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가디언즈(1)
마담이 말하길, 현재 용들은 동면기라고 한다.
난 곰이나 개구리도 아니고 웬 동면이냐 싶었으나, 용들의 동면은 단지 겨울잠을 자는 것같이 저열한 게 아니었다.
개념은 비슷하다.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용들의 강력한 힘은 수천 년에 한 번 약화될 때가 있다고 하며 힘을 되찾기 위하여 동면에 드는데, 아득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배터리로 비유하면 용들은 엄청난 에너지와 힘을 발휘하는 만큼 방전되면 충전 시간이 무척 긴 듯싶었다. 그들이 온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무려 백 년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은 용들이 가장 약해지는 시기라 동면에 들기 전, 몹시 경계하며 만발의 준비를 한다고 했다.
“빛나는 자가 주술사의 힘이 필요한 건 동면기와 대전이의 시기와 겹쳤기 때문이야.”
마담이 말하길, 로드와 그를 따르는 용들은 ‘대전이’를 대비하기 위하여 꼭 동면을 취해 힘을 비축하려 들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온갖 위험이 솟구치며 용마저 위협할 존재들이 궐기하는 시기에 동면하는 걸 두려워하여 원장님의 힘을 이용하려고 했다.
“붉은 꼬마는 동족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완전무결한 ‘둥지’를 만들 수 있지.”
마담은 원장님이 드래곤들이 동면에 들 때, 그들을 보호할 둥지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였다. 원장님의 강대한 공간 마법은 그녀가 용족의 주술사라 불리는 이유였다.
확실히 마물원을 구성하는 수많은 우리들과 차원 이동마저 손쉽게 해내는 원장님의 힘은 다른 드래곤들에게서 볼 수 없었다.
마담은 원장님을 ‘공간의 근본’이라 불렀다. 원장님의 공간 마법만이 용들을 동면의 위기에서 보호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로드는 그 이유로 원장님을 잡아간 것이다.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이야기를 들으며 어렴풋이 깨달았으나, 난 확실한 답을 원했다.
마담은 싱긋 웃으며 원장님을 구할 수단과 방법을 가르쳐 줬다.
“용들은 곧 잠들 거야. 그러면…….”
난 마담의 말을 들으며 안도감을 느꼈다. 물론 역대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이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이 될 테지만, 처음 했던 각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게 여겨졌다. 다행이다. 내가 상대할 자는 로드를 비롯한 ‘드래곤’들이 아니었다.
“둥지를 지키는 가디언들만 남았을 때, 네가 붉은 꼬마를 깨워 달아나게 할 수도 있겠지.”
원장님은 동면에 들지 않는다. 용의 전체 의지를 배반한 이율배반자이기에, 동면에 들지 못하고 둥지에 갇힌 채 용들이 깨어날 때까지 속박당한다. 그러나 마담은 원장님을 깨울 방법이 있다고 하며, 다시 ‘마스터키’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 열쇠는 창조된 모든 공간의 틈을 열지. 붉은 꼬마는 로드의 마력으로 속박되어 힘을 쓰지 못하더라도, 이 열쇠라면 ‘바깥’에서도 열 수 있을 거야.”
난 키를 받아들며 저절로 고개를 넙죽 숙였다.
고마웠다. 캣 맘이 내게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전혀 몰랐는데.
이 열쇠로 원장님을 구할 수 있어. 내가 웃고 있자 열쇠를 건넨 마담은 날 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내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현실에 대해서 일깨워 줬다.
“단, 네가 용의 가디언들에게 승리해야겠지. 너보다 훨씬 오랫동안 용의 가디언 역할을 수행한 자들이야. 교활하고, 강인하고, 비겁하고 용기 있는 자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을 텐데.”
마담이 묻는다.
“어때? 할 수 있겠니?”
난 곰곰이 생각하는 척했다.
적어도 고민하고, 겁내는 척은 해야 정상이겠지.
“용의 가디언들이라면 분명 상상도 못할 강자들…….”
하지만 역시 난 멍청한 새끼였다.
어디서 솟구치는지 모르겠다.
난 더할 나위 없이 자신감에 가득 찬 채로 마담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용의 시다바리들이잖아요? 그럼 내가 다 조질 수 있어요.”
마담이 가디언을 상대해야 한다고 했을 때, 막연한 상황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날 증명할 기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간 것이다. 용을 이기진 못하더라도 가디언 중에 내가 최강이라면 왠지… 왠지 그냥 내가 아주 많이 멋있을 것 같았다.
사실 몇 년 동안 마물원 직원이자 가디언으로 살아오며 날 대단한 존재로 여길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들이 내 존재 가치에 관한 기준이 되진 못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확인시켜 주진 못한 것이다. 무대가 좁다? 아니,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 화가들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학자들은 학문적 가치로 자신의 위상을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기회들은 대부분의 일이 원장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뿐, 나 스스로 무엇을 해낸 적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가디언들을 이기고 원장님을 구하게 된다면 ‘나’라는 존재 가치를 확실하게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원장님도 충분히 알아줄 테지.
*
“좋아, 프티! 용의 둥지로 향하는 문은 열어 주도록 할게.”
흔쾌히 포탈을 열어 주겠다는 마담의 말에 긴장하고 있을 때, 마담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의 너라면 개죽음에 불과할 거야, 프티. 네 힘에 대해선 자주 들었단다.”
마담의 조언은 무지에서 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마담이라면 다른 용들의 가디언도 알 테고, 그런 마담이 지금의 내 힘으론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혼자서 다 조질 수 있다고 했던 나지만, 무모하다는 건 깨닫고 있었다. 난 마담의 조언을 경청했다.
“붉은 꼬마가 남긴 이 기상천외한 곳, 마물원에서 답을 찾아. 프티, 네 힘을 강하게 해 줄 존재들을 마주하고 힘을 빌리는 거야.”
마담은 내 ‘교감’의 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마물원에서 힘을 찾으라고 한다.
“느껴지는구나. 이곳엔 용조차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어떤 존재들이 숨죽인 채 널 기다리고 있어. 아마 너 또한 만나 봤을 존재겠지.”
마담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저곳은 분명, ‘세계를 멸망시킬’ 마물들의 둥지가 있는 방향이었다.
난 마담의 조언을 이해했다. 곧바로 마스터키를 챙긴 후 녀석들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마담은 관리실에 남았다. 내가 관리실의 문을 열자, 마담이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조심해. 프티, 힘을 얻으려다가 도리어 네가 죽을지도 몰라.”
난 마담의 걱정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마물원의 우두머리니까.”
내 끝도 모르는 자신감에 마담은 옅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붉은 꼬마가 널 좋아한 이유를 약간 알 것 같기도 해.”
문을 닫던 난 재빨리 다시 열고 마담을 쳐다봤으나, 할 말이 끝난 마담은 구석에서 몸치장을 하던 야옹이에게 작업을 걸기 바빴다. 쳐다보던 난 어깨를 으쓱하고 문을 닫았다. 생각해 보면 나, 용들의 호감을 받는구나.
*
“원장님은 녀석을 케르베로스보다 더 위험한 마물이라고 했었어.”
금지 구역에서 처음 만나 볼 마물은 ‘글루토니’였다. 이 마물은 마물원에서 내가 가장 잘 모르는 마물이며, 가장 위험한 마물이기도 했다.
금지 구역의 마물들에 대해 둘러보던 입사 초기 때를 제외하면 몇 년 동안 글루토니를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녀석은 원장님이 관리했었다.
글루토니, 녀석의 별명은 폭식의 마물이다. 이미 몇 개의 ‘세계’를 갉아먹은 전적이 있다고 들었다. 글루토니의 둥지를 처음 방문했을 땐 이빨에 묻은 음식물조차 없애야 했었다. 식욕의 화신, 끝없는 식탐의 마물. 지구에 풀어놓는다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가 글루토니의 이빨 자국으로 뒤덮일 거라던.
“내 감을 믿자.”
지금 글루토니는 원장님이 ‘계속해서 자라는 나무의 씨앗’을 먹여 배부른 상태였다. 하지만 녀석의 뱃속에 무언가 다른 게 들어간다면 식욕이 폭발하여 공간마저 갉아먹는다고 했었다. 난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원장님의 말만 믿자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세계 멸망에 이바지하는 꼴이겠지만.
난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내 감을 믿어 보고자 했다.
“이거면 되려나.”
그래서 냉동 창고에 들려 마물 먹이용 소고기를 자루 채로 들고왔다.
금지 구역에 도달하여 마스터키를 사용하여 글루토니의 둥지를 열었다. 드넓게 펼쳐진 사막의 우리다. 음식은커녕 물조차 구할 수 없는 갈증 나는 사막에 녀석이 있다.
난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운’을 쫓아 글루토니를 찾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찾을 것도 없이 글루토니가 점점 내게 다가옴을 느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기운도 믿을 수 없이 커졌다. 이내 글루토니의 강렬한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때와 마찬가지였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마물, 동물, 심지어 신수도.
한 가지 생각만을 하는 놈들은 몹시 드물다.
심지어 솔로몬의 미라 마물처럼 살의만이 가득했던 괴물도 두려움은 느꼈었다.
하지만 녀석은 다르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기분, 한 가지 욕망만을 느낀다.
단지 배고픔만을 느끼는 기괴한 마물, 글루토니였다.
녀석은 내 손에 들린 소고기 자루에 정신이 팔린 듯했다.
“여전히 귀여운 외모야.”
어느덧 사구의 위에서 글루토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짧은 몸통을 파닥파닥 움직이며 뛰어왔다.
마치 하프물범처럼 생긴 녀석이다. 북슬북슬한 하얀 털 속에 곰돌이 인형같이 귀여운 두 눈, 뛰다가 혼자 자빠져선 데구루루 모래 언덕을 구르며 내려오는 모습이 깜찍하다 못해 깨물어 주고 싶었다.
마물원에도 귀여운 마물 새끼들은 많이 있지만, 단연 녀석이 NO.1의 귀여움, 마물원에 마스코트를 정한다면 주저 없이 글루토니라고 정할 만큼 파괴적인 생김새다. 난 소고기가 든 자루를 쥔 채 녀석이 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달려와 녀석이 입을 벌릴 때.
“멈춰!”
난 강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 순간, 글루토니는 움찔거리더니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예상보다 더 녀석은 내 말을 잘 들었다.
난 식욕만이 가득했던 글루토니의 마음에서 무언가 한 가지 다른 감정이 피어남을 느꼈다. 역시, 첫 만남과 같다. 녀석을 안아 줄 때 원장님은 기겁하며 날 말렸지만 난 전혀 위험하지 않음을 알았다.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녀석은 날 좋아하고 있었다. 배고픔을 넘어선 사랑, 왜 날 좋아하는진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건 녀석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녀석의 식욕을 내가 제어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난 흔쾌히 녀석에게 상을 줬다.
“좋아, 먹어!”
까이!
“뭐여.”
난 눈을 끔뻑거렸다.
까이!까이!
글루토니는 제 배를 작은 손바닥으로 퉁퉁치며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난 녀석이 소고기가 담긴 자루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보지 못했다.
글루토니가 내 손에 들린 소고기 자루를 먹어 치우는 장면을 난 보지 못했다.
두 눈 시퍼렇게 뜬 채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해치운 거다.
글루토니는 나조차도 전혀 보지 못할 어떤 방법으로 먹이를 먹었다.
“잠깐, 뭐여.”
까이까이~!
글루토니는 먹이를 더 원했지만, 내가 주지 않자 요리조리 굴러다니며 애교를 피웠다.
하지만 난 녀석의 배를 쓰다듬어 줄 여력이 없었다.
얼빠진 채로 내 앞을 바라봤다.
바로 앞, 그러니까 ‘소고기 자루’가 있었던 곳이 이상했다.
일렁거리고 있다.
아니, 공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난 조심스레 일렁이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콰아앙!
그 순간, 사구를 뒤집을 만큼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난 폭발의 중심에서도 멀쩡했지만, 놀란 심장은 쿵쾅쿵쾅 세차게 뛰었다.
“야, 너…….”
폭발에 휩쓸려 모래에 머리를 박은 채 바동거리던 글루토니는 내 말에 고개를 번쩍 들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해맑게 울었다.
까이?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도 원장님의 공간 마법을 많이 당해 봐서 어느 정도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공간의 소실, 드물지만 공간 마법의 부작용으로 공간이 찢겨 나간 상태가 되는 것이다.
크기에 따라 다르나 보통 이 찢긴 공간을 건드리면 폭발이 일어나고, 잘못하다간 무너지는 공간에 휩쓸려 갈기갈기 찢겨 버릴 수도 있다.
“내겐 위험하지 않아도…….”
난 ‘채워지는’ 공간을 지켜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한 입이라서 다행이지.
녀석은 정말 케르베로스보다 위험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