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가디언즈 (4)
원장실의 창고는 용의 레어라기엔 볼품없는 그저 낡은 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마물원 유지 보수를 위한 도구들과 작업복, 골렘 부품 따위들만 즐비할 뿐, 도움 될 만한 도구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검소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한걸.”
마담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원장님을 드래곤 중에서 가장 검소하다며 미련하고 멍청하다고 비난했는데, 검소한 건 드래곤 사이에선 인간들처럼 덕목이 아닌 듯했다. 나 또한 창고에 지나지 않는 레어를 보며 비난하고 싶을 지경이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나와 마담은 혹시 몰라 창고 깊숙한 곳까지 살폈다. 마법의 기운이 서린 제초제, 식물 비료 따위들만 줄지어 있는 선반을 지나 아무렇게나 놓인 상자들을 뒤져 볼 때였다.
“어라.”
대충 바닥에 놓인 박스 사이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그건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다른 상자들처럼 취급이 좋지 못했으나 난 보자마자 이끌리듯 손을 뻗었다. 한 개의 열쇠였다. 은으로 만든 열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열쇠는 ‘마스터키’와 비슷한 생김새였으나 기하학적인 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보다 정교한 구조였다. 열쇠 자체에선 별다른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열쇠가 아님은 확실한데 용도를 모르겠다.
“말라카! 이런 건방진 꼬마!”
열쇠를 보고 있을 때였다. 다가온 마담이 갑자기 비명과 비슷한 고함을 내지르더니 원장님을 욕했다. 난 열쇠를 내밀며 이게 뭐길래 그러시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성공했었던 거야.”
마담이 말했다. 이 열쇠엔 근본의 힘이 담겨 있다고 했다. 붉은 꼬마. 즉, 원장님이 자신에게 자주 말하곤 했었다는데 열쇠에 담긴 힘은 ‘무한히 연결되는 문’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마담은 열쇠를 쥐고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이내 말을 덧붙였다.
“열쇠에 담긴 공간은 ‘마물원 전체’인 것 같네. 그래도 대단해. 이건 분명 근래 천 년 동안 만들어진 용들의 마도구 중에 가장 위대한 발명품일 거야.”
“뭐가 그리 대단한데요?”
“탑의 성질을 이용했겠지. 그녀는 뛰어난 주술사니까. 이 조그마한 열쇠 하나에 이토록 광범위한 에너지와 공간의 연결성을 구축하다니, 역시 붉은 꼬마는…….”
“못 알아듣겠어요. 조금 쉽게… 아윽!”
난 그때, 마담의 참을성이 원장님에 비해 간장 종지만큼 작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네다섯 번은 내 투정을 들어주던 원장님과 달리 마담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 친해졌다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난 뒤통수에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에 간신히 울음을 참아냈다.
“연장자의 말은 끝까지 들어주는 게 예의야, 프티.”
그 후로 마담은 다시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어쨌든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 줬긴 했다. 난 이 은열쇠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깨달았다. 그래, 그거였군. 괜히 원장에몽이 아니잖아?
*
무한히 연결되는 문을 만들 수 있는 열쇠, 줄여서 무한열쇠.
쉽게 말해 이 열쇠 하나가 ‘걸어 다니는 마물원’이다. 더 쉽게 비유하면 마물원과 연결된 ‘어디로든 문’인 것이다. 퍼런 고양이 로봇의 어디로든 문은 그야말로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이 열쇠는 조금 다르다. 원장님의 공간 마법이 축약된 마도구로 ‘마물원’과 연결되는 문을 만들 수 있었다. 마담은 이 열쇠가 완성되면 평범한 자라도 공간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전무후무한 마도구가 될 거라고 했지만 일단 이 은열쇠는 마물원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마물원의 우리 중 하나를 떠올린다.
이때, 상상과 현실이 괴리감이 없어야 했는데, 오랫동안 마물원에서 일해 온 나라서 수월했다. 상상했다면 허공에 대고 열쇠를 돌린다. 그러면 공간이 일그러지고 ‘문’이 생겨나는데, 문 너머엔 짜잔. 상상했던 마물원 둥지가 있다.
“그래서, 어따 쓰죠?”
난 문 너머로 보이는 ‘쥐라기 공원’을 쳐다보다가 문을 닫았다. 공간은 다시 합쳐지며 사라졌다. 뭐, 대단한 것 같긴 하다. 진작 이걸 내게 줬으면 마물원 일이 더 편해졌겠지. 하지만 용의 가디언와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상황에선 어떤 도움이 될진 잘 모르겠다. 마담은 내 질문에 몇 가지 답을 해 줬다.
“우선 네 ‘친구’들을 숨길 수 있겠지. 힘을 감추는 목걸이는 필요 없게 됐네.”
케르베로스를 비롯한 금지 구역의 마물들은 가진 힘이 워낙 강렬하여 숨기지 않으면 들통나고 만다. 이 열쇠만 있다면 마물원의 우리에서 기다리다가 힘이 필요할 때 문을 열어 주면 되겠지.
“그리고 마물원엔 금지 구역의 마물들을 제외하고도, 그에 준하는 끔찍한 녀석들도 많잖니?”
본래 마담이 마물원에 온 이유는 마물원에서 관리, 보호 혹은 ‘감금’하고 있는 위험한 마물들을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공간이 분리된 우리에 갇혀 있어도 원장님이 수시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공간마저 뚫고 나올 괴물들. 난 마담의 말을 이해했다. 그래, 있었지. 그동안 ‘수거’한 탑의 괴물들을 가둔 우리가.
원하는 마도구는 아니었지만 나름 쓸만한 도구를 얻었다.
정오까지 남은 시간은 여덟 시간, 꾸물거리는 긴장감에 잠이 오지 않을까 싶었으나 뜻밖에 소파에 눕자마자 잠이 스르르 찾아왔다. 젠장, 분명 떨리고 긴장하여 숨이 턱턱 막혀야 정상인데 왜 이렇게 편안한 기분이 드는지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돼. 심지어 조금… 조금 설레는 건 내가 미친놈이 되었다는 방증인가?
*
“호그와트에서 오셨어요?”
정오가 되기 한 시간 전, 정혜연이 마물원에 도착했다. 나부의 마도구를 가지러 갔던 정혜연은 상당히 수척한 꼴로 돌아왔는데, 복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대단한 마력이 흘러나오는 마법사 로브를 입고, 모자는 마녀들이 쓸법한 넓은 챙의 고깔모자에 구두조차 붉은 뾰족구두다.
“지식의… 탐구… 머리… 뇌가 아파.”
“뭐?”
“아, 아니에요.”
멍한 표정으로 이상한 말을 내뱉던 정혜연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젓는다. 나부의 레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난 혜연과 같이 간 유니콘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그녀는 용의 레어, 감춰진 샘에 있던 이상한 물을 마셨고, 곧바로 깨어났긴 했지만 무언가 달라졌지. 확실한 건 영혼이 보다 웅장해졌다는 거야. 내 주인에 걸맞은. 하악.]
난 은열쇠를 이용해 ‘구름정원’으로 향하는 문을 연 후, 주제를 벗어나려는 유니콘의 뿔을 잡고 문 너머로 밀어 버렸다. 녀석은 같이 가길 원했지만 일단 저 발정 난 말조차 신수에 가까운 기운을 지녔기에 우리에 숨기는 편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놈이 껄떡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준비하렴, 용감한 아가들아.”
해가 가장 높게 떴을 때.
마담이 말했다.
정혜연과 난 굳은 표정으로 마담을 바라봤다.
“용성龍城의 모든 것들이 너흴 죽이려 들겠지.”
마담이 우릴 보고 웃는다.
“죽지 마렴. 호호.”
공간이 일그러지며 거대한 문이 생겨났는데, 수많은 차원을 오간 난 절실히 깨달았다. 문 너머, 저곳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기운. 어떤 차원보다 더 사납고 아득한 세계, 뇌우가 몰아치고 용암이 들끓는 지옥보다 더 두려운 곳임을. 마침내 문이 열리고 너머의 세계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난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용들은 동면에 들었다. 그럼에도 이토록 지고한 힘이라니. 난 어쩌면 가장 어리석고 멍청한 판단을 했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죽음으로 이르는 길, 난 그 길을 걷고자…….
냐앙!
홀로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앙칼진 고양이 소리가 들리더니, 등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악!
넘어졌다.
본능에 따라 비명이 나왔다.
난 야옹이의 몸통박치기에 떠밀려 문을 넘었고, 이내 느껴지는 박탈감에 속이 울렁거린다. 젠장, 악의 군대에 맞서는 ‘아라곤’처럼 비장미라도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항상 이 모양이야.
*
용성은 용들의 차원, 둥지, 성이자 수도였다.
난 가장 복잡하고 기괴한 세계를 목격하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이상한 세계라고 해도 일관성은 있다. 양해의 바다는 용암이 가득하고 무량성계는 모든 게 크다. 그러나 이곳은 마치 ‘세계의 끝’과 환경이 비슷했는데 빙하, 화산, 태산, 녹림, 형태를 정의할 수 없는 공간 등 온갖 세계가 뒤엉킨 곳이었다. 아마 용들의 기에 의해 뒤틀린 거겠지. 세계 자체가 ‘영향’을 받아서 말이다.
“지랄 맞은 곳이네.”
“네. 참… 이상한 곳이에요.”
보통 용들은 뭉치지 않고 온 차원에 널리 떨어져 지내지만, 세계의 존망이 걸린 큰 위기나 동면, 새로운 용이 탄생하거나 죽었을 때마다 이곳, 용성에 모인다고 한다. 나와 정혜연은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마담이 당부했다. 포탈이 생성되는 여파를 용의 가디언들이 눈치채고 침입자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거라고.
가디언들과 정면 대결은 피해야 한다.
특히 다수의 가디언를 동시에 만나면, 임무 실패다.
마담은 용들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용들이 가장 신뢰하는 가디언들이 누구인지, 어떤 힘을 가졌기에 용의 환심을 샀는지에 대하여 대략 알려 줬다. 가디언 중엔 천년 동안이나 가디언의 임무를 수행한 자도 있었고, 한 세계를 지배하던 패자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난 문득 궁금해서 마담에게 질문했다.
그런 자들이 왜 용의 가디언이나 하고 있느냐고.
솔직히 가디언라는 건 용들의 꼬봉에 지나지 않는다. 그토록 강한 힘과 지위를 지녔다면 차라리 바다로 나가지 않고 연못의 왕이 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의문에 대한 답, 이유는 꽤 간단했다. 마담은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드래곤들에게 속았던 거지. 그들의 힘은 때론 우리조차 ‘넘어설’ 가능성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방법을 잘못 택한 거야. 용들은 탐욕스러워서 절대 가진 걸 나누려고 하지 않는단다. 오히려 가능성을 지닌 자들을 억제하고 배제하기 위하여 제 시종으로 삼는 비열한 녀석들이야.]
그러며 날 의식한 듯, 한마디를 덧붙였지.
[하지만 너와 파르바티의 관계는 달라. 붉은 꼬마가 하는 일이니 상관은 없다만, 이것만은 알아 두렴. 네 존재는 일반적인 가디언의 궤를 많이 벗어났다는 걸.]
사실.
알고 있다.
이전이라면 몰랐을 테지만 원장님이 남긴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 책 때문에 진의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래서 난 원장님을 구하고자 이곳에 왔다.
두려운 적들이 득실거리는 용성에.
“원장님의 위치는?”
뛰어난 기감과 반룡인 정혜연은 본능에 따라 용의 기를 읽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용성에 넘어온 이후 눈을 감고 집중하던 혜연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코를 킁킁거렸다.
“느껴져요. 숲과 산을 지나, 죽음의 냄새를 건너 바다 너머. 그곳에 희미하게 원장님의 기운이…….”
난 코를 계속 킁킁거리는 정혜연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냄새로 알 수 있는 거냐? 개코가 따로 없네. 부럽다야.”
혜연은 입을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