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2권] 48회 - 이보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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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죽은 잡초로 덮인 언덕들이 굽이치고 곳곳에 사람 머리높이만한 작은 절벽과 구덩이가 겹쳐서 한눈팔면 길 잃기 십상이었다. 헤매지 않고 복잡한 길들을 잘 찾아가면 잊힌 작은 촌락이 나온다. 촌락에는 기둥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 대신에 사암으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암벽을 파내서 만든 동굴들과 자연동굴이 수두룩하다. 주변의 암벽에는 신비로운 암각화도 빼곡한데 표면에 세월의 흔적이 무구하여 못해도 새겨진지 천년은 넘어 보인다.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던 원주민들의 작품이다. 지대가 낮아서 사방에 둘러싸인 언덕들과 복잡한 지형이 그곳을 감쪽같이 숨겨주었다. 그 한복판에서 더러운 꼬락서니의 무법자 두 명이 불 위에 올린 냄비를 사이에 두고 떠들었다.
“애들이 너무 늦지 않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뭐든 간에 돈 되는 걸로 가져와주면 좋겠어. 나도 슬슬 이 짓에서 발 빼고 싶다고.”
“발 빼면 어디로 가려고?”
“마누라랑 애들한테 더 거짓말하기 싫어. 전쟁이 끝나면 일자리가 다시 생기겠지.”
“내가 장담컨대 며칠 안 가서 다시 돌아오고 싶어질걸.”
그 말을 들은 쪽의 얼굴에서 경멸의 감정이 일렁였다. 무법자 생활에 찌들어버린 동료에게 책망하는 말투로 그가 말했다.
“너나 이러고 살아. 이제 전쟁이 끝나면 앞으로 갔던 군대들이 싹 돌아올 거야. 난 목숨 걸기 싫어.”
들은 쪽은 콧방귀를 한 번 끼고는 땅에 가래를 콰악 뱉었다.
“손해 보는 건 너야 얼간아. 우리 쪽이 전쟁에서 이겼으니 저 황무지는 다 인간들 거라고.”
“그게 어쨌는데. 내 땅도 아닌걸.”
“마족들이 살고 있던 개간지가 다 우리 것이 되면 무법자가 안 되는 놈이 바보라고! 앞으로 현금 수송마차하고 행상마차가 황무지에 수 천대는 넘게 돌아다닐 텐데 그중에 하나만 털어도 평생 쓸 밑천이 생겨!”
“그럴 능력이나 있기는 하냐? 핑커튼하고 현상금 사냥꾼은 그보다 몇 배는 될 거다.”
“쫄보 새끼 나중에 다시 찾아와서 의리가 어쨌느니 이러기만 해봐.”
“좆까.”
“그런데 용사가 진짜 혼자서 마왕을 잡았다는 거 믿기냐?”
“사진을 보니까 황무지에 세워두면 30분 만에 따먹히거나 뒈질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던데.”
“신은 없고 마왕하고 악마만 있는 세상에 선택받은 용사가 어떻게 나와. 병사들의 시체로 산을 쌓아놓고 공적만 그놈에게 몰아준 거겠지.”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져서 두 남자는 엽총을 손에 들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겨누었다. 저 앞의 바위 모퉁이에서 피에 젖은 넝마를 걸친 사내가 나타났다. 얼굴은 피땀에 뭉쳐진 흙먼지와 모래로 범벅이라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지만 옷차림과 체형을 보니 바깥에 나갔던 동료였다.
“쏘지마... 쏘지마... 제발...”
상대가 몸 한 곳을 부여잡고 비척거리면서 걸어오다가 힘이 다했는지 무릎이 털썩 꺾였다. 두 남자가 급하게 다가가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다른 놈들은?”
상처투성이 남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우리 중에 누군가가 작당을 짜고 배신했어.”
“니미럴 새끼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어떤 놈이 배신한 거야?”
상처투성이 남자는 뭔가 말하려다가 헛구역질을 하는 통에 내용을 잇지 못했다. 혹시나 싶어서 계속 총을 겨누고 있던 두 남자는 잠시 총을 치우고 수통을 건네서 마시게 해주었다. 상처투성이 남자는 목을 축이고 한결 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뒤에서 쏴가지고 누군지는 못 봤어. 나는 말에 떨어지자마자 죽은 척해서 살았지만 나머지는 다 죽었을 거야.”
두 남자는 이를 빠득 갈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분명 여기에 쟁여둔 것도 다 챙기러 돌아올 거야.”
“그냥 가져갈 수 있는 만큼 챙기고 달아나지 그래? 배신자가 몇이나 될지 모르잖아.”
“차라리 잘 됐어. 발 빼고 싶다며? 등 뒤에서 쏘는 겁쟁이들한테 질까봐 무서워?”
“내가 언제 그랬냐?”
“이제 다 우리 꺼야. 저 쫄보들은 숨었다가 죽여 버리고 우리는 영원히 사라지자고.”
상처투성이 남자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사라지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런데 우리는 몇 명이나 돼?”
“뭘 묻고 그래. 우리가 전부지.”
“겨우 셋? 그거밖에?”
“제정신이 아니군. 일단 맞은 곳 좀 보자고. 내가 의사는 아니라서 총알은 못 꺼내지만 일단 씻고 불로 지져서 소독이라도 해야...”
상처투성이 남자는 손바닥 안에 숨겨둔 버터플라이 접이식 나이프를 유려한 손놀림으로 펼쳐 쥐고 위로 획을 그었다. 가까이에 있던 남자는 팔의 힘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총을 놓쳤다.
“이 새끼가!”
옆에 있던 남자는 엽총을 다시 이쪽으로 겨눴으나 상대는 물 흐르는 동작으로 총을 붙잡고 총구를 옆으로 치워버렸다. 총구에서 튀어나온 총알은 아까 팔을 다친 무법자에게 맞을 뻔했다. 아까까지 상처 입은 척 했던 남자는 붙잡은 총에 지렛대의 원리로 힘을 가해 손 쉽게 빼앗아버리고 상대를 겨눴다. 넋이 나간 얼굴로 두 무법자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총에 총알을 박아서 망가트리고 개머리판을 휘둘러서 상대들을 기절시켰다.
피카니는 자기 머리 위로 수통을 뒤집어서 얼굴을 뒤덮은 흙먼지와 모래를 닦아냈다. 근처에 숨어있던 일행들은 금방 합류했다. 군인들은 원리원칙대로 각자 방향을 정해서 동굴들을 살피러 갔고 루나는 손수건에 물을 적셔서 피카니에게 건넸다.
“방금 위험하셨네요.”
“전혀요.”
피카니는 감사히 손수건을 받아들이고 얼굴에 묻은 모래를 모조리 닦아냈다. 군인들은 혹시 남아있는 잔당은 없는지 확실히 살피고 나서야 일행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하딘 대위가 권총을 총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연기 실력은 인정해주지. 덕분에 깔끔하게 끝났지만 번거롭게 이럴 필요가 있었나?”
방금 촌극은 아까 쓰러트린 도적들 중에 피카니하고 체격이 비슷한 금발머리가 있어서 그가 직접 제안한 거였다. 지금 피카니는 그 놈의 피투성이 옷을 입고 있다.
“예전 감각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용사가 아닌 척 할 때에만 실력을 부리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하필 제가 용사이니 천만다행 아닙니까.”
그들은 기절한 무법자들 머리에 포대자루를 씌우고 손을 끈으로 묶었다. 필요한 재료는 동굴에 이미 다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잡아먹어서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무법자들을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카르델이 말을 꺼냈다.
“목적지까지 앞으로 반나절은 걸리죠?”
하딘 대위는 불붙이지 않은 파이프 담배를 손 안에서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했다.
“낮이라면. 하지만 이제 밤이 됐으니 지금 달리면 그보다 훨씬 더 걸릴 거다.”
가는 길에 도적이 또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까는 무사히 넘어갔지만 밤중에 급히 가다가 습격당하면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위험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하루 묵고 갑니까?”
“아니, 그러기에는 시간을 너무 잡아먹히게 된다. 놈들이 먼저 ‘신 시티’로 가버리면 골치 아파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먼저 도착하지 않으면 따돌려질 거다.”
루나가 물었다.
“무슨 이름이 그래요? ‘죄악의 도시’라니.”
피카니가 설명했다.
“마피아랑 갱이 지천에 널렸거든요. 세력이 너무 강해서 어떤 흉악범이라도 놈들 휘하에 들어가면 핑커튼의 현상금 사냥꾼들도 포기할 정도입니다.”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에 방금 도적을 만난 참이니 도시는 어떤 꼴일지 짐작이 갔다. 루나는 왜 하딘 대위가 뒤처지는 걸 그토록 꺼려하는지 이해했다. 비록 레스 일행들이 진짜 악당은 아니더라도 거기서 그들을 찾으려면 숲에서 나무를 찾는 꼴이 된다.
하딘 대위가 루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마법사님. 염화를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도 마법사가 있기는 할 겁니다.”
그녀는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말했다.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해볼게요. 뭐라고 전할까요?”
“저희들을 마중할 사람을 보내달라고 해주십시오. 필요한 인원은...”
갑자기 온 사방에서 늑대의 하울링 소리가 울려 퍼져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들이 있는 곳은 지대가 낮아서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으나 저편 어딘가에는 늑대들이 한가득 우글거리는 게 분명했다. 한바탕 천지를 진동하는 늑대 울음소리가 가라앉고 나서야 하딘이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한 말은 잊어버리시고 내일 여명에 출발하겠노라 전해주십시오.”
“알겠어요.”
루나는 일행들로부터 떨어져서 공터에 뭐라 긁적이기 시작했다. 피카니가 입고 있던 피투성이 옷을 벗고 원래 자기 옷으로 갈아입으며 중얼거렸다.
“세상이 우리를 내버려두질 않는군.”
“사는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비투스는 그렇게 말하며 모자를 고쳐 잡았다.
◆
단테는 샤카자이아와 같이 말들을 데리고 냇가로 향했다. 가서 말들을 씻겨주고 일행들이 마실 식수를 그들이 길러오기로 했다. 날씨가 거칠다. 아자리는 레스의 망토까지 뒤집어써서 산맥에서 내려오는 싸늘하고 건조한 바람을 견뎌내야만 했고 레스는 어떻게든 불을 지피려고 연신 부싯돌을 때렸다. 안 그래도 어려운 불 지피기인데 바람 때문에 더욱 고생이다.
“하필 성냥이 다 박살났네...”
폭격에 휘말렸을 때 성냥들은 거의 가루가 되다시피 했다. 일단 있는 대로 성냥들의 머리만이라도 모아서 불쏘시개로 쓰고는 있었다. 아자리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지금은 마법을 전혀 못 쓰겠어요.”
“아픈 사람더러 바람 막아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미안해 죽겠는데 뭐가 죄송해.”
레스가 부싯돌을 얼마나 때려댔는지 불씨가 나기 전에 그의 몸에서 나는 열로 먼저 불이 붙지는 않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때 숲에서 한 번 억지로 마법 부린 것 때문에 종일 고생이네요. 으으...”
“그래도 마법이 터지는 모습을 보고 샤키가 바로 우리에게 와줬잖아.”
“잠깐 쉬지 그래요.”
그는 아자리의 맞은편에 주저앉고 고개를 떨궜다. 지금까지 흘린 땀이 식어서 많이 추워보였다. 저편에서 바람에 실어오는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와 모래 흐르는 소리까지 그들이 느끼는 한기를 더해주었다.
“레스.”
“왜.”
“우리 뭔가 즐거워지는 이야기 해봐요. 저 앞에 있는 도시로 가면 뭐부터 먹고 싶어요?”
“먹고 싶은 음식이라... 국수가 먹고 싶어.”
“국수요? 국수가 좋아요?”
처음으로 레스의 개인적인 취향을 직접 듣게 되어 아자리의 목소리에 생기가 깃들였다.
“나는 유목민으로 자랐어. 밀가루하고 물을 동시에 많이 쓰는 음식은 특별한 날에나 먹지.”
“그럼 ‘펠메니’도 좋아하시겠네요.”
“그건 뭐야.”
“제 고향 식으로 끓인 만둣국이요. 사워크림과 같이 먹죠. 만두피가 두툼해서 몇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해요.”
“비슷한 음식이라면 사쿠라비에도 있어. 엄밀히 말하면 우리 부족 음식은 아니고 로스마니 제국 사람들 요리지만. ‘흔갈’이라고 부르는데 요구르트에 고춧가루와 버터를 넣어서 볶은 소스를 곁들이지.”
“우리거랑 비슷하네요. 우연치고는 이상한데.”
“사쿠라비 사람들은 중립을 표방하니까 언제 서로 교류가 있었겠지.”
“흐응...”
그녀는 지평이 넓어지는 감각이 기분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다가 재채기를 터트렸다. 오한 때문에 아자리가 떠는 모습을 보고 레스는 서둘러서 다시 부싯돌을 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돌을 쳐도 불꽃이 불쏘시개에 붙지를 않으니 타들어가는 건 마음뿐이다. 그러다가 레스는 갑자기 생각이 하나 떠올라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고 약실에서 총알을 하나 꺼냈다.
“콜록... 갑자기 왜 그래요?”
레스는 얇은 장작의 갈라진 틈에 총알을 끼우고 빈틈을 나무껍질과 마른 풀로 채웠다. 그가 작은 칼로 총알의 뇌관을 겨누고 부싯돌의 넓은 면으로 칼 손잡이를 힘껏 내리쳤다. 안에 들어있던 화약이 터지자 드디어 불쏘시개에 불이 붙었다. 레스가 풀무처럼 연거푸 공기를 불자 불씨는 제대로 된 모닥불로 타올랐다. 어두운 산맥 아래로 펼쳐진 황야 한복판에 붉은 별이 하나 피었다.
겨우 몸을 녹일 수 있게 되어 아자리의 눈가에 작은 눈물이 절로 흘렀다. 하지만 총알을 쓰게 된 건 안타까웠다.
“덕분에 살기는 했지만 총알은 비상사태를 위해 아껴야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이 비상사태 아니냐?”
레스는 태연히 대꾸하고 계속 장작을 쌓아올렸다. 서로 불을 쬐느라 말이 없다가 아자리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저는 단 음식이 좋아요.”
“나도 좋아해.”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그런 몸으로?”
“혀가 원하는 건 별개니까요.”
참고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는 냉각 장치는 초석을 이용해서 1700년대부터 존재하였다. 현대적인 가정용 냉장고는 1900년대 초반에 개발되었다.
레스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은 딱 한 번 먹어봤어.”
“사쿠라비에 그런 것도 있어요?”
“있을 거는 다 있어. 로스마니 제국 수도에는 지하철까지 있다고.”
“언젠가 가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구경할 맛이 나겠는 걸요.”
“하지만 우리 같은 바다위윤들은 만나봤자 따분할 거다. 낙타하고 노는 게 제일 재밌을 걸.”
“그런데 당신은 고향에서 어떻게 살았어요?”
레스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는 하려는 말을 정리하는 거라고 여겼지만 침묵이 더 길어지자 아자리는 레스가 말하기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괜한 질문이었나요?”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여태껏 누군가한테 내 일생을 말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그게 이상해서 그래.”
모닥불 타는 소리가 말과 말사이의 침묵을 매웠다. 불길은 따스하고 서로의 얼굴에 일렁이는 빛과 그림자는 몸속에 흐르는 생명의 힘을 한 꺼풀 더 선명히 보이게 해주었다. 레스가 드디어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가족이란 존귀한 거야.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우리 같은 유목민들에게 가족은 그 자체가 세상이나 다름없어. 학교가 없으니 부모님의 지식이 곧 자식의 지식이 되고 가족의 재산과 가축들을 지키는 나날이 곧 인생이야. 그런 환경에서 고아로 지내기는 별로 좋지 못하지. 13살 되던 날에 스승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글도 읽을 줄 몰랐어.”
“...”
“왜 그렇게 침울한 얼굴로 말이 없어?”
“너무 민감한 이야기를 건드린 거 같아서요.”
“혼자 듣기 불편하면 다들 모였을 때 말해보지 뭐.”
“그래요.”
마침 볼일을 마치고 온 단테와 샤카자이아가 말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다가왔다. 샤카자이아는 잎이 잔뜩 붙은 침엽수 나뭇가지들을 손에 쥐고 질질 끌고 있었다. 큼직해서 몇 개 더 있으면 오두막 지붕으로 덮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자리와 레스는 샤카자이아가 그걸 땔감으로 가져왔나 했는데 말라죽지 않은 생나무라는 걸 보고 그녀가 움막을 지을 생각임을 알았다. 샤카자이아가 가져온 침엽수 나뭇가지들을 근처에 내려놓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레스. 나하고 같이 좀 가주겠나. 나 혼자서 다 옮기기에는 양이 많아. 단테는 말들 씻기느라 많이 지쳤어.”
“알았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에는 단테를 향해서 말했다.
“말 한 마리만 데려갈 수 있을까?”
“포격에 휘말리고도 몇 시간을 계속 달려온 터라 엄청 예민해졌어요. 지금은 우리들이 고생할 수밖에요.”
“역시 그렇지?”
물통에 채워온 식수도 말에게 싣지 않고 단테가 들고 왔었다. 만약을 위해서 레스는 단테에게 자신의 소총을 맡기고 샤카자이아를 따라갔다.
“잘 다녀와요.”
아자리가 힘없이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서 두 사람을 배웅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