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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1권] 26회 - 연기나는 새벽 (26/188)



〈 26화 〉[1권] 26회 - 연기나는 새벽

아비투스는 쌍 총열 산탄총을 들어 올렸다. 얼굴까지 가리는 철모 때문에 가늠자에 눈을 댈 수가 없어서 지향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가 어설프게 방진을 짜고 다가오려는 무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밝으면서도 어두운 무언가가 허공을 찢었다. 슬러그 탄환은 화살을 막는 용도로 어설프게 만든 나무 방패 따위는 간단히 뚫어버리고 병사를 즉사시켰다.  그래도 사기가 바닥을 치던 병사들이 겁에 질려 방패를 손에 놓고 땅에 엎드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맞서서 싸워!”

자신은 다른 병사들 뒤에 단단히 몸을 감춰놓으며 사령관은 외쳤다. 아비투스의 철모 앞가리게 사이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산탄총의 가운데 부분을 꺾어서 내부를 열어 손등까지 철판으로 덮인 두툼한 손으로 한 번에 총알을 2개씩 다뤄가며 순식간에 장전했다. 그는 전부 쏘지 않고 한 발만 쏘았다. 나머지 한발로는 위협용으로 사방을 겨눠가며 그들의 의지를 꺾었다. 그렇게 눈치를 살피다가 아비투스는 다시 산탄총을 꺾어서 순식간에 장전했다.

두 명의 남자들이 거한의 뒤에서 각자 무기를 들고 이쪽을 향해 겨누면서 나타났다. 저들이 입고 있는 외투와 모자를 보고는 다들 하나 같이 두려움에 떨었다.

“레인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하들의 재촉과 돌변한 상황 때문에 엘프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후퇴! 후퇴해! 응사하면서 후퇴해라! 정찰병이 여기 있다는  본대가 온다는 거다!”


하딘이 손에 든 레버 액션 소총을 절도 있는 자세로 민첩하게 레버를 움직이며 방아쇠를 연달아 당기자 총알이 저쪽으로 빗발쳤다. 어둑한 밤 중인데도 빗나간 탄환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나무 방패는 소용이 없었다. 아비투스가 한 발 쏘고는 하딘에게 말을 걸었다.


“카르델이 나설 필요도 없겠군요.”


“지휘관의 머리를 날렸어야 했는데 부하들 뒤에 단단히 숨어있더군. 카르델도 기회를 못 잡은 모양이다.”


피카니가 소리쳤다.

“숙여!”

총알 세례가 주변을 휩쓸었다. 피카니와 하딘은 아비투스의 뒤로 엎드려서 피했다. 하딘이 아비투스에게 안부를 물었다.


“괜찮나?”

“오랜만에 갑옷을 입으니까 잊었던 감각이 살아나는군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아비투스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피카니는 피투성이로 흙바닥에 쓰러진 샤카자이아를 어깨에 둘러업었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다. 피카니가 이쪽을 향해 소총을 들고 겨누는 병사를 향해 자동권총을 마주 겨누었다. 묵직한 총성이 터지자 어둑한 달의 장막 너머로 병사의 머리가 폭발하는 모습이 윤곽으로 일렁였다.

일행은 빈틈없이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장소를 떠났다. 그들의 모습을 카르델은 조준경 너머로 지켜보았다. 쫓아오는 놈들이 없는 걸 확신하고 카르델은 온몸에 끼얹은 낙엽과 잔가지들을 치워가며 일어났다. 조준경의 앞뒤를 천으로 가리고 그는 머리에 쓴 후드를 고쳐잡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샤카자이아는 자기  곳곳에 감긴 붕대의 압박감을 느끼며 제정신을 차렸다. 주변에는 피카니와 레인저들이 그녀를 치료해주느라 풀어놓은 물건들을 정리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저 남자들이 자신을 위기로부터 구해줬다는 건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녀가 기척을 내면서 그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하딘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몸 상태는 어떻나? 걸을 수 있겠나?”

가까이서 본 상대의 인상착의를 보고 샤카자이아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와시추! 제국군!”


하딘은 침착하게 반응했다.

“그쪽을 해코지할 생각은 없어. 진정하게.”

“너희들한테 아빠가 죽었어. 이 숲을 지키려고.”


샤카자이아가 생기 없는 표정으로 읊조렸다. 하딘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건 진심으로 유감이네.”

“왜  구해줬지?”

조금 뜸을 들여서 할 말을 정리하고 그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사정으로 이쪽을 살피러  분대다. 이쪽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만, 폭음을 듣고 무슨 일인가 급하게 와서 보니 자네랑 일행이 보이더군.”


샤카자이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하고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몸을 던진 거 알아.  구하는 결정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더라고. 그렇게 된 거다.”

피카니가 자동권총을 총집에 꽂고 하딘에게 말을 걸었다.


“교대하죠.”


피카니가 그녀 앞에 마주 앉았다. 샤카자이아는 유달리 그에게서만 다른 남자들과는 동떨어졌다는 인상을 느꼈다. 얼핏 보기에는 깔끔하게 생긴 미남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경계심이 들었다. 피카니는 모자를 벗고 속삭였다.


“아이들하고 같이 도망쳤던 사람. 이곳 원주민이 아니라 인간 같았는데. 어떤 사이지?”


샤카자이아는 본능적으로 말을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사쿠라비의 레스와 아자리아 비온 라프라스를 만나야겠어.”

기억하는 이름과는 달랐으나 샤카자이아는 누구를 뜻하는지 바로 눈치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과연 그놈이야. 친구 사귀는 속도가 엄청나군. 만난  얼마나 됐다고 감싸는 건지.”

피카니는 한숨을 쉬었다.

“끝까지 잡아뗄 생각 같은데. 제발 협조해주겠어?”


샤카자이아는 독사 같은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난 할 말이 없다고 말할 뿐이다. 사실이니까.”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냐….”

저 멀리서 다가온 기척을 듣고 피카니는 말을 끊었다. 다가온 이의 정체는 카르델이었다.


“잃어버린 마법사님 찾아왔다. 다행히 근처에 계시더라.”

루나가 면목 없다는 듯이 일행을 향해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카르델이 다시 말했다.

“덤으로 소아성애자도 주웠어.”

레스가 카르델이 겨눈 총의 총구 앞에서 양손을 든 채 앞장서고 있었다. 피카니와 샤카자이아는 어이가 나가서 턱이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사이좋게 같이 굳어버렸다.


“그건 날조라고 몇 번을 말해?”


“내가 알 바냐?”

레스가 인상을 쓰면서 투덜거리자 카르델은 레스의 등을 소총 끝으로  찔렀다. 일행들의 시선 한가운데에서 레스가 어색한 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피카니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쥐고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레스는 피카니의 존재를 눈치챘으나 그는 일부러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샤카자이아는 피카니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한 박자 늦게 깨닫고 레스는 잠깐 당황했다. 그리고 샤카자이아의 몸에 감긴 붕대를 보고 상황을 대강 이해했다.

“많이 다쳤구나! 괜찮아?”


“난 괜찮아. 아이들은 어떻게 됐어?”

“애들은 무사해. 알아서 길을 찾아갔을 거야.”

하딘이  사람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끊어버렸다. 그도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목소리에 현실감이 없었다.

“레스 알 하자르. 아자리아 비온 라프라스의 협력자 맞지?”

“그런 셈이죠.”


“사막의 긍지 높은 유목민들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직접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확실히 비범한 인물과의 비범한 만남인 건 맞는  같아.”


샤카자이아는 대화의 흐름을 쫓아갈 수가 없어서 몸을 뒤로 뺐다. 레스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소문이라는  항상 실물보다 많이 부풀려지기 마련이잖아요.”

하딘은 루나에게 화제를 돌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길을 잃던 중에 만났어요.”

카르델이 말을 이어받았다.

“마법사님이 살펴주는 척하면서 놈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저 녀석은 마법사님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더군요. 덕분에 우아하게 처리했죠.”


하딘은 감탄했다.


“정말 담력이 대단하시군요. 저놈이 어딘가 좀 이상하긴 해도 명색이 사쿠라비인데 감쪽같이 속이다니. 다시 봤습니다.”

루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들의 오해를 풀었다.

“저 자신까지 속였다는 걸 범주로 둔다면…. 속인 게 맞긴 하네요.”







한편 숲으로 전진한 병사들은 고지를 지키고 있던 아자리 일행과 맞닥뜨렸다. 달빛도 흘러오지 못하는 자욱한 산림의 어둠 속에서 서로의 대치가 길게 이어졌다.


단테가 방아쇠를 당기자 금속 격발 장치 특유의 청량한 소리와 함께 구식 흑색 화약 특유의 느슨한 총성이 퍼지고 연기가 자욱하게 일었다. 적들이 연기와 총구 화염을 눈치채고 그곳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단테와 아자리는 이미 자리를 바꾼 뒤였다. 단테는 아자리를 데리고 다른 곳에 숨은 다음 아자리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지시받은 대로 총구에 화약과 탄환을 막대기로 깊이 쑤셔 넣은 다음 부싯돌에 뇌홍이 들어있는 구리 껍데기를 끼웠다.


장전이 끝난 소총을 건네주며 아자리가 물었다.

“상황이 어때요?”

“우리보다 숫자가 많아요. 총성을 보아…. 저건 고블린들의 제식무기로 쓰는 단발총이군요.”

두 사람 뒤로는  한 명의 원주민 전사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진두지휘는 그들 중에서 밤눈이 가장 밝은 아자리와 단테가 앞장서서 상황을 살펴 가며 내리고 있었다.

단테와 아자리는 뭔가 이상한 물체가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큼직한 바퀴 2개가 달린 수레 위에 금속 원통 같은 게 실려 있었다. 무거운지 병사들이 낑낑거리며 열심히 밀었다.


“저게 뭐야?”

무기에 대해서는 생소한 아자리와는 달리 단테는 윤곽만 보고 정체를 깨닫고 경악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부족 전사들에게 외쳤다.

“개틀링 건이다! 뛰어! 뛰어!”

사수가 일행들이 있는 곳을 겨누고 손잡이를 돌리자 폭풍이 수평으로 불었다. 원주민 전사 몇 이 총알에 맞고 쓰러졌다. 잠시 후에 개틀링 건에 꽂힌 40연발 탄창이 비었고 병사들은 기세를 살려 함성을 지르며 돌진해왔다.

“응사!”

단테의 지시에 따라 전사들이 각자의 무기로 맞서 쏘았다. 화살과 탄환에 맞은 동지들을 뛰어넘고 적들은 계속 다가왔다. 일행은 고지를 빼앗기기 직전이었다. 양측은 서로 엄폐하면서 숨 돌릴 시간을 가졌다.

총에 맞은 전사 중에 즉사한 인원은 다행히 없었다. 그들 종족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 덕도 있었고 초기형 개틀링 건은 가스 압력 손실이 심해서 탄환 하나하나의 위력이 비교적 약했기에 가능한 행운이었다. 지금 마족 병사들이 쓰고 있는 개틀링 건은 낡은 데다가 관리 상태도 열악했다.

그래도 엄연한 기관총이다. 계속 쏟아지는 개틀링 건의 포화 때문에 달빛을 가리던 나무  그루가 쓰러져서 주변이 조금 밝아졌다. 마족 병사 몇몇이 이쪽으로 몰래 기어오려다가 눈썰미 좋은 부족 전사가 화살을 날려서 맞췄다. 쓰러진 병사들은 엄호 사격과 함께 동료의 부축을 받고 뒤로 끌려갔다.


아자리가 초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떻게든 방법이 없을까요? 제가 나서야만 할까요?”

“무슨 수를 써도 정면으로는 절대  이길 겁니다. 달아날 기회가 필요해요.”

오크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바깥으로 나와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총을 가져왔던 전사들은 아직도 장전하느라 바빴고 활을 가진 전사들이 당긴 시위를 놓자  개의 화살이 나무 방패를 뚫어버렸음에도 방패를 든 오크는 굳건히 버텨내며 계속 다가왔다. 그들 뒤로 다른 병사들이 서서히 기다시피 자세를 낮춰서 따라왔다. 아자리는 단테와 바짝 붙어 다니다가 그의 허리춤에 달린 것을 보고 물었다.


“그 수류탄 얼마나 강해요?”

두 사람이 나눠 받은 무기 중에는 수류탄도 있었다.

“엄청 구식이라 형편없습니다. 파편이  들어있어요.”

“그래도 맞으면 아픈 거 맞죠?”

“구식 수류탄은 심지가 길어서 터지기 전에  피할 겁니다.”

“그럼 제가 맞춰서 터트려 볼게요.”


탄테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말했다.

“할  있어요?”

“어차피 뭐든 해야  때잖아요!”


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다가오고 있다. 단테는 허리띠의  장식에 걸려있던 수류탄을 손에 들고 입술을 깨물며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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