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2권] 65회 - 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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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길드로 갔던 단테와 샤카자이아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주변은 병원의 대합실처럼 생겼다.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는 똑딱였고 잡역부는 타일 바닥을 걸레질 했다. 두 사람 앞에 있는 창구 너머로는 직원들이 맡은 일에 몰두했다.
단테가 손짓을 해가며 샤카자이아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자, 배운 대로만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보세요.”
“나 공용어 잘 못해요.”
“조금 더 발음을 굴려서! 러! 러! 러!”
샤카자이아가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며 하라는 대로 했다.
“나 교용여 잘 모태려.”
“살짝 아쉽지만 잘했어요. 앞으로 누가 그쪽에게 다가오면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녀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 투덜거렸다.
“때려치워. 내가 알아서 하겠다.”
“음, 확실히 연기에는 소질이 없군요.”
어차피 심심해서 시켜본 거라 단테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샤카자이아가 하품을 하면서 눈물을 쥐어짜냈다.
“따분해. 그놈의 화물정산이라는 거 대체 언제쯤 끝나는 건가?”
“덫사냥을 하는 셈치고 참으세요.”
조금 있다가 샤카자이아가 옛날이야기를 하는 투로 운을 뗐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끈으로 덫 만드는 법을 배워본 적이 있었지.”
“그랬나요?”
“뭐든 한 마리는 잡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해서 여기저기 설치해봤었다. 하지만 따분해져서 그냥 토끼를 맨손으로 직접 잡고 덫에 넣어버렸지.”
“...”
단테는 뭐라 할 말이 안 떠올랐다. 샤카자이아는 묵묵히 자기 말을 마무리 지었다.
“특별한 의도는 없다.”
“그렇군요.”
같은 시각. 상인길드의 입구를 헨리 플러머 연방보안관이 지나갔다. 단테와 샤카자이아는 2층에 있었다.
연방보안관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기에 사람들이 모두 웅성거리며 그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그가 로비 한복판에서 회중시계를 꺼내고 계속 기다리고 있자 곧 누군가가 마중을 나왔다. 상인길드의 유니폼을 입은 초로의 사내였다.
상대방은 깍듯한 자세로 연방보안관을 맞이하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준비는 마쳤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헨리 플러머는 자신을 따라온 부관들에게 따라오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 초로의 사내를 따라갔다. 조금 걷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옆으로 급하게 달리다가 그하고 부딪쳤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급해가지고 그만...”
근처에 있던 부관들이 방금 상관과 부딪친 사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자기 상관이 일을 당했는데 자기들이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후환이 되니까.
“야! 제대로 사과해! 이분이 누구인지 알아?”
“네? 앗! 보안관님이셨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방금 부딪친 사내는 쓰고 있던 중절모까지 벗으며 고개를 굽실거렸다. 헨리 플러머는 방금 서로 몸이 닿았던 옷깃을 점잖게 툭툭 치고 있었다. 그러다 상대의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카우보이?”
히콕은 자신의 모자를 몸에 대고 정중히 말했다.
“그랬던 적도 있지요. 못 알아봐서 송구스럽습니다.”
헨리 플러머는 도리어 자기가 상대에게 다가가서 옷깃을 바로잡아줬다.
“저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를 몰라봤습니다. 당신들이 야만족들을 쓸어줘서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둘은 서로 모자를 잡아서 작별 인사를 하고 갈 길을 갔다. 플러머는 다시 초로의 사내를 따라서, 히콕은 화장실로. 하지만 히콕은 화장실에 들어간 시늉만하고 바로 나와서 로비로 향했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사내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히콕은 그 사람 옆에 같이 앉았다.
“하라는 대로 했어.”
옆에 앉아있는 하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잭 카드를 자신의 귀에 대었다. 지금 연방보안관의 주머니 속에는 킹 카드가 들어있었다. 루나는 킹과 잭 카드를 무전기로 쓰라고 만들어줬지만 하딘은 이편이 더 쓸모 있다고 생각했다.
히콕이 그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
“제대로 작동하기는 하나?”
“일단은. 그런데 감도가 너무 좋아서 온갖 잡소리가 다 들리는군.”
카드가 주머니 속에서 스치는 소리. 구두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 주변 사람들 잡담소리.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서 말을 거는 소리까지 뒤섞여서 당장은 의도대로 굴러가질 않았다.
“연방보안관은 어차피 댁들하고 같은 편이잖아? 내가 봐도 뒤가 구린 놈이기는 하지만 댁들이 맡은 임무하고는 관계가 없을 텐데?”
하딘은 귀에서 카드를 때지 않은 채 대꾸했다.
“두고 봐야 알 일이지.”
“만일 저 연방보안관이 그 다크엘프와 여우를 붙잡으러 왔을 뿐이라면?”
“그때는 우리가 나타나서 넘겨받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내 보기에 그리 단순치가 않아.”
히콕도 비슷한 직감을 느껴서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애초에 할 일 많은 연방보안관이 직접 움직이는 것부터가 수상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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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리는 레스와 함께 골목의 그림자 속에 숨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왕에게는 특수요원들이 있었어요. 친위대하고는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사적인 일에 보내는 놈들?”
레스가 손짓을 해가며 물었다. 아자리가 그를 바라보며 한번 끄덕였다.
“전부 몇이나 되는지는 몰라요. 직접 본 건 둘이에요.”
“그 가면 쓴 놈은 어떤 녀석이야?”
“이름은 ‘파스낙 리차트라’. ‘쿠드라크’라는 굉장히 희귀한 종족이죠.”
“특징은?”
“‘쿠드라크’들은 다들 타고난 마법사에요. 저 같은 고위마족의 일종이죠. 아까 파스낙이 결투장에서 주문 없이도 마법을 부려서 사람들을 홀린 거 봤죠?”
“봤지. 너는 괜찮았나보다?”
“저항력이 있거든요. 일단 저도 선천적으로 마법에 특화된 종족이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자. 너 종족이 뭐야? 맨날 고위마족이라고만 뭉뚱그려서 부르기만 했지 정확히 들어본 적이 없네.”
아자리는 뜸을 들이다가 결국 대답을 피했다. 살짝 인상을 쓰며 그녀가 팔짱을 꼈다.
“혼혈인데... 지금 중요한 거 아니잖아. 여하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기는 했어도 확실해요. 그 몸짓하며 목소리랑 말투까지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마왕의 요원이 이 도시를 지배하고 계신다?”
아자리가 왜 자기 종족을 안 말해주는 건지는 신경 쓰였지만 거기로 한눈 팔기에는 담론 주제가 많이 심각했다. 방금 들은 소리를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해보고 그가 말했다.
“궁금증이 이것저것 떠오르는데 하나씩 말해 봐도 될까?”
“해요.”
“나하고 피카니가 마왕과 싸웠을 때 왜 그런 대단한 놈들이 없었을까?”
그녀는 궁리해보고 답을 내놓았다.
“일단 특수요원들은 마왕에게 충성심이 애매한 놈들이에요.”
“애매하다고?”
“하나 같이 통제가 안 되는 부류라고 들었어요. 더불어서 아레이스타의 카리스마가 애매한 탓도 있고요.”
“아레이스타는 또 누구야?”
아자리가 그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기에 레스는 상대의 의중을 이해 못했다.
“왜? 아, 잠깐만. 눈치 챘어. 마왕의 이름이구나.”
“아레이스타 비온 블라디아. 용사가 되겠다던 놈이 마왕의 이름도 몰라? 그것도 자기가 잡은 놈을?”
“어이, 진짜로 나는 누구였는지 몰랐거든?”
“하.”
같잖은 소리하지 말라는 듯 그녀는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냥 마왕이라고만 부른다고.”
그녀는 논점 흐리지 말라는 뜻으로 불청객을 내쫓는 것 같은 손짓을 허공에 훠이훠이 흔들었다. 레스의 표정이 뚱해지자 아자리는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마 마왕이 요원들을 전부 다른 곳으로 보내놨던 거겠죠. 자기 근처에는 친위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거고요. 고급 인력을 자기 근처에 놀리고만 있으면 손해이기도 하니까.”
고개를 양옆으로 까딱거리다가 아자리는 말을 이었다.
“요원들이 소집명령을 무시했을 수도 있고요. 충성심이 애매하다고 한 건 이 뜻이에요.”
레스는 납득이 안 된다는 눈짓을 지었다.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도 괜찮단 말이야?”
“편의상 요원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국가 기관에 정식으로 소속된 자들이 아니에요. 마왕이 사적으로 고용하는 전문가라고 부르는 게 맞겠네요. 철저히 비공식적인 의뢰만 처리하죠. 제가 마왕의 조카라서 이만큼이나마 아는 거지 대부분 귀족들은 존재도 몰라요.”
들은 것들을 정리하고 레스가 말했다.
“명령을 무시해도 괜찮을 정도로 실력을 갖췄고. 게다가 품고 있는 기밀까지 있어서 마왕이 통제를 못했다는 거로군? 내가 이해한 게 맞아?”
“네.”
“내가 정치는 잘 몰라도 마왕이 사람을 기막히게 못 다루는 건 알겠다.”
“사람만 못 다뤘을까요... 여하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골치에요.”
아자리의 심정은 레스도 충분히 이해가 됐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을 이번에야말로 해야만 했다.
“일단 나 아침밥부터 먹자.”
◆
“뭐라고들 떠드는 거야?”
“시시콜콜한 이야기. 갱단들로부터 온 뇌물들 액수가 어쨌느니 하는군.”
하딘이 히콕의 질문에 대답했다. 놀란 기색 없이 평범한 말투였다. 상인 길드 안에 있는 은행이 연방보안관과 갱들의 연결다리 역할도 도맡아줬던 모양이다.
히콕도 카드에 귀를 대고 같이 도청을 하고 싶었지만 남자끼리 얼굴 맞대기는 싫었고 그랬다간 눈에도 띄었다. 하딘이 말을 덧붙였다.
“자꾸 파스낙 리차트라라는 이름을 언급하는데 대체 누구인지 모르겠군. 아는 거 없나?”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감을 들어보니 마족들 땅에서 짓는 작명 같은데.”
하딘은 다시 카드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팔짱을 낀 채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카드 너머로 나이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물들을 정산하러 온 회원 중 하나가 특이한 경호원을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연방보안관의 목소리가 났다.
[그래서 제게 찾아와달라고 하셨습니까?]
[무려 슈슈니 부족입니다. 여자 다크엘프요.]
[오.]
카드에서는 잠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연방보안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드디어 내 수집목록을 완성시킬 수 있겠군... 잘했습니다 회장. 바로 가죠.]
평범한 사람의 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질적인 기색에 하딘은 얼굴이 구겨졌다.
“수집?”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소란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곧 정상적인 목소리가 귀로 들어왔다.
[롱 라이더스 절반 가까이가 죽어버렸고 놈들이 맡고 있던 물건도 일부 사라졌습니다. 두목은 시체로 발견됐고요.]
목소리의 주인은 순찰하다가 방금 돌아온 기마경찰대로 보였다. 연방보안관이 심각한 말투로 물었다.
[목격자들로부터 증언은?]
[다들 세 명의 남자가 그랬다고 말합니다. 얼굴은 복면으로 가려서 아무도 모르고요. 지금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의자가 거칠게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나더니 연방보안관이 작게 소리 질렀다.
[고작 세 명이서 갱단 하나를 거의 박살내고 두목까지 죽였다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장에 가봐야지 어쩌겠어. 이 빌어먹을 배지가 옷에 달려있는데.]
연방보안관 일행이 방에서 나왔는지 곧 잡음으로 가득차서 알아들을 수가 없게 됐다. 하딘은 굳은 얼굴로 귓가에서 카드를 떼고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히콕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용사와 내 부하들이 한 건 했어. 자세히 말은 못하지만 필요한 물건을 손에 넣었군. 그 과정에서 갱단 하나가 아작 났고.”
“뭐?”
하딘도 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현실감이 없었다. 그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연방보안관은 우리가 쫓는 일행들의 체포에 관심이 없는 거 같아. 그보다는 다크엘프를... 사적으로 데려가는 일에 마음이 쏠리는 거 같더군. 방금 수집이라는 말을 들었어.”
“우웩.”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무슨 짓을 해왔고, 또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짐작이 가서 히콕은 구역질하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