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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49화 (249/258)

#249화. 가디언즈 (7)

단비는 또다시 잠이 들었다. 녀석이 내 품을 요람 삼아 잠을 청했을 때 난 내 안이 좀 더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계수이자 위수인 단비는 힘에 직접적인 영향은 주지 않으나 내 그릇을 더욱더 넓게 만들어 줬다. 지금은 상관없지만 단비 덕에 ‘두 가지’ 이상의 마물의 능력을 빌려 올 수 있었지. 이 풍만한 느낌은 단비의 영향, 베나 퀸이 삼켰던 또 다른 세계수가 단비를 성장시킨 모양이었다.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 시벌, 짜증나게.”

용의 가디언, 베나 퀸을 죽였다. 놈은 분명 적이었으나 죽어 사라질 때 난 짜증 나는 허무함을 느꼈다. 교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순간에 놈의 너무 많은 걸 엿봤다. 특히, 놈의 감정에 남은 ‘후회’는 짜증이 날 만큼 슬퍼, 그 때문에 동정이 생겼다. 젠장, 놈의 무덤에 나타난 갈색 토끼 위수가 자꾸 생각난다. 베나 퀸은 동족을 배신하고 자신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해 왔던 ‘위수’는 조용히 그의 마음에서 그를 지켜보며 언젠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베나 퀸의 죽음은 내게 괜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난 단지 원장님을 구하러 왔을 뿐인데, 살인귀의 복수도 아니고 보이는 족족 다 잡아 죽이는 건 싫다. 가디언들을 앞으로 몇 명이나 더 마주칠진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싸우고 싶지 않았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겠지. 그렇다고 내가 죽는 건 사양이니, 어쩌면 가디언들을 몽땅 죽여야 될지도 몰라.

숲을 지나 죽음의 냄새가 짙은 검은 대지에 도달했을 때였다. 난 한숨을 내쉬며 야옹이의 힘을 끌어 올렸다. 기척을 숨겼으니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들키진 않는다. 하지만 검은 대지를 지나지 않으면, 바다를 건너지 못할 것 같았다. 난 바위 뒤에 숨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몇백, 몇천? 잘 모르겠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게 꼭 철새들의 이동 같다. 공통점이라곤 날개 달린 것 빼곤 없지만 말이다.

“악마들, 놈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혜연과 내가 맡았던 죽음의 냄새는 놈들에게서 나오는 구린내였다. 베라 퀸처럼 강력한 힘을 지닌 가디언은 없는 듯하지만, 수가 너무 많다. 경보 골렘처럼 쉽게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가디언들에겐 들킨 모양이니 더 시간이 늦기 전에 정면돌파를 해야 했다. 하지만 수천 마리의 악마들과 상대하면 이길 순 있더라도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이건 마물원의 임무가 아니다.

힘의 소모를 염두에 둬야 했다.

내가 위험해진대도 날 구하러 올 구세주는 없다.

가디언들의 저력도 짐작되지 않는데 수천 마리의 악마와 맞붙는 건 자살 행위야.

난 다시 숲으로 돌아와 은열쇠를 꺼내어 마물원의 문을 열었다.

“뭐하니.”

내가 드래곤의 가디언과 피 터지게 싸울 동안 정혜연은 마츄 우리에서 털북숭이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혜연은 머쓱하게 교복에 묻은 털들을 털어 내며 문을 건넜다.

“내 아이큐 100.”

내가 가진 힘을 아끼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면 된다.

“네 아이큐 80, 합쳐서 180의 아이큐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 보자.”

단지 농담이었는데 신세대인 정혜연은 내 장난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긴 아이큐가 80이 아니라며 화를 냈는데, 난 대꾸하지 않고 멀리 검은 점들이 가득한 하늘을 가리켰다.

“저거 어떻게 하지?”

“아, 악마.”

악마로 뒤덮인 검은 하늘과 대지를 알아차린 정혜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넘어질 뻔했다. 질색하는 녀석의 표정을 보며 난 녀석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녀석은 반룡의 피 때문에 악마들에게 쫓기고 있었었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어린 시절에 각인된 두려움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반룡이니 뭐니 하는 건 둘째치고 녀석은 용성이 어떤 곳인지 알면서 날 따라왔고, 그에 대한 각오로 나름의 힘도 얻었다. 난 정혜연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당황한 녀석이 왜 그러냐고 묻자 난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쫄지 말고 의견을 제시해 봐. 왜? 악마들이 좆 같으면 그냥 나가서 싸우고.”

정혜연은 내 말에 악마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빛엔 공포가 드리워져 있고 다리는 떨려 몸을 가누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평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안정되었다. 난 정혜연이 각오를 다지기까지 기다렸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혜연이 말을 꺼냈다.

“우리가 굳이 싸울 필요는 없겠죠.”

“무슨 소리야?”

정혜연은 내 손에 들린 은열쇠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마물원엔 위험한 얘들도 많잖아요?”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마물원에 대체 얼마나 많은 마물이 있는지. 아마 모두 풀어 버리면 이곳조차 난장판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마물을 희생시키는 건 참 우스운 꼴이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마물을 구하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지랄 맞게 그럴 순 없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 신경 쓰지 않는 마물들도 있었다. 전이와 적응을 위해 마물원에서 보호하는 게 아닌 너무 위험해서 세상과 격리시킨 괴물들이다. 빌어먹을 고블린들이 그랬고, 솔로몬의 탑에 갇힌 괴물들이 그랬다.

“악마들의 시선을 돌리면 야옹이의 힘으로 들키지 않고 건너갈 수 있어. 넌 다시 몬스터볼에 들어가 있을래?”

“아뇨. 경보 골렘이 아니니까 제 마법으로도 충분히 눈은 속일 수 있어요.”

은열쇠로 그동안 마물원에서 거둬간 탑의 괴물들을 풀어 악마들을 유인한다.

허접한 계획이지만 그럴듯했다. 나와 혜연은 악마들로 바글거리는 검은 대지를 향해 걸어갔다. 비록 악마들에게서 ‘검은 뿔의 악마’처럼 강한 힘은 느껴지지 않지만 수만 마리의 악마가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는 꽤 섬뜩하게 들려왔다. 악마들이 지키고 있는 검은 대지의 외곽까지 도착한 난 조용히 은열쇠를 허공에 꽃아 넣었다.

“우리마다 문이 다르군.”

“섬뜩한 문이네요.”

놈들이 갇힌 우리,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기에 나 또한 몇 번 입구에서 속박 장치만 몇 번 손봤을 뿐이었다. 그곳을 떠올리며 은열쇠를 돌리자 마물원의 문이 나타났는데, 다른 우리와 확연하게 다른 문이었다. 마츄의 문이 나무문이고 구름정원의 문이 유리문이라면, 이 문은 검은 액체가 쏟아지는 불길한 석문이었다. 언뜻 일루니미나티의 본거지에 보았던 지옥의 문과 비슷하게 생긴 석문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수만 마리의 악마들과 비견될 만한 강렬한 악취를 풍겼다. 지독한 악의에 악마들도 반응했다. 난 악마들이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렸을 때 재빨리 문을 열고 뒤로 도망쳤다. ‘자신과 동족’을 제외한 모든 생명을 짓밟으려는 솔로몬의 탑의 마물들이라면 이이제이[以夷制夷]가 성공할 줄 알았다.

좁은 문으로.

거대한 괴물들이 기어나온다.

굵은 혈관이 꿈틀거리는 살점과 진득거리는 검은 피, 붉은 눈과 이빨로 이루어진 솔로몬의 탑의 괴물은 우리에서 나온 즉시 악의를 내뿜으며 악마들에게조차 덤벼들기 시작했다. 난 도망치며 은열쇠로 총 아홉 개의 우리의 문을 열었고, 저마다 우리에서 나온 괴물들이 주변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니 악마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옥도,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악마들로 뒤덮인 검은 하늘엔 온갖 괴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난 악의만을 간직한 채 죽음을 탐닉하는 마물들과 악마들로 숨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짓눌리는 역겨움에 토악질이 나왔다.

난 당장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었다. 포근이의 힘과 스위프트덕의 힘을 끌어올려, 조용하고 은밀하지만 바람처럼 빠르게 달렸다.

정혜연이 걱정됐지만 녀석도 나름 유용한 마법들을 할 수 있어 나처럼 들키지 않고, 빠르게 지옥을 벗어났다. 더럽고 역겨운 불쾌감을 제외한다면 잘됐다 싶었다.

어쨌든 작전은 성공했고, 악마들과 괴물들은 서로 잡아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

“젠장, 저건 뭐여.”

하지만 미처 검은 대지를 벗어나기도 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발생했다.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는 놈들. 하지만 기이하게도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진 멀뚱멀뚱하게 서 있던 악마들은 괴물뿐만 아니라 서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난 그제야 진짜 놈들이 ‘악마’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느낌은 비슷했다. 다만, 놈들은 보다… 더 짐승 같았다.

강한 악마가 약한 악마를 먹는다. 그러므로 강해져, 자신을 먹던 괴물을 역으로 먹어치운다. 저건 먹이사슬 따위의 간결한 것이 아니었다.

포식의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매우 빨라져 마침내 우리가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 절벽에 도달했을 때, 탑의 괴물들과 수만 마리의 악마들은 잡아먹힌 후였다. 몇십 마리의 악마들뿐이다.

놈들은 비대해진 몸은 언덕처럼 높고 커다랬다. 살찐 박쥐처럼 역겨운 생김새에 몸 안을 온통 악의로 채운 듯 보는 것만으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엄습해 왔다.

난 차라리 수만 마리의 악마들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건… 아저씨, 도망쳐요!”

“이미 늦었어. 끝까지 쫓아올 거야.”

제 동족을 잡아먹는 괴물과 괴물을 잡아먹는 동족을 잡아먹은 악마들. 기괴하고 뒤틀린 상황에서 태어난 사악한 놈들은 기척을 숨긴 우릴 정확히 바라보며 달려왔다. 야옹이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

단 여섯 마리에 지나지 않으나 느껴지는 기운이 지랄 맞게도, 가디언 못지않았다. 본능에 따라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난 그 힘을 사용해야 돼.

냐앙.

힘을 끌어올리고자 마음먹었을 때였다. 내 발치에 누워 있던 야옹이가 말을 걸듯 작게 울었다. 그에 난 기운을 진정시키고 야옹이를 바라봤다. 야옹아, 네가 뭘 해 줄 수 있니? 하지만 기대와 달리 밤하늘 같은 눈동자만 끔뻑거릴 뿐 야옹이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봐.]

대신, 다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힘을 빌리겠다고 해 놓고 처박아 두기만 하면 어쩌라는 거야.]

머릿속에 울리는 녀석의 목소리. 전에도 정혜연을 구할 때 녀석은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내게 직접 말을 걸었었지. 난 그때를 떠올렸다. 검은 뿔의 악마를 죽인 후 내 안에서 강해졌던 녀석의 힘. 그 힘이라면. 학습 효과가 없음을 인정해야겠네. 지금까지 검은 짐승의 힘에만 너무 의존하려 했어. 난 은열쇠를 꽂았고, 이내 유리문이 생겨났다.

[흥, 데몬의 사생아들인가.]

윤기가 흐르는 갈기를 찰랑거리며 도도하게 걸어 나오는 녀석. 뿔이 달린 백마이자 신성한 힘을 지닌 유니콘이었다. 유니콘은 말 주제에 건방진 표정을 한 채 달려오는 악마들을 향해 ‘데몬의 사생아’라 말했다.

“놈들이 뭔지 아는구나.”

유니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법 ‘뭉쳐진’ 놈들이지만 자신의 힘이라면 능히 소멸시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내 힘을 받아들여.]

난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변태지만 힘은 진짜다. 난 굳은 표정으로 유니콘을 쳐다봤다.

“준비됐어.”

하지만 유니콘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내 굳은 결의를 경멸의 눈빛으로 응수했다.

[너 말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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