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2권] 52회 - 문명 속으로
레스는 망가트린 곳을 메꾸고 짐칸으로 돌아왔다. 좁은 곳에서 진동을 견뎌내느라 그는 안색이 좋지 못했다.
“바텐더의 쉐이커에 들어있는 얼음이 된 기분이더라.”
“레스는 괜찮데요. 어서 가요 단테 씨.”
그들은 도로를 통해 도시 중심으로 향했다. 조금 가니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은 개척자들의 마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허름한 것이었으나 도로와 인도는 아스팔트와 얇은 돌로 깔끔하게 포장되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 여기까지는 샤카자이아에게만 신기한 광경이었으나 저 멀리 기이한 것이 보여서 레스와 아자리도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저거 대체 몇 층이죠?!”
마치 교회의 첨탑처럼 하늘을 찌르는 콘크리트 건물을 보고 아자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높이가 100m는 됐다. 레스는 그냥 말을 잃어버렸고 샤카자이아는 정신을 놓은 목소리를 냈다.
“대체 어떻게 저런 것이 땅 위에 있을 수가?”
단테는 자기도 모르게 으스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시 중앙 청사에요. 26층까지 있죠. 온갖 부서들이 저 건물 하나에 다 들어있습니다.”
철근 콘크리트 공법은 몇 십 년 전부터 있었으나 기존의 인간들 영토에서는 재개발 부지 확보 문제로 제한적으로 시행되던 것이 야생의 땅에서 마음껏 가능성을 펼치고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빈 도화지처럼 더럽혀진 적 없는 땅에 자본과 기술이 나타나면 저런 게 생기는 거지요.”
아자리가 그에게 열정적으로 물었다.
“저게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중에서 가장 큰 건물이겠죠? 제발 그렇다고 하세요.”
“제일 높은 건 180m 정도 됩니다. 남쪽의 ‘뉴 헨튼’이라는 곳에 있고요.”
“인류 연방의 귀족들이 사는 궁전 같은 건가요?”
“보험회사 건물인데요.”
그녀는 충격 먹어서 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왕성 꼭대기의 높이가 60m도 안 되는데...”
“높다고 좋은 건 아니잖아요.”
아자리는 속에서 복잡한 심정 변화가 있었는지 넋이 나간 얼굴로 구경을 그만두고 짐칸으로 돌아와서 다소곳이 앉았다.
어느새 마차들 주변의 풍경이 또 바뀌어 있었다. 모든 건물들이 5층 이상으로 쭉쭉 뻗어서 구획으로 나뉘어져서 콘크리트 군락을 이뤘고 사람들은 도로 가장 자리에 난 널찍한 인도를 통해 와글거렸다. 샤카자이아는 전기 가로등을 인간들만의 특이한 토템으로 받아들였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강철 괴물이 마차 옆을 지나갔을 때는 본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머릿속이 멍하기만 하였다.
“대체 저건 또 뭐냐?”
“트럭이네요. 상인 길드에서 시범적으로 쓰고 있다더니 저거인가 보네. 화물의 하중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타이어가 개발되면 마차를 대체할 겁니다.”
더 구경했다가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 그녀는 귀신에 홀린 얼굴로 아자리 바로 옆에 앉았다. 레스는 그나마 침착한 얼굴로 단테의 옆에서 계속 세상을 구경했다. 길거리로는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달렸다. 호객꾼과 신문팔이 소년, 행인들과 노점 상인들이 길거리에서 밀려나와 도로까지 자리를 차지하였다. 일행들이 타고 있는 마차가 비좁아진 도로 때문에 천천히 달리자 근처에 있던 호객꾼들이 지르는 소리를 키웠다.
단테는 묵묵히 마차를 몰아 거대한 건물 앞에 세웠다. 건물 현판에는 ‘대륙상인연맹 15지부’라고 적힌 거대한 금빛 글씨가 번쩍거렸다. 창가와 외벽에 물결 그림과 자잘한 조각들이 대리석으로 다듬어져서 장식됐고 창문 닦이들이 10층부터 1층을 향해 일했다. 좌우 폭도 100m는 되어서 구획 하나를 건물 하나가 통째로 차지했고 단테가 마차를 세워둔 곳 주변에 비슷하게 생긴 마차들이 줄줄이 서있었다. 레스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 뱉었다.
“멋진데.”
단테는 마부석에서 내려오며 대답했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안쪽은 별 거 없어요. 다들 짐 챙기고 내립시다.”
마차들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단테는 자신의 회원증을 보이고 대금을 지불했다. 일행들이 마차에서 내려오자 단테는 그들에게 따라오라 손짓하고 앞장섰다. 샤카자이아와 아자리는 괜히 도시가 무서워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졸졸 따라왔다.
“길드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 거야?”
단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에 레스가 물었다.
“마차 세워두러 온 겁니다. 지금은 묵을 곳부터 찾아야죠. 밥도 먹고.”
종종 기마경찰대가 순찰을 도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일행들은 그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서둘러서 걸었다. 레스와 아자리는 터번하고 고깔모자를 접어서 짐 속에 넣어두었고 소총하고 마법지팡이처럼 눈에 띄는 물건도 천에 둘둘 감아서 숨겼으나 샤카자이아의 활만은 숨길 방법이 없었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모습인데 샤카자이아의 화려한 외모 때문에 행인들이 자꾸 그들을 가리키며 웅성거리니 일행들은 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계속 걷다가 골목을 지나 모퉁이를 여러 번 꺾어서 그들은 도시의 구석진 곳에 있는 간판도 없는 건물에 닿았다. 문손잡이를 비틀어 열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볼품없는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안쪽은 제대로 꾸며지고 닦여서 의자부터 바텐더가 일하는 바까지 목재들은 고급스러운 광택이 났고 백열전구는 은은하고 따듯한 색으로 주위를 밝혔다. 천장에서는 환기용 실링팬이 돌아갔고 메마른 공기 속에서는 진열된 술병들로부터 흘러나온 달콤한 냄새가 감돌았다. 바텐더는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스툴에 다리를 꼬아서 앉아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단테가 그를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마담.”
인사를 받은 바텐더는 얼굴을 가렸던 신문을 슥 내렸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다. 쓰고 있는 고풍스러운 금테 안경이 윤기 없는 은발에 대비되어 서로 선명히 만들었고 주름진 얼굴 속의 흔들림 없는 검은색 눈빛에는 숙성된 연륜이 담겼다. 그 연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훤칠한 몸매와 꼿꼿한 자세에 주름 없는 바텐더 정장이 어우러져 중성적인 늠름함을 뽐냈다.
“못 보던 친구들이네.”
레스 일행은 고개를 숙여서 마담에게 인사했다. 그녀의 위압감에 눌려서 다들 기가 죽었다. 단테가 말했다.
“남은 방 있습니까?”
“선객이 있어.”
“이런.”
“하지만 오늘 체크인 할 거야. 저녁에는 제 발로 나가게 만들 테니 꼭 여기서 묵어야겠다면 짐은 나한테 맡겨도 상관없어.”
그렇게 말하고 여인은 가게 구석을 우아한 손동작으로 검지를 쿡 찔러서 가리켰다.
“그럼 잠시 부탁드릴게요.”
아자리는 그렇게 말하며 짐들을 놓았다. 여인은 일행들이 짐들을 정돈해서 모으는 모습을 보다가 툭 내뱉었다.
“거기 이방인. 나하고 악수 좀 해볼까?”
“저요?”
“나이든 여자라서 마음에 안 드나?”
레스는 능청스러운 여인에게 다가가서 오른손을 부드럽게 잡고 위 아래로 흔들며 자신을 소개했다.
“튜니티라고 불러주십시오.”
여인은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가명인거 뻔히 보이지만 그렇게 불러주지. 검지와 엄지에 화상이 겹겹이 쌓여서 지문이 문드러져서 매끈하군. 엄지두덩근하고 손목은 근육이 불어나서 튀어나왔고. 얼토당토 않는 연기 실력과 태평한 말투, 군인이라고는 볼 수도 없어. 어차피 마차를 타고 여행했을 텐데 눈은 피로로 찌든 것이 아마 전날 밤에 불침번을 홀로 도맡아서 잠을 줄인 탓이겠지. 다른 사람들은 상태가 쾌적한데 말이야.”
레스는 전부 다 듣고 얼이 빠져서 멍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네?”
“요즘 세상에 진짜배기 ‘하얀 모자’ 총잡이라니. 재밌는 친구를 만났구나 팡랑.”
여인은 그제야 레스의 손을 놔주고 이번에는 아자리와 샤카자이아를 바라보며 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레스 일행들에게는 마치 그녀가 다음 먹잇감을 고르는 모습으로 보였다.
“고위 마족하고 다크 엘프 사냥꾼이라. 흠... 이쪽은 읽어내기가 어렵네. 꼬마 아가씨만 행색이 깔끔한 것이 아무래도 가장 중요하신 인물인가?”
도시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 위축되었던 여자들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자 레스가 나서서 말했다.
“어르신께 이런 말씀드리기는 싫지만 접대의 관습은 지키셔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관습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 일에 간섭하고 뭐라 말하는 건 충분히 무례한 일이다. 여인은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활짝 웃는 얼굴로 돌변했다.
“미안 애들아! 너희들이 너무 귀여워서 주책을 부렸네! 밥 먹을 생각이라면 서쪽에 음식 노점들이 몰린 곳이 있단다.”
이건 또 이것대로 무서워서 아자리는 눈만 이리저리 굴리면서 눈치를 보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거렸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바로 샤카자이아와 같이 바깥으로 나갔다. 곧 레스하고 단테도 인사를 남기고 뒤를 따랐다. 일행들의 뒤를 향해 여인이 말했다.
“소개가 늦었네. 윈프리라고 불러주렴.”
◆
“아니 대체 뭔 짓을 당하면 철갑에 주먹 자국이 나는 거요?”
대장장이는 아비투스의 흉갑에 난 싸움의 흔적들을 구경하다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됐다. 아비투스는 할 말이 안 떠올라서 뒤통수만 머쓱하게 긁고 있기에 카르델이 대신 말했다.
“고치려면 얼마나 걸리슈?”
“내일 아침에나 돌아오구려. 참나 별 걸 다 보네.”
카르델과 아비투스는 상업 지구에서 나와 다시 대로변을 걸었다. 주위에는 야외 테라스에서 와인과 커피를 마시는 이가 있는가 하면 허름하게 설치된 노점에서 위스키랑 버번을 부어주는 상인들도 있었다. 얼음이 담긴 컵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금빛 액체를 바라보며 두 남자는 연신 입맛을 다셨다. 카르델이 입을 열었다.
“나랑 같은 생각 하냐?”
“최근 한 달간 맥주도 못 마셨어.”
“그때 귀를 틀어막아야 했는데. 괜히 못 들을 것 듣는 바람에 이게 뭐냐.”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밀 때문에 그들은 마음대로 술을 못 마시는 신세였다. 아비투스가 황소 입김 같은 한숨을 뱉고 읊조렸다.
“어서 숙소나 찾자. 적당한 여관이면 되겠지.”
가는 길목마다 온통 호객꾼이었다. 마침 그들이 가는 곳에는 정장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잡상인이 음료수랑 주전부리를 좌판에 깔아놓고 목청을 울려댔다.
“콜라 있어요! 배탈 났을 때 척척! 술 고플 때 벌컥! 감기 걸렸을 때는 따듯하게 끓여서 드시면 벌떡! 소화가 안 될 때 마시면 개운해지고 그냥 마셔도 시원합니다!”
밋밋하게 생긴 녹색 유리병에 검은색 액체들이 담겨서 좌판에 주르르 놓여있었는데 행인들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했다. 마침 뭐라도 씹을 거리가 필요했던 아비투스가 노점으로 다가가서 병을 2개 들고 상인에게 물었다.
“모두 얼마요?”
“하나당 2채피 입니다요.”
“제국 돈은 안 받소?”
“아하하하... 그게 좀...”
아비투스는 혀를 한 번 차고는 그냥 지폐를 한 장 꺼내서 내밀었다.
“1채피가 10셉트 정도 되니까... 그냥 1탈레르 드리겠소.”
“감사합니다 나으리!”
두 사람은 잡상인을 뒤로 하고 각자 병을 하나씩 들어서 뚜껑을 땄다. 한 모금 크게 들이키고 카르델이 말했다.
“그거 아냐? 몇 십 년 전에는 콜라에 코카인 성분이 들어있었대. 그래서 예전에 ‘코카 콜라’라고 불렀던 거야. 물론 지금은 코카인을 안 넣지만 도시 전설로는 아직도 조금씩 넣어서 사람들을 중독 시키고 있다고 해. 그게 바로 소문이 자자한 콜라의 비밀 비법이고.”
농담으로 하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어서 아비투스는 시큰둥해하는 목소리를 과장해서 말했다.
“그럼 무법자들이 콜라 회사 창고를 털지 뭐 하러 현금수송마차를 공격하겠냐.”
잠시 후에 콜라를 파는 잡상인들 앞으로 또 누군가가 나타났다. 뾰족한 사냥 모자를 쓴 여우 수인, 까무잡잡한 피부의 이국적인 사내, 뿔 달린 여자아이, 그리고 야만족 다크 엘프. 잡상인은 목이 아파서 마침 쉬고 있는 도중이었다.
“필요하신 거 있습니까?”
일행들이 신기해하는 눈으로 콜라병들을 보고 있어서 단테는 동전을 상인의 돈 상자에 집어넣고 물건들을 가져갔다.
“감사합니다 나으리들. 그냥 마셔도 시원하고 아플 때 마셔도 기운이 솟습니다!”
각자 병을 들고 걸어가면서 마셨다.
레스는 탄산수에 적응이 안 되어서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맛이 싫은 건 아니어서 마시는 걸 멈출 수도 없었다. 샤카자이아는 처음에 뭔지 몰라서 뚜껑을 따고 냄새만 맡다가 첫 모금에 단맛을 느끼고는 자기도 모르게 연거푸 들이켰다. 그러다가 그녀는 트림이 올라와서 얼굴을 붉혔다.
“천천히 마셔요 언니. 이거 사래 들리면 목 엄청 아파요.”
아자리는 신기해하는 기색 없이 평범하게 마시고 있다. 샤카자이아는 얼굴을 가리면서 뱃속에서 올라온 탄산가스를 다 끄집어내고 나서야 말했다.
“대체 뭘 넣은 거지?”
단테가 한 모금 삼키고 말했다.
“자본주의. 너무 마시면 밥 맛 없으니까 나머지는 아껴놔요.”
“사실 나는 그냥 녹색 유리병이 갖고 싶었을 뿐인데 또 희한한 경험을 하는군.”
레스는 트림 한 번 내지 않고 콜라병을 다 비웠다. 그를 보고 일행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조금 얼떨떨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왠지 모르게 취한 기분이 드네.”
아자리는 마시던 음료수의 코르크 뚜껑을 끼우고 물었다.
“그런데 아까 가게에 계시던 아주머니는 누군가요?”
단테가 대답했다.
“마담 윈프리는 자기 이야기를 도통 안 해요. 그분을 알아보는 카우보이하고 핑커튼이 수두룩한 걸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그건 우리도 보면 알아요.”
그들은 번화가로 나왔다. 마차에서는 들리지 않던 호객꾼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선명하게 들렸다.
“호외요 호외! 카이트 형제가 3번째 비행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는 라마르카 신문에 있습니다! 안 보시는 분들은 시대에 뒤처지는 겁니다!”
일행들이 신문팔이 소년을 지나가고 나니 이번에는 표지판을 든 수염 난 사내가 굵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나타났다.
“메디슨 스튜디오의 두 번째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금광 습격’이 스트립 3번가에서 관객을 기다립니다. 마법을 뛰어넘은 과학 기술의 정수를 단돈 11탈레르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아자리가 영화를 홍보하는 사람을 지나치면서 한 말 했다.
“나 저거 알아요. 첫 번째 영화는 ‘대열차강도’였어요. 왜 남자들은 ‘황야극’을 그렇게 좋아해요? 총잡이들의 시대 같은 건 이제 다 한 물 갔는데.”
이번에는 레스가 답했다.
“아마 중세시대 사람들이 기사도 문학을 좋아했던 거랑 비슷한 이유 아닐까.”
“권총 하나만 믿고 대륙 절반을 걸어온 사람이 하는 소리 치고는 묘하네요.”
“한 물 갔으니까 멋있는 거야.”
아자리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런 대답을 원했다고요.”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샤카자이아는 따라갈 수가 없어서 묵묵히 있다가 물어볼게 생겼다.
“그런데 윈프리 씨가 너더러 ‘하얀 모자’라 불렀지. 무슨 뜻이야?”
앞장 선 단테가 몸을 돌리고 뒷걸음질을 쳐가며 손짓까지 해서 설명해줬다.
“일종의 은어에요. 여기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에 등장하는 좋은 총잡이들은 항상 하얀 모자를 쓰거든요. 나쁜 총잡이들은 검은 모자를 쓰고.”
“왜 그렇게 구분해놨지?”
“이해하기 쉬우라고요. 그런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머리가 비었거든요.”
“허어.”
샤카자이아는 레스를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는 시선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레스가 투덜거리자 아자리까지 같이 쳐다보았다. 레스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하지 말라니까.”
“한 물 간 놈.”
아자리는 그렇게 말하고 빨리 걸어서 앞장선 단테 옆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