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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1권] 24회 - 숙면을 방해한 죄 (24/188)



〈 24화 〉[1권] 24회 - 숙면을 방해한 죄

샤카자이아는 아이들에게 걸린 포박을 재빨리 뜯어내고 레스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걸을  있겠어?”


“좀 어지러워….”


레스는 상대로부터 권총과 벨트를 돌려받았다. 샤카자이아가 총을 맞은 그의 옆구리에 말린 이끼를 대고 레스가 그 위에 벨트로 덮어서 단단히 조이자 어떻게든 피가 흘러나오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벨트의 탄띠에는 총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당연히 리볼버 안에도 총알이 가득했다. 어떻게든 호흡을 가다듬고 레스는 부축을 받으면서 힘겹게 일어났다. 그녀가 말했다.


“무리하지 마라. 만약의 상황에는 널 업고 달리겠다.”

“일단 나가자고.”


“그런데 저놈은 어쩌지?”


샤카자이아가 기절한 엘프를 가리키면서 묻자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이닥쳤다. 병사 둘이 그들을 보고 당황하면서도 소총으로 겨누고 위협했다.


“꼼짝 마! 무릎 꿇어! 손들어!”


지금 레스는 입구를 향해 등을 진 상태다. 샤카자이아는 아직 레스를 부축해주던 참이다. 당장 무기에 손을 뻗어서 반격할 틈이  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녀는 지금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눈을 질끈 감으며 양손을 들었다. 레스는 심호흡을 하고 우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오른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잠깐 그의 표정에 인간의 감정이 사라졌다. 병사들이  번 더 윽박지르고 서서히 다가왔다.


“거기 남자 놈! 너도 어서 손들어!”

레스가 샤카자이아의 눈을 응시하면서 그녀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어.”


“뭐?”

레스는 대답하는 대신 순식간에 총을 뽑아서 뒤를 향해 방아쇠를 두  당겼다. 병사들은 설마 이쪽을 보지도 않고 쏠 거라고는 상상도  했다. 다리에 총을 맞고 자세가 흐트러진 병사들을 향해 아이들이 달려들어서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병사들은 금방 기절했다.


샤카자이아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네 눈에 비친 걸 보고 쐈어.”

샤카자이아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흔들고 제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레스를 부축해주고 아이들과 함께 움직였다. 레스가 같이 걸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저 자식이 우두머리 같은데 그냥 두고 갈 거야?”

“아이들과 같이 나오는 게 우선이다. 저놈 때문에 여기서 머뭇거릴 수는 없다.”

레스는 이해했다.

“네가 맞아. 아이들이 먼저지. 가자!”

그들은 건물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병사 셋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았다. 샤카자이아가 시위에 화살을 걸기도 전에 레스가 권총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리고 허리와 발동작으로 몸을 돌리며 공이를 연달아 때렸다.  번의 총성이 폭죽처럼 연달아 터졌고 그가 약실 마개를 열고 탄피를 꺼내려는 순간에 병사들이 맞은 곳을 부여잡았다. 탄피가 땅으로 떨어지자 병사들은 고통스러워하며 땅을 굴렀다.


“가자!”


레스는 달궈진 약실을 엄지로 돌려서 탄피를 한땀 한땀 꺼내고 장전했다. 샤카자이아가 앞에 섰고 레스가 뒤에 서서 아이들을 가운데에 두었다. 저 앞으로 또 누군가가 나타나기에 샤카자이아가 활을 들어 순식간에 시위를 당기고 놓았다. 어깨에 화살을 맞은 병사는 화살의 위력이 너무 세서 깜짝 놀라 쓰러지면서 벽으로 털썩 쓰러졌다. 자세히  봤으면 화살에 꿰뚫려 벽에 꽂힌 것 같았다.

일행은 병사들이 생활하던 천막들과 버려진 오두막들을 지나다니며 정신없이 상대를 따돌리다가 막힌 길을 만났다. 세워진 목책과 목책 사이에 비교적 허술하게 보수된 흔적이 보였다. 레스는 이곳을 통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러나 애들아. 이럴 때를 위해서 가져왔지.”


그렇게 말하면서 레스가 폭약이 들은 깡통을 짐에서 꺼냈는데 샤카자이아와 아이들은 듣지 않고 들소처럼 달려들었다. 그러자 목책 하나가 박살나다시피 쓰러져서 충분히 통과할 틈이 생겼다. 샤카자이아가 한 박자 늦게 레스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하려던 말이 뭐였나?”

“아무것도 아냐.”

레스는 들고 있던 깡통을 휙 던졌다. 어느 정도 뜸을 들이고 앞장선 사람들이 다 빠져나갈 때 즈음 던져놓았던 깡통을 그가 쏴서 터트리자 쫓아오려던 패거리들은 놀라서 엎드렸다.





고블린 병사가 온몸을 덜덜 떨면서 저 앞을 가리켰다. 언덕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저저저저 저 앞만 지나가면 저희 본진입니다요오오오오오.”

아자리가 냉랭하게 말했다.


“주위에 함정이나 매복은?”

그녀가 허공으로 뭔가를 움켜쥐는 손짓을 하자 고블린 병사가 자신의 사타구니에 손을 대면서 목을 움츠리고 비명을 질렀다.

“끄흐으오오으으윽!”

단테가 질린 얼굴로 거기에서 시선을 돌렸다.

“살살합시다. 죄는 미워해도 거시기는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어요.”

아자리는 들은 체도 안 하고 허공으로 다시 손을 움켜쥐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 부족민들도 그걸 보고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덩달아 괜히 자신들의 사타구니를 손으로 가렸다. 고블린온 모공에까지 힘을 쥐어짜며 처절하게 고백했다.


“왼쪽에는 함정이 있고 오른쪽에는 순찰조가 돌아 다닐겁니드아아아아! 저도 자세히는 몰라아으으으으..아아아!”


병사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부족 전사 중 하나가 와서 그것을 쓰레기 치우듯 번쩍 들어서 근처 나무에 묶어놓았다. 일행들 뒤로 거품을 물고 기절한 다른 병사들이 미개한 의식의 공양물처럼 줄줄이 나무에 묶여 있었다.

아자리는 아직도 선물 받은 원주민들의 아동용 원피스 차림에 모카신을 신었고 단테는 마을 사람들에게 빌린 구식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솔직히 3명 째부터는 거칠게 하지 않아도 술술 불던데요.”

“제 잠을 방해한 죄는 엄히 처벌받아 마땅하거든요.”


단테는 말없이 속으로 무언가를 다짐하듯 침을 삼켰다. 두 사람이 앞장서서 언덕을 올랐다. 곧 일행들은 인기척을 느꼈다. 다들 멈춰있자 앞에서 휘파람이 들렸다. 아자리와 단테를 따라온 부족민들은 그 휘파람 소리를 알아듣고 저쪽을 휘파람으로 대답했다. 다른 일행이 그들 앞으로 나타났다. 피 냄새가 났다. 아자리는 서둘리 움직여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가장 심하게 다친 사람은 누구죠?”

앞서갔던 다친 사람들은 방금 온 부족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 중에는 어린 소년도 있었다. 단테는 사람들과 말을 나누고 들은 것들을 아자리에게 통역해주었다.

“서로 포로 교환을 했는데 뒤늦게 저쪽이 공격 신호를 내렸답니다.”

아자리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악독한 놈들이군요. 게다가 무능하기까지.”

앞장섰던 분대장이 단테에게 뭐라 묻자 단테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고 묻는군요. 어떻게 설명할까요?”


“별동대가 마을을 노리려던 걸 눈치챘고 놈들을 사로잡는 과정에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단테는 그대로 전했다. 분대장이 초조해하는 얼굴로 뭐라 물었다. 단테는 그 질문에 대답해주고 아자리에게 말했다.


“추장님과 마을은 무사하시냐고 묻기에 괜찮다고 했어요.”


“단테 씨가 매복한 놈을 찾아내지 않았더라면 정말 난리 났을 거예요. 큰 도움이 됐네요.”

“저도 소변보다가 누구랑 눈이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단테는 오한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참고로 여우는 밤눈이 굉장히 밝은 생물이다. 아자리는 몸이 식을  없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다친 사람들을 살폈다. 단테는 그녀에게 말을 걸려면 계속 쫓아다녀야 했다.


“다친 사람들하고 마을로 돌아가지 않으실 겁니까?”


“레스가 저쪽에 있으니 역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요.”

단테는 한숨을 쉬고 간청하는 투로 말했다.

“절대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무리하려고 해도 지금은 모닥불 하나 못 피워요. 그런데 단테  총은 쓸 줄 알아요?”

“방아쇠가 어디 달렸는지는 압니다.”


그때 저편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낮은 메아리가 이쪽까지 울렸다. 단테가 외투에서 접이식 망원경을 꺼내고 저편을 보고는 그가 작게 외쳤다.

“누군가가 아이들을 데리고 달아나고 있어요! 그  사람이 정말로 해냈구나!”

“다들 괜찮은가요?!”

“레스는 다쳤나 봅니다! 계속 처지고 있어요!”








기절했던 엘프는 텐트 안에서 의식을 차렸다. 화살을 맞은 곳에는 가벼한 응급처치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상처를 보고 있었던 마족 군의관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던 엘프의 몸을 다시 눕혔다.

“움직이시면 상처가 벌어집니다.”

“내 몸에서 손때! 놈들은 잡았냐고 내가 묻고 있잖아!”


늑대인간이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포로 교환을 할 때도 요새 바깥으로 나섰던 이였다.

“괜찮으신지요.”


엘프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놓친 거지? 그렇지?”

“멀리 가진 못했습니다. 발이 빠른 놈들을 골라서 보냈으니 시간문제입니다.”


“고작 두 놈인데 그걸 놓치다니!”

늑대인간은 상대의 신경질을 익숙하게 받아넘기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인질들이 같이 뛰고 있어서 함부로 총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총잡이의 솜씨가 기이할 정도로 뛰어났다는 얘기도 한결같이 들립니다. 죽은 인원은 없습니다.”


엘프는 자신의 추태를 없던 일로 만들려는 듯 말을 바꿨다.

“마을 쪽으로 심어둔 놈들로부터는 아직 소식이 없나?”

“없습니다.”

“참고로  여자와 같이 다니는 총잡이는 포악하기로 유명한 사쿠라비의 바다위윤이다. 인질을 무시하고 쏴버리라고 알려.”

늑대인간의 얼굴이 굳었다.


“바다위가 어째서 이런 곳에?! 그리고 인질이 다치면 협상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아까 내린 공격 명령도 기선 제압이라고 봐주기에는 너무 지나쳤습니다.”

“개틀링 건이 있는데 무슨 협상을 해? 인질은 시체로도 쓸모가 있어.”

말을 잃어버린 늑대인간의 침묵을 메꾸어버리듯 엘프는 계속 지껄였다.


“주도권을 갖고 압박하다 보면 놈들이 버티지 못하고 싸움을 걸겠지. 정면으로 싸우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이 간단한  이해  하는  아니겠지?”

“이 숲에 숨어서 겨울을 버티다가 봄에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계획이 아니었습니까? 인질은 만약을 위해 원주민들의 입을 막기 위한 대책이고요. 이미 선제적 수비 수준을 넘었습니다.”

늑대인간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엘프는 옅게 한숨을 쉬었다.

“들어봐. 자네라서 미리 말해주는 거야. 다른 놈들은 거의 몰라. 이 숲에는 사금이 있어. 알갱이가 엄지손톱만 한다고. 우리가 억지로 끌려와서 싸우고 얻은 게 뭐지? 쥐뿔도 없었잖아? 살아남은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두둑하게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늑대인간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가 없겠지만, 아무리 상대가 야만인이라도 같은 마족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어차피 슈슈니도 인간들한테 사는 곳을 빼앗길 거야. 여태껏 다른 야만인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언젠가 어차피 일어날 일인데 우리가 자원을 유용하게 써주는 게 큰 잘못은 아니잖아?”

늑대인간은 더 대답하지 않고 표정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엘프는 아편이 들어있는 병의 뚜껑을 따고 내용물을 조금 핥았다가 자신의 외투를 걸쳤다. 지금 찬 벨트의 총집에 낡아빠진 페퍼박스 리볼버가 꽂혀있었다.

“쓸모없는 새끼들. 항상 내가 나서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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