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2권] 55회 - 시작되는 전주 (55/188)



〈 55화 〉[2권] 55회 - 시작되는 전주

“뭐야. 그쪽도 총잡이였어?”


레스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냥 호신용이야.”

“잘 쏴?”

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로.”


하지만 레스의 말을 그대로 듣고 넘기기에는 그의 풍채가 워낙 특이했던지라 제페토의 궁금증을 키울 뿐이었다. 그는 레스의 권총을 계속 째려보더니 말했다.


“못 보던 모델 같은데. 어디서 만든 거지?”

“원래 내 물건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몰라.”


“내가 좀 봐도 될까?”


레스는 잠깐 고민을 하고나서 부탁대로 해주었다. 물론 안에 들어있는 총알은 뺐다. 제페토는 권총을 계속 살피는 동안 시간이 지날수록 현미경이 배율을 높이듯 눈초리가 계속 예리해졌다. 리볼버의 원통 약실을 돌려서 움직여 보기도 하고 심지어 냄새를 맡기까지 했다. 보다 못한 레스가 한마디 했다.


“적당히 해. 튼튼한 거 빼면 특별할 거 하나도 없어.”


“튼튼해?”

“한 번은 마차에 깔린 적이 있었는데도 끄덕 안 하더라고.”

샤카자이아가 그 말을 듣고 옆에 있는 아자리에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나?”

아자리도 의구심이 들었다.

“당연히 불가능하죠.”


총신에 박혀있던 황동 장식이 흐려지고 먼지와 손때가 묻어서 얼핏 보기에는 낡은 권총이지만 자세히 보면 금속 부분은 수면처럼 매끈거렸다. 제페토는 튼튼하다는 말을 듣고 뭔가 떠오르려고 하는데 해답이 나오질 않아서 답답해졌다. 그는 권총을 다시 돌려주기는커녕 주머니에서 천을 꺼내서 권총을 닦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공방 가운데에 있는 장비로 향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일단 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레스는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제페토가 고정 장치에 권총을 끼우더니 망치를 들어 올리자 그는 기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잠깐만 아무리 튼튼하다고 했어도 그렇지!”


멈추기에는 늦었다. 그가 망치로 권총을 힘껏 때리자 그 조그마한 금속에서는 나왔다고는 믿기지 못할 깊고 맑은 소리가 공방 전체에 퍼졌다. 대체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다들 몰라서 굳어버렸고 제페토는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고향에 있을   한  들어본 적이 있어. 오리칼쿰만이 이런 소리를 내지.”

레스는 덤덤했고 샤카자이아는 무슨 소린지 몰랐고, 아자리와 단테는 경악했다. 권총의 주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권총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권총은 방금 망치로 맞았는데도 흠집 하나 없었다. 샤카자이아의 눈으로도 신기하기는 했지만 오리칼쿰이 뭔지 몰랐다.


“그런데 그게 대체 뭐기에?”

제페토가 권총을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도 되는  두 손으로 들면서 말했다.

“어머니 땅의 심장이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금속이야. 특별한 방법이 아니면 절대로 변형시키거나 부술 수가 없지. 그렇게 신성한 재료를 이딴 조잡한 물건 만드는 데에나 쓰다니!”


왠지 자기 욕처럼 들려서 레스가 스스로를 변호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원래 주인은 따로 있다니깐!”

아자리가 그를 바라보며 소리 질렀다.


“왜 그 권총이 오리칼쿰이라고 진즉 말  했어요?!”

“안 물어봤잖아.”

“아이고 저 인간을 진짜...”


샤카자이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또 이해가 안 되는 게 생겼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금속으로 권총을 만드는 게 왜 나쁘다는 거냐?”


이번에는 단테가 말해줬다.

“오리칼쿰은 그냥 튼튼하기만 한 금속이 아니에요. 마법의 힘도 있어서 만드는 사람의 재량에 따라서 온갖 특별한 힘까지 담을 수 있어요. 하지만 보아하니 레스 씨의 권총은 그냥 튼튼한 거 말고는 재료의 장점이 전혀 없나보네요.”

아자리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뭔가 특수한 힘이 있었으면 제가 알아봤을 거예요.”

샤카자이아는 그래도 이해가 안 됐다.

“그럼 지금이라도 힘을 집어넣으면 되지 않아?”

제페토가 버럭 외쳤다.


“그게 안 된다고! 이미 글자로 가득한 종이 위에 글씨를 못 쓰듯이 원석 상태에서 한 번 변형이 가해지고 마무리되면 그걸로 끝이야! 대지모신이여 이 무슨 모독을!”

“알겠으니 그만 진정하지 그러나. 다른 사람 물건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 아니다.”

샤카자이아가 타이르자 제페토는 겨우 침착하게 감정을 다스리고 권총을 레스에게 돌려주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는 했지만 덕분에 한결 더 친해진 느낌도 들었다. 권총을 다시 총집에 꽂아 넣으면서 레스가 입을 열었다.

“아까 하던 말로 돌아와서 마차는 수리해줄 수 있겠어?”

제페토는 머쓱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응급처치 정도야 해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제대로 봐야 알겠어. 맡겨준다면 최선은 다해볼게.”


단테가 앞으로 나서서 허리를 숙이고 제페토와 악수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말들은 상인길드 쪽으로 맡겨주세요.”

적당한 때를 기다린 레스가 제페토에게 물었다.

“그런데 총포상 있는 곳 알아? 아니면 총알 조립할 수 있는 도구 빌리는 곳이라도.”

“총이나 총알을 구할 생각이라면 포기해. 갱들이 총포상 주인들을 전부 자기네 아지트로 데려가 버렸거든. 물건들은 물론이고.”

“어이구야.”

“그런데 대체 그 총을 어디서 구한 거야? 장소만이라도 알려줘.”

“싫어.”

실망하는 제페토를 향해 이번에는 아자리가 물었다.

“마법 물품 가게는 어디에 있나요?”

제페토는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시선을 위로 올리고 턱을 긁으면서 말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 흐으으음... 글쎄다. 여기 구역 반대편에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는 어떨지 모르겠다. 놈들이 손대는 곳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


“그렇군요.”

더 물어볼 게 없어서 마지막으로 단테가 그에게 선납금을 지불하자 일행들은 작별인사를 하고 공방을 나왔다. 마차를 맡겨버렸으니 일행들은 계속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상업 지구를 나가면서 아자리가 말을 걸었다.


“샤키 언니네 숲에서 총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면 진짜 큰일 났겠네요.”

“별로. 애착이 생겨서 잃어버리면 속은 쓰리겠지만 목숨 걸고 되찾을 정도는 아니야.”

그녀는 레스의 느긋한 태도에 왠지 모를 화가 치밀었다.


“아니 오리칼쿰이잖아요. 잃어버려도 그만이라고?!”


“권총 자체로는 구닥다리 싱글액션이라서 성능으로 비교하면 최신형 권총이 더 좋아. 튼튼한 거 빼면 특별할  하나도 없다고 내가 말했잖아.”


“됐어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방금 들렀던 상업 지구는 도시의 동쪽에 있었고 그들이 묵을 숙소는 서쪽에 있었다. 가는 길에는 번화한 도시의 중심부인 ‘스트립’ 지구를 가로질러야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하루의 일과를 마친 직장인과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우글거렸다. 건물 창문들은 불빛으로 빛나는 사각형이 됐고 전기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왔다. 샤카자이아가 그걸 보고는 감탄했다.


“와아아! 밤인데 한낮 같아!”


“이 불빛이 그리웠어요.”

뒤에 있던 아자리도 같은 기분을 누렸다. 야생에 있는 동안  가로등 하나가 없어서 잠자는 시간을 빼고 깨어있는 시간 절반을 자유롭게 쓸 수가 없었다. 그냥 발만 디뎠을 뿐인데도 가로등 아래에 있으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아까 봤던 순간이 생각나자 아자리는 들떴던 마음이 바로 가라앉았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인데 내면에는 부패가 우글거리고 있단 말이죠.”

레스가 아자리의 뒤에서 말했다.

“우리들이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

일행들은 열차마냥 앞장 선 단테를 따라서 일렬로 걷고 있다. 가는 도중에 뭔가 이상한 건물이 보였다. 간판은 다양한 색유리를 씌운 전구의 불빛으로 빛났고 그 밑에서 반짝거리는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곡예사들이 묘기를 부렸다. 대체 무슨 건물인가 싶어서 일행들은 그 앞에서 멈췄는데 보니 영화관이었다. 마침 상영이 끝났는지 연미복 차림의 신사와 숙녀들이 건물에서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단테가 그들을 보고 말했다.

“‘황야극’은 저렇게 고상하신 분들이 볼법한 내용이 아닌데.”

“그냥 새로 나왔다니까 보러 온 거겠지.”


샤카자이아가 핵심을 짚었다. 레스가 물감으로 그려진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말했다.


“솔직히 나도 한  보고 싶어. 사진이  움직인다던데.”

한편 샤카자이아는 다른  신경 쓰였다.

“그런데 영화관 안쪽에서 왜 이리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아자리도  말을 듣고 코에 신경을 집중해보았다.


“버터와 캐러멜이네요. 요즘 팝콘 양념으로 인기가 많죠.”


“팝콘이 뭔데?”

“모르세요? 아, 언니네 부족은 팝콘이라는 단어가 없었죠. 옥수수를 볶아서 부풀린 거요.”

그제야 알아듣고 그녀는 입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우리도 해먹었어.”


“초기의 개척자들이 하도 굶주리고 다녀서 근처에 있던 부족들이 알려줬다고 하죠. 적은 양의 옥수수만으로도 속이 든든해져서  도움이 됐다고 해요.”

“팝콘이라. 갑자기 오랜만에 먹고 싶어졌어.”

“오늘은 말고요.”


단테가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길에 영업하고 있는 목욕탕은 없는지 계속 둘러봤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숙소로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목욕할 기회가 없었다. 아자리는 아까 했던 불평을  하게 됐다.

“대체 이놈의 도시는 뭐가 문제야?! 갱들이 목욕을 금지시켰나?”


다른 사람들은 숙소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라 아자리의 불평을 거들어주기 귀찮아서 묵묵히 걸었다.


마담 윈프리는 자신의 가게 앞에서 길고 가는 손가락 사이에 불붙인 담배를 끼우고 우아하게 연기를 뱉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로 그녀의 얼굴에 연하게 드리운 침울한 표정이 나타났다. 그녀는 일행들을 보고 담뱃불을 자신의 구두바닥에 비벼서 끈 다음 밝은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관광은 재미있었나?”


아자리가 대답했다.

“겉부터 속까지 조금씩 보고 왔어요.”

윈프리는 작게 웃었다.


“멋진 곳이지? 이곳은 개척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지어진 도시야. 발전하는 속도만큼 썩어가는 속도도 빨랐고. 다른 곳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단테가 물었다.

“선객들은 방을 비웠나요?”


윈프리는 팔짱을 끼면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사실 좀 문제가 생겼어. 선객들이 자기들 친구까지 데려오고는 갑자기 더 머물겠다고 그러네. 그것도 외상으로. 다른 말로는 무상.”


그래서 아까 우울한 얼굴로 담배를 피웠던 모양이다. 그는 말하면서 인상을 썼다.


“이곳을 이용했다면 규칙을 알고 있을 텐데요?”


“알고는 있지. 그런데 지금쯤 여기로 도착했어야할 친구들이 전부 다쳐서 누워가지고 나하고 가게를 지켜줄 사람이 지금 없어. 나도 방금에야 전보를 듣고 알았지 뭐야. 안에 있는 놈들은 그 사실을 아는 눈치고.”


바로 무슨 일인지 파악한 일행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레스가 중얼거렸다.

“여기도 갱들이 극성이네.”


샤카자이아가 윈프리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안에 몇이나 있습니까.”


“네 명. 전부 권총을 갖고 있어.”

아자리가 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레스는 오른손을 한번 힘껏 움켜쥐었다가 손목을 한 바퀴 돌리면서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손을 권총 벨트에 올리고 망토로 가렸다.


“평화적으로 해결해볼게.”


아자리가 그 말을 듣고 묘하게 엉큼한 표정과 눈빛을 레스에게 보냈다.

“평화적으로?”


“적어도 선택권을 줘야하지 않겠어.”


샤카자이아가 끼어들면서 말했다.

“나도 갈게.”


단테가 윈프리의 옆에서 그들을 보며 속삭였다.

“혹시 모르니까 저희들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죠.”


“정말 괜찮을까? 그럼 저 친구들이 수적으로 불리한데?”

“한번 보세요.”


가게 안으로 레스와 아자리, 그리고 샤카자이아가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을 점령한 놈들은 갱스터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양아치들이었다.  사람은 얼굴이 위스키로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나머지 한 사람은 홀로 떨어져서 등받이에 누운 채 얼굴을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정말 자고 있는 건지는 알  없었다.

그들은 일행들이 구석에 쌓아둔 물건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샤카자이아의 활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어떤 놈이 샤카자이아의 활시위를 잡아당겼지만 힘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손이 움찔거리기만 했다. 결국 양아치는 포기하고 들고 있던 활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아야야야야... 난 이거 도저히 못 당기겠다.”

보고 있던 샤카자이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활은 제일 몸집이 큰 놈이 들고 다시 도전해보았지만 얼굴이 못생겨지도록 안간힘을 썼어도  차이가 없었다.

“손가락 끊어지는  알았네. 시위를 대체 뭐로 만든 거야? 장력이 장난 아니네.”

“내 머리카락을 꼬아서 기름을 먹인 거다.”

샤카자이아가 그렇게 말하며 자기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었던 건달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리고 활의 장력은 시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활 그 자체에서 나오는 거다.”


건달들은 그녀의 말에 겁먹거나 불쾌함을 느끼기보다 샤카자이아의 존재 자체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하 저것 봐! 귀쟁이다! 그것도 야만족이야?”


“그런데 야만족 중에 엘프도 있었나?”

홀로 떨어져서 얼굴을 모자로 덮고 가만히 있던 남자가 소란을 듣고 움찔거렸다. 남자가 모자를 살짝 위로 올려서 소리가 나는 곳을 힐끔 보자 그는 레스하고 눈이 마주쳤다. 지금 레스는 바에 허리를 기대고 구경꾼처럼 멀뚱히 서있었다. 아자리도 바텐더가 자리 잡는 곳으로 가서 팔꿈치를 올려놓고 보고 있었다.


“이거 네 거야? 받아봐 멍멍아!”

건달 중 하나가 활을 들고 그녀를 향해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샤카자이아는 한 손만 움직여서 활을 받았고 같은 순간에 구석에 있던 남자가 모자를 머리로 고쳐 쓰면서 일어났다. 샤카자이아는 자신의 활을 의자에 대충 걸어두고 팔짱을 꼈다.


“가게 주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잖나. 그만 나오는 거다.”


“허?”


“뭐라?”

“내 물건에 손댄 거는 이번만 봐주겠다.”

어색한 정적을 뒤로하고 다시 건달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안 봐주면 어쩔 건데?”


“너희들의 총을 모조리 빼앗아버리겠다.”


그동안 모자를  남자는 레스가 있는 방향으로 가서는 바에 팔을 올려놓고 바텐더 노릇을 하고 있는 아자리에게 말을 걸었다.


“맥주.”


“아직 영업 안 해요.”

아자리는 새침하게 대꾸했다.   건달들은 샤카자이아의 말에 진심으로 폭소했다.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모습이 귀여워서 웃고 있었다. 그들 눈에는 샤카자이아가 용감한  아니라 그냥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걸로만 보였다. 무섭게 보기에는 너무 예뻤고 그녀의 어수룩한 공용어 억양도 그 선입견에 크게 한몫했다.

“그럼 그렇게 해보지 그래!”


“아- 하하하하하!”

가장 몸집 좋은 놈이 자리에 앉은 채로 샤카자이아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보란 듯이 자신의 권총 벨트를 보여줬다.


“응? 뺏어보쇼.”

샤카자이아는 한손을 자신의 턱에 대고 생각하는 척을 했다.

“흐음.”

그리고 벼락처럼 움직여서 바로 앞에서 자신을 도발한 몸집 큰 사내의 정수리를 주먹 아래쪽으로 탁자 내려치듯이  쥐어박았다. 사내는 밝혀죽은 개구리 같은 비명을 내면서 푹 고꾸라졌다. 기분 탓인지 사내는 아까보다 머리 높이가 낮아진 거 같았다. 샤카자이아는 그대로 쓰러진 사내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고 탁자 위로 쓰레기처럼  던졌다.


자신들 중에서 가장 쌘 놈이 단숨에 쓰러지니까 나머지 두 놈은 바로 멍하니 굳어버렸다. 두 박자 늦게 엉거주춤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대려고 하자 샤카자이아가 괴성을 질렀다.


“캬악!”


두 놈은 그것만으로도 겁먹고 움찔거렸다. 사실 그대로 총을 뽑았더라도 양아치들에게 승산은 없었다. 아무리 손놀림이 빠르더라도 그들은 뽑은 다음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다 거쳐야지만 거리가 가까워서 샤카자이아는 초인적인 반사속도로 손 한번 휘두르면 끝이다.


바에서 레스하고 같은 자세로 소란을 지켜보고 있던 모자를  남자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남자가 외쳤다.


“그만 나가자. 너희들이 감당할 상대가 아니다.”

“그.. 그렇지만 형님...”

“더 이상 ‘클랜턴’의 품격을 깎아내지 마라.”

그리고 마치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를 치우는 것 같은 손짓을 했다. 양아치들은 더 이상 군말하지 않고 쓰러진 친구의 어깨를 한쪽씩 맡아서 들쳐 업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그들 중에는 모자를  사내만 남았다.

“이런 곳에 슈슈니 부족이라니.”

남자는 말하면서 곁눈질로 레스의 오른손을 가리고 있는 망토 한구석을 계속 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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