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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1권] 28회 - 마녀와 마녀 (28/188)



〈 28화 〉[1권] 28회 - 마녀와 마녀



한편 쫓기고 있었던 단테와 아자리는 숨이 차서 급한 대로 나무 뒤에 숨었다. 단테가 소총을 쥐고 이를 갈았다.


“운 더럽게 없네! 하필 그쪽에서 본대가 나타날 줄이야!”

“그냥 운이 나빴던  아니에요. 마침 레스를 쫓으러 갔던 놈들이 돌아왔던 거죠.”

“정신없이 뛰다 보니 부족 사람들하고도 떨어져 버렸네요. 난처한데.”


두 사람이 어찌할지 궁리하는 중에 점잖은 목소리가 그들에게 날아왔다.

“마법사랑 여우 친구 거기 있지? 신사적으로 해결할까?”

상대는 오만하고 거만했으며 억지로 꾸며낸 여유가 악취처럼 단박에 느껴졌다. 단테가 그녀에게 소곤거렸다.


“어떻게 하죠?”


“시간을 끌어 봐요. 뭐든 좋으니 말을 이어요.”

단테는 목을 가다듬고 자신의 주특기를 부릴 각오를 했다. 그가 양손을 펼쳐 들고 윗몸만 바깥으로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태평히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사 여러분! 싸움하기 참 좋은 날씨입니다!”


단테는 총알 세례를 각오하고 조금만 분위기가 이상해지면 바로 숨으려 했으나 다행히 상대는 말로 대답했다.

“제발 나와 주겠어? 문명인답게 해결하자고. 같은 마족이잖아.”

“지랄한다.”


아자리가 목소리를 낮게 깔아서 말했다. 단테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돌렸다.


“억양을 보아하니 루베리안 지방의 귀족이시군요! 어쩌다 이런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그는 전력을 다해서 이곳이 싸움터라는 사실을 잊고 계약서를 앞에 두고 쓰는 말투로 말했다.

“이거 놀랍군! 내 출신을 알아맞힌 친구는 처음이야!”

아자리는 계속 심호흡을 하면서 단테를 두둔했다.


“잘했어요. 조금만 더 끌어요.”

한  바퀴가 구르기 시작한 수레가 저절로 움직이듯 단테도 말이 술술 나왔다.

“엘프들은 징집을 거부했다고 들었는데. 이거 놀랍군요!”

“아무렴 됐고 스스로 나오지 않겠다면 그냥 우리가 가지.”


“잠깐만요! 지금 제 동료가 흥분한 상태입니다! 어린 녀석이라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여차하면 당장 자폭하겠다고 난리인데요?!”


단테의 탁월한 연기 덕분에 엘프 지휘관은 순간 망설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마법사를 잡아. 저항하면 죽여.”


“하지만 저 말이 진짜면 어찌합니까?”


지휘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거는 목숨은 자기 것이 아니니까.


“가!”

엘프 지휘관이 거칠게 외치면서 크게 손짓을 하자 근처에 서 있던 병사가 쓰러졌다. 카르델은 오만상을 쓰면서 볼트를 잡아당기고 탄피를 뺐다. 루나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다른 놈이 맞았습니다. 지휘관은 알아냈습니다. 제 뒤에 바짝 붙으세요.”

두 군부대의 지휘관이 움직였다.  명은 도망쳤고. 한 명은 돌격했다. 하딘 대위가 소리쳤다.


“네놈들 상대는 우리다!”


하딘은 그렇게 외치고 검지에 힘을 단단히 주면서 레버를 재빠르게 왕복시켰다. 그의 속사에 적들이 우르르 쓰러졌으나 역시 수가 너무 많다. 하딘이 적이 맞서 쏜 탄환에 맞고 뒤로 쓰러지자 아비투스가 엄호 사격을 하고 그를 데리고 몸을 피했다.


“괜찮으십니까?”

하딘이 자세를 추스르며 외투에서 뭉개진 쇳조각을 털어냈다.

“양호. 우리 보호구가 고블린 놈들 제식 소총 따위에 뚫릴 리가 있겠냐.”


두 사람이 부지런히 총을 장전하는 동안 아자리와 단테에게는 한계가 찾아왔다. 추격자가 코앞에 있다. 단테도 쏜 비장의 머스킷 탄은 상대에게 스치지도 못했다. 그가 물었다.


“이제 어쩌죠?”

아자리가 절망적으로 억양 없이 답했다.

“글쎄요.”


그들 중 하나가 단테에게 달려들더니 그의 소총을 붙잡고 힘 싸움을 벌였다. 그녀는 당연히 도와주려고 애는 썼으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자리도 곧 같은 신세가 됐다.


단테는 병사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바로 뻗었다. 병사 중 하나가 단도를 허리춤에서 뽑았다. 생포할 마음은 아자리에게만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만두라고 외치려다가 연달아 들린 거센 총성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레스?”


자기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며 그녀는 노리쇠가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카니는 자동권총에 새 탄창을 집어넣고 슬라이드를 잡아당겼다. 그가 바닥에 쓰러진 병사의 뒤통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병사의 머리가 폭발하고 흙덩어리가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무심한 얼굴로 아자리를 흘겨보고는 그가 덤덤히 말했다.

“뒤에 붙으십시오 전하!”


“피카니?! 여기는 어떻게 알고?”


“송구하오나 시간이 없습니다!”

단테에게는 어느새 레스가 가서 부축해주고 있었다. 그를 보고 아자리가 비명을 질렀다.

“레스!”

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안녕!”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단테도 그를 보고는 비슷한 말투로 외쳤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될 대로 되고 있지! 피카니! 앞에 더 있다!”

“나도 알아!”

본대 쪽에서 보낸 병력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열 명은 넘었다.


“아자리를 나한테 보내! 거기 있으면 위험하잖아!”

피카니는  말을 무시하고 아자리의 어깨를 잡고 같이 움직였다. 그는 아자리를 거목 뒤에 앉혀 놓고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를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피카니는 앞으로 나아가며 권총을 양손으로 쥐었다. 그림자와 어둠, 희미한 달빛 너머로 기척이 느껴졌다. 소총처럼 움직이는 데에 방해되고 무거운 무기 대신 짧은 곤봉이나 권총처럼 가벼운 무기로 무장한 병사들이 민첩하게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카니는 앞에 놓인 상대들이 여타 잡다한 놈들하고는 수준이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이쪽을 서서히 압박해오면서도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피카니는 자신을 향해 날라온 제압 사격의 총성에 귀를 기울이고 입만 움직여서 조용하게 수를 세었다.

“다섯 명.”


총성이 들려온 장소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권총을 쏘자 45구경의 투창이 얄팍한 덤불과 나무를 뚫어버리고 상대에게 닿았다.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는 못했으나 상대는 몸이 앞으로 엎어졌다. 상대의 머리가 사선에 드러나자 피카니가 다시 방아쇠를 당긴 후에 머리가 있던 자리에는 질척한 구덩이가 새로 생겼다.

동료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초조해졌는지, 아니면 분노했는지 모습을 드러내고 이쪽을 향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은 모습이다. 피카니는 굳이 공들여서 머리를 노리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상대의 몸만 노려서 방아쇠를 두  당겼다.


침착하게 전술 재장전을 했다. 뜨겁게 달궈진 탄창을 다른 탄입대에 집어넣고 일곱의 사신이 기다리는 새 탄창이 손잡이 속으로 들어갔다. 피카니는 자리를 옮겼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뒤를 잡히지 않으니까.

적병들이 계속 다가왔다. 뛰어다니는 그의 잔상을 향해 탄환이 몇 발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무기는 위력이 형편없고 명중률도 떨어진다. 하지만 피카니는 자리를 옮기는 와중에 방금 쓰러트린 상대가 들고 있던 권총을 줍고 그 총으로 상대의 잔상을 향해 머리를 정확하게 쐈다. 방금 주는 권총을 저쪽한테 탄이 떨어질 때까지 제압용으로 쓰고 바로 쓰레기처럼 버리고는 그가 나무 뒤로 숨으면서 중얼거렸다.

“이제 둘.”

찰나의 순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동료를 보고 병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병사들과 피카니 사이의 거리는 가깝다.

코앞에서 피카니와 병사가 마주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체격이 건장한 자가 더는 숨지 않고 피카니에게 달려들었다. 아마 백병전에 자신이 있어서 여태껏 그 덕에 싸움에서 살아남은 거리라. 상대는 맹수가 먹잇감을 향해 첫 일격을 날리듯이 피카니가 들고 있는 권총을 향해 곤봉을 내리쳤다.


피카니는 인형 같은 얼굴 그대로 기계적이면서도 냉정하게 앞으로 겨누었던 권총을 자기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상대의 곤봉은 허공을 내리쳤고 피카니는 권총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깍지 끼듯이 감싸면서 몸에 바짝 붙인 채 지향 사격을 했다. 몸에  발, 상대의 자세가 무너지자 피카니는  더 집중해서 지향 사격 자세 그대로 머리를 겨눴다. 굵은 총성 뒤에 어둠 속에서 걸쭉한 무언가가 땅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몸이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도.

“맙소사.”

아자리는 보고 있는 광경이 너무 잔혹해서 입이 안 다물어졌다. 피카니의 권총은 손으로 들고 다니는 대포나 다름없었다. 피카니는 남아 있는 기척이 달아나는 걸 보고는 상대의 등을 향해 정확하게 겨누었다. 그때 난데없는 방향에서 탄환이 날아왔다. 날아온 방향을 거칠게 돌아보자 레스가 이쪽을 향해 연기가 나는 총을 겨누고 있었다.

“굳이 싸움을 포기한 놈의 등을 쏠 필요는 없잖아.”


레스의 곁에는 단테가 자신의 머리를 감싸서 땅에 엎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레스가 맡았던 방향으로는 다리나 팔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며 싸움을 포기한 병사들이 수두룩하게 보였다. 한눈에 열 명은 우습게 들어와서 자세히 셀 엄두가  났다. 아자리는 레스의 행동을 보고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머리가 멍해졌다. 어쨌든 피카니는 아자리에게 돌아왔고 아자리는 모자를 그에게 돌려주면서 생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레스가, 당신을 실수로 빗맞힌 거겠죠?”

“나한테까지 맹세를 지킬 줄이야.”


피카니는 모자를 쓰면서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자리를 데리고 안전한 곳까지 가고는 피카니가 저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목표물을 확보했다! 퇴각!”

카르델 옆에 얌전히 있던 루나가 그 소리를 듣고 환호했다.

“됐다. 우리가 이겼어요!”


카르델이 목소리를 내리깔아서 대꾸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카르델은 자신의 위치가 드러나는 걸 감수하고 부지런히 방아쇠를 당겼다. 갑자기 쏟아지는 정확한 저격에 마족 병사들이 몸을 움츠렸다. 자신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을 상대하느라 달아날 틈이 없었던 하딘과 아비투스는 그 덕에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들의 등을 향해 날아온 총알이 하딘의 종아리를 찢었다. 그는 고통을 무시하고 절룩거리면서도 부지런히 뛰었다.

일행은  같이 모여서 달아났다. 수백 살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가 근처에 쓰러져 있기에 다 같이 그곳으로 숨어서 잠시 숨을 골랐다. 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 같이 경계 태세를 지키면서도 오랜 긴장과 격렬한 체력 소모로 정신이 혼미했다. 레스와 아자리, 단테는 그들 사이에 갇혀서 꼼짝도  했다. 당연히 피카니는 다시 만나자마자 바로 레스의 권총을 빼앗아서 지금 그는 빈손이다. 레스가 말했다.


“아무도  다쳐서 다행이네.”

아자리가 그의 옆구리를 퍽 하고 쳤다.

“아야.”

“지금  소리가 나와요? 최악의 상황이잖아! 게다가 아까 그건 뭐예요?”

“뭔 소리야?”


레스는 말귀를 못 알아먹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테는 해탈한 것 같은 그윽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살아있으면 좋은 거죠.”


도망자들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만담을 나누는 사이 하딘은 다리의 총상을 루나에게 치료받고 있었다. 아비투스가 투구를 벗자 삭발한 머리 위로 달궈진 땀이 수증기처럼 피어올랐다.

“다 끝난 겁니까?”


“이제야 시작이지.”

하딘이 모자를 벗고 머리에 밑에 고인 땀을 모자의 부채질로 식히면서 말했다. 카르델은 벌써부터 집에 돌아갈 생각이 만반인지 그의 입에서 웃음이 실실 새었다.

“흐히하하. 빌어먹을 땅개 짓도 이제 끝이야. 전역 연금이 다섯 배라니. 이흐흐.”

아비투스가 그의 즐거운 상상을 끊어버렸다.

“너 아직 형량이 남았을 텐데?”


하딘도 거들었다.

“내가 서명하기 전까지 전역은  깨라. 널 대신할 놈이 분대에 없으니 말이다.”


카르델의 얼굴이 구겨졌다. 치료를 마친 루나는 레인저들을 지나서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자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헛기침하고는 그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저기 죄송한데, 여러분들은  다쳤나요?”


평소에 받아볼 일 없는 질문이지만 레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왜 죄송해요?”

“그냥…. 이상해서요. 죄송해요. 말이 뒤죽박죽이라. 저는 우리 일행이 나쁜 사람을 쫓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니 너무 예상 바깥이라서….”

아자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며 멍하니 말했다.

“당신 누구예요? 혼자서 다른 세상에서  거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레스가 곤란해하는 루나 대신에 양손으로 그녀를 공손히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분은 성함은 루나야. 그리고 좋은 분이셔.”


“루나? 게다가 파란 머리.”

아자리는 갑자기 호들갑을 떨었다.


“당신이 루나 센델자레군요! 인간계 최고위 마법사! 어째서 여기에?”


“어, 만나서 반갑습니다?”

루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아자리의 감탄  경악을 받아주었다. 피카니가 소란을 듣고 신경질적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더 시끄럽게 굴면 입에 재갈 물리고  거야! 그러고들 싶어?!”

이제 자리에서 일어날 차례인데 갑자기 말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저쪽으로부터 울렸다. 소리만 듣고도 단테는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내 마차!”

소리가 점점 커진다. 다 같이 일어나서 고목 위로 머리만 내밀어서 상황을 보았다. 키가 작은 아자리는 머리를 내밀수가 없어서 레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레스가 아자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마차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피카니가 이어서 침착하게 말했다.


“마차가 짐칸이 이쪽으로 향하도록 방향을 바꿨군. 짐칸에는 개틀링 건이 실려 있고.”

아자리는 점점 커지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물었다.


“그리고? 그리고 다음은요?”


“그걸 말해야 알겠냐!”

레스가 그렇게 외치면서 아자리의 머리를 누르면서 자신도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향해 총알 세례가 쏟아졌다. 루나와 아자리는 총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으며 귀를 손으로 덮었다. 총알의 비가 끊어지자 남자들이 다시 바깥으로 몸을 내밀고 싸우려는데  앞에서 누군가가 수류탄을 꺼내고 있었다. 남자들이 각자 외쳤다. 엎드려! 하지만 그는 엎드리지 않았다.


레스는 피카니의 정신이  곳에 팔린 찰나 자신의 권총을 상대의 허리띠에서 뽑았다. 그리고 꼭두각시 술사가 급하게 줄을 당긴 인형처럼 격렬하고도 날렵한 자세로 저 앞의 허공을 나는 수류탄을 겨눴다. 모두의 뱃속까지 울리는 진동과 굉음이 사방을 휩쓸었다. 다들 이리저리 흩어져서 숨거나 엎드렸지만 아자리는 레스가 몸을 숨길 기미가 없어 보이기에 그냥 따라서 우뚝 섰고 어쩌다 보니 선 사람은  명뿐이다. 그렇게 둘은 불을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낡고 상태가 안 좋았던 개틀링 건은 기어코 망가졌고 병사들은 크게 다치거나 혼절했다. 탄약통에는 불이 붙어서 엎드린 사람들은 탄약 터지는 소리를 총알 세례로 착각했다. 아자리는 혼돈을 바라보며 자기 처지도 깜빡하고 눈을 크게 떴다.


“우와.”


레스는 서둘러서 일행들을 부축해주면서 외쳤다. 달려! 그들은 달렸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피카니가 휘청이면서 일어나고는 레스의 등을 권총으로 노렸다.


“멈춰!”

레스가 빛살 같은 속도로 몸을 돌리더니 그의 손이 번쩍였다. 상대는 총성과 함께 몸이 꺾이면서 앞으로 쓰러졌고 루나가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아자리가 경악한 표정으로 권총을 총집으로 도로 넣는 레스에게 물었다.

“방금… 죽였어요?”


“나중에.”

레스는 건성으로 대답을 피하고 일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땅이 통째로 흔들리는 바람에 일행들은 몸이 고꾸라졌다. 돌아보니 루나가 마법 지팡이를 땅에 찍으면서 그들을 살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지팡이를 땅에 찍을 때마다 거인이 모루에 망치를 내려치듯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눈은 화로에 들어간 보석처럼 푸른 안광으로 번뜩였다.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행이 깨닫는 데에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녀가 길고 복잡한 억양으로 주문을 순식간에 속삭이면서 춤동작처럼 팔을 앞으로 뻗고 몸을 빙글 한 바퀴 돌리자 도깨비불이 루나의 손 위로 모여들어 땅 위의 혜성처럼 빛났다.


“위협 공격은  합니다.”

여태껏 봤던 소심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섬뜩하다. 그러나 아자리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눈이 달궈진 석탄 같은 붉은색으로 빛났고 손 위로 불꽃들이 소용돌이쳤다. 불꽃의 소용돌이는 자신의 색을 점점 주장하더니 음영 없이 순수한 붉은색의 직육면체로 변했다. 지금 아자리는 눈만이 아니라 온몸에서 어렴풋한 빛이 났다. 안개 속의 횃불처럼 주변을 밝히지 않고 그 자리에만 존재하는 부자연스러운 빛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레스는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군인들도 상황을 파악했고 두 마법사의 대결에는 아무도 상관하지 못했다. 건드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도 없거니와 한편으로는 다들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운 빛의 향연에 넋을 잃었다. 아자리는 낭송했다.


“포르차 데르피 스포르티 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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