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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2권] 39회 - 롤링블럭 라이플 (39/188)



〈 39화 〉[2권] 39회 - 롤링블럭 라이플



어두운 평원 위로  남자가 말을 타고 국경선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국경선이 끊어지자 누군가가 별을 골라서 길잡이로 삼고는 앞장서서 달렸다. 기수들이 메스키트 나무를 지나쳤을 때 바람과 땅을 때리는 충격으로 맺혀있던 콩 몇 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말들이 내뿜는 뜨거운 숨결은 수증기가 되어 피어올랐다.

쳐다보면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어둠으로 가득한 광야였다. 저편에 있는 유령마을에서는 불 피우는 하얀 연기가 올랐다.





샤카자이아가 가져온 백골은 묘지에 묻어주었다. 탄광 사고로 죽은 광부들도 다수 묻힌 곳이었다. 간단한 묘를 만들고 레스가 쥐고 있던 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자들을 향해 말했다.


“장례도 치러줄 거야?”


샤카자이아가 대답했다.

“하자. 그래야 마음이 놓여.”


“그럼 기도는 누가 할까.”


샤카자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자리는 생각하고 대답했다.


“마족보다는 같은 인간이 장례를 치러주면 저 사람이 더 좋아할 거 같아요.”


레스는 잠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원위치로 되돌렸다.

“알았어. 잠깐 땅을 쳐다보고 눈을 감아줘.”

다들 모여서 묘를 향해 엄숙히 묵도를 했다. 레스는 경건한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다.

“숨이 그친다는 것이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영혼과 육신이 녹아들어가 어떤 이름도 없는 신을 찾아가는 것. 침묵 속에서 심판 받으리라. 진실과 함께 춤추리라. 그대는 이제 먼 여행을 마치고 그분께 돌아가고 이 별과 작별한다. 이름 없는 자여. 잊힌 자여. 그 고독에 위로와 동정을 표하노라. 지은 죄는 속죄하고 선량한 일은 보상받아라. 살람 알레이쿰 아민. (평화가 있기를, 아멘.)”

마무리로 쓰고 있던 터번을 벗은 다음 그걸 가슴에 대고 레스는 고개를 숙였다. 벗은 터번을 다시 쓰고 그가 말했다.


“이제 고개 올려도 돼.”

“방금 굉장히 인상적이었어.”

샤카자이아는 눈이 축축했다. 아자리도 감명을 받아서 흰자위가 붉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아자리는 목소리가 슬펐다.

“장례 기도는 사람마다 따로 정해져있나요? 유난히 이름 없다는 점을 강조하던데요.”


레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걸었다. 나머지 사람도 나란히 옆을 따라 걸었다.

“중요한 사람의 장례일수록 기도가 길어지지. 당연히 아까 했던 게 제일 짧고.”


그는 묘를 만드느라 잠깐 내버려두었던 소총과 탄띠를 집어 들었다. 탄띠는 벨트에 대충 걸쳤고 소총은 걸어가면서 살펴보았다.


“괜찮은 물건 같네. 사냥할 때 편리하겠어. 먼저 분해해서 손질부터 할게. 처음 보는 물건이라 시간이 걸리겠는걸.”


소총의 길이는 대략 1m 30cm였다. 바닥에 수직으로 세우면 아자리의 가슴까지 닿았다. 밤나무로 만들어진 몸통과 새까맣고 각진 금속이 서로 절반씩 총을 구성했다. 개머리판에 조병창의 이름과 번호가 새겨져있었지만 아자리와 샤카자이아는 모르는 말이다. 레스가 그걸 보고는 말했다.


“흠. ‘게르마닉스’ 글자구나. 하여간 이 친구들이 무기는  만들어.”


샤카자이아가 걸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의외야. 총에 대해서는 뭐든지 알  알았는데.”

“내가 총포상은 아니잖아.”


아자리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도적들이 쓰던 소총은 왜 노획하지 않았나요?”


“놈들 몸에 맞춰서 만들어진 총이라 사람이 쓰기에는 힘들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총알이라도 챙겨올 걸.  총알을 재생 시키는 데에  수 있을 텐데.”


“몇 발 남았죠.”

“열 발. 나머지는 어제 마법에 휘말리면서 찌그러졌어.”


“여기 있는 무법자들한테서 물물교환으로 총알을 구해보지 그래요?”


“생각은 해봤지만 여기 친구들하고  얽히는  좋을 거야.”


다른 물건이면 모를까 총과 총알처럼 민감한 물건을 순순히 넘겨줄 이는 없을 것이다.


“하긴, 기껏 새로 얻은 총알을 고스란히 쓰겠네요.”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단테는 부엌에서 칠리소스와 콩으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화덕에서는 옥수수 빵이 미열로 은은하게 데워졌다. 밥하는 집은 여기뿐이다. 어찌나 식욕을 돋우는 냄새인지 누가 맡고 습격해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단테가 집으로 들어온 일행들을 보면서 말했다.


“히콕이라는 사람하고는 아까 만나고 왔습니다. 먹으면서 이야기할 테니 앉으세요.”


집 안에는 탁자가 없었다. 그래서 각자 음식을 담은 그릇을 들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샤카자이아는 처음 먹어보는 칠리의 매운맛에 익숙지 않아서 먹다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곧 적응하고 맛을 즐겼다. 아자리와 레스는 불만 없이 만족했다. 일행들이 먹는 동안 단테가 말했다.

“저는 이 마을에 하루 이상 머무는 일이 없어서 히콕하고는 마주친 적이 없었습니다만  사람은 여기를 거점으로 삼았더군요. 사냥한 괴물들에게서 얻은 수집품들이 가득했어요. 레스 씨가 괴물을 잡아올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먹던 걸 삼키고 아자리가 물었다.

“퇴치부는 받아왔나요?”

“발효 시키는 데에 시간이 걸린 답니다. 직접 봤는데 생각만큼 지독하지는 않았고 난생 처음 맡아보는 신기한 느낌이 들었어요. 내일 완성이래요.”

가장 걱정하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니 다들 마음이 놓였다. 모두  기쁨에 취해서 안심하고 배를 채웠다. 하지만 식사를  마쳐가자 걱정이 뒤늦게 다시 살아났다. 샤카자이아가 말했다.


“그래도 직접 건너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걱정되는군.”


“애초에 편안한 여행길은 처음부터 글러먹었어요. 용기를 가질 수밖에.”

그렇게 말하고 단테는 건배하듯 물 잔을 살짝 흔들었다. 둘 다 옳은 말이었기에 아자리와 레스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길러온 물로 간단한 설거지를 하고 개인적으로 쉬었다. 아자리는 자신의 수첩을 펼치고 지금까지 밀린 내용을 꾸준히 적었다. 샤카자이아는 침구를 깔고 누웠다. 벌써 자려는  아니고 아까 힘을 많이 쓴 탓에 피곤해서 그랬다. 레스는 바닥에 천을 깔고 소총을 단테와 같이 분해해보았다.

단테는 이게 어떤 총인지 알고 있었다.

“레밍턴 롤링블럭이군요.”

“레밍턴? 꽤 들어본 이름 같은데.”

“브라우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최고였죠. 이 총도 한때는 제국군의 제식 무기였고.”


총은 워낙 구조가 단순해서 분해하기가 쉬웠다. 레스가 자신의 권총을 손질할  쓰는 도구만으로도 충분했다. 망가진 부분은 없었고 강선도 뭉개진 곳 없이 깔끔했다. 샤카자이아가 누운  고개만 돌려서 남자들이 총을 손질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단테가 총에 대해서 설명했다.


“인기가 좋아서 30년 동안 계속 계량을 거쳤죠. 마지막으로 10년 전에 생산이 멈췄지만 워낙 만들어진 게 많아서 지금도 중고 물품이 넘쳐나요. 튼튼하고, 잘 맞고, 고장도 잘 안 나고, 위력도 좋고, 관리하기도 쉽고. 딱 한 가지 단점 빼고는 모든 면에서 훌륭한 명작이죠.”

레스가 총을 다시 조립하면서 물었다.

“그 단점이 뭔데?”


“시대에 뒤떨어졌어요. 장전하고  발 밖에 못 쏩니다. 그래도 근본은 괜찮으니 개인 취미나 수렵용으로는 수요가 있는 편입니다. 이 소총의 품질이라면 90길피는 되겠네요.”

구경하고 있던 샤카자이아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길피?”


“금화요. 이참에 바깥에서 쓰는 돈에 대해서 알려드리죠. 가까이 와보세요.”

샤카자이아는 일어나서 다가왔다. 단테는 갖고 있는 돈들을 종류별로 늘여놓고 말했다.

“마족들이 쓰는 돈입니다. 이 구리 동전은 채피, 은화는 실피, 그리고 이 금도금된 주화는 길피. 여기에는 없지만 순금으로 만들어진 알피라는 금화도 있어요.”


“각각 가치가 얼마나 되는 거지?”


“채피 10개가 실피 1개. 실피 10개가 길피 1개. 그리고 순금으로 찍어내는 알피는 길피 100개. 참고로 실피 다섯 개 정도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있어요.”


그녀는 탐욕 없는 순수한 시선으로 돈들을 쿡쿡 찔렀다. 동전들이 짤그랑거렸다.

“인간들은 무슨 돈을 쓰나?”


레스가 대신 대답했다.

“동전하고 지폐를 써. 동전은 셉트, 지폐는 탈레르. 1탈레르가 1실피 정도 돼. 돈의 가치는 표면에 새겨진 숫자로 매겨지고,”


샤카자이아는 역시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건. 그냥 적혀있는 숫자로 가치가 달라진다고?”

 자리에서 경제 원리와 신용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도 보람은 있겠지만 레스와 단테는 눈빛만으로 지금은 귀찮다는 의사를 서로 확인했다. 레스가 말을 이었다.

“그치? 이상하지? 실제로도 제국의 돈은 불안정해. 전쟁이 터지면 가치가 들쭉날쭉하지. 그래서 사람들은 기왕 돈을 받는다면 마족들의 금속 화폐를 훨씬 좋아해. 사쿠라비는 금속 화폐랑 지폐를 둘 다 쓴다만 지금 말해봐야 소용없으니 넘어갈게.”

소총이 완전히 조립됐다. 레스는 후장식 소총의 총구 뒤쪽에 난 작은 손잡이를 내려서 약실 내부를 열고 묵직한 50구경 탄환을 집어넣었다. 총알은 문제없이 소총의 내장과 서로 맞물려 자기 몸을 불사를 준비를 마쳤다. 방금 넣었던 탄환을 꺼내고 레스는 말했다.

“그런데 끈을 달 수 있는 장식이 없네. 이걸 넣을 수 있는 소총 가방을 어디서 구한다.”

샤카자이아가 뾰족한 귀를 더욱 쫑긋 세우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맡겨보지 않겠어?”

“어? 정말?”

“가방이라면 많이 만들어봤다. 가죽이랑 칼, 천, 그리고 끈이면 충분하다. 등으로 맬 수 있으면 되는 거지?”

얼마든지 환영이다. 레스는 만들 때 참고하라고 소총을 그녀에게 맡겼다. 샤카자이아는 꽤 자신 있었는지 벌써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눈으로 치수를 쟀다.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이 총의 이름은 내가 붙여줘도 될까? 내가 찾았잖아.”

레스는 내키지 않았지만 반대할 정도로 싫지도 않았다.

“대충 지어줘.”


샤카자이아는 신이 난 얼굴로 재료를 갖고 홀로 일할 수 있도록 집안 어디론가 사라졌다. 집 안에서  일이 없어진 단테는 말들을 돌봐주러 가겠다고 말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아자리와 레스만 남았다. 아자리는 침착한 얼굴로 계속 수첩을 끼적이고 있다. 그의 피로 물든 수첩을. 다른 방에서 가죽을 자르고 천들이 서로 닿는 소리만 날 뿐 집안은 조용하다. 그가 아자리에게 말을 걸었다.

“잘 써져?”


그녀는 수첩을 노려보던 시선을 그에게 향하고 말했다.


“레스. 소총을 주운 곳 근처에 뭔가 거대한 공간이 있었다고 말한 거 기억해요?”


“거기 가자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거기서 언니의 어머님이 남긴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레스는 굳은 얼굴로 가만히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이곳이 유령 마을로 변한 게 10년 전이에요. 돌아오는 길에 언니하고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어머님이 사라진 날도 10년 전이라고 하셨어요. 그런 수상쩍은 곳으로 향하는 길에 슈슈니 부족의 표식이 남아있고요. 게다가 여기는 부족 영토에서 황무지로 향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마을이잖아요. 확률이 높아요.”

“확실히 수상쩍네.”

바닥에 딱정벌레  마리가 기어 다녔다. 아자리는 자기 근처에서 돌아다니던 벌레 한 마리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창밖으로 휘 던졌다.


“샤키 언니는 애써 아무 말 안 하고 있어요. 누구보다 찾아보고 싶을 텐데.”

“네가 마법을 쓸 수 있는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은  돼.”


“알아요. 하지만...”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다. 레스는 가만히 기다렸다.

“레스. 추장님이 점을 쳐줬어요. 제 부모님은 살아있다고. 사실 저도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아마 급진파 중 누군가가 사로잡고 있겠죠.”

“계속해.”


“부모님을 구할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당신하고 언니에게 온갖 애원을 해서 같이 싸워달라고 부탁할 거예요. 하지만 그럴 자격이 저한테 있을까요?”


“때가 되면 알겠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요.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에 괴물 같은 건 없었어요. 이거라도  하면 샤키 언니에게 부탁을 할 염치가 없어요.”


“안 돼.”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뉘이고 다리를 탁자 위에 올린 채 자고 있던 히콕은 방문객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탁자 위에 올려둔 권총을 들고 그는 방문객을 조심스럽게 맞이했다. 바깥에 네 남자가 있었다. 남자들은 등불이나 횃불도 들고 있지 않았다.

“누구냐.”

“저희들입니다 형님.”


낯익은 목소리지만 얼굴까지 떠오를 정도로 친숙하지는 않았다. 히콕이 주머니에 있던 성냥을 손톱으로 켜서 불을 밝히자 남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이 자신들의 외투 안쪽에 달려있는 ‘핑커튼 탐정 사무소’라고 글자가 새겨진 배지를 보였다. 히콕은 자다가 깨어난 탓에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표정 관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그는 방문객들을 안으로 들였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그들 중 하나가 주머니에서 접어둔 아자리의 몽타주와 레스의 수배서를 꺼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히콕은  종이들에 그려져 있는 얼굴을 바로 알아챘지만 아직 아는 척을 하는 건 시기상조라 판단하고 질문했다.

“뭐, 이 친구들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보셨습니까?”


히콕은 잠깐 생각하는 척을 했다.

“여기 있어. 동료로 다크 엘프 클로비스도 있더군.”

다크 엘프라는 말에 남자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분명 슈슈니 부족일거야.  그놈들 말해준대로인데.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꽤 위험한 놈들이라고 합니다. 여명이  때 같이 덮칩시다.”


히콕은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나 궁금했다.

“나까지 낀다고 치면 5 대 4인데 당장 공격하지 그래?”


“의뢰주가 누군지 들으시면 깜짝 놀랄 걸요.”

“뜸 그만 들이고 본론만 말해줘.”

“무려 용사가 우리들에게 직접 의뢰를 했습니다.”

다들 빈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히콕은 거절할 생각은커녕 살짝 겁까지 났다.


“대체 저놈들이 뭐기에?”

“놈들이 말해줬겠습니까? 알아둘 건 성공하면 우리 출세 길이 열린다는 거죠. 1%라도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면 해야만 합니다.”

히콕은 향로에 넣을 재료들이 담긴 항아리를 흘깃 보았다. 그가 미세하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핑커튼의 탐정들은 신경이 쓰였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형님.”


“아니.”

히콕은 시선을 벽에 세워둔 자신의 산탄총으로 옮기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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