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1권] 3회-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는 다시 하얀색 천을 머리에 쓰고 끈으로 둘러서 고정시켰다. 눈에 띄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얼굴을 고스란히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아자리의 물건에는 손대지 않고 자기물건만 고스란히 챙겨서 바깥으로 나섰다.
난민촌에는 제대로 된 건물이 없었다. 오로지 오두막하고 텐트뿐이다. 폭우나 폭설 같은 자연 재해를 겪을 때마다 집이 자주 무너졌는지 오래된 오두막과 새로 지은 오두막이 한눈에 구분이 갔다.
아자리의 오두막 바로 옆에는 수인 남녀 한 쌍이 자신들의 오두막을 수리하고 있었다. 아마 부부이거나 연인으로 보였다. 남자 쪽은 사람만한 크기의 개가 사람 옷을 입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지만 여자 쪽은 사람의 모습에 동물 귀와 동물 꼬리만 달려 있었다.
“확실히 보통은 남자 쪽이 동물에 가깝네.”
라고 레스는 중얼거리고 갈 곳을 찾았다. 우물은 보통 마을 중심에 있으니 큰 길을 따라서 인적이 많은 곳만 향하면 쉽게 찾는다. 주민들이 레스를 그의 이국적인 외모와 옷차림을 보고 쑥덕거렸다. 레스는 갈 길이나 갔다. 어차피 마족들의 말이라 알아듣지도 못한다.
가는 길에 묘한 게 있어서 레스는 잠시 멈추고 구경했다. 오크들이 하얀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공터에 모여서 단체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일종의 종교의식내지 정신수양 같았다. 입고 있는 옷은 소매의 통을 넓게 짠 것이 인상적이다. 소매를 주머니로 쓴다면 도시락도 들어갈 거 같다. 야만적이라고 선입견이 퍼져있는 종족이지만 레스는 그들의 말없는 명상 속에서 진중하고 굳건한 공기를 느꼈다.
“분위기는 내 취향이지만 여기서 놀고 있을 때가 아니야.”
라고 레스는 중얼거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 가끔 엘프도 눈에 띄었다. 외출복 차림의 엘프 여인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다가 레스를 보고는 신기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수다를 떨었다. 뾰족한 귀와 출중하고 신비로운 용모, 그리고 높은 지능과 육체능력으로 유명한 종족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점이 많은 종족이라 선민의식이 있어서 다른 종족들에게 시기를 많이 받기도 한다. 그 능력 덕분인지 아니면 인간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대우를 받아서인지 다른 마족 난민들과는 비교적으로 건강 상태와 차려입은 옷의 수준이 양호했다.
레스는 그들을 지나쳤다. 지금까지 봤던 이들 말고도 다른 종족이 이 난민촌에 더 있겠지만 지금은 구경하러 다닐 시간이 없었다.
“이놈의 우물은 언제 나오는 거야.”
슬슬 우물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갑자기 저 앞의 거리에 사람들이 우글거려서 더 갈 수가 없었다. 그는 인파들 너머를 집중해서 살폈다. 거기에는 웬 건달패들이 붉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인간 남자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안 좋은 예감을 느낀 레스는 다른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타악!]
느닷없는 총소리에 사람들이 우물을 향해 몰려가거나 이쪽으로 도망치는 통에 인파가 몇 배는 혼잡해졌다. 레스는 휩쓸리지 않도록 힘을 쥐어짜며 계속 나아갔다. 다행히 이 혼란을 이용해서 레스는 들키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었다. 바로 앞이 우물가와 광장이었다. 레스는 그늘 속에 숨어서 무슨 일인지 보았다.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
광장 한복판에 모자를 쓰고 가죽 코트를 입은 중년 사내가 아직도 초연이 피어오르는 권총을 위로 쳐든 채 소리를 질렀다. 가슴팍에는 보안관을 상징하는 금빛 배지가 번쩍거렸다. 주변에는 붉은 복면을 쓴 괴한들이 복작거렸다. 그 속에서 울상을 지은 늙은 엘프 남자가 마족들의 말로 주민들에게 소리쳤다. 엘프가 말을 마치자 보안관이 즉시 말했다.
“제국의 수사에 비협조하는 행위는 반역이다!”
이번에도 엘프가 마족어로 주민들에게 소리쳤다. 보아하니 마족들의 말 밖에 모르는 주민들을 위해 통역을 해주는 모양이다.
레스로서는 당장 도망쳐야했지만 이대로 떠나기에는 마음이 켕겼다. 애초에 저들은 자신을 붙잡으러 여기로 쳐들어왔을 테니까. 당장 뾰족한 수는 없었지만 그는 일단 아자리를 계속 찾았다.
보안관이 이어서 말했다.
“마녀를 데려올 생각도 없고. 마녀가 모습을 드러낼 생각도 없다면! 본보기를 보일 수밖에!”
마녀는 아자리를 의미하는 거리라. 보안관이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마족 하나가 그들의 손으로 끌려 나왔다. 끌려온 이유는 첫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저항하던 마족은 몽둥이에 몇 번 맞고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열! 아홉!”
보안관이 쓰러진 마족에게 총을 겨누고 숫자를 셌다. 통역을 맡던 엘프는 보안관의 말에 맞춰서 숫자를 세다가 갑자기 다른 말을 했다. 마족들의 말은 못 알아들어도 낌새를 눈치 챈 보안관이 권총을 그에게 겨눴다.
“수작 부리지 말고 하라는 대로만 해!”
늙은 엘프는 용기를 내서 간신히 더듬지 않고 소리쳤다.
“아자리아님은 아무 잘못도 안 했잖아!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기만 했다고!”
“그럼 네가 본보기가 될 거냐? 우리보다 귀가 두 배는 크니까 한쪽이 날아가도 상관없겠지.”
보안관이 공이치기를 당기자 레스는 충동적으로 인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고 말았다.
“아 이런.”
레스도 놀랐고 난데없는 등장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보안관도 당황해서 반사적으로 총구를 그에게 돌렸다. 덕분에 늙은 엘프는 한숨 돌렸다. 기왕 이리된 거 레스는 당당한 얼굴로 자신을 겨누는 권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손바닥을 보이며 보안관에게 말을 걸었다.
“끼어 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제보 드릴 게 있어서요.”
보안관은 주변의 눈치를 한 번 살핀 다음 총을 집어넣었다.
“이방인이군. 여기서 뭐하는 거냐?”
다행히 보안관은 레스를 알아보지는 않았다. 어젯밤에 워낙 어두워서 인상착의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레스는 차근히 말했다.
“물 마시러 한참을 기다렸는데 끝날 기미가 안 보이더라고요. 그러다가 마녀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왔습니다.”
아직 미심쩍은 얼굴이었지만 보안관은 계속 물었다.
“할 말이 무엇이냐?”
“일단 목부터 좀 축이고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윽박지르기도 귀찮아진 보안관은 손짓으로 우물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다. 그는 쓰고 있는 천을 벗은 다음 숨이 닿는 데까지 물을 마시고 남은 물을 머리에 부었다. 오랜만에 물기를 마신 머리카락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분위기가 바뀐 덕에 본보기로 당할 뻔했던 마족들은 보안관 일행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레스는 최대한 그럴싸한 거짓말을 생각했다.
“혹시 찾고 있는 마녀라는 게 이정도 되는 꼬마 말하는 겁니까? 관자놀이에 뿔도 달려있고?”
보안관은 그 말이 너무 반가워서 잠깐 의심하는 것도 까먹었다.
“그래. 어디서 봤지?”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봤습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최근에 와서 여기 지리가 어렵군요.”
“그냥 해.”
보안관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러니까. 저쪽으로 블록 세 개 지나서 있는 거기 골목에서 마주쳤습니다. 적어도 포위망을 다른 곳에 치셔야할 겁니다.”
레스는 적당히 시내 쪽을 가리켰다. 보안관이 자신의 부관으로 보이는 남자를 손짓으로 부르고 뭐라 속닥였다. 부관은 옷차림과 태도가 점잖은 게 다른 사람들하고 달라서 눈에 확 띄었다. 지시를 들은 부관은 아까 레스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향했다. 레스는 성과가 있다고 생각해서 작은 만족을 느꼈다. 마족 몇이 공용어를 알아듣고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전해주어 인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주민들의 배려로 그들 사이에 깊숙이 숨어있던 아자리는 그 소식을 듣고 혼란한 얼굴이었다.
보안관이 레스를 째려봤다.
“협조한 태도는 칭찬받을 만하나 일단 물어보겠다. 확실한가?”
“그럼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정직하게 답해라. 여기 지리도 잘 모르면서 방금 마주친 마족이 마녀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레스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 말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저한테 이상한 물건을 강매하려 하더라고요. 만병통치약이라던가. 목에 걸면 총알이 피해가는 목걸이라던가. 이방인이라고 만만하게 보였나 봅니다.”
“겨우 그걸로 마녀라는 걸 알았다고?”
“마법 쓰는 사람을 여행길에 여러 번 봐서 이런 쪽으로 촉이 있습니다. 진짜 주술이 걸린 물건들 같더라고요. 괜히 샀다가는 돈도 잃고 이상한 일도 당할 거 같아서 그냥 갔습니다.”
보안관은 납득하지 못했으나 더 이상 추궁할 핑계도 떠올리지 못했다. 심증은 있어도 레스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속였다는 증거는 없거니와 아자리가 저쪽에 없어도 시간이 지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을 거라는 식으로 잡아떼면 그만이다.
“가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막나가는 보안관이라고 해도 일단 인간 세계의 치안을 지키는 사람이다. 레스는 상대가 같은 인간한테까지 강압적으로 대하지는 못할 거라고 추측했다. 보안관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을 뱉었다.
“그래, 좋다.”
레스는 다시 천을 머리에 씌웠다. 그의 이마와 등에서 방금 마신 물이 그대로 빠져나오기라도 한 듯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뒤로 돌면서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총알만 있었으면.
보안관이 그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뭔가 눈치 채고 말을 걸었다.
“잠깐만, 나와 같이 가주겠나?”
멈춰서 돌아보니 보안관의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가득하다.
“협조에 대한 포상인가요?”
그가 레스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부하들이 보안관의 손짓에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겉으로는 막고 있던 광장의 길을 튼 것으로 보이지만 레스의 입장에서는 포위당하고 있었다. 붙잡혀 있었던 마족들은 슬그머니 인파 속으로 달아났다.
보안관이 뺨에서 힘을 풀고 나지막이 말했다.
“걸음을 보면 허리에 뭘 차고 있는 티가 나.”
보안관과 레스의 얼굴이 조각상처럼 굳었다. 보안관은 권총을 미리 쥐고 있었지만 그의 손가락에 얽힌 근섬유가 뇌의 신호를 받아들일 때 레스의 손과 팔은 따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생물처럼 권총을 들어 올리고 시선과 조준점을 정렬시켰다. 눈앞에 있는 권총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보안관은 권총을 이제 막 꺼내려던 참이었다.
눈 깜빡할 순간에 레스의 손이 용수철에 튕긴 것처럼 총을 뽑아버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대로 얼어버렸다. 보안관은 얼굴을 굴욕으로 일그러트리고 총을 반쯤 뽑은 채 엉거주춤 섰다.
레스는 지금까지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보다는 그쪽이 잃을 게 더 많지 않으신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아느냐?”
“우리 고향에서 총에 손을 걸고 다가오는 놈은 먼저 쏴버려도 정당방위야.”
“여긴 제국이다.”
“그래서 뭐.”
“살아서 여길 나갈 수 있을 거 같아? 마족을 감싸고 보안관에게 총을 겨눴으니 네놈은 재판 없이 처형이다!”
“내 손가락도 재판이 필요 없지. 갖고 있는 거 버리고 부하들을 물려.”
보안관은 이빨을 빠득빠득 갈면서 손짓으로 지시를 내리고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보이는 대로 모두 오합지졸들인지 순순히 물러났다.
겉으로는 당당했지만 레스는 총알이 없는 걸 들킬까봐 뼛속이 떨리고 있었다. 리볼버는 정면에서 보면 안쪽이 훤히 보인다. 용사가 되지 못한 불운을 지금의 행운으로 보상 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안관이 허리에 차고 있던 벨트를 풀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일순. 레스는 소름이 돋았다.
수많은 실전을 겪어온 레스는 오감을 뛰어넘는 감각으로 총에 겨눠졌다는 걸 알았지만 총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오른쪽 가슴에 피로 된 꽃이 피었다.
“안 돼!”
군중 속에서 아자리가 절규하면서 뛰쳐나왔다. 지금까지 그녀를 숨겨줬던 주민들이 가면 안 된다고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아자리는 멈추지 않았다. 바로 잡졸들이 뛰쳐나가서 그녀를 붙잡아왔다.
광장 안으로 조금 전에 자리를 비웠던 보안관의 부관이 소총의 노리쇠를 당기며 들어왔다. 부관은 허공으로 튕겨진 탄피를 잽싸게 챙기고 공손히 말했다.
“괜한 참견이었나요?”
보안관은 방금 전의 굴욕은 어디 갔냐는 듯 바로 근엄한 표정과 함께 다시 벨트를 찼다.
“그럴 리가. 난 자네도 계산에 넣고 있었지. 확실히 조준할 수 있도록 상대를 방심하게 한 거니 말이야.”
“그랬군요.”
부관은 표정 없는 얼굴로 소총을 등에 맸다.
엎어진 레스의 몸 아래로 피 웅덩이가 점점 퍼져나갔다. 붙잡힌 아자리는 다급히 말했다.
“지금 당장 치료해야 해! 풀어줘!”
보안관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럴 필요 없어.”
“협조할거야! 협조할 테니까!”
부관이 아자리와 레스의 모습을 번갈아보다가 의견을 냈다.
“내버려두면 가는 내내 입을 안 다물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쉽게 죽이기에는 너무 악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보안관은 입술을 씽긋 움직였다.
“그래. 마침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풀어줘라.”
아자리는 달려가서 엎드려 있던 레스를 바로 눕혔다. 그의 입술에는 피거품이 뻐끔거렸고 흰색 상의는 절반 이상 붉은 색으로 염색됐다.
“아저씨?! 아저씨! 내 말 들려요? 레스!”
레스는 힘없이 눈꺼풀을 올리고 눈동자만 돌려서 아자리를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그의 입에는 끄르르 하는 거품 끓는 소리만 났다. 그녀는 눈가를 비비고 레스의 상처 주위에 양손을 댔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낭송하는 시인처럼 엄숙한 목소리로 뭐라 계속 중얼거렸다. 허공에 반딧불 같은 빛이 떠올라 상처에 스며들자 출혈이 멎었다. 살이 순식간에 솟아올라 총알이 바깥으로 밀려나올 때 레스는 격통과 함께 피를 토하고 기절했다.
◆
레스가 정신을 차리자 그의 눈으로 마차 짐칸의 지붕이 들어왔다. 권총은 물론 셔츠와 바지를 제외하고 걸치고 있던 것들은 모조리 빼앗겼고 손은 포박 당했다.
그의 맞은편에 아자리가 침울한 얼굴로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레스가 연거푸 기침을 하고 몸을 일으키려하자 아자리가 얼른 와서 부축을 해주려 했지만 그녀의 다리에는 철구에 이어진 족쇄가 걸려있었다. 힘겹게 온 아자리의 부축으로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총에 맞고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건 처음이네.”
레스의 목소리는 휘파람이 뭉친 것처럼 잔뜩 쉬어있다. 아자리는 길게 뜸을 들이다가 겨우 운을 때었다.
“왜 끼어들었어요?”
“그냥.”
그는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아자리는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그런 걸로 목숨을 걸었어요?”
“용사도 할 생각이었는데 그거쯤이야.”
그는 다시 기침을 하다가 겨우 진정했다.
“내가 다 망쳤네. 다들 널 지켜줬는데. 나 때문에...”
“그만 말하세요. 목 안에 마른 피가 잔뜩 있어요.”
침을 모아서 삼켜보니 목 안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애써 참으며 간신히 그가 말했다.
“이 녀석들이 왜 널 원하는 거냐? 마법사라서?”
“그보다는 혈통 때문일 거예요.”
묻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지만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아자리는 레스를 다시 눕혀주고 가는 내내 조용히 있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져서 마차가 속력을 줄였을 때 그녀는 레스를 내려다보고 작게 말했다.
“멍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