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1권] 5회-기회를 놓치지 마라 (5/188)



〈 5화 〉[1권] 5회-기회를 놓치지 마라

레스가 누워있는 유치장은 반쯤 지하에 있었고 쇠창살이  작은 창문으로는 땅바닥이 바로 앞에 보여서 비가 오는 날에는 감방이 침수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는지 그가 덮고 있는 담요에서 발효된 냄새가 났다. 총에 맞았던 곳은 아자리가 메워줬지만 흘린 피하고  안쪽까지는 해결이 안 돼서 레스는 아픔 때문에 눈만 감은  잠도 못자고 계속 앓았다.


갑자기 감방 문이 열리더니 레스에게 물벼락이 쏟아졌다. 입에 들어간 물을 뱉고 앞을 봤더니 사내 둘이 그의 앞에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어째선지 낯이 익다.


둘  하나가 말했다.

“우리 기억 하냐?”

그 말을 듣고서야 레스는 저놈들이 어제 아자리와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있었던 놈들임을 알았다. 레스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바닥을 손으로 밀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서 뭣들 하셔?”

그들 뒤쪽으로 철창문은 아직 열려있었지만 과감한 모험을 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힘도 없었다.

“아까 사람들이 어디 모인다고 난리던데.”

2인조가 그의 말에 번갈아 대답 말했다.

“우리 소장은 인원수 점검을 안 해.”


“몇  되는 장점이지.”

말이 끝나자 그들은 레스의 가슴을 걷어찼다. 발길질이 총에 맞았던 곳에 정확히 닿아서 지하실에 레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숨도 제대로 쉬질 못하는 그를 두 사람은 계속 밟고 찼다.

한참을 구타하다가 둘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잠시 쉬었다.

“너 때문에 감봉당했다고!”

“왜 말이 없냐? 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새끼!”


다시 레스를 걷어차려는데 사내는 갑자기 발이 꿈쩍도 안 했다. 밑을 보니 레스가 자기 발목을 수갑처럼 붙잡고 있었다. 레스는 상대의 무릎을 팔꿈치로 찍어서 넘어트리고 쥐고 있는 발을 바깥쪽으로 꺾었다. 그 발목은 완전히 비정상적인 각도로 틀어졌다.


“아아악!  발!”

레스는 다른 사람이 날린 주먹에 맞고 뒤로 쓰러졌다. 더는 꿈쩍도 안 했지만 사내는 마른 침만 삼키고  다가가지 않았다. 발이 꺾여버린 쪽은 고통으로 발광했다.


“이 망할 새끼야! 여기가 어딘지 알아?! 내 손에 뒈졌어!”

발인 꺾인 사내는 눈치  챘으나 그의 동료는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는 걸 느꼈다. 사내의 동료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호흡 곤란을 일으켰다. 발이 꺾인 쪽은 아직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동료에게 신경질을 냈다.

“멍청하게 서 있지만 말고 뭔가 해 멍청아!”


바로 그들 앞에서 청년은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멈췄다. 그제야 이상한 기운을 느낀 사내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년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발목의 통증까지 잊어버리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지금 여기가 당신들 근무지인가?”

청년이 물었다. 2인조는 입도 못 벌리고 고개를 저었다.


“나와.”

둘은 군말 없이 바로 실행했다. 발목을 다친 쪽은 깽깽이 발로 뛰었고 그의 동료는 부축도 해줄 생각도  하고 먼저 가버렸다.


레스는 마냥 피곤해서 무슨 일인지 알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청년은 그에게 다가가서 쭈그리고 앉은 다음 고개를 기울여 누워있는 레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였다. 레스의 입에서 바로 단발마가 튀어나왔다.

“뭐?”

청년은 살짝 웃음을 터트리고 말을 받았다.


“여어.”

“살아있었어?”

“내가  소리다.”

청년은 티 없이 깔끔하고 하얀 피부를 갖고 있었다. 얼굴에 수염 한 톨 없었고 머릿결은 달빛이 닿을 때마다 금빛이 흘렀다. 거친 남자들이라면 여자 같이 생겼다며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독사 같은 눈동자와 마주치면 누구도 당당히 마주설 수 없을 것이다. 입고 있는 외투는 최고급 가죽과 원단으로 맞춤 제작되어서 별다른 장식 없이도 입은 사람을 위풍당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특이하게 생긴 권총이 달려 있다.


레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입대한 거야 피카니? 그거 기병대 모자잖아.”


피카니는 쓰고 있던 모자를 잠깐 벗어서 바라보았다.

“레인저 소속이야. 일단은 그래.”

자기와는 완벽하게 대조적인 친구의 행보에 솔직히 마음에 거슬렸지만 지금은 재회했다는 기쁨이 조금 더 컸다.

“출세했군. 그런데 권총이 이상하게 생겼다?”


피카니는 바로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의 권총은 몸통이 크고 직선적이었다. 리볼버하고는 너무 이질적인 모습이라 레스는 무슨 종교의식에 쓰는 도구인가 싶었다.

“10발 들어가고. 장전도 쉬워. 모세스 브라우닝이 만든 건데 누군지 알아?”


“몰라.”

레스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권총이 은근히 탐나기는 했다. 여자들이 아름답고 화려한 것에 열광하듯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무기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섬세한 부품이 많아서 한 번 고장 나면 처리하기가 까다로워. 상용화되기는 아직 어렵지.”


이쯤 되면 그런 귀한 물건을 왜 피카니가 가졌는지 물어볼 법도 하지만 레스는 오랜만에 만난 일행과의 재회했다는 감격과 쌓인 피로가 겹쳐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질 않았다.


피카니는 권총을 집어넣고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내 레스에게 줬다.

“어쩌다 여기로 온 거야?”

레스는 물을 가득 머금고 이리저리 굴렸다가 목으로 넘겼다. 혀부터 목 안까지 피 맛이 났다. 피카니는 그가 숨을 고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너부터 먼저. 여기에는 무슨 일이야?”

“딱 너 같은 놈이 잡혔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왔지. 중요한 용건은 또 따로 있지만.”

“뭔데?”

피카니는 조금 고민하고 말을 돌렸다.


“복잡해. 아무에게나 말 못 할 일이야.”


“나도 복잡한데.”


“가능하면 짧게 해줘. 난 시간이 없어.”

레스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정리하기 귀찮아져서 그냥 떠오르는 대로 줄줄 읊었다.

“어제 술에 취해서 보안관한테 총질했어. 오늘은 여기 소장한테 총을 겨눴고.”

피카니는 얼굴을 감싸 쥐면서 신음을 냈다.

“좋아. 왜 잡혔는지는 알았고. 어쩌다가?”

“뭘 묻는 거야?”


“과정 말이야. 네가 시시하게 잡힐 놈은 아닌데.”

레스는 아, 하고 단말마를 길게 내고는 대답했다.


“총알이 없었어.”

“싸우다가 총알이 떨어졌다고?”

“처음부터 총알이 없었어.”

레스는 뒤통수를 긁으며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피카니가 보기에는 아직 제정신이   돌아온  같았다. 어디부터 물어야 할지 엄두도 안 났고 한 마디만 더 꺼냈다가는 중간에 끊기도 힘들어질 거 같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할 일이 있어. 나중에 올게.”

레스도 아쉬웠지만 괜히 붙잡지 않았다. 누운 그대로 천천히 손을 흔들어줬다.












아자리가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그 사이로 고개를 바깥으로 배꼼 꺼냈다. 복도에는 남자 한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를 향해 아자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왜 그러니.”

“화장실이 어느 쪽인가요?”

“저기로 가면 된단다.”

“다녀와도 될까요?”

“그러렴.”


그녀가 화장실로 가는 동안 피카니가 지하 유치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헤리엇 리퍼가 바싹 긴장한 얼굴로 피카니를 마중 나갔다. 헤리엇과 피카니는 아자리가 안 보였지만 아자리 쪽에서는  사람이 보였다. 느낌이 묘해서 아자리는 모퉁이에 몸을 대고 귀를 기울였다.

“이런 추태를 보여서 면목 없습니다 용사님.”

헤리엇이 안절부절못하면서 말을 더듬거렸다. 아자리는  말을 듣고 바로 고개만 내밀어서 피카니의 얼굴을 보았다.


“그보다는 이름으로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헤리엇 부보안관.”

용사는 거만한 인상 없이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말했다.

“피카니 경. 저 사쿠라비하고 면식이 있으셨습니까?”

피카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다른 사람이었네요. 여기 소장하고 연락은 어떻게 됐나요.”

“소식이 없습니다.”

“연결되는 대로 이렇게 전하세요. 그 사쿠라비는 내 손으로 직접 쏘겠다고.”


“네?”

헤리엇은 놀라서 입을 벌렸다. 아자리는 비명이 나올까봐 반사적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살해미수, 공무 방해, 협박, 불법무기 소지, 반역. 더 필요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즉결처형은….”


헤리엇도 동요를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피카니는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지금은 다른 일부터 해야죠.”

두 사람이 움직이자 아자리는 서둘러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자기가 들은 게 사실인지 믿기 싫어서 기억을 되돌리고 또 되돌렸다. 갑자기 여기에 용사가 나타난 것도 모자라서 그 용사가 레스를 직접 처형하겠다니 연이은 사건의 연속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너무 오래 있으면 의심받을 테니 아자리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어떻게든 감정을 가라앉히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심호흡한 다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걸었다. 헤리엇의 사무실로 들어가니 바로 피카니와 헤리엇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무슨 일이죠?”


아자리가 당황한 얼굴로 두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자 헤리엇이 피카니를 소개했다.


“레이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피카니 조슈아 홀리데이 경입니다. 인간들 사이에는 용사님으로 알려졌지요.”

“용사? 왜 용사가 여기에 있죠? 아니 제 말은…. 용사님.”

어떻게든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자리는 바로 말을 고쳤다. 피카니는 그냥 긴장해서 그런 거로 생각하고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정중히 말했다. 아까 엿들었을  하고는 딴판으로 목소리에 친절이 가득했다.


“전하. 이름으로 불러주시지요.”


“그럼 피카니라고 부르면 될까요?”


“네. 전하.”

갑자기 아자리는 위화감을 느꼈다. 헤리엇은 눈썹을 찡그렸다.


“잠깐만요. 전하?”

헤리엇이 말했다. 아자리도 물었다.

“왜 절 그렇게 부르시죠?”

피카니는 헛기침을 했다.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자리를 비켜주세요.”


헤리엇이 방 바깥으로 나가자 피카니가 아주 심각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극비 사항이지만. 당신에게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가와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아자리아 비온 라프라스. 당신이 마지막입니다. 우리 정보부가 틀리지 않았다면 다른 계승자들은 모두 자멸했습니다.”


아자리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이성의 끈을 붙잡고  말을 골랐다.

“제게 원하는 게 뭐에요?  수도로 데려가서 어쩔 거죠?”


“지금 말할  있는 확정된 사항은 없습니다. 위선적으로 들리겠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십시오.”


방 안에는 호흡이 거칠어진 아자리의 숨소리만 들렸다. 피카니는 그녀가 앉을  있도록 의자를 끌어줬다. 아자리가 온갖 감정으로 예민해진 상태라 피카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 당신을 데리러 왔습니다. 여기 사무소를 보아하니 대강의 상황은 짐작이 갑니다. 모욕적인 대우도 받으셨겠지요. 인간들을 대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그런가요.”


아자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피카니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


“원래라면   일찍 왔어야 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같은 열차에 있던 왕족들을 상대하느라…. 게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내일 급한 용무를 처리하고 떠나게 될 겁니다. 숙소를 마련해드리고는 싶은데 상황이 안 좋군요.”


“그 급한 용무.”


“네?”

“레스하고 관련 있는 건가요?”


말하고 나서 아차 하고 아자리는 정정했다.


“제 말은, 오늘 체포된 사쿠라비 사람이요.”

말하는 동안 아자리는 계속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데 한참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서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피카니의 경악에 빠진 얼굴이 보였다. 아자리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피카니는 놀라서 그만 가려서 말해야하는 걸 잊어버렸다.

“레스와 아는 사이셨습니까?”


그 말을 분기점으로 서로의 마음속에서 연쇄반응이 일었다. 바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이 가자 그녀는 더 이상의 혼란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자리는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전에 헤어졌다는  동료가 설마?”


“아자리아님 진정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피카니도 아자리 못지않게 마음속이 혼란했다. 그의 눈이 계속 흔들렸다.

“설마 죽이려는 건 아니죠? 레스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잖아요.”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으셨습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는  좋겠습니다.”

“용사님!”

초조함이 극한으로 치달은 아자리는 소리를 내질렀다. 피카니는 입을 닫는 것으로 대답하고는 도망치듯 방을 나와서 문을 닫고 중얼거렸다.

“돌아버리겠네.”


“저기…. 용사님.”

과민한 상태였던 피카니는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를 째려보았다. 그저 잡일하러 불려온 용역이다. 남자는 움찔거리다가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에서 전보가 왔습니다. 용사님을 새벽 연회에 초대한다는데요. 왕족하고 귀족 나리들이 있으니 꼭 와달라고 합니다요.”

누구인지 피카니도 알고 있었다.

“이 판국에?”


“전 그저 들은 대로 말할 뿐입니다요.”


숨을 크게 들이 쉰 다음 내쉬고 피카니는 한결 침착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미안합니다.”


“괜찮슴다.”


그런데 아까부터 헤리엇이 보이질 않았다.


“헤리엇 보안관보는 어디로 갔나요?”


“어디 난동이 나서 사람을 데리고 급하게 나갔습니다요.”


좋지 못했다. 자신까지 여기를 떠나면 이 사무소를 책임질 사람이 없어진다. 하지만 왕족의 부탁을 거절하면 나중에 후환이 생긴다. 여기 계속 서서 고민만 해봐야 시간 낭비였기에 피카니는 투덜거리면서 빨리 걸었다.


“초대랑 청혼은 이제 지겨워.”




아자리는 벽에서 귀를 땠다. 사무소에 조무래기들밖에 남지 않았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뛰었으나 평소 훈련했던 대로 심호흡을 거듭하며 명상에 빠졌다. 아무 생명이 살지 않는 연못처럼 마음이 고요해졌고.   고민을 반복하다가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그녀는 결심을 굳혔다.


아자리는 눈을 부릅떴다. 물아일체의 집중 상태로 들어가서 그녀는 주문을 외웠다. 벽 너머의 상황이 들어왔다. 한층 더 집중하자 더 멀리까지 벽을 뚫고 사물이 보였다. 투시는 집중력을 엄청나게 소모했지만 아자리는 지쳐서 뻗어버리기 직전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었다.


그녀는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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