을 쳐다봤다.

“보통 이 선을 넘으면 몸이 바뀌어 버려.”

아즈모타카, 그의 힘은 너무 강력했다.

예전엔 마물을 다린 액을 먹어 전력을 다해 간신히 일부분을 끌어올렸고, 지금도 그저 일부의 힘을 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난 이제 모든 힘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분명 부작용이 있을 테지만, 어쩔 수가 없다.

으드득!

이마가 간지러우니, 뿔이 더더욱 자라난 듯하다.

동시에 내 몸이 점점 기이하게 바뀌어 간다.

아즈모타카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리자, 난 마치 놈처럼 되어 갔다.

두려운 눈빛을 지닌 황소처럼.

원시의 시대에 신으로 추앙받던 잔인한 짐승신처럼.

콰드득!

금강탁, 태상노군이 만들었다던 보구조차 아즈모타카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난 혼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한 가지 목적만을 상기시켰다. 풀려난 즉시, 놈을 죽인다.

[마… 말도 안 돼! 금강탁에 금이 가?]

난 금강탁을 산산조각 냈고, 성난 황소처럼 독각시대왕에게 돌진했다.

시야가 빨갛다. 느껴지는 건 살육의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갈망뿐이다. 피를 갈구하는 아즈모타카, 놈은 분명 위험한 마물이다. 그러나 난 억누르지 않았다. 독각시대왕에게 달려가 쓰러트렸다. 그리곤 뿔을 꺾고, 목뼈를 부수고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원하는 건, 붉은 심장. 굵은 혈관에서 뿜어지는 피, 따뜻하고 끈적한 붉은 액체. 뼈를 부수고 살점을 찢고 마침내 ‘꺼냈다.’ 그 순간, 놈은 죽음과 동시에 굴복하여 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봉인과 죽음이 같이 찾아온 것이다. 난 침을 꿀꺽 삼킨 채 손에 들린 붉은 무언가를 내려다봤다. 결국 힘껏 던져버렸지만, 선을 한참 넘을 뻔했다.

*

“이 힘은 너무 위험해.”

여러모로 위험하다.

특히 이 힘에 취해 있을 땐, 정말 중2병처럼 변해 버렸다.

원시시대, 심장을 제물로 바치던 야만적인 시대에서나 놈의 위상이 그럴듯하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즈모타카는 ‘큭큭, 피를 원해, 붉은 피를!’ 따위의 말이나 내뱉는 중2병 마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엔 괴력으로 상대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야 많으니 이 힘은 이제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더 강해지기도 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황풍괴를 죽여 스위프트덕의 힘이 강해졌듯, 아즈모타카의 힘 또한 강해졌다. 심지어 난 마치 슈퍼맨처럼 힘을 조절하는 방법까지 깨우쳐야 했다. 평소와 같이 행동하니 턱시도를 정리하다가 그만 찢어 버리고 만 것이다. 백두금왕의 구름이 오기까지 몇 시간 동안 연습을 하니 강화된 괴력 또한 적응이 되어 전처럼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백두금왕님, 혹시 태상노군에 대해 아십니까?”

난 백두금왕의 구름이 오자마자 궁금하게 여기던 걸 질문했다.

천계에 온 이후로 ‘태상노군’에 대한 이야기를 은근히 많이 듣게 되었다. 대방주들의 주술도 사실 태상노군의 것을 훔친 것이라 하고 독각시대왕이 사용하던 성가신 금강탁이란 팔찌도 태상노군이 만들었다고 했다. 상당히 대단한 자인 것 같은데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삼청(三淸)의 신이다.”

백두금왕이 대답했다.

그는 천계의 최고신 중 하나로, 삼청의 신이라고 했다. 삼청의 신은 세 명의 신을 뜻하는데, 그들은 천계의 신선과 신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고 강력한 존재들로 천계를 유지하던 신들이라고 했다. 다만 어디론가 떠나 버렸고, 백두금왕은 그들을 찾으려 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삼청의 신들이 ‘바깥’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바깥이 어디냐고 물으니, 백두금왕은 지가 말해 놓고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런 곳이 있다고만 안다나. 싱거운 대답만을 들었다. 흠, 태상노군을 만나면 뭣 좀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

다음 놈들은 사타동의 삼마왕(三魔王)이었다.

놈들은 천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영험한 영산에 사는데 운정만리붕(雲程萬里鵬)이란 마왕은 사타령의 사타동이란 곳에서 살고 남은 두 마왕은 인근 사타국이란 나라에서 산다고 했다. 그러나 대전이로 천계가 무너지니 사타국도 멸망하여 지금은 세 마왕 모두 같이 다닐 거라며 상대하기 위해선 한 명씩 유인해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난 백두금왕의 말에 씩 웃으며, 마침 잘 됐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세 놈 다 잡아 버리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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