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1권] 23회 - 기술이 밑천
두 사람은 그 윤곽을 향해 눈이 피곤해질 정도로 한참을 노려보았다. 시려오는 눈을 눈꺼풀 속에 굴려서 닦아내고 다시 초점을 맞추자 레스는 그 윤곽의 정체가 사람을 사로잡고 끌고 다니는 어떤 무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샤카자이아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가까이 가자는 손짓과 눈짓을 했다. 레스가 알아듣고 바닥에 엎드리자 그녀가 앞서서 기었다.
높게 풀이 자란 곳을 따라서 움직이자 무리의 정체가 두 사람에게 확실하게 보였다. 원주민 부족 마을 사람들이 군복을 입은 마족들을 포박하고 앞세워서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레스가 훑어봐서 머릿수를 세어보니 마을 사람들은 스물가량이고 사로잡힌 도적들은 열 명쯤으로 보였다. 정확하게 확인하기에는 두 사람이 거리를 두고 숨는 중이라 어렵다.
“숲에서 서로 순찰하던 사람들끼리 맞닥뜨렸나 봐.”
레스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끄덕였다.
“사로잡은 놈들을 마을로 끌고 가지 않고 여기에 바로 왔다는 건 포로를 교환하자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부족 전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공용어를 외쳤다.
“포로를 데려왔다! 책임자는 나와라!”
샤카자이아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왕군이 공용어를 쓸 줄 알아야 할 텐데.”
“재들도 공용어를 써. 여러 종족이 섞여 있거든.”
부족 전사들은 데려온 포로들을 앞세워서 나란히 일렬로 섰다. 포로를 붙잡지 않은 나머지 부족 전사들은 각자의 무기들을 손에 들고 바로 등 뒤에서 요새의 입구를 노려보았다. 요새 안에서 소란이 난다. 병장기들 부딪히는 소리와 땅이 짓밟히는 울음이 레스와 샤카자이아에게까지 닿았다. 레스가 저 앞에 나타난 금속을 덧댄 거대한 나무 방패들의 행렬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오크 척탄병이야. 가장 먼저 돌격하고 마지막에 후퇴하지.”
사람 몸집만 한 방패를 든 7명의 오크 병사들이 일렬로 나란히 움직였고 바로 뒤에는 화기로 무장한 인원이 대열을 지키면서 따라갔다. 총으로 무장한 마족들 대다수는 사람보다 몸집이 한 둘레 작고 귀가 뾰족한 고블린과 수인으로 구성됐다. 마족 군인들의 행렬이 가하는 압박은 그들을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물처럼 느껴지게 했다.
두 무리가 대치했다. 수는 서로 비슷하다. 샤카자이아가 레스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좋냐고 필사적으로 눈짓으로 묻자 레스는 조용히 하라는 시늉으로 실눈을 뜨면서 자기의 입술에 검지를 댔다. 그녀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침착하려 했다.
오크들이 자리를 움직여서 방진 가운데에 지나갈 틈을 만들어주자 장교용 군복 외투를 입은 늑대인간이 달빛 속으로 나타났다. 그가 위엄있는 낮고도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환을 원한다면 추장을 데려와라. 책임자끼리 대화하겠다.”
우두머리 부족 전사는 어림도 없다는 태도로 으름장을 놓았다.
“추장님은 편찮으시다. 그리고 다른 놈이 너희의 책임자라는 거 안다! 하얀 놈을 불러라!”
저 협상 시도가 영리한지는 둘째 치고 레스는 일단 우두머리 부족 전사의 담력만큼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군인 쪽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늑대 인간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뒤를 돌아보고 뭐라 말했다. 곧 손이 묶인 다크 엘프 소년이 그들 앞으로 나타났다.
그 소년을 본 여성 부족 전사가 평정을 잃고 나서려고 했다. 아마 저 사로잡힌 소년과 친밀한 관계이리라. 우두머리 전사가 엄격한 목소리로 뭐라 외치자 여성 부족 전사는 간신히 진정했다. 늑대인간이 말했다.
“일단 하나. 이 이상은 안 돼.”
레스가 샤카자이아에게 물었다.
“잡혀있는 아이들이 모두 몇이었지?”
“저 애까지 포함해서 넷.”
우두머리 전사는 잠깐 고민하고 주변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다가 결심을 굳혔다.
“아이를 받을 때 우리가 잡은 포로 절반을 그쪽으로 보낸다. 우리가 저기 숲까지 무사히 돌아갈 때 나머지 포로를 풀어주겠다. 그때까지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
늑대인간은 군말하지 않고 선서하듯 손짓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크 엘프 소년 손목에 묶인 포박을 풀어주고 가볍게 등을 밀어서 저쪽으로 보냈다. 부족 전사들도 인질들에게서 손을 떼려는 순간 요새에서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놀라 서로 몸이 굳었다.
샤카자이아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레스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공격 신호다!”
늑대인간도 당황했는지 불안한 눈길로 뿔 나팔 소리가 울리는 쪽을 돌아보았다. 가장 놀란 건 부족 전사들에게 잡혀있는 포로들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저편에 있는 동료들을 애원하는 눈으로 보았다. 안 좋은 예감을 느낀 부족 전사들이 서서히 무기를 다룰 각오를 잡았다. 여성 부족 전사는 자기가 잡고 있던 포로는 내팽개쳐 두고 소년을 향해 달렸다.
늑대인간이 방진 안으로 몸을 숨기고 소리쳤다.
“각자 위치로!”
오크들이 세로로 세웠던 방패를 가로로 눕혀서 땅에 박았다. 그들 사이로 총을 든 인원들이 자리를 잡고 방패 위에 앉아 쏴 자세로 총을 얹었다. 그들의 어깨 위로 다른 인원들이 서서 쏴 자세를 잡았다. 방진 대형과 전열 보병이 뒤섞인 해괴하고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샤카자이아는 너무 놀라서 몸과 마음이 얼어버리는 사이 레스는 그들의 짐을 서둘리 챙기고 있었다. 다크 엘프 소년은 여성 부족 전사의 품에 안겨 전력으로 달아났다. 다른 부족 전사들은 어쩔 수 없이 각자 자기가 붙잡은 포로들을 방패 삼아 앞으로 들이댔다. 붙잡힌 포로들도 제발 죽이지 말라며 각자의 모국어로 애원했으나 지휘관은 가차 없이 외쳤다.
“앞줄 발포!”
앉아 쏴 자세를 취했던 사수들이 일제히 쏘았다.
“뒷줄 발포!”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사수들도 방아쇠를 당겼다. 정찰병들과 포로들 모두 본능적으로 땅에 엎드렸으나 많은 이가 맞았다. 샤카자이아는 이성을 잃고 뛰쳐나가려 했으나 레스가 그녀의 양어깨를 힘껏 붙들었다.
“내 말 들어! 지금이 숨어 들어갈 절호의 기회야! 놈들 시선이 전부 이곳에 쏠렸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여기서 아무것도 못 해! 내 말대로 한다고 했지?! 그때가 지금이야!”
샤카자이아는 반쯤 정신을 잃은 채 레스의 손에 이끌리는 대로 움직였다. 두 사람이 돌담에 바짝 붙었을 때 그제야 샤카자이아도 제정신을 차렸다.
“세상에 어째서. 그놈들, 자기 친구들이 있는데도 쐈어.”
“내 눈 똑바로 바라봐.”
그녀는 보았다. 레스가 재차 말했다.
“싸울 거지?”
샤카자이아는 눈을 깜빡이면서 심호흡을 했다. 혼란을 잠재우고 그녀는 말했다.
“고마워, 이제 괜찮아졌어.”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레스가 속삭였다.
“진정해. 내 말대로만 하면 돼. 먼저 내가 올려 줄 테니 건너에 누구 없는지 살펴줘.”
먼저 돌담 너머로 귀를 바짝 붙여서 들리는 건 없는지 확인 샤카자이아는 레스의 어깨를 밟고 올라갔다. 소리 내지 않고 시간을 들여서 확실히 살핀 다음 그녀는 레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요새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
카르델이 저격총의 조준경에 눈을 댄 채 보고했다.
“놈들이 계속 바깥으로 나옵니다.”
하딘이 말했다.
“부상자는 챙겨주고 있나?”
“아뇨. 숨통을 끊어버리네요.”
카르델의 조준경 안으로 반쯤 죽은 포로가 곤봉에 맞고 사람들이 쌓인 곳으로 팽개쳐지는 광경이 들어왔다. 피카니와 루나, 그리고 군인 일행은 한참 전부터 자리를 잡고 지켜보고 있었다. 루나는 방금 일어난 참극을 보고 아직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한 기색이다.
“대체 왜? 왜 아군까지 쏴버린 거죠?”
아비투스가 대답했다.
“먹을 입을 줄이려고요.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위험하고 외진 곳으로 보냈을 걸 겁니다. 저희는 비슷한 꼴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카르델이 그녀를 위로해주려고 말을 덧붙였다.
“꼬마는 무사합니다. 구해준 원주민이 잘 판단했네요.”
피카니가 하딘에게 물었다.
“우리는 이대로 구경만 합니까?”
“우리 싸움 아니잖아.”
하딘의 말대로 그들이 참견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루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마왕군이 여기 나타난 건 제국의 책임 아닌가요?”
하딘은 할 말이 없었다. 카르델이 조준경 너머로 무언가를 보고 신음을 냈다.
“어…. 뭔가 큼직한 게 나오고 있네.”
덕분에 하딘은 말을 돌릴 수 있었다.
“뭔가 큼직한 거라니?”
“어두워서 잘 안 보입니다. 대포인가?”
피카니의 입에서 탄식이 튀어나왔다.
“맙소사.”
“대포면 차라리 다행이지. 옆에 쌓인 상자에 든 게 대포알이 아니라 탄약통 같거든.”
“탄약통이라고?”
아비투스의 물음에 카르델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낮게 뇌까렸다.
“장전하는 꼴을 보니 확실하군. 개틀링 건이야.”
◆
돌담을 넘어간 두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낡은 오두막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원래 살던 주민들이 남겨둔 건물이었다. 지붕에 몸을 바짝 붙이니 숨기에 좋았고 주변도 잘 보였다.
요새의 정중앙에는 병사들이 집합하는 공터가 있었는데 군용 텐트와 천막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듯 깔려있었다. 거기에는 병사들로 우글거렸는데 망루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던 이들도 와서 탄약과 식량을 챙기고 있었다. 샤카자이아가 그에게 속삭였다.
“놈들이 설마 오늘 밤에 끝장을 보려는 건가?”
“아니, 방금 것으로 자신감을 얻었으니 먼저 숲속에 시야부터 넓혀두겠지. 숲은 여태껏 너희들의 영역이라 마음 놓고 몰려갈 엄두가 안 났을 테니.”
물론 레스도 자신의 추측이 정확하다고 장담은 할 수 없었으나 아무튼 감시망이 소홀해진 건 그들에게 다행이었다. 병사들이 횃대에 꽂아둔 횃불까지 하나씩 들고 가준 덕분에 두 사람은 어둠을 틈타 계속 소리 없이 움직였다. 일단 가장 어려운 과정을 넘기고 나니 그 뒤는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 샤카자이아도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이 레스의 눈에도 티가 났다.
허름한 오두막의 그림자 속에서 샤카자이아가 눈만 바깥으로 꺼내고 주변을 살폈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들이 갇힌 곳을 알아낸 거 같아. 근처에 굳게 잠긴 건물이 있어. 보초도 있다.”
“얼마나 있어?”
“두 명. 둘 다 긴장이 바짝 섰군.”
레스는 그녀와 자리를 바꾸고 주변을 직접 살펴보았다. 방금 샤카자이아가 말해준 건물은 물론 레스는 다른 곳도 확인했다.
“우리 마차는 저기 있군.”
“어떻게 할 거냐?”
“일단 내 권총부터 되찾아야겠다. 한 번 봐야겠어.”
“엄호하겠다. 조심해라.”
주변을 살피다가 레스는 재빨리 몸을 날려서 마차 쪽으로 굴렀다. 안을 들여다보니 짐칸에 실려 있던 짐들은 패거리가 남김없이 가져가서 먼지조차 안 보였다. 다행히 아자리의 가방만 덩그러니 짐칸 구석에 박혀 있었는데 안에는 아자리가 평소 끄적이던 수첩만 남아있었다.
“당연히 가져갔겠지. 썩을.”
레스는 아자리의 수첩이라도 바지의 탄약 주머니에 집어넣고 마차를 나왔다. 샤카자이아는 어느새 기절한 보초들을 질질 끌고 가서 안 보이는 곳에 숨기고 있었다. 레스도 급하게 움직여서 같이 기절한 놈들을 숨겼는데 한 놈은 목덜미에 바람총으로 날리는 작은 화살이 꽂혀 있었고 다른 놈은 단 방에 얻어맞고 뻗은 거였다. 레스가 감탄을 억누르면서 그녀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한 거야?”
얼떨떨한 목소리로 샤카자이아가 말했다.
“나도 몰라. 기회가 보이니까 몸이 저절로 순식간에 움직였어.”
레스가 샤카자이아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격려했다.
“수련으로 쌓인 실력은 절대 몸을 배신하지 않지. 너 모험가 체질인가 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누군가 살펴보러 오기 전에 최대한 서둘러야만 했다. 샤카자이아는 화살을 시위에 끼우고 레스는 일단 칼이라도 손에 든 다음 조용히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이 건물은 원래 마을 회관으로 쓰이는 곳이었는지 공간이 넉넉했다. 창가에 붙잡힌 아이들이 모여서 묶인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레스가 문을 닫고 입구를 지키는 동안 샤카자이아는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아이들에게 묶인 포박을 풀어주면서 그녀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왔던 길로만 서둘러 나가기만 하면 싸움은 끝이야! 네 덕분이다!”
그녀가 안도하는 동안 레스는 어째서 안에 아무도 없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신경을 곤두세운 레스가 권총의 공이가 철컥하고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는 샤카자이아에게 뛰어들었다.
“엎드려!”
레스는 그녀를 밀쳤다. 총알이 레스는 옆구리에 박히자 그는 휘청거렸다. 레스는 맞은 곳을 부여잡고 쏜 사람을 눈으로 찾았다. 넘어진 샤카자이아는 바로 일어나서 활로 총을 쏜 자를 노렸으나 총을 쏜 상대가 바로 레스의 반대편으로 숨어버렸다.
“여기에 누군가 나타난다면 역시 너일 거 같더라니. 웬 깜둥이랑 같이 왔네?”
레스의 앞에서, 동시에 샤카자이아의 반대편에서 엘프 청년이 아직도 초연이 피어오르는 권총을 들고 말했다. 샤카자이아 같은 다크 엘프가 아니라 피부가 흰 엘프다. 눈동자와 머리카락은 갈색이었다. 엘프 청년은 레스를 총으로 겨눈 채 슬금슬금 움직였다. 두 사람은 레스를 사이에 두고 계속 대치했다. 샤카자이아가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상대를 위협했다.
“총을 내려.”
“난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거든. 총소리를 듣고 누가 올 테니까. 그래도 기왕이면 너는 상처 없이 잡혔으면 좋겠어. 일단 내 은인이니까.”
둘이 레스를 중심으로 계속 움직이면서 서로의 얼굴 위로 달빛과 그림자가 흘렀다. 샤카자이아가 조급해하는 투로 다시 외쳤다.
“난 분명히 말했다! 내 친구한테 더 손을 대면 죽여버리겠어!”
“허어? 나도 네 친구 아니었어? 너무 야속한 거 아냐?”
레스는 피가 줄줄 흐르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샤카자이아가 활을 쏠 수 있게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으로 움직여도 저쪽이 권총을 쏘는 게 더 빠를 터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서 섣불리 움직일 엄두를 못내고 있다. 상대가 든 권총을 보고 그가 말했다.
“그 권총 내 물건이야.”
“그래? 덕분에 잘 쓰고 있어. 여태껏 쥐어본 것 중에서도 손에 잡히는 느낌이 탁월하군.”
갑자기 엘프 청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만…. 우리 어디선가 보지 않았나?”
레스는 말대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샤카자이아는 상대가 다른 생각에 빠진 틈을 노려서 시위에 걸린 화살의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활을 눕히고 조준점을 슬그머니 옆으로 돌렸다. 레스는 샤카자이아의 의도를 알아챘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는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엘프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때 그놈이구나!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샤카자이아는 뒤로 물러나면서 시위를 살짝 당겼다. 화살은 눈을 질끈 감고 제자리에 가만히 선 레스의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서 날아가다가 도중에 휘어져서 상대에게 맞았다. 엘프는 상상도 못 한 방향에서 날아온 화살을 몸통에 맞고 경악했다.
“이게 도대체?!”
그는 너무 놀라서 방아쇠를 당길 생각도 못 했다. 레스는 그 찰나에 이를 악물어서 고통을 무시하고 상대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권총을 빼앗았다. 빼앗은 권총의 방아쇠울에 검지를 걸어서 총을 돌려 거꾸로 잡아서 손잡이 쪽으로 머리를 내려치자 상대는 완전히 기절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아이들이 순식간에 일어난 광경을 보고 한 박자 늦게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