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2권] 47회 - 죄의 대물림 (47/188)



〈 47화 〉[2권] 47회 - 죄의 대물림



스카프와 고글로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먼지바람이 휘날리는 척박한 땅 위로 말을 타고 달렸다. 말안장에 달린 갈고리에는 포격으로 박살난 괴물의 살점이 꿰여서 말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달리는 방향으로는 미처 바람에 지워지지 않은 마차의 바퀴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다. 흔적들은 바람 때문에 1초가 지날 때마다 희미해져갔지만 누군가는 한눈 팔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갔다.

그러던 중 레스 일행이 야영을 했던 곳에 누군가가 말에서 내리고 스카프와 고글을 얼굴에서 치웠다. 히콕은 맨손으로 땅을 이리저리 헤집다가 따듯한 재를 찾아내서 손에 움켜쥐고 코에 가까이 댔다.

“3시간 됐군.”

레스 일행은 야영한 흔적을 잘 감추기는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땅과 야생의 땅은 차이가 있었다. 히콕은  미세한 차이를 말 위에서도 놓치지 않고 바로 찾아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근처에 서있는 말라죽은 나무에 묶어두고 말먹이를 꺼내서 먹여준 다음 자신의 식사도 준비했다. 재가 있으니 불이 쉽게 붙었다.

바람은 쉬지 않는다. 바퀴자국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선도자가 속도를 줄이자 뒤를 따라가던 기수들도 말이 달리는 속도를 낮췄다. 하딘의 바로 뒤에서 달리고 있던 아비투스가 바짝 붙은 다음 물었다.


“문제 있습니까?”


“10시 방향에 사람이다. 거리는 400m.”

그쪽에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비투스가 사람들의 손이나 등에 달려있는 길쭉한 물건을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모두 총을 갖고 있군요.”


일행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천천히 달리면서 저쪽의 사람들을 주시했다. 당장 보이는 숫자만 해도 7명은 됐는데 자리 잡은 곳이 하필 언덕 위여서 마치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덮치려고 기다리던 모습으로 보였다. 저쪽도 이쪽을 계속 바라보았다.


“먼저 공격하시겠습니까?”

“그건 안 돼. 저쪽도 우리들의 총을 보고 겁먹었을 뿐인지도 몰라.”

하딘 대위는 타고 있는 말을 걸어가게 하고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지금 내가 저 친구들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보겠다. 만약의 사태에 각오해라.”

루나가 잔뜩 겁먹고 피카니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피카니는 얼굴을 돌려서 눈짓으로 어떻게든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카르델은 고삐를 한손으로 쥐고 등에 매고 있던 총을 오른손에 쥐고 밑으로 늘어트렸다. 하딘 대위가 저쪽을 향해 손을 흔들자 저쪽에서 번쩍거리는 섬광이 일었다. 남자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고 말의 배를 걷어찼다.

“뛰어! 전력으로!”

그들 주위로 총알 스쳐가는 째진 소리와 땅이 파이는 소리가 나더니 살짝 늦게 총소리가 도착했다. 다행히 일행들이 타고 있는 말들은 전장을 달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총소리를 듣고 미쳐 날뛰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나름에 따라서 목숨이 달렸음을 알았다.

“2시 방향에 엄폐물이 있다! 응사하지 말고 뛰어!”

언덕 위에 있던 도적들은 거리가 더 멀어지자 자신들 솜씨로 말에  사람을 맞추기는 무리라 판단하고 말위에 올라서 쫓아왔다. 루나는 비명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게 얼굴을 피카니의 등에 파묻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라라라라라라라!” “아바바바바바바!” “아라라라라라!”


도적들이 각자의 입으로 야만적인 함성을 외치며 계속 쫓아왔다. 하지만 두 집단은 말을 모는 기술과 말의 체격 차이가 많이 나서 거리가 상당히 벌어져있었다. 도적들이 말위에서 한손으로 소총이나 권총을 들고 마구잡이로  갈겨댔지만 표적에 총알이 스치지도 못했다. 하딘 대위는 그들의 솜씨를 알아보고 코웃음을  다음 소리쳤다.

“하던 대로 한다!”


그는 갑자기 말의 기수를 들어 올리고 여태 달리던 방향의 정반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피카니와 루나는 왜 저러나 싶어서 깜짝 놀랐지만 아비투스와 카르델은 아무  없다는 양 계속 달렸다. 하딘의 말이 들어 올린 발을 땅에 콱 내려놓았을 때 일행들이 그를 스쳐지나갔다. 그가 홀로 반대편으로 달리는 동안 일행들은 엄폐물로 삼을 바위들을 코앞에 두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왜 저러는 거지?!”


라고 피카니가 소리를 지르자 아비투스가 대답했다.


“일단 마법사님부터 숨기십시오! 대위님은 괜찮으시니까!”

하지만 도적들은 7명이고 이쪽은 혼자다. 도적들조차 자신들을 향해 고작 혼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하딘 대위를 보고 당황하고 있었다. 당연히 들고 있던 소총이나 권총으로 그를 향해 겨누었으나 하딘은 가볍게 방향을 틀어서 사선이 아군에게 겹치도록 만들었다. 서로 역할을 분담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쫓아오면 싸울  이런 문제가 생긴다. 가장 앞에 있던 놈들은 안 그래도 흔들려서 제대로 겨눌 수가 없는데 하딘의 말이 너무 빨라서 맞출 수가 없었다.

저들이 아차 하고 머뭇거린 순간에 둘 사이가 순식간에 좁아졌다. 하딘은 다리에 힘을 단단히 넣은 다음 고삐를 한 손에 휘감고 허리에서 리볼버를 꺼내 도적들을 향해 연사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총알 세례를 맞은 도적 두 놈이 고삐를 놓치고 말에서 떨어져 땅을 격렬히 굴렀다. 하딘과 도적들이 서로 엇갈리는 순간 아까처럼 함성을 외치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일행들은 안전한 곳에 도착하고 말에서 내렸다. 아비투스와 피카니가 루나를 바위 뒤로 데려갔고 카르델은 자신의 저격총을 들고 하딘을 도우러 총을 쏠 장소로 달려갔다. 하딘과 말은 마치  몸처럼 군더더기 없이 순식간에 다시 방향을 틀어서 도적들의 뒤를 잡았다.

카르델이 한발 쏘자 한 놈이 말에서 떨어졌고 말들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뒤를 잡힌 탓에 여유를 잃어버린 도적들은 저격까지 당해버리자 더 이상 약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워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가까운 곳에 있는 하딘부터 쓰러트리고자 다들 팔을 뻗어서 뒤에 있는 그를 노렸지만 안장에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와중에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말들까지 미쳐서 날뛰었다. 의미 없이 총알을 낭비해버린 도적들은 장전을 하려고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춰야만 했다.

하딘 대위는  권총을 총집에 집어넣고 대신 다른 총집에서 레버액션 라이플을 꺼낸 다음 개머리판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마치 중세시대의 창기병 같은 자세로 소총을 꼬나 쥐고 그는 한발 쏘았다.


“맞췄어요!”


구경하고 있던 루나가 감탄했다. 이미 승세가 기울어서 겁 많은 루나조차 그들이 위험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이제 도적들은 어떻게든 더 이상 뒤를 잡히지 않으려고 방향을 틀었다. 곧 하딘과 도적들이 달리는 모습은 자기 꼬리를 쫓는 개처럼 벌판을 빙글빙글 돌게 됐다. 하지만 그 와중에 카르델이 또 한발 쏘았다. 어느새 도적들은 2명만이 남았다.


한 놈이 다리의 힘만으로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늦춰서 양손으로 소총을 잡고 쏘았으나 표적에게는 그저 바람소리 밖에 안됐다. 여태껏 하딘은 질주를 시작한 이후로 속도를 거의 늦추지 않았다. 그는 겨드랑이에 끼웠던 소총을 빼내고 방아쇠울에 걸린 손가락에 무게를 모조리 실어서 힘차고 화려하게 한 바퀴 돌렸다. 스핀 로딩이라고 불리는 기술로 레버액션 구조를 가진 무기는 이렇게 한손만으로 차탄을 장전할  있다. 하딘은 견착하지 않고 악력과  근육만으로 소총을 들어 올리고 가장 느린 놈을 쏘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도적이 동료가 말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무기를 버리며 내장까지 쥐어짜는 절규를 질렀다.


“항복! 항보오오오옥!”


떨어진 놈  셋은 총알이 머리에 맞았거나 충격으로 목이 부러져서 죽었다. 하딘이 항복한 놈을 총으로 겨누는 동안 다시 말 위에 오른 일행들이 그쪽으로 합류했다. 하딘 대위가 도적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다른 동료들은 어디에 있나?”


“어어어어.. 없습니다... 그냥 저희들뿐입니다.”


“통행이 제한된 탓에 적은 숫자로 드나들던 사람들을 노렸군. 이 짓을 얼마나 해왔나?”

그가 자신의 중절식 리볼버를 꺾어버리자 탄창에서 탄피가 화려하게 튀어 올랐다. 도적이 어떻게 답해야 그나마 상황이 나아질까 궁리를 하고 있어서 입을 다물 기에 아비투스가 말했다.

“아지트가 어딘지 물어보시죠.”

“어디냐?”

살벌한 목소리로 리볼버에 총알을 하나씩 넣어가며 하딘이 말하자 도적은 바지에 실금했다.











저녁이 될 때까지 달렸던 마차는 간신히 산기슭에 닿았다. 마른 사막 다음에 잡초로 뒤덮인 평원이 있었고 그 너머로 수목선이 나타나니 하늘에서 바라 봤을  땅의 색채가 마치 이끼 낀 짱돌 같았다.

마차 짐칸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따온 드래곤푸르츠와 용설란이 잔뜩 실려 있었다. 샤카자이아는 드래곤푸르츠를 반으로 갈라서 과육을 먹어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아무 맛도 안 나.”


“과즙은 시원해서 좋은데 정말 아무 맛도 안 나네.”

레스는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과는 정반대로 자기 몫의 과일을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생긴 게 예뻐서 엄청 기대했는데 실망이야.”


아자리는 누운 채 샤카자이아가 자기 입에 넣어준 과육을 오물거리다가 삼키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왔나요?”

레스가 대답했다.

“한 70km. 이제부터 산길하고 산속의 계곡을 지나가야하는데 해가 져서 오늘은 근처에서 노숙을 할 거야. 근처에 냇가도 있다고 그러네.”

“드디어 쉬는구나. 나야 뭐 계속 쉬고 있었지만.”

마차가 멈췄을 때 샤카자이아는 지금까지 따온 과일들의 껍질을 모조리 벗겨서 말들에게 먹여주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고생해온 말들은 그럭저럭 목을 축이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들의 목숨을 지켜준 일등 공신들이니 이정도 대우는 받고도 남았다. 단테가 그들의 갈기를 빗으로 쓸어주면서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수고했다 ‘부치 캐시디’. ‘선댄스 키드’도 그렇고. 내일 도착하자마자  익은 사과를  바구니 대령해주마.”


옆에서 듣고 있던 샤카자이아가 물었다.


“말들의 이름이 되게 특이하네?”

“하하하. 의적으로 유명했던 무법자들의 이름이에요. 실제로도 의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와일드 웨이스트랜드 쇼’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라서.”

“허어.”


샤카자이아는 무슨 소린지 몰라서 적당히 들은 시늉만 하였다.

한편 짐칸에 있었던 아자리는 레스에게서 ‘비나예 아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전부 다 듣고 아자리는 깊이 생각하느라 눈빛 또한 평소와 달랐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남은 생존자는 자신을 장님으로 만들어줄 누군가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끝.”

“아이들 들려줄 이야기는 아니네요.”

“잔인해서?”


“그건 아니에요. 잔인한 내용은 다른 동화에도 흔해요. 얼핏 보기에는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애들이 이해하기에는 담겨있는 교훈이 너무 많아요.”


샤카자이아는 오랜만에 받은 지적인 자극이 너무나 반가워서 누운 채로 손짓까지 해가며 해설을 레스에게 들려주었다.


“먼저 쳐다보기만 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들. 이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면 본인의 의사하고는 관계없이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상징해요. 이건 댁도 이해했죠?”

“솔직히 나는 총잡이들을 은유했나 싶었어.”

“더군다나 ‘비나예 아하니’는 그 힘을 책임질 마음조차 없었죠. 그런 놈들이니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종족들에게도 생각 없이 힘을 휘둘렀겠죠. 책임의식과 죄책감. 극단적인 사상을 내세운 정치세력들은 항상 이  가지가 없어요.”


“절대적인 힘은 무조건 서로 모여서 타락한다는 뜻이야?”

“분명 그들의 나라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였겠죠. 재판도 없이 사소한 실수를  사람까지 즉결처형을 했잖아요. 더 깊이 파고 들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설화니까 넘어가죠.”


“너무 확대해석 하는 거 같지만 듣다보니까 솔깃해서 여러 생각이 드는 걸.”


“그런데 처음으로 복수를 시작한 사람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가요? 중간 과정은 그냥 서로의 증오를 피로 씻었다고만 해서 정확하게 분간이 안 가요.”


“상관없지 않아? 어느 쪽이든 내용은 그대로인데.”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가 처음 복수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해석할  있어요. 비극이 생기면 책임은 죄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죄책감을 아는 사람이 대신 짊어진다.”

현실에서도 빈번한 일이라 레스는 귀만이 아니라 심장으로도 아자리의 말을 들었다.

“만일 마지막 생존자가 처음으로 복수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복수와 비극의 연쇄를 끊을 자는 결국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의 손으로 끊어야한다. 하지만 그 책임은 그  사람만의 목숨 따위로 해결할 수 없다. 마지막 생존자는 다른 종족의 증오까지 짊어지느라 죽음을 허락받지 못했죠.”

“왜 다른 종족의 증오까지 짊어져야만 했지?”

“죄는 대물림되니까요.”


그제야 레스는  이리 아자리가 이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는지 이해했다.

“너한테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구나.”

“좋든 싫든 제 몸에는 역대 마왕의 피가 흐르고 있고. 아무리 우리 가족이 양심적으로 살아왔어도 제가 누려온 생활의 기반은 결국 침략한 땅에서 나오고 있죠.”

“그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니까 무시할게. 그렇게까지 파고 들면 세상 모든 사람을 피고석에 올려야한다고. 마지막으로 그 생존자가 자기 눈을 뽑아줄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아자리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한참을 뜸만 들이다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힘은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 아닐까요. 눈만 마주쳐도 죽을  있는데 지원자가 쉽게 나타날 리 없잖아요. 하지만 무력과 권력은 실제로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쉽게 사라지거든요. 이야기의 주제와 맞지 않아요.”

“어쩌면 힘 그 자체가 책임으로 변했다는 뜻일지도 모르지. 마지막 생존자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아서 동굴로 들어갔잖아. 여기서 그의 힘은 특권이 아니라 멍에로 변했지. 그런  나중에 가서 마음대로 포기할 수 있을 리가.”


그녀는 탄복했다.

“오, 그럴싸하네요. 주제하고도 앞뒤가 맞아요.”


“나도 깊게 생각할 줄 안다고.”

말하다 말고 그는 피식 웃었다. 아자리는 어째선지 쀼루퉁한 표정을 짓다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레스. 저 대신 수첩에 적어줘요. 이런 순간이야말로 진짜 모험의 낙이죠. 나중에 샤키 언니에게 다른 이야기도 물어봐야지.”

아자리의 배낭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낸 다음 레스가 물었다.


“공용어로 적어도 상관없지?”

“네.”


레스는 지금까지 토론한 내용들도 간략하게 적었다. 꽤 많이 축약했는데도 해설만으로 수첩의 한 페이지가 빼곡해서 그걸 보고 레스가 감탄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의미가 참 많기도 하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의 세대가 바뀔 때마다 내용에 상징과 교훈, 그리고 의미들이 계속 덧칠되고  덧칠돼서 그래요. 옛 전설과 이야기들은 그래서 연구할 맛이 나요.”

그때 샤카자이아가 짐칸으로 머리를 불쑥 내밀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떠들고 있는가?”

마침 장본인이 나타났으니 토론하느라 정신적으로 상기되어 있었던 레스와 아자리는 그녀에게  내용들을 고스란히 들려주었다. 아자리의 수첩에 적어둔 메모까지 번갈아 보면서 샤카자이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난 하도 오래전에 들어본 이야기라 이정도로 복잡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이래서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건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지 타고난 머리재간 자체는 뛰어나서 샤카자이아는 빠짐없이 이해했다. 볼을 살살 긁으며 그녀는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는 그냥  어딘가에 ‘비나예 아하니’가 숨어있는 동굴이 있으니 마음대로 멀리가지 말라며 겁주는 용도로  이야기를 해주셨거든.”

레스와 아자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어주다가 같은 순간에 웃음을 멈추고 같이 중얼거렸다.

“동굴?”

샤카자이아는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는 듯 타이르는 말투를 썼다.


“그냥 겁주려고 지어낸 소리겠지. 진짜로 그런 게 있었을 리가.”


“그렇겠지.”


하지만 레스는 그리 말하면서도 샤카자이아의 어머니가 신전 속으로 들어갔던 사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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