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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42화 (242/258)

#242화. 시작 (2)

사실 마담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행동은 정말 같잖은 저항일 것이다.

마치 일곱 살 아이가 장난감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꼴이다. 마담이 원하면 내 손에 쥔 열쇠는 순식간에 마담의 손에 쥐어지겠지. 더불어 내 머리도. 하지만 난 내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 행동은 정말 열쇠를 담보로 하는 거래가 아닌 반항을 함으로써 내 진실한 마음을 부디 알아 달라는 서글픈 저항이었다.

마담은 악마조차(악마와도 직접 만나 본 나라서 더 잘 알았다.) 두려움에 떨게 할 시선으로 날 한참 동안 바라봤으나 어떤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마담이 날 싫어했다면 내 열쇠와 머리는 진작에 뺏기고 말았을 것이다.

몇 분? 아니, 몇십 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확실히 난 죽음의 갈림길에 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적들과 싸우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각인되듯 생겨 버린 것이다.

“하아, 프티.”

그래서 날 쳐다보던 마담이 짧은 한숨과 함께 시시한 웃음을 지었을 때, 난 사형장에서 돌아온 죄수처럼 기뻐하고 말았다. 단, 내색은 하지 않았다.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때와 달라진 게 없구나.”

마담은 소파에 앉으며 차를 타 오라고 말했고, 난 냉큼 원장님이 가장 아끼던 원두를 찾아 정성을 다해 커피를 내렸다. 마담이 과자를 좋아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내 사물함에서 산딸기 쿠키도 들고 와 같이 내놓았다. 마담은 과자를 오독오독 깨물어 먹더니, 나더러 맞은편 소파에 앉으라고 말했다.

“좋아, 넌 그 아이의 가디언이니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어.”

마담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말하는 도중에 마담이 과자를 계속해서 집어 먹는 바람에 오도독거리는 소리가 신경이 쓰였지만, 감히 용에게 예절을 언급하진 않았다. 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마담이 말하는 용들의 사정에 대해서 경청했다. 후루룩, 커피를 마시는 소리가 끝나고 이내 마담이 말한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 차원마저 합해지는 우주의 전이가 처음 발생한 뒤, 조화와 균형을 수호하는 용들은 오랫동안 이해와 분석을 시도하며 막으려 들었지. 하지만 알아낸 건 없어. 그저 멸망과 창조, 정해진 건 없으나 분명 어느 쪽이든 만물의 운명이 달렸다는 것만 알 뿐.”

마담은 용의 ‘의무’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마담의 말을 빌리면 ‘강대한 존재로 태어난 대가로 부과받은 저주와 같은 의무’라고 하였는데, 마담은 그에 대해 언급하며 상당히 치에 떨려 했다.

“때문에 프티, 네가 상상할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이 일어났지. 하지만 조율자들도 결코 알아내지 못했고, 결국 ‘빛나는 자’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해 지혜롭지 못한 결단을 해 버린 거야.”

‘빛나는 자’, 드래곤 로드는 전이에 대비하기 위해 대단히 무모한 결단을 내렸다. 전이를 막을 수 없다면, 용들이 우주를 ‘통제하고 다스린다는’ 사상이었다.

내 기준에서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던 용들은 사실 강한 존재이면서 언제나 태어났을 때부터 부과받은 의무를 지키며, 우주의 소멸을 막는 ‘수호자’였었다. 신을 초월한 힘을 가진 그들이 신이라 불리지 않는 이유였다.

그들은 군림하지 않는다. 악과 선을 조율하고, 수호한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가 내린 결단은 스스로 ‘신’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사상은 용들이 서로 반목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나 같은 이율배반자들이 대거 생겨났지. 파르바티와 나부, 그들도 로드의 결단을 반대한 ‘꼬마’들이고.”

마담은 우주를 통제하려는 로드에 맞서 원장님은 자유를 신봉했다고 한다. 포악한 로드가 처음으로 저지른 짓은 날개 없는 용들의 멸종, 흔히 ‘공룡’이라 불리는 생물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원장님은 로드를 증오하게 되어 용의 둥지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공룡이라, 난 불현듯 ‘쥐라기 파크’가 생각났다. 당시엔 그냥 미친 공룡인 줄로만 알았는데, 설마 이상한 말들을 주고받던 브라키오사우루스들이 정말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세상에.

원장님이 로드에 대해 언급할 때 항상 오만한 자라며 비난했는데, 그 이유를 깨달았다. 드래곤 로드, 지가 무슨 90년대 만화에 나오는 마왕도 아니고 우주를 통제하려고 한다. 사상이 메인 악당으로 손색없는 새끼다. 빌어먹을, 그의 힘도 마찬가지고.

난 원장님을 구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지금으로선…….

“마담도 로드의 생각에 반대하여 배반자가 되신 건가요?”

원장님과 친했던 마담이라면 도와주지 않을까?

마담은 어깨를 으쓱하며 한마디만 한 후, 산딸기 쿠키를 연달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알 필요 없어, 프티.”

마담은 원장님이 로드에 잡혀갔음에도 태연했다. 로드를 딱히 적대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애초에 마물원에 찾아온 이유가 원장님 때문이 아니라, 마물원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마담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자는 마담밖에 없었다.

“마담, 고양이는 잘 지내나요?”

담담히 드래곤에 대해 말하던 마담은 오히려 고양이라는 소리에 더 흥미로워했다.

“오, 프티. 네 말대로 하니 평온을 되찾았지. 고양이만 사는 대륙이 세 개 더 늘어났지만 뭐……. 아 참, ‘검은 고양이’는 잘 지내고 있니?”

야옹이는 마담이 발견하고 원장님에게 준 고양이다. 난 마담에게 숨김없이 야옹이에 대해 말해 줬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마담은 눈이 동그래져선 통통한 두 뺨이 붉게 달아오를 만큼 놀라워했다.

“야옹아.”

특히 내가 야옹이를 부르자마자 어디선가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자 마담은 분홍 챙모자에 달린 하얀 깃털이 파르르 떨릴 만큼 즐거워했다. 마담조차 야옹이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마담은 야옹이를 사랑스럽게 ‘샤아똥’이라 부르며 쓰다듬으려고 했는데, 야옹이는 앙칼지게 발톱을 세운 앞발을 휘둘렀다. 마담을 공격했지만 난 걱정하지 않았다.

마담은 고양이 오타쿠니까.

“정말 예쁜 고양이야. 차별하는 건 못된 짓이지만, 내 수십억 아이 중에서도 단연 가장 예쁜 눈동자를 가졌구나. 어쩜 저리 별이 빛나는 밤하늘 같담!”

야옹이의 매력은 통했다.

젠장, 이런 방법이 통할지는 몰랐지만, 시도라도 해 봐야지.

“원장님을 구해 주세요.”

난 야옹이를 와락 안은 채 마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구해 주시면 야옹이를 마음껏 만지게 해 드릴게요.”

냐아앙!

야옹이는 친절히 내 뺨에 세 갈래 생채기를 만들어 주며 제 의견을 표출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괜찮아. 네 작은 희생으로 원장님을 구할 수만 있다면! 사실 내 제안은 정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헛소리였다.

겨우 고양이를 만지게 해 주는 것을 대가로 드래곤로드에 잡혀간 원장님을 구하러 가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 하지만 난 드래곤에 대해 몇 번 겪어 보며 그들이 인간의 관점을 초월한 존재들이라는 걸 알았다.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그들이라도 사실 알고 보면 병신들이다.

나부가 그랬고, 원장님이 그나마 나은 편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병신 같을 때도 몇 번 있었지. 마담은 그중에서도 가장 자유롭고, 가장 병신 같은 용이었다. 어떤 병신이 고양이만 사는 섬을 만들다 못해 ‘대륙’을 세 개나 만들어. 아무튼, 마담이라면 내 제안이 천만금의 보상보다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용이라서 이처럼 사소한 제안을 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을까?

“그것참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구나.”

곰곰이 생각하던 마담이 진지하게 대답하자, 난 됐다 싶었다.

그러나 아쉬운 듯 야옹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용들의 사정이야. 그가 로드인 이상, 난 간섭하지 못해. 특히 나 같은 ‘최초의 배반자’는 말이야.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마담이 말했다.

“숨기려고 해도 다 느껴져. 프티, 네가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무력함과 공포는 당연해. 드래곤 사이에서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럼 열쇠를 주겠니? 아이들이 굶기 전에 붉은 꼬마가 남긴 흔적을 지우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거든.”

열쇠를 건넸다.

“좋아. 마물원은 너무 위험해. 4천 번에 걸쳐서 각기 다른 차원으로 미물들을 보내야겠지. 너도 이제 마물원에 대해선 잊으렴. 아니면 날 도와줄래? 원한다면 널 위한 작은 마물원이라도…….”

“저기요.”

마담에게 말했다.

마음 같아선 반말하고 싶지만, 최소한의 이성은… 젠장, 남아 있어.

“왜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담은 무력함과 공포를 언급하며, 내가 아무것도 못 하는 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마치 내가 원장님을 이대로 포기하는 걸 확신하는 말투다.

“원장님이라면 날 구해 줬겠죠.”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데 힘의 격하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조금은 비겁한 변명 같지 않아요?”

마담은 내 무례한 태도에도 화내지 않고, 타이르듯 대답했다.

“전혀 비겁하지 않아, 프티. 상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야. 절대적인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그런 말로는 날 설득하지 못했다.

이상했다. 마담은 사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난 말을 할수록 울분에 차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말았다.

“도와주세요. 마담이 구하지 못한다면, 그럼 내게 원장님을 구할 방법을 알려 주세요.”

난 마담에게 요청했다.

빌어먹을 의무니 운명이니 해서 마담이 원장님을 구할 수 없다면, 내가 대신 구해 주겠다고. 얼마나 건방지고 오만해 보일지,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부디 방법을 알려 줬으면 했다.

“네가 구하러 간다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니?”

마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담은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라며, 감정을 제어하라고 했다. 내 모습을 감정에 휘둘려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모자란 놈으로 여기고 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이성과 감정, 두 개에 끈이 있다면 난 이성의 끈을 포기하고 감정만을 잡아당기고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그걸 누가 몰라요?”

마담에게.

엄청나게 무례하게.

무엇이라 지껄이는 난 내가 나인지도 잘 모르게 되어 버렸다.

“으하하, 원장님은 용이잖아요. 드래곤, 난 가디언. 본분을 지켜, 하지만 그건 명분에 지나지 않겠죠. 생각해 봐요. 내가 원장님을 구하면 용에게 엄청난 은혜를 입히게 되는 거고 막대한 보상을, 그래 뭐 지구의 왕이나 돼 볼까? 시시하겠지. 것보다 어쩌면 난 진짜… 어쩌면 난 그녀의 사랑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저 눈앞이 컴컴해지더니, 의식이 아득해지는 기분 나쁜 감각만을 느낄 뿐이었다.

*

눈을 떴다.

난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무슨 굉장히 창피한 짓을 해 버린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오후 8시, 정신을 잃었을 때가 퇴근 시간이었으니 두 시간이나 지나 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마담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 야옹이를 쓰다듬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야옹이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마담의 품에서 도망쳐 어디론가 사라졌다.

“로드의 마력은 순수한 욕망을 자극하지.”

마담은 대수롭지 않게 내게 말했다.

마물원에 로드의 마력이 잠재되어 있어, 알게 모르게 내가 중독되었다고 한다.

“수치스러워하지 마. 넌 제법 버틴 거야. 약한 정신을 가진 자는 벌써 죽었을 거야.”

마담의 말을 들으며 드래곤 로드가 가진 힘에 대해 어렴풋이 깨달았다. 미친, 말이 돼? 단지 남겨진 마력만으로 날 기절시킬 만큼 강하다고? 젠장, 이유를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원장님은 왜 하필 그런 놈한테 잡혀가서. 하긴 용인 원장님을 억압하려면 이 정돈 돼야 한다는 건가?

난 소파에서 일어나 식은 커피를 단번에 마셔 목을 축였다.

그리고 바로 마담에게 물었다.

“구할 방법은 정녕 없는 건가요?”

“이런, 아직 독이 남아 있니?”

“내 생각은 변함없어요.”

난 마담의 눈을 마주했다.

기이했다.

처음으로 두렵기만 하던 눈 혹은 고양이에 미친 여자의 눈으로만 보이던 마담의 눈빛에서 기이한 기분을 느꼈다. 이상하기 짝이 없다. 왜 날 그렇게 ‘자애롭게’ 쳐다보는 거야?

“좋아.”

마담이 대답했다.

“가르쳐 줄게.”

정말 가르쳐 준다고?

기뻐해야 할 일이나, 난 되묻고 말았다.

“왜요?”

마담은 갑자기 깔깔 웃기 시작했다. 호탕한 마담의 웃음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재밌잖니?”

마담의 이유는 정말 간결했고, ‘드래곤’다웠다.

“너와 파르바티의 이야기는 수많은 차원의 광활한 이야기 속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야. 상당히 재밌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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