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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2권] 64회 - 목격자가 없다면 (64/188)



〈 64화 〉[2권] 64회 - 목격자가 없다면

몇 분에 걸쳐서 제페토는 자신의 사정을 모조리 설명했다. 원래는 딴 생각 품지 않고 받았던 선납금으로 마차를 고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원해있던 동료가 용태에 빠져서 치료비용이 더 들게 됐다고 한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이 더 좋은 시설로 동료를 옮겨야만 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갱단에게 자릿세를 뜯기는 바람에 원래 받았던 선납금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결국 방금 제페토가 내기에 걸었던 돈은 자기 것이었다는 소리다. 안 좋은 사건이 연달아 생기는 바람에 감정적으로 울컥하고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심정으로 판에 뛰어들었다고 제페토는 말했다. 목소리에 서러움이 어찌나 많았는지 듣고 있던 일행들까지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래도 레스는  말은 해야 했다.


“좋아. 지난 일  따져봐야 나아질 것도 없으니까 일단은 넘어갈게. 방금 땄던 돈들 떼어달라는 소리도 안 하겠어. 새로 계약을 할 테니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거야.”

“당연하지! 뭐든 말해!”


지금 제페토는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마차를 새로 만들어. 기한은 삼일.”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사... 삼일?”

“방금 딴 돈으로 사람들 모아서 그것 하나에만 종일 매달리면 충분하잖아.”


레스는 한가한 인상이던 평소 모습답지 않게 다른 사람처럼 표정이 험악하였다. 눈초리가 송골매 같았다. 원래 화 안 내던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법이라 옆에 있던 아자리하고 윈프리도 괜히 속이 죄였다. 제페토는 자기가 불평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

“그래.  정도는 해줘야 마땅하지.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방을 고치고 나면 남은 돈은 모조리 너희들을 위해 쓸게. 말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용서해줘서 고마워.”


윈프리가 대화에 끼었다.


“그런데 그쪽이 일하는 도중에 갱들이 또 훼방을 놓으면 어떻게 하려고?”


“뭐... 경호원을 어떻게든 구해보던가 해야겠지. 어디서 구해야할지 막막하지만.”

그 말을 듣고 레스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주머니에서 금빛 단추를 꺼냈다. 그걸 제페토에게 건네며 그가 말했다.


“가져가.”

도시의 지배자에게 직접 하사받은 증표를 보여준다면 갱들이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페토는 마치 총구에 겨눠진 거 마냥 화들짝 놀랬다.

“뭐? 하지만... 이것만 있으면 스트립에 있는 온갖 호화 시설을 자유롭게   있는데? 정말 나한테  거야?”


“나는 그런 곳에 관심 없고, 돈이라면 아까 충분히 땄어.”


그는 험상궂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감격해서 울먹거렸다.


“아, 아아... 도대체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보답하고 싶으면 당장 공방으로 뛰어가.”

그 말에 따르듯 제페토는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가며 저편으로 사라졌다. 겨우 소동이 하나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에 레스와 아자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었던 아자리가 겨우 운을 떼었다. 그녀의 표정이 심각했다.


“일단 여기서 나오죠. 갱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좋은 생각이야.”


레스가 맞장구쳤다. 윈프리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가볍게 뛰었다. 움직이는 와중에 윈프리가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자네는 정말이지 예상을 계속 뛰어넘는 사내로군 하얀 모자. 대체 그만한 재주와 성품을 갖고 어쩌다 현상범 신세가 됐어?”

레스는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뚱한 얼굴만 지켰다. 다시 시내 속으로 들어가고 굽이치는 지저분한 골목들을 지나가고 나서야 그들은 안심하고 걸음을 늦췄다. 뒤를 쫓아온 사람은 없었다. 레스는 걷다가 헐떡거리며 자기 무릎에 손을 대고 몸을 굽혔다.


“생각해보니 난 아직 아침밥도 안 먹었잖아... 빈속으로 대체  짓을 하고 온 거람.”

윈프리는 그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자네 덕분에 나도 지갑이 두둑해졌으니 어디 좋은 음식점이라도 갈까?”

그때 아자리가 레스의 옷깃을 붙잡고 윈프리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돌아 가주세요. 저희끼리 같이 나눌 이야기가 있어요.”

윈프리는 물론 레스까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아자리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윈프리는 순순히 물러나줬다.

“알았어. 자네들에게는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만 자기 몸 잘 지키게.”


 사람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서 마중을 보내주고 인적 없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자리는 집요할 정도로 주변에 누가 없는지 연신 확인했다. 개미 새끼 하나 보이니 않는 곳까지 레스는 끌려왔다. 겨우 걸음을 멈추자 그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아까 가면 썼던 녀석. 내가 아는 놈이에요.”

이 도시에 온 이후로 아자리는 가장 심각해하는 얼굴을 짓고 있었다.







 시간 전.

피카니 일행들은 루나의 방에 모여 있었다.


루나는 남자들에게 자기가 만든 마법 도구에 대해서 설명하기로 했다. 일행들을 위해서 철야를 하는 바람에 루나의  밑에 낀 기미가 숯으로 칠한 듯 진했다. 먼저 그녀는 스페이드 그림이 박힌 카드를 들어보였다.

“‘포르차 스포르티 페카.’ 금고 벽도 박살 낼 수 있는 폭탄이죠. 이건 위험하니까 하나씩만 가져가세요.”


하딘 대위, 아비투스 중사, 카르델 중사, 그리고 피카니까지 스페이드가 그려진 트럼프를 그녀로부터 한 장씩 받았다. 루나가 다시 설명을 이었다.


“사용방법은 간단해요. 카드를 망가트리면 안에 들어있는 마법이 바깥으로 나올 거예요. 총으로 구멍을 뚫어도 되고 입이나 손으로 찢어도 상관없어요. 그럼 10초 뒤에 터져요.”


“말 그대로 비장의 패로구먼.”

카르델이 손끝으로 카드를 쥐고 말했다. 마침 그가 받은 것도 에이스 스페이드였다. 루나는 하트 카드를 들었다.

“‘아모르 데페카 스레미’. 응급 치료 마법이에요. 카드를 살짝 찢으면 빛이 나올 텐데 그걸 다친 곳에 대면 금방 나을 거예요. 이건 중요하니까 3장씩 가져갈 수 있게 넉넉히 만들었어요.”


마치 딜러가 도박꾼들에게 패를 돌리듯 루나는 그들에게 카드를 나눠줬다. 마침 모여 있는 곳도 포커 테이블이어서 느낌이 묘했다. 남자들이 3장씩 다 가져가자 그녀가 첨언했다.

“특기할 사항으로는 몸에 난 상처만이 아니라 물건을 고칠 때에도 쓸 수 있을 거예요.”


아비투스가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물건도 고친다고요?”

“여러분들 총이 부서지거나 고장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도 대비해서 만든 거예요.”

남자들은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루나는 하딘을 바라보며 카드를 2장 줬다. 킹과 잭이었다. 하딘이 물었다.


“이건?”

“미완성품이지만 일단 드릴게요. 시험 삼아서 다른 사람에게  카드를 줘보세요.”


일단 하라는 대로 하딘은 피카니에게 잭 카드를 줬다.

“이제 서로 떨어져보세요. 네, 그 정도 떨어졌으면 충분해요. 이제 대위님이  카드에 대고 뭐라고 말해보세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요. 피카니 씨는 잭 카드를 귀에 대시고요.”

시키는 대로 하딘이 카드에 대고 뭐라 말하자 피카니가 허공으로 손을 들었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에게 지시를 듣고 있듯이 들고 있는 손가락의 개수를 수시로 바꿨다. 구경하고 있던 카르델과 아비투스는 카드의 정체를 바로 눈치 챘다. 카르델이 말했다.


“일종의 전화기군요?”

“원래는 서로 자유롭게 말을 주고받게  생각이었지만 ‘킹’에서 ‘잭’으로 말을 보내는  밖에 못해요. 그리고 사거리도 짧아요. 300m 이상 멀어지면 불통이 될 거에요.”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서 하딘은 피카니에게 잭 카드를 돌려받았다.

“그래도 대단한 물건이군요. 아직은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누가 나눠 가질지는 대위님이 생각하시는  좋다고 생각했어요.”


루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다이아몬드 카드를 들어보였다.

“‘팔랑크라 라피키 패르카.’ 방패의 마법이에요. 사용방법은 마찬가지로 카드를 망가트리고 계속 지니고 있으면 되요. 그럼 갖고 있는 사람 주위로 반경 3미터가량의 방어막이 생겨요. 지속 시간은 20초. 그 동안 기관총 정도는 끄떡없을 거예요.”


피카니가 손을 들고 물었다.

“약점은 없습니까?”


루나는 학습 태도가 좋은 학생을 찾아낸 교수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 있죠. 아무거나 다 막지는 못해요.”

아비투스가 살짝 손짓을 해가며 말했다.


“말인즉슨?”


“공격 마법 같은 순수 에너지하고 열기를 막는 건 한계가 있어요. 흉탄이나 폭탄 파편 같은 물리적인 공격은 상관없지만 화염병 같은 건 조심하세요.”

하딘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남자들은 다이아몬드 카드까지 주머니에 넣었다. 다들 루나가 할 말이 있어보여서 조용히 기다려줬다. 그녀가 피카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피카니 씨. 방금 말한 계획이 정말 좋다고 믿으세요?”


“물론이죠.”


“진심으로요?”


“아뇨.”

일행들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카르델이 벌컥 화를 냈다.

“자칫하면 다섯 명이서 200명에 가까운 놈들을 상대하게 생겼는데 그딴 소리가 나오시나?”

피카니는 물러나지 않고 당당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도박판이야.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하염없이 기회만 기다렸다가는 그 공작원은 죽어. 다른 사람이 부르는 콜만 하염없이 쫓아가면 호구가 된다는 거 알잖아. 때로는 불리하더라도 직접 레이즈를 해야 해.”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들 완전히 수긍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루나는 현기증이 나서 눈을 질끈 감고 이마에 손을 대었다. 다시 고개를 들고 그녀가 하딘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위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는 아랫입술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질끈 감고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지휘관 입장으로서 속으로 어떤 생각들이 오가고 있을지 그의 부하들은 상상할 엄두도 안 났다. 신음하듯 호흡을  번 힘겹게 들이마시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중에서 정체가 들키면 가장 큰일 나는 인물이 누군지 알지?”


“네.”

“그리고 우리 중에서 목숨을 잃으면 가장 큰일 나는 인물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지?”

“압니다.”


“그런 처지인데 직접 갱단과 접촉해보겠다고?”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습니까. 저 말고 달리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없고요.”


하딘은  말에 현혹되지 않겠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 듯 다른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냐... 이건 아니야 뭔가 잘못됐어.”

“히콕도 잠입할 때 복잡한 절차 없이 단번에 가입했다고 말했잖습니까.”

“히콕은 변이까지 한 희귀한 카우보이야. 나라도 당장 갱단에 넣어주겠지. 하지만 자네는 무슨 방법으로 실력을 인정받으려고?”

“저만의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 마시지요.”


피카니는 허리를 우뚝 세우고 어깨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현재. 피카니는 ‘페일 라이더’라는 술집의 바에 기대어 있었다. 안에 다른 손님은 없었고 바텐더도 자리를 비웠다. 피카니는 그저 눈만 감고 아무 일 없이 기다리기만 하였다.

그의 뒤에 있는 술집의 입구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피카니는 물만 들어있는 유리잔에 풍경을 비춰서 뒤를 보았다. 아까 그가 쏴 죽인 놈들처럼 옷에 화려한 술이 달린 남정네들이 10명이나 우글거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정장을 입은 어떤 사내가 우뚝 서있다. 갱들을 거느리고 온 두목임이 한 눈에 구분이 갔다. 다 합쳐서 열 한명. 아무리 봐도 자신을 정중히 모시러 찾아올 숫자가 아니었다.

두목이 입을 열었다.

“네놈의 눈을 봐야겠다.”

담배를 많이 펴서 성대에 문제가 있는지 발음이 혼탁했다.


피카니는 분부대로 몸을 빙글 돌려 팔꿈치와 등을 바에 기대었다. 갱들은 피카니가 자신들의 살기에 짓눌려서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계속 째려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유유히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였을 뿐이다. 한 모금 피우고 그가 말했다.


“오전부터 다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몇 몇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처럼 보이려고 공을 들여도 역시 알아볼 사람은 알아보는 모양이다. 피카니는 다음에는 더 신중해야겠다고 속으로 반성했다. 상대가 아직도 말이 없어서 피카니는 계속 말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저는 싼 값에 일하지 않습니다.”

“얼마를 원하는지 어디 들어나 볼까?”


롱 라이더스 갱단의 두목은 이대로 그를 쉽게 죽이면 분이 안 풀렸기에  더 뜸을 들이자는 생각으로 말을 받아줬다. 이편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위엄을 살리는 방법이었다. 남자들을 지배하는 권력은 수준이 낮은 집단일수록 허세의 비중이 커지기 마련이다. 피카니가 손가락을 4개 펼쳐보였다.


“뭐야 그게? 얼마라는 거야?”

두목이 그렇게 묻자 피카니가 물고 있던 담배를 입만 움직여서 다른 방향으로 바꿔 물었다.


“4인분.”


“이유는?”

“방금 자리가  개 비었잖소. 그러니 네 사람 몫을 받아야죠.”


괜한 비웃음으로 시간을 낭비하려는 갱은 아무도 없었다. 과연 갱들 중에도 어설픈 놈만 있는  아니로군. 피카니는  개나 되는 총구에 겨눠지고도 느긋하게 그리 생각했다.

“널 찢어죽이기 전에 하나 물어보겠다. 새벽에 클랜턴 갱단의 금은방을 공격한 게 네놈이냐?”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피카니가 정직하게 대답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질문은 친해지면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답한다면 일단  여기 가둬놓고 천천히 친해질 의향은 있지. 아주. 천천히. 친해지자고.”

으름장을 듣고도 그는 끄떡  했다. 피카니는 능글맞게 웃으며 피식하는 소리를 냈다.


“나를 가둬? 너희들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겁먹지 않는 그를 보고 이제는 두목이 도리어 초조해졌다. 피카니가 겁에 질려서 목숨을 구걸해야 자신과 부하들의 분이 풀리고 체면이 살기 때문이다.

“네놈의 실력은 높이 쳐주마. 하지만 너는 이미 우리들한테 갇혔어!”


“당신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피카니의 손으로 갑자기 마술처럼 트럼프 카드가   나타났다. 그는 다이아몬드 그림이 그려진 트럼프 카드를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 대어서 불을 붙였다. 피카니의 이해 못할 짓에 갱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서로 웅성거렸다.

갑자기 그들 뒤에 있는 술집의 입구가 쾅하고 닫혔다. 가장 문에 가까이 있던 갱이 반응했다.


“뭐야?”


술집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걸어서 잠근  같았다. 다들 혼란에 빠진 와중에 피카니는 묵묵히 자신의 말을 이었다. 담배를 문채 말했기 때문에 발음이 조금 뭉개졌다.


“내가 너희들에게 갇힌 게 아니야.”


그리고 바깥에서 누군가가 던진 어떤 물건들이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와 바닥을 굴렀다. 그걸 보고 피카니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이성을 잃었다.

“수류탄이다!”

“피해! 저거 진짜야!”

군용 수류탄이 3개나 그곳에 굴러다녔다. 갱단원 중에 군인 출신도 있었는지 단번에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그들을 비웃듯 피카니가 담배를 뱉고 자신의 말을 마무리했다.

“너희들이 나한테 갇힌 거야!”

피카니는 아까 뱉은 담배 대신 카드를 입에 끼우고 움직였다. 갱들은 피카니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잊어버리고 수류탄들로부터 달아나느라 정신이 없었다. 술집의 문은 열리지 않았으니 유리창이나 가게 안쪽으로 달렸지만 이미 늦었다. 시야를 뒤흔드는 충격과 고막을 터트리는 폭음과 함께 술집 내부는 거인이 짓밟은 듯 아작이 나버렸다.


피카니는 다이아몬드 카드를 입에 문 채 두목에게 달려들어서 바닥으로 쓰러트리고 체중을 실어서 제압했다.  사람은 루나의 마법 카드가 만들어낸 방어막 덕분에 상처 하나 없었으나 나머지 갱단원들은 묘사하기 곤란한 꼴이 됐다. 두목은 영문을 몰라서 영혼이 반쯤 나갔다.

수류탄의 폭발로 술집의 문짝도 당연히 날아간 상태다. 폭약 냄새와 망가진 사람 냄새로 가득한 술집에 아비투스와 카르델이 연기를 헤치며 들어왔다.  사람은 군인답게 그 와중에도 방심하지 않고 리볼버를 들고 낭비 없는 동작으로 사방을 살폈다. 도중에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놈이 있으면 방아쇠를 당겨서 자비를 베풀어줬다. 카르델이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막으려고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며 말했다.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이게  잘나신 용사님만의 구직 비결이냐? 플랜B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과정이야 어찌됐든 두목은 손에 넣었으니 상관없잖아.”


피카니는 비틀거리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도 정신이 온전치는 못했다. 루나의 방어막이 충격을 막아주기는 했지만 소리까지 차단해주지는 못했다. 고막이 터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비투스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정신을 차리려는 두목의 머리통에 쇠망치 같은 주먹을 쥐어박았다. 신세를 한탄하는 말투로 아비투스가 말했다.

“우리 기밀 작전하는 거 맞지?”

카르델이 읊조렸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라고들 하더라.”

아비투스는 또 한숨을 쉬고 기절한 갱단의 두목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다 같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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