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2권] 38회 - 가출한 아가씨
여기서는 탄광 입구가 비스듬히 보였다. 산을 따라서 마을하고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근처에는 붉게 녹슨 탄광 차량이 쓰러져 있었는데 그 위로 쌓인 흙먼지 위로 새싹이 자랐다.
카우보이가 탄광 안에서 나왔다. 깊이 들어가진 않았는지 몸에는 먼지가 묻어있지 않았다. 히콕은 못에 서있는 두 여자를 보고 특이한 반응 없이 덤덤하게 이쪽으로 왔다. 샤카자이아는 언제든지 꺼낼 수 있도록 소매 속에 감추어둔 흑요석 단도의 위치를 조정해두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적당히 가까워지자 히콕이 모자를 위로 들어 올리고 인사했다.
“이거 빨리 만났군.”
아자리도 자신의 고깔모자를 한손으로 으쓱 움직여서 답했다. 샤카자이아는 모자가 없어서 목례만 했다. 그리고 속으로 자기도 어서 모자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탄광에는 왜 가셨나요?”
“안토니오 심부름이야. 너희들하고는 관계없어.”
“안에 뭐가 남아있던가요?”
히콕은 어깨를 으쓱 올렸다.
“캘만한 건 10년 전에 끝났어. 겉치레는 이쯤하고 나한테 용무가 있어 뵈는 얼굴들인데.”
“당신 괴물퇴치도구 만들어본 적 있죠?”
그는 삐딱한 자세와 함께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는 신기한 물건 구경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보았다. 샤카자이아가 말을 이어받았다.
“분명 너는 경험 많은 사냥꾼이다. 괴물들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알고 있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나. 사례는 분명히 약속한다.”
“내가 무엇을 믿고?”
“솔직하게 이야기만 해줘도 대금을 지불해주겠다.”
그리고 샤카자이아는 자신의 엄지와 검지만 들어서 허공을 꼬집었다.
“이정도 크기의 사금이다.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더 주겠다.”
“당장 보여주지 않으면 싫다.”
지금 샤카자이아에게는 금이 없었다. 곤란하던 차에 아자리가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금 조각 하나를 꺼내보였다. 어제 아자리가 진료소 천막에 누워있을 때 레스가 자신에게 쥐어준 것이다. 히콕은 물론이고 샤카자이아도 깜짝 놀랐다.
“합의할 거예요 말거예요?”
천 마디 말보다 한 가지 현실이 강력한 법. 금을 본 히콕은 없던 마음까지 생겼다. 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는 안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잠깐 모자 안쪽하고 눈싸움을 하던 히콕은 마음을 결정했다.
“일단 지식만 알려줘도 대가를 주겠다는 거지?”
“맞아.”
샤카자이아가 대답했다.
“이건 어때. 금은 됐어. 그보다는 부탁 대 부탁이 어떨까 싶은데.”
“무슨 부탁?”
“저 탄광은 습도가 전혀 없고 항상 적당히 서늘해서 식품들을 보관하기 아주 좋아. 문제는 세월이 지나면서 터널 곳곳이 무너져 내린 상태야. 방금 나는 상태만 확인하러 갔었다.”
엄지로 자신의 뒤를 가리키며 히콕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여자는 일단 귀를 열었다.
“이제부터 할 일 없는 놈들을 불러서 안쪽을 다시 파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무시하니까 걱정이었거든. 하지만 다크 엘프는 힘이 세고, 그리고 너는, 마법사잖아. 이정도 허드렛일 정도는 간단할 거라고 생각한다만.”
아자리는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궁리해봤지만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굉장히 소박한 부탁을 하시네요.”
“소박한 부탁이라니. 엄청난 중노동이야. 게다가 위험하다고.”
“어차피 잠깐 머물 뿐인 마을인데 왜 그렇게까지 노력하시나요? 머문 지 겨우 두 달 되셨다면서요?”
“당장 머물고 있는 기간이 두 달인 거다. 이 마을에 들락거린 지는 수십 년이 되어가지.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서 이곳을 조금이나마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안토니오에게 밥값을 계속 빚지는 처지지만 나는 진지해.”
거짓말을 하는 걸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자리와 샤카자이아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속닥였다.
“어떻게 하죠? 저는 그냥 금을 줘서 끝내고 싶은데. 도와주는 걸로 결정해버리면 저는 마법을 못 쓰니까 언니만 고생이잖아요.”
샤카자이아는 ‘흠...’ 하고 고민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히콕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봐. 방금 새로 옷을 맞춰 입은 참이다. 더럽히기는 싫으니 위에 걸칠만한 것 아무거나 빌려줄 수 있겠나.”
“내 외투를 빌려주지.”
“그럼 됐어.”
아자리가 그녀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괜찮겠어요?”
“체력이라면 자신 있다. 오히려 조금 설레는군. 모험의 흥이라면 역시 낯선 자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정을 쌓는 것 아니겠나.”
그 순수한 반응에 아자리는 경외감마저 느꼈다.
“우와... 정통파 모험가이시네요.”
히콕이 빙긋이 웃으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으로 그들을 재촉했다. 더 고민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두 사람은 히콕을 따라 탄광으로 향했다. 말없이 걸었다.
“도구는 저기에 미리 가져다 놨어.”
입구 바로 옆에 곡괭이와 삽, 쇠망치 등의 연장들이 모여 있었다. 기름등도 준비되어있었다. 샤카자이아는 먼저 쇠망치를 들어보고는 무게와 쥐는 감촉을 느껴보았다. 아자리는 아직도 손에서 지팡이를 떼어놓지 못하는 신세라 남은 손으로 삽이라도 들었다. 히콕은 등에 불을 붙이고 앞장섰다.
아직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내부는 자연동굴에 맞먹을 정도로 널찍했다. 얼마 안 가서 터널 일부분이 무너진 흔적이 보였다. 터널 강화용으로 설치된 받침목이 썩어 있었다. 당장 저 잔해들을 치우지 않아도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수는 있었지만 내버려두기에는 후완이 두려웠다.
히콕의 외투를 작업복 삼아서 몸에 걸친 샤카자이아는 잔해를 향해 쇠망치를 휘둘렀다. 무슨 부채라도 휘두르듯 연장이 공기를 가르는 감촉이 뒷사람에게까지 닿았다. 망치에 닿은 암석들은 굉음을 내며 돌조각을 민들레 씨앗마냥 휘날렸다. 히콕은 기겁하고 뒤로 물러났다.
“어이 조심해! 이러다 다른 사람들 다치겠어!”
“미안, 굴착하는 일은 경험이 없어서.”
“그런데 숙녀 분은 아무 일 안 하는 거야?”
히콕이 아자리를 바라보며 말하자 샤카자이아가 둘러댔다.
“나 혼자로 충분하다.”
“하긴 작정하면 혼자서도 터널을 2배로 넓힐 거 같구먼. 부수는 건 네가 해. 치우는 건 내가 해보지. 꼬마는 불을 들고 있어.”
꼬마라는 말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아자리는 분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각자 역할을 맡은 뒤로는 오랫동안 말없이 각자의 일에만 열중했다.
◆
“남장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정말이요?”
루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기뻐했다.
피카니 일행들은 한적해진 식당에 있었다. 피카니와 헨리 하딘 대위도 이제야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피카니는 일부러 면도를 하지 않아서 수염이 어느새 구레나룻까지 자라고 있었다. 하딘 대위가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
“배려주시는 건 고맙지만 이제 와서 생각을 바꾸신 이유가 뭔가요?”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마법사님은 남장을 한다고 해서 감출 수 있는 몸매가 아니십니다.”
“에? 아.”
“성희롱으로 받아들이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딱히 뭐, 사실이 그런 걸요.”
루나는 말하면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남장했을 때 압박해뒀던 가슴은 지금 해방된 상태다. 그녀는 지금 자기 배가 보이지 않았다. 루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려 했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건 감추지 못했다. 표정이 언짢아지는 하딘을 대신해 피카니가 말을 이어받았다.
“고민해본 결과 그냥 마법사님이 편한 게 제일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럼 이 실크모자도 괜찮은가요? 진짜 마법사처럼은 안 보이겠죠?”
“좀 아슬아슬하군요. 패션으로는 괜찮아 보입니다만.”
묵묵히 있었던 아비투스가 의견을 냈다.
“그럼 우리들도 멋 부리면 되지 않을까? 같이 꾸미면 마법사님 모자는 문제도 되지 않을 걸.”
카르델이 바로 딴죽을 걸었다.
“우리는 눈에 띄면 안 된다는 거 잊었냐.”
하딘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아비투스가 맞다. 눈에 띄지 않겠다고 조용히 있어봐야 첩자들 눈은 못 속인다. 연기라는 건 쉬운 게 아니야. 우리는 바깥에서 떠돌이 총잡이 행세를 할 거다. 변장을 겸해서 치장할 필요가 있어. 다 같이 눈에 띄지 않겠답시고 거지꼴로 다녀봐야 도움 안 될 거다. 차라리 각자 몰입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추는 게 나아.”
일행들 모두 그 말을 듣고 감탄하는 소리를 작게 냈다. 카르델은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군복은 숨길 수 있어도 총은 숨기지 못할 거고. 정체를 감출 수 없다면 속여야지. 게다가 이쪽이 더 재미도 있겠네. 반대 안 합니다.”
피카니가 자기 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 그래도 저는 특히 변장할 필요가 있어서 수염을 안 깎았습니다. 사진 찍을 때는 항상 곱상하게 차려입었으니 머리를 짧게 다듬어서 염색한 다음 수염을 더 기르면 저를 알아보기 힘들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우린 딱히 알려진 적 없으니까 옷차림만 신경 쓰면 돼. 제군들. 몰입이 핵심이다. 규칙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무법자가 되는 거다. 여기서 구할 수 있는 대로 마음껏 꾸며보자고.”
평소답지 않게 그가 쾌활한 말투를 쓰자 다들 웃었다. 그러다가 루나는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그럼 제 역할은 어떻게 하죠?”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세련된 동작으로 차를 마시고 있던 아비투스가 의견을 냈다.
“프리랜서 마법사는 어떻습니까. 저희들하고는 사업상의 이유로 서로 고용한 관계로 치고요.”
“그럼 서로 말을 맞추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저는 황무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걸요.”
다 같이 고민하느라 모두 표정이 진지해졌다. 카르델이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다가 말했다.
“가출한 귀족 아가씨는 어때요? 저희들은 모두 마법사님에게 수행원으로 고용된 거죠.”
갑자기 루나가 정색하는 표정을 지어서 카르델은 바로 자기 말을 수습했다.
“그냥 의견 중 하나입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화낸 게 아니고 제 상황하고 정말 딱 들어맞아서...”
“네?”
“제 마음대로 가문을 뛰쳐나왔거든요. 대학에 들어간 뒤로 집에 돌아가질 않았고요. 생각해보니 아직도 가출 중이네요.”
예상외의 반응에 남자들 모두 말을 잃고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공기가 어찌나 어색했는지 곁눈질로 그들을 보고 있던 가게 주인은 도중에 일행들이 다함께 독이라고 먹은 줄 알았다. 하딘 대위가 헛기침을 하고는 물었다.
“마법사님이 괜찮으시다면 카르델의 의견을 받아들일까요?”
“네.”
◆
히콕은 이마에 흠뻑 흘러내리는 땀을 팔로 훔쳐냈다.
“좋아 이정도면 되겠어. 이만하면 충분히 저장고로 쓸 수 있어. 그만 나가지.”
세 사람이 노동을 한지 2시간이 지났다. 미약하게 바깥에서 안쪽으로 흘러들어온 빛은 이제 칙칙하다. 어둠 속에서 아자리의 눈과 히콕의 눈이 고양이처럼 빛을 냈다. 다들 바깥으로 나와서 입과 코를 막았던 마스크를 벗었다. 가을의 푸른색 초저녁 하늘 저편으로 석양이 지평선을 향해 떨어졌다.
탄광 바깥에는 빨갛게 녹슨 탄광 차까지 동원해서 치운 돌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샤카자이아는 아주 보람찬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이곳저것 풀었다.
“갑갑해서 도중에 겁도 났지만 움직이니까 기분이 좋군.”
히콕은 쌓여있는 돌들을 보며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네 부족 사람들을 끌어 모으면 산 반대편까지 뚫어버리겠는데.”
“칭찬은 됐다. 같이 노력한 처지에 이런 말하기는 야속하지만 어서 대가를 받고 싶군.”
샤카자이아은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고 허공으로 힘차게 털었다.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잠깐 검은색 안개가 펼쳐졌다.
히콕은 자신의 외투를 건네 받고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지평선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쪽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은 ‘그렉커’라는 무리들이야. 꼬마 숙녀하고 몸집이 비슷한 도마뱀들인데 땅속에 굴을 파서 지내는 놈들이라 시력은 장님이나 마찬가지야. 대신 후각 기관이 발달해서 놈들끼리는 페로몬만으로 소통을 하지. 개미처럼.”
샤카자이아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아자리를 쳐다보았다. 아자리가 말했다.
“그래서 뚫고 갈 수 있는 방법은요?”
“완벽하게 안심할 수준은 아니지만 대처법이 있지. 놈들 코를 속이는 거야. 그쪽 아가씨가 말한 것 그대로야. 그렉커의 페로몬을 카우보이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조합해서 향로에 집어넣으면 반경 100m는 얼씬도 안 하지.”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갇혀 있어요?”
아자리는 말하면서도 자신의 케이프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히콕은 원래 말투 그대로 대답했다.
“난 내 의지로 여기 있는 거야. 저 바깥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카우보이한테 얼마나 득달같이 구는 지 알아? 아이고 나으리 우리 마누라가 돈을 들고 튀어버렸으니 제발 찾아주십시오. 거기 네놈 제국의 명령이니 의뢰를 받아라. 정체를 숨기고 발뺌하고 싶어도 이 눈깔 때문에 속일 수가 없어.”
“그럼 왜 다른 사람들한테는 방법을 안 가르쳐주시나요?”
“귀찮아서.”
샤카자이아가 인상을 썼다.
“겨우 그거?”
“쉬러 왔는데 무슨 의리로 내가 일을 해줘야 해? 게다가 그놈들은 대부분 무일푼이라 도와줘도 나한테 제대로 대가를 치르지도 못해. 기껏 도와줬더니 내 뒤통수에 총알이나 안 박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너희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보이는데다 내 부탁도 들어줬으니 할 일은 할 거다. 그런데 꼬마야?”
아자리가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왜요.”
“네 지팡이는 어디 있냐? 들어가기 전에도 계속 들고 있었잖아.”
그 말을 듣고 아자리는 자기 손을 쳐다보았다. 손에 아무 것도 없었다. 터널 안에서 일하는 동안 아자리도 손을 거들어줬는데 정신이 팔린 참에 내려놓고 까먹은 것이다. 아자리는 질겁하고 자기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했다.
“아아아아아아아! 안 돼!”
“진정해라 아자리. 어차피 안에 있을 거다.”
샤카자이아는 침착하게 타일렀다. 히콕은 껄껄 웃었다.
“나는 먼저 돌아가지. 재료는 이미 다 있으니까 굳이 뭐 챙겨올 필요는 없어. 내 집으로 와서 상태가 어떤지 직접 보고 싶다면 보안관 사무소를 찾아. 아디오스 시뇨리타(안녕히 아씨들).”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아자리 대신 샤카자이아가 목례로 그를 배웅했다. 두 사람은 서둘러서 다시 탄광으로 들어갔다. 새삼스런 일이지만 샤카자이아가 넓혀놓은 터널 내부를 보고 아자리는 그녀가 같은 편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어두워어어... 대체 어디야! 미안해요 캘커트리씨! 어디 있니!”
“천천히 걸어라. 밤눈은 네가 더 밝다. 어둠이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
꼼꼼히 살피면서 계속 나아갔다. 전설의 마법지팡이라도 근본은 나무 막대기다보니 얼핏 봤다가는 탄광에 굴러다니는 쓰레기하고 구분이 안 됐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집중해서 찾다보니 터널 안에 나있는 갈림길들까지 눈에 띄었다. 쓰이지 않는 통로들은 잡동사니로 막혀있거나 가지 말라는 표시가 되어있었다. 아까는 히콕의 안내만 받고 움직이느라 쳐다볼 일조차 없었다.
“응?”
그때 샤카자이아는 뭔가 신경 쓰이는 걸 보았다. 하지만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자기가 뭘 보고 지나쳤는지 생각이 안 났다. 찾던 물건이 있었나 싶어서 아까 봤던 곳을 다시 살피는데 뒤에 있던 아자리가 환호성을 질렀다. 먼저 찾은 것이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다행이다.”
볼일도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면 되지만 샤카자이아는 자꾸 마음이 걸렸다. 아자리는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질 않고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물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요?”
“있어. 누가 여기에 표식을 그려놨어.”
표식이라면 터널 곳곳에 흔하다. 이곳에서 일했던 광부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이다.
“대단한 의미는 없어요. 어서 가요 언니.”
“그게 아니야. 이건 우리 부족들 사이에서 쓰이는 표식이다. 저 분필 자국 보이나?”
가까이 다가와서 샤카자이아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자 확실히 다른 분필 그림하고는 차이가 나는 표식이 있었다. 하지만 아자리는 저게 무슨 뜻을 가진 분필 그림인지 몰랐다.
“저게 슈슈니 부족 사람들이 쓰는 신호라고요?”
“앞장 선 정찰병들이 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 거다. 이상하군. 이곳에 대해 들어본 기억은 전혀 없는데. 저건 가도 안전하다는 뜻이야. 가서 봐야겠다.”
“언니? 언니! 그냥 돌아가요 무슨 일 생길까봐 불안하고...”
샤카자이아는 막무가내로 먼저 갔다. 아자리는 혼자서만 돌아갈 수가 없어서 억지로 그녀를 따라갔다. 통로는 비좁았고 천장도 낮아져갔다. 이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아자리는 불안했다. 그 와중에도 샤카자이아는 계속 표식을 찾아내면서 성큼 나아갔다. 도중에 갈림길이 어찌나 많았는지 금맥을 찾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집착이 절로 느껴졌다.
키가 작은 아자리마저도 종종 고개를 숙여야할 정도로 좁아졌다. 사방을 둘러싼 암석이 등불을 반사시켜서 창백하고 불안한 공간을 조성시켰다. 작은 소음 하나까지 울려서 몸속까지 매웠다. 아자리는 답답해서 머리가 어질했다.
“이러다가 폐쇄공포증 생기겠어요. 어서 돌아가요.”
“시체다.”
영원히 걸어갈 것만 같았던 뒷모습이 갑자기 우뚝 서서 그렇게 말하자 아자리는 심장이 철렁거렸다. 샤카자이아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가서 자신이 본 것을 자세히 살폈다.
탐험가 복장을 한 백골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깔끔하게 부패되어서 완벽하게 하얗다. 머리뼈에 금이 간 걸 보아하니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해서 머리를 다쳤거나 사고를 당해서 쓰러진 듯했다. 이런 곳에서 보기에는 많이 어색한 모습이었다. 샤카자이아가 주변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슬슬 다른 표식이 나올 때가 됐는데 아까부터 흔적이 끊겨있었다. 그만 돌아가자.”
“그런데 공기가 이상하지 않아요? 왠지 모르게 신선한 느낌이 드는데.”
“나도 저 앞에서 오는 메아리를 느끼고 있었다. 뭔가 거대한 공간이 있어.”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고민했다. 아자리가 결론을 냈다.
“이만 돌아가요. 단테랑 레스가 걱정할 거예요.”
“알고 있다. 잠깐만. 이 해골 밑에 뭔가 있군.”
샤카자이아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해골을 손으로 치워서 감춰져있던 물체를 드러냈다. 몸에 두르는 탄띠와 소총이었다. 소총은 가늘고 길쭉하다. 총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아자리와 샤카자이아가 봐도 소총은 구조가 단순해서 무척 튼튼해보였다. 레버액션 라이플을 닮았지만 자세히 보니 구조가 달랐다. 볼트 액션 소총도 아니었다. 머스캣도 아니었다. 여자들 눈으로는 어디로 총알을 넣는지도 찾을 수 없었다.
터널 내부는 건조해서 소총과 탄환에는 녹 하나 없었다. 50구경이나 되는 대구경 총알이라 탄띠의 무게는 묵직했다. 8발이 끼워져 있다. 샤카자이아가 말했다.
“대체 왜 가져왔지? 이런 곳에서 총을 쐈다가는 총알이 예상 못하는 곳으로 튈 거다.”
“하나 확실한 점은 저 앞으로 가려면 총을 써야할 일이 있다는 거겠죠.”
잠깐 침묵이 흘렀다. 샤카자이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서 돌아가자.”
“네.”
기왕 손에 넣은 소총과 탄띠는 챙기기로 했다. 그리고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샤카자이아는 해골이 입고 있던 옷에 뼈를 담아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