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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41화 (241/258)

#241화. 시작 (1)

정혜연이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물원의 경계가 외부의 힘으로 사라졌다. 나부를 죽인 자들이 혜연의 흔적을 쫓아온 것이다. 혜연과 나, 원장님은 관리실에서 나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 때보다 긴장한 난 굳은 표정으로 맞설 준비를 했으나 원장님은 나더러 지켜만 보라고 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한다. 원장님의 단호한 태도에 난 반발한 기력조차 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난 내가 혹은 원장님이 위험해지면 원장님의 명령이라도 어길 거라는 걸 스스로 잘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물원의 허름한 철제 대문이 열렸다. 문 너머로 걸어오는 그들은 당당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자신들이 맞서야 할 존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자들임에도 발걸음이 거침이 없었다. 난 기세등등한 세 명의 인간들을 보다가 혜연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새끼들이냐?”

혜연은 그렇다고 말했다. 마물원에 왔을 땐 겁에 질려 있었으나 지금 혜연의 눈빛은 표독함이 묻어나왔다. 복수를 원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원장님은 마땅한 명분이 있는 혜연에게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원장님은 이번 일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미친놈들.”

난 가만히 우릴 향해 걸어오는 세 명의 인간을 지켜봤다. 글쎄, 느껴지는 기운은 확실히 강렬했다. 하지만 용을 앞에 두고 저리 의연한 이유를 날 알 수가 없었다. 놈들을 마치 자신들이 깡패들이라 생각하고, 우릴 힘없는 약자라고 보고 있다. 그 점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으며, 이유 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설마 진짜인가? 놈들이 사실 나부를 죽일 만큼 강한 건가? 쥐뿔도 없는 새끼들이라면 저렇게 느긋하고 당당하진 않겠지. 깜짝 놀랄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게 분명해.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였다.

놈들은 씩 웃으며, 저마다 무기를 꺼냈다.

“네년이 파르바…….”

그들 중 한 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다.

대단히 불경한 말을.

그러나 말을 끝맺진 못했다.

난 익숙한 ‘박탈감’을 느끼며 마침내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은…….”

주변의 공간이 무너지고, 이내 새롭게 정립된다.

원장님의 공간이동 마법이다. 원장님은 놈들을 기괴한 곳으로 끌어냈다. 난 이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 어두운 대지, 어두운 나무와 어두운 바위. 이곳은 마물원의 비밀 우리이다. 나도 ‘마스터키’를 받기 전까진 몇 년 동안이나 출입할 수 없었던 우리였다. 이곳에 사는 마물들은 사악함과 역겨움으로 정의되는 괴물들이다. 원장님의 의도를 명확했다.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이 놈들을 괴물들의 먹이로 내던져 준다는 건가?

스으아아악!

이내 검은 ‘배경’에서 온갖 그림자 괴물들이 ‘먹잇감’을 발견하곤 웅크렸던 몸을 일으킨다. 고막을 찢는 비명과 함께 악몽의 괴물들이 사악함을 드러냈다. 나이트메어, 군속, 드림이터, 끔찍한 괴물들이 세 명의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달려든다. 놈들은 순식간에 그림자에 먹혔다. 꿈틀거리는 역겨운 그림자의 아가리에 갇혀 몸의 생기를 빨렸다.

난 그림자 괴물의 식사 장면을 지켜보다가 괜히 간지러운 콧잔등을 긁었다.

“원장님.”

“괜찮아요.”

원장님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우릴 만만하게 보는군, 주술사.”

놈들이 휘두른 검에 순식간에 악몽들이 깨지고 부서지는걸.

세 명의 인간은 태연히 악몽의 아가리에서 기어 나왔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니 악몽의 괴물들조차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고 말았다. 세계를 멸망시킬 마수들마저 놈들에겐 몸풀기조차 되지 못한 듯했다.

“이것쯤은 별거 아니니.”

살짝 걱정되던 찰나에 원장님이 날 안심시켰다.

별거 아니라고 하였다.

난 그제야 내게 왜 나서지 말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놈들이 위험해서? 내가 상대도 되지 못할 것 같아서? 아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소 온화하고 차분하던 원장님의 말투에 난 곧바로 눈치채지 못했었다.

“감히 내게 경멸스러운 오만함을 비추다니.”

원장님이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걸 말이다.

내가 확인한 건 원장님이 파리를 내쫓듯이 손을 한 번 휘둘렀고, 건방진 표정으로 서 있던 세 명의 인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천괴왕이 되고, 미물들의 힘을 받아들이고, 신수의 힘마저 끌어낼 수 있게 되었으며, 검은 짐승이란 해괴하고 강력한 힘을 다루게 된 지금의 나조차도 놈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원장님과 지내오며 난 처음으로 원장님의 진정한 힘에 대해 살짝 엿본 듯한 느낌이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서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용을 죽였다던 놈들을 원장님이 사라지게 한 것, 그 외엔 어떤 힘으로, 어떤 마법으로, 어떻게 없앴는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개노답 삼형제였네요.”

결국 놈들은 당돌하게 침범해 놓고 이렇다 할 싸움조차 하지 못한 채 원장님의 손짓 한 번에 사라졌다. 원장님이 걱정하던 건 놈들 따위가 아니었다. 원장님은 드래곤슬레이어를 자칭하는 자들이 수백 트럭으로 몰려와도 이번처럼 손짓 한 번에 없앨 수 있겠지만, 유독 그만은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이건 단지 경고였을 뿐이에요.”

난 처음으로 원장님의 당차고 기센 눈동자가 풀이 죽었다고 느꼈다.

“드디어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아아, 로드이시여.”

*

그날 이후, 평온한 나날들이 지속하였다.

하지만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불길하고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날 안심시키는 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원장님의 태도뿐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일을 하달하고, 마물을 구하는 등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마물원에 출근했을 때였다.

“원장님?”

어딜 가도 항상 귀띔은 해 주고 가던 원장님이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오후까지 기다리던 난 조심스레 원장실의 문을 열었다. 평소 잠겨 있던 원장실의 문고리가 쉬이 열렸다. 원장실 안에도 그녀는 없었다. 난 서류 등으로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 열쇠를 발견했다. 마물원의 어느 장소라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였다. 그리고 키 옆에는 한 권의 작은 책이 있었다. 책의 표지엔 원장님의 손글씨로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이라 적혀 있었다.

*

선조들을 멸망시킨 ‘빛나는 자’에 대항하기 위하여 아주 오랫동안 작당 모의를 하던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날개 없는 용들이다. 또한, 그들은 지구의 역사에선 ‘공룡’이라고 불리던 존재들이다. 그들은 배신자의 그림자에 숨어 반격의 칼날을 갈았다. 그러나 막상 복수의 시간이 왔을 때, 그들은 너무나 허무하게 소멸하고 말았다. 브라키오사우루스들을 필두로 한 날개 없는 용들은 몇백 년의 인고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자에 의해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또 오만한 결과를 되풀이할 셈입니까!]

공룡들의 시체 위로 붉은 날개를 가진 자가 내려왔다.

그는 비참한 시체들을 지켜보다 원망에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빛나는 자다.

붉은 눈동자로도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태양의 대변자이며 광물의 시초자, 폭풍의 화신인 그는 용들의 왕, 빛나는 자, 혹은 ‘마루트루드라’라고 불렀다.

[균형을 위해서다.]

파르바티는 그를 향해 행성마저 파괴할 재앙의 마법을 펼쳤으나 오리하르콘으로 이루어진 육체에 전혀 해를 입히지 못했다. 빛나는 자, 그가 용들의 왕이며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건 그의 육체가 마법을 소멸시키는 오리하르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용들의 마법조차 그에겐 통용되지 않는다. 파르바티의 외침이 화산이 폭발하듯 세차게 울려 퍼진다.

[정녕 책무를 잊었습니까, 로드!]

빛나는 자가 대답했다.

[내 행동과 판단이 모두 나의 책무니, 곧 용의 의지니라. 이에 반란의 뜻을 품은 자, 파르바티여. 배신자는 기록자처럼 처단하여야 마땅하건만.]

용들의 왕이며, 용들의 대적자가 파르바티를 속박한다.

주술사인 파르바티는 기나긴 동면에서 용들을 지켜 줄 방패였다.

로드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빛나는 자의 발톱이 파르바티를 움켜쥐니 그녀는 저항할 수 없이 용들의 둥지로 잡혀갔다.

*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

원장님이 쓴 책이다.

내용은 이상했다. 제목만 보고 그저 마물들에 대해 기록한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내가 주인공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날 관찰한 원장님의 일기다. 카르마 길드와 대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내가 원장님으로부터 ‘가디언’의 직책을 제안받을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간결하게 일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난 책을 읽으며 몰랐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원장님은 임무를 수행하는 날 지켜보고 있었고(대부분의 임무에서), 이 책은 원장님의 관점에서 본 나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어쩌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이 사실 원장님의 계획이었다는 걸 깨닫자 살짝 화가 났다. 하지만 결국 원장님이 날 몰아세운 것도, 난처한 일들을 맡긴 것도, 도와줘도 충분했던 일들에도 핑계를 대며 내게 일을 모두 맡겼던 것도 사실 어떤 이유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난 마치 그녀가 만든 정교한 작품 같았다.

기록에 의하면 우연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임무들이 원장님이 날 위해 마련한 단계별 강의 같았다. 내가 강해지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쓸지 원장님은 잘 알고 있었다.

[#111]

곽운이 내 가디언의 자질을 깨달았다.

비범하다며 칭찬하니 내가 다 기쁘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자라 그 이상을 알아보려고 하니, 더는 맡기면 안 되겠다.

이건 내가 처음 무림으로 건너가 곽운 스승님으로부터 무공을 배웠을 때였다.

원장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가 했더니 나에 관한 이야기였나?

원장님이 내 칭찬에 기뻐하다니. 진짜야, 이거?

[#121]

주왕들에 대해 경고하며 가디언을 그만둬도 된다고 말했다.

그의 결심을 확인해 보고자 한 짓이지만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꽤 긴장되었다.

이내 그가 똘망한 눈으로 대답했다.

‘원장님의 가디언이 되고 싶어요.’

동족들이 가디언들이 임명하는 이유를 지금까지 몰랐었는데, 640년 샴페인을 꺼낸 건 나 또한 이유를 깨달은 거겠지. 그가 원하니 내 가디언으로서의 품격을 높여 줄 수단을 강구해 봐야겠다.

이땐 바스데 병원에서의 사건 이후, 주왕들에 대해 공포심을 느꼈을 때인가?

그래, 분명 비밀을 숨기려는 원장님에게 이젠 내게 말해 주라며, 원장님의 가디언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지. 상당히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분명 이때 이후로 일의 강도가 훨씬 높아졌지.

[#131]

그가 엘프들의 위수의 힘을 받아들였다.

예상치 못한 성장이다. 역시 그는 정말 놀랍고 신비한 존재다.

엘프들을 설득하여 그를 위한 드루이드를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이 일기는 카르네 일 이후.

막상 드루이드는 쓸모가 없게 되었지만 단비가 깨어나면 그 이상을 할 수 있게 되겠지.

[#136]

내 가디언이 신수의 검, 놀라운 무기를 얻었다.

기사단 이후의 일기구나.

[#157]

내 가디언이 빌어먹을 로드 새끼의 허약한 가디언과 맞붙었다.

위험했지만, 이겼어. 역시 내 가디언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로드의 관심을 끌게 되면 큰일인데.

오크라덴에서 싸웠던 놈은 역시 로드의 감시자이었군.

그가 말한 신이 드래곤 로드였어.

[#180]

어디서 이상한 힘을 주워와 놓고 배시시 웃는다.

짜증 나서 화를 냈지만 생각해 보니 주책을 부린 것 같다.

지천괴왕이 된 이후, 난 원장님에게 이상한 놈에게 힘을 받았다며 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너무 과민한 반응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원장님도 그렇게 생각한 듯했다.

[#194]

그는 가롯인가?

그래, 그러면 이해가 가지.

우딸리깔딸리 여왕을 죽인 후로군. 가롯이라, 무슨 의미일까?

[#206]

인간과 사랑을 나눈 기록자는 반려자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했다.

사별에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기이한 광경이었다. 용이 인간과 엮이며 일어날 불행들을, 지혜로운 기록자인 그라면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고통을 선택했을까? 강대한 존재가, 하찮은 사랑에.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기는 나부에 대한 것, 유일하게 기록이 마저 완성되지 않은 채 끝맺은 화였다.

[#217]

가디언의 재롱에 포옹으로 답했으나 날 밀쳐냈다.

그가 점점 건방져가는 건 성장의 증거일까?

[#218]

그는 신이 될 재목이었다.

비범한 자, 역시 내 가디언은 비범한 씨앗이었어!

[#219]

…….

[#237]

위험해.

…….

[#240]

그가 온다.

난 무엇을…….

기록은 #240이 끝이었다.

난 원장님의 일기를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읽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글로 읽으니 정말 짧게 느껴졌다.

“망할.”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원장님이 내게 마스터키와 일기를 남긴 이유를.

이제 더는 원장님의 일기엔, 241번째 페이지가 없을 거라는 것도.

하지만 남겨진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마물원에서 기다릴 뿐이었다.

*

며칠 뒤.

마물원의 관리실 문이 열렸다.

난 깜짝 놀라 재빨리 버선발로 뛰어나갔으나, 문을 연 자는 원장님이 아니었다.

“마담?”

‘캣 맘’이라 불리던 용이었다.

몇 년 전에 고양이 섬을 통째로 뜯어내 다른 차원으로 떠났던 캣 맘이 마물원을 찾아왔다. 전혀 뜻밖의 인물에 당황할 때였다.

“붉은 꼬마의 프티구나.”

뚱뚱한 중년 여인의 모습을 한 ‘드래곤’은 원장실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았다. 물어보니 마물원의 ‘마스터키’를 찾는다고 했다. 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보였다.

“오, 네가 가지고 있구나. 다행이야. 귀찮아질 뻔했거든!”

캣 맘 드래곤은 열쇠를 받아 가려고 했으나, 난 재빨리 손을 뒤로 젖혔다.

그 순간, 날카로운 용의 시선이 날 짓누르듯 쏟아졌다. 겉모습은 푸근한 아줌마지만 실상은 원장님도 쩔쩔매는 무서운 용이다. 하지만 난 용기를 내어, 심장을 옥죄는 살기를 애써 떨쳐 내고 말했다.

“원장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 주세요.”

감히 용에게 내거는 제안.

“아니면 열쇠 안 줄 겁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용은 용이다.

난 침을 꿀꺽 삼키며 마담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흔히 속어로 눈을 깔았다고 한다. 날 잡아먹을 듯 쳐다보는 시선은 원장님이 화났을 때보다 더 무서웠다. 그러나 열쇠만은 꾹 쥔 채 마담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담은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 유일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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