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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50화 (250/258)

#250화 가디언즈 (8)

유니콘이 말했다.

[네 특이한 힘 때문에 어렴풋이 흉내만 냈지, 넌 남자잖아. 영웅도 못 되는 녀석아. 옆에 내 모든 힘을 진정 완벽하게 받아들일 순결한 자가 있는데 내가 왜 너한테 빌려줘?]

“시벌, 이 상황에도 여자 타령이냐. 잔말 말고 내놔라. 뿔을 꺾어다가 똥구멍에…….”

[협박해도 소용없다. 어차피 네놈에게 힘을 빌려줘 봤자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이상한 놈, 뭘 어떻게 했는지 네 개의 날개까지 돋았네.]

유니콘은 자기가 힘을 빌려줘도 차이가 없을 거라고 했다. 네 개의 날개까지 언급한 걸 보니 진짜인 것 같았다. 애초에 내 교감의 힘이 특별하여 가능한 일이었다며 진정한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두 개의 절대적인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조건은 ‘어머니’가 만든 것이라 절대 바꿀 수도 없다고 내게 말했다.

두 가지 조건을 들은 난 하나는 만족하나, 다른 하나는 절대 무리임을 깨달았다.

“순결과 여자. 진짜냐, 변태 새끼야?”

[날 탓하지 마. 나도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순결의 샘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지.]

능글맞은 악마들은 거리가 가까워지자 천천히 걸어왔다.

시간이 없다.

젠장.

정혜연은 각오를 했다.

이런 형태의 각오도 각오인진 모르겠지만.

난 정혜연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첫 만남부터 본능에 따라 유니콘을 혐오하던 정혜연도 상황을 이해하고 힘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다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유니콘은 또다시 ‘어머니’가 그렇게 정했다며 계약을 위해선 입맞춤을 해야 한다고 했다. 빌어먹게도 사심 채우기가 아니었다. 나도 한 번 놈과 해 본 적이 있으니까.

“그런… 너무해.”

방금까지 힘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정혜연도 입맞춤 이야기가 나오자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이해한다. 나도 슬펐다. 첫 뽀뽀를 저 따위 말과 해야 한다니. 소녀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될까. 난 우울해하는 정혜연을 위로했다. 녀석의 눈엔 눈물까지 맺히기 시작했다.

[아니, 이보쇼. 내가 밀로의 왕 아비멜렉이라도 된 것처럼 구네. 악마들이 벌써 코앞까지 왔는데 어찌할 거야 대체?]

“넌 입 좀 다물고 있어.”

후우.

정혜연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너무 이기적인 부탁이 아닐까.

고민하던 내게 정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꼭 제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는 거죠?”

유니콘은 정혜연이 가장 알맞은 재목이지만, 사실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엔 정혜연밖에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대신해 주고 싶지만, 여자가 아니라서 안 돼. 정말 미안하다. 빨리 결정을…….”

“그럼 아저씨를 언니로 만들면 되겠네요?”

“응?”

난 정혜연의 처절함을 새삼 깨달았다.

녀석의 마법 지팡이와 내 오리하르콘 브로치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강한 마나가 내 몸에 깃들었는데, 저항하고자 하는 내게 정혜연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마법이지? 상황을 깨달은 건 내 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촉 때문이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생겨났다. 깜짝 놀라 기겁하며 마법을 벗어나고자 하다가 혜연의 눈길을 마주한 난 결국 체념한 채 눈을 감았다. 마물원에서 온갖 지랄 맞고 부끄럽고 해괴한 짓은 많이 해 봤지만, 이 정돈 아니었는데.

정혜연은 용의 마법을 다룬다.

그리고 용의 마법 중엔 ‘폴리모프’란 게 있다.

드래곤들이 본모습을 숨길 때 사용하는 마법인데, 지금 보니 성별마저 뒤바꿀 수 있는 모양이었다.

“오래 유지는 못 해요. 아저씨,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내 고운 미성의 목소리가 적응되지 않았다.

궁금하지만 거울은 보지 않기로 했다. 여자가 된 내 모습을 본다면 두고두고 꿈에 나올 것 같았다.

“빌어먹을 새끼야. 이제 가능하냐?”

난 절대 이런 취향은 없었다.

하지만 날 도와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정혜연을 위하여 희생하고자 마음먹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녀석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네.

[흐음, 너 제법… 아니다. 어쨌든 일시적이나마 조건은 충족되었으니.]

놈이 다가온다.

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혀 넣으면 뒤진다 진짜.”

[나라고 좋은 줄 알아? 카악, 퉤!]

마시멜로처럼 푹신한 감촉.

뭉클거리는 느낌.

난 그렇게 두 번째 뽀뽀조차 녀석과 했다.

* * *

검은 대지의 악마들은 마계의 대장군이 심어놓은 덫이다.

그들은 사실 악마가 아니다. 마계의 사생아들로 더럽고 타락한 기들이 뭉쳐 태어난 구덩이의 씨앗들이다. 그것들은 약하고 볼품없다. 그러나 마계의 악마들조차 그것들과 마주치길 꺼린다. 더러운 피가 가지는 하나의 성질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다르되, 또한 하나였다. 죽은 자는 산 자의 살점이 되고 영양분이 된다. 위기에 봉착하면 서로 잡아먹고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 놈들에게 솔로몬의 괴물들은 촉발제가 되었다.

악마들과 달리, 동족상잔으로 힘이 강대해진 그것들은 마계의 귀족조차 씹어 죽일 짐승들이었다.

그러나.

검은 대지에 여덟 개의 날개를 가진 영웅이 등장하자 더러운 피를 가진 악마들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나 간결하게 그들은 정화되었다. 백색 창이 휘둘러지자 태양의 빛을 훔친 듯 맹렬한 섬광이 검은 대지를 비추었고, 이내 악마들은 모두 소멸하였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비대한 악의를 모두 사라지게 한 것이다. 그 힘은 유니콘의 맹의였다. 순결의 샘에서 어머니에 의해 탄생한 유니콘은 영웅의 신수다. 태생적으로 악마를 멸하기 위한 도구이자 의지였기에 더러운 피를 가진 자들은 성휘를 감히 감당하지 못하였다.

* * *

땅을 까맣게 물들였던 검은 악마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하였다. 난 아직 하얗게 불타오르는 주변을 둘러보며 심지어 이만한 힘이면 성별이 바뀌는 것 정도야 감수할 만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단 한 번, 유니콘의 힘을 빌려 백색의 창을 휘둘렀을 뿐인데 굉장한 힘이다. 영웅의 힘은 전혀 과장된 게 아니었구나.

등에 돋아났던 여덟 개의 날개는 금방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혜연의 폴리모프 마법도 풀렸다. 난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아차 싶어 내가 더 신경 써야 할 게 뭔지 깨달았다. 악마가 죽든 말든 당장 중요한 건 내 몸 상태다. 난 혜연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심하게 몸을 살폈다. 다행히 있어야 할 건 있고, 없어야 할 건 없다. 부작용 없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너, 그 마법 쓸 때 내게 미리 경고해라. 아니면 콱 쥐어패 버릴 테니까.”

난 정혜연에게 역정을 냈고, 녀석은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사실 갑자기 화가 치밀어오른 이유는 뒤늦게 떠올린 기억 때문이었다.

언젠가 원장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 폴리모프 마법, 다른 이에게도 쓸 수 있느냐고.

원장님은 가능은 하지만 폴리모프 마법은 드래곤이 아니고서야 굉장히 위험하여 자칫하단 성별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고 했었나? 설마 내가 폴리모프 마법에 당할 줄은 몰랐기에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었다. 만약 부작용이 생겼다면 슬프게도 사용도 못 하고 영영 작별을 고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젠장, 힘을 빌려주겠다고 했지 누가 다 ‘가져가라고’ 했냐. 아, 피곤해! 걷지도 못하겠다. 문이나 열어 줘.]

유니콘의 힘을 빌려 악마들을 죽이고 난 뒤 난 전혀 피곤하지 않았지만 유니콘은 힘들어했다. 녀석의 힘이 내게 깃들 때 힘을 아끼겠다고 과도하게 힘을 펼치긴 했지. 난 은열쇠로 우리를 연 후 철퍼덕 누운 채 헐떡이는 유니콘을 친절하게 들어 올려 문 너머로 보내줬다. 어쨌든 녀석 덕에 수월하게 넘겼다.

“바다 건너 원장님이 있다고 했지.”

“네. 확실해요. 하지만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요.”

“희미해져?”

정혜연은 원장님의 냄새가 희미해지고 있다고 했다. 잘은 몰라도 좋은 징조가 아닌 건 확실하다. 경보골렘에 엘프 가디언에 악마 무리까지, 과연 용성은 만만치 않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난 이곳에 개고생을 하러 온 이유를 상기하며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젠장, 이 일이 끝나면 보상은 확실하게 받아낼 거야.

* * *

절벽 아래,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드래곤의 영향을 받아 뒤죽박죽 뒤엉킨 세계지만 바다는 형태를 잃지 않았다. 고요하고 차분한 바다다. 다만 짙은 푸른색의 바닷물은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어딘가 기분이 나쁜 바다다.

난 바다를 내려다보며 그를 기다렸다.

하긴, 이 정도 소란인데 놈들에게 들키지 않는 게 이상하지.

바다를 건너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

“뒤로 물러나 있어.”

곧바로 다른 적이 등장했다.

놈은 멀리서, 천천히 걸어왔다.

정혜연은 내게 조심하라며, 저 자에게서 용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아마 드래곤의 가디언이겠지.

이곳으로 걸어오는 자, 느긋한 발걸음이지만 어느샌가 모습을 확인할 만큼 가까워졌다. 육중한 덩치의 ‘오크’였다. 난 오크 라덴에서 오크들을 수도 없이 봤지만 저처럼 덩치 큰 오크는 본 적이 없었다. 덩치만 보면 오크라기보다, 오우거에 가까웠지만 생김새는 확실히 오크였다. 놈의 무기도 제 덩치만큼 살벌했다. 길이가 4미터쯤 될까, 자기 키보다 더 큰, 보기에도 육중한 무게가 느껴지는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멘 놈은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내게 걸어왔다.

난 그를 보며 위압감을 느꼈다.

악독한 적에겐 악의와 살의를 느끼고, 위험한 적들에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어딘가 달랐다. 이상하게 마음이 들끓었다. 난 어디선가 느껴 본 적 있던 이 감정이 호승심이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되었다. 무림에서 온 자들 혹은 곽운 스승님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격양되는 기분을 놈에게서 느꼈다. 난 단지 놈과 마주했을 뿐인데 이곳이 오크 라덴처럼 느껴졌다. 워라이언들이 없어도, 전쟁의 흥취에 취하는 듯했다. 기묘한 자였다. 적이며, 드래곤의 가디언이나 그가 내게 한 가지 목적을 품고 성큼성큼 걸어올 때, 난 이상하게 기뻤다.

놈은 정혜연에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을 바라본다.

이내 얼굴을 맞대고, 악수를 할 만큼 가까워졌다.

그러나 나도, 놈도 차분한 태도로 상대를 맞이했다.

침입자를 죽여야 하는 가디언과, 그에 맞서야 하는 침입자의 입장이 전혀 아니다.

“느껴진다.”

난 그의 눈을 마주했다. 매섭게 타오르는 붉은 눈은 맹수의 눈처럼 위협적이었다. 또한, 날카롭게 벼린 검 한 자루를 마주하는 것같이 서늘하고 날카로웠다. 그의 강렬한 풍채에 난 뒤꿈치에 힘을 주고 꼿꼿이 섰다.

“넌 전사다.”

그가 말했다.

“그렇군. 네가 카를을 죽여 ‘나의 동지’들의 긍지를 지켜 낸 자로구나.”

그는 내가 오크 라덴에서 행했던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드래곤 로드의 가디언이었던 카를을 죽여 오크 라덴에 다시금 ‘전쟁’을 되찾게 한 것을 말이다.

“고맙게 생각한다.”

그는 내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지만 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고마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나와 싸우려 들 것이다.

그는 오크다.

내가 오크 라덴에서 겪어 본 오크들이라면 절대 싸움을 피하지 않을 거야.

“보답이라기엔 하찮지만, 다른 자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가디언들에게 내 위치를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난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았느냐고 물어보려다가, 시시한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전쟁이 있는 곳엔 항상 오크가 있음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는 어깨에 멘 검을 내려놓았다. 그러며 검 끝으로 땅을 내려찍었는데, 그 여파로 거대한 바위가 떨어진 듯 땅이 흔들렸다.

“난 ‘인도자 게브’의 가디언이자 뭿셀름의 전사, 또한 오래 전 오크들의 대군주였던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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