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3권] 88회 - 소강 (88/188)



〈 88화 〉[3권] 88회 - 소강



위병소의 병사들은 하딘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가 오는  보고 바로 길을 비켜주었다. 짐칸에서 빈센트가 부하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뒤쪽으로 내렸고 앞쪽에서는 하딘과 카르델이 내렸다. 마지막으로 아비투스와 히콕이 같이 상자를 갖고 나왔다.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근처의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누군가가 히콕을 가리켰다.


“괴물 사냥꾼이다. 처음 봤어! 아직도 강화 인간이 남아 있었구나.”


“우리 할아버지 때는 제법 있었다던데.”


“왜 저런 사람들이 입대를 안 하는 걸까?”

“남아 있는 카우보이는 보통 황무지 토박이야. 거기 사람들은 세상 사정에 관심이 없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누가 좋아서 군바리가 되겠냐.”

“지당하네.”

“그런데 저 상자에  거 개틀링인가?”

빈센트는 부하들과 함께 상처를 치료하러 먼저 떠났다. 히콕과 아비투스가 상자에 들어있는 걸 꺼내자 다들 경악 젖은 비명을 터트렸다. 맥심 건이었다. 일일이 손잡이를 돌려가며 쏘던 기존의 40연발 개틀링과는 달리 250발짜리 탄띠로 장전되고 1초에 30발을 쏘는 최초의 현대식 기관총이다. 하딘하고 아비투스도 거치대에 조립된 맥심 건에 다가갔다. 둘도 당연히 사람인지라 기관총을 바라보는 표정이 께름칙했다. 아비투스가 장전을 마치고 하딘에게 말했다.

“정말 해볼까요?”

“해야지.”


아비투스는 심호흡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위험하니까 떨어져라.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천 수백 장이 동시에 찢어지는  같은 소리가 나면서 탄착군에서는 먼지 폭풍이 일었다. 2초 정도 쏘고는 아비투스가 굳은 얼굴로 보고했다.


“잘됩니다.”


카르델이 하딘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걸 진짜 써야 합니까? 제 말은, 우리가 수단 방법 가릴 때가 아닌 거 알지만 이런 걸 진짜 민간인한테 쏠 겁니까?”


“나도 가능하면 놈들이 이걸로 겁을 먹어줬으면 싶다. 정리해.”


아비투스가 기관총을 다시 상자에 넣으며 작게 말했다.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히콕이 상자의 뚜껑을 닫고 나서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내 계약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맡은 역할은 그 친구들 쫓아서 데려오는 거였잖아. 난 맡은 소임을 다했어. 아직  분의 일밖에 못 데려왔지만.”


하딘이 바로 대답했다.

“빠지고 싶으면 빠져. 어음을 써주지.”

그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나로서도 선배님이 위험하시다니 빠지기 뭣하거든. 대부분의 핑커튼은 그분을 존경하지. 하여튼 그다음에 대해서 말인데. 추가 비용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저속하고 조금의 성의를 받을 수 없을까? 명색이 하나뿐인 목숨인데.”


“살고 나서 말하자고. 우리도 최우선 임무가 생존으로 바뀐 형편이라.”

카르델이 끼어들었다.


“개인적으로 용사 나리는 둘째 쳐도 마법사님이 너무 걱정됩니다. 종일 고생했는데 진전이 없잖아요. 우리가 유리해지면 놈들이 마법사님으로 시간을 벌고는 죽일 겁니다.”


여태껏 굳게 지켜온 차분한 모습을 하딘은 무너트렸다.


“알아! 그래서 저걸 목숨 걸고 가져온  아니냐! 안다고…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우리 임무는 실패다.”


다들 어두운 침묵에 빠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애초부터 멍청한 짓이었다. 요 며칠간 우리가 해온 짓을 세어봐. 할 만큼 했다. 일단 살고 봐야지. 마법사님은 무조건 되찾아서 집으로 돌려보낸다. 피카니 경도 정말 우리가 기대하는 인물이라면 그럴 생각으로 돌아다니고 있을 거다.”


갑자기 빈센트의 부하 중 하나가 숨이 차도록 급하게 달려오더니 소리를 지르며 하딘의 말을 끊었다.


“마법사님이 돌아와 계셨습니다!”

일행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자기가 뭘 들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비투스가 물었다.

“방금 뭐라고?”


“루나님이요!”


아까의 침묵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정적이 바람처럼 그들을 휘감았다. 순간 생각이 멈춰버렸던 그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서둘러서 뛰었다. 안내받은 곳에서는 빈센트가 얼이 빠진 얼굴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상처를 꿰매고 있던 위생병이 일행들을 보고 말했다.

“이것 봐요. 모든 환자가 이렇다면 마취제가 필요 없어질 텐데.”

사실 다들 빈센트처럼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하딘이 물었다.


“마법사님은?”


“저쪽이요. 마침 오고 계시네.”

위생병이 가리킨 방향으로 누군가가 휠체어에 탄 루나를 끌고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휠체어는 전에 루나가 직접 만들었던 마법 도구들 근처에 멈췄다. 일행들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휠체어를 끈 사람은 처음 보는 여자였지만 누군지는 다들 한눈에 알았다.

짧고 부스스한 검은색 머리카락은 검은색 종이처럼 윤기가 전혀 없었고 정수리 양옆으로 삐죽 솟은 고양이 귀는 끝부분과 안쪽만 하얀색이었다. 눈매는 양옆으로 길고 가늘게 찢어지고 솔잎 같은 속눈썹이 어둠 속에서도 하얀 피부 위로 뚜렷하게 보였다. 그 서글서글한 눈매 속에는 고양이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두상하고 얼굴이 워낙 인형처럼 조그맣다 보니 그 눈하고 귀만 그들의 인상에 확실히 박혔다. 체형은 날카롭게 깎은 연필 끝으로 스케치한 그림처럼 가늘고 피부는 백인들과 비교해도 종이처럼 유난히 희었다.

그녀가 끌고 온 휠체어에는 수혈액이 매달려서 루나의 팔에 이어져 있었다. 루나는 눈을 반만 뜨고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다. 고양이 여인이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딘은 일행들을 뒤에 두고 앞장서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타티아나 소위 맞지?”


“네.”


“무슨 일이 있었지?”

“저는 그럭저럭 괜찮아졌고. 루나 님은 한 시간쯤 전에 오셨습니다. 정확한 사정은 저도 모릅니다.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하딘은 한쪽 무릎을 꿇고 루나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뒤에 있던 카르델이 자꾸 레모니에게 가려는 시선을 하딘 쪽으로 되돌리면서 물었다.

“진짜 마법사님 맞습니까? 무슨 변신 괴물 같은 거 아니고?”

레모니가 대신 대답했다.


“제가 바로 서 있는 여기가 각종 마법과 저주를 막기 위해서 루나 님이 직접 꾸민 성역이에요. 왜 하필 저랑 같이 있는지 생각을 하세요.”

그녀가 여태껏 지켜온 말투치고는 얕잡아보는 기색이 서려서 카르델은 심기가 거슬렸지만 일단 참았다. 먼저 따질 것들이 이미 쌓여있었다. 이번에는 아비투스가 물었다.

“마법사님하고 남자도 같이 돌아왔습니까? 저희 동료인데.”

레모니는 그게 피카니라는 걸 아직 모른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여태껏 여기 안에만 있어서  모릅니다. 남자도 있기는 했는데.”

루나를 계속 살펴보고 있던 하딘이 눈을 찌푸리며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남자도’ 있었다니?”

그때 응급처치를  받은 빈센트가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가 루나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일단 비켜봐. 내가 직접 봐야겠어.”

빈센트는 루나의 환부에 덮여있는 거즈를 살짝 들어내고 꿰맨 자국을 보았다.


“어디 보자…. 누가 이미 응급처치를 해놨군. 여기서   아니고 다른 사람이  거야. 상처를 머리카락으로 봉합했군.”

아비투스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머리카락?!”

빈센트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진정해. 원래 있는 방법이야. 상처를 꿰맬 때 쓰는 비단 실을 구하지 못하면 급한 대로 머리카락을 쓰기도 해. 평범한 명주실 같은 거로 했다간 살이 썩거든. 꿰맨 실력을 보아하니 의대를 나온 사람은 아니어도 경험은 제법 있는 거 같아.”

레모니가 그를 바라보며 목례했다.

“오랜만에 다시 얼굴을 뵈니 반갑습니다냥 피에르 님.”

“나도 반갑군.”


카르델과 아비투스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카르델이 속닥였다. 방금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았어?

한 편 근처에 있던 위생병이 누군가를 데리고 그들에게 데려왔다. 머리가 하얗게 센 여인이었는데 여태껏 가만히 다른 사람 일처럼 구경만 하고 있던 히콕이  사람을 보고는 뜨악하고 입을 벌렸다. 윈프리가 히콕을 알아보고 말했다.


“으잉?!”


“어머. 오랜만이네.”

일행들이 그녀 쪽으로 주목을 돌렸다. 바로 위생병이 상황을 설명했다.


“마법사님을 여기로 데려와 주신 핑커튼입니다. 슬슬 찾으실 때가 된 거 같아서.”

윈프리가 자신의 모자를 벗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윈프리라고 불러주세요. 대위님은 천국의 문하고 켄트룰 언덕 전투를 겪어보셨다면서요?”

하딘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주변 사람들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그가 말했다.

“다시 오겠네 레모니 소위. 마법사님을 부탁하지.”


레모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휠체어를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렸다. 윈프리를 바라보며 그도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헨리 웨슬리 하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쪽으로 가서 얘기하죠.”


그가 듣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가리키자 윈프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들과 같이 움직였다. 그들 뒤로 남겨진 빈센트가 다른 위생병들에게 뭐라 말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걸어가는 길에 하딘이 히콕에게 물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보면 딱 티가 나기는 하다만.”

히콕은 윈프리를 정중한 손짓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핑커튼 최초의 여자 탐정. 개척시대부터 현역으로 뛰셨지. 나도 직접 뵌 적은 몇  없어.”

“레오포드하고 만났어요.”

윈프리가 그렇게 말하자 다 함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이 상황을 이해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가 연달아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시겠죠.  긴 이야기가 될 거고요.”

“물론 그렇겠지요.”


“요즘 여러 사람이  다양한 사정으로 많이들 얽히고 있죠. 저도 뭐가 어떻게 되는지 완전히 알지는 못해요. 저희끼리 의논을 아주 많이 했었는데.  상황을 여러분에게 설명하려면 제일 나은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답니다.”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이제부터 뭘 보든 큰 소리를 내거나 지나치게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겠어요?”

일행들은 눈을 껌뻑거리면서 잠깐 가만히 있었다. 뜸을 다 들인 하딘이 대답했다.


“뭘 보든 큰 소리를 내거나 지나치게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하지요.”


그때 그들 뒤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인기척을 내기에 일행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단테는 팔짱을 낀  불편해하는 얼굴로 시선을 다른 곳에   딴청을 피웠고 아자리는 뒷짐을 진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오. 과연 누님이야. 나는 그 고생을 해서 겨우 하나 잡았는데.”


하얗게 질려버린 하딘과 부하들 사이에서 히콕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당신은 나중에 저 좀 보시죠.”


아자리가 눈동자만 돌려서 히콕을 소름 끼치는 눈빛으로 표정 없이 째려보았다.







샤카자이아가 플러머를 꽁꽁 묶고는 바닥에 누워있는 레스에게 물었다.

“괜찮아?”


레스는 누운 채로 팔꿈치만 움직이고 엄지를  세워서 보였다. 그녀는  말리겠다는  입술을  다물어서 웃음을 참았다. 피카니가 말했다.


“그냥 죽이는 게 나아.”


샤카자이아는 꽁꽁 묶인 플러머를 철창 안으로 넣고 있었다. 레스가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살인은  돼.”


“손 더러워지는  싫으면 내가 하겠다니까. 어차피 죽어 싼 놈이잖아.”

“그것도 내가 죽이는 거랑 무슨 차이야. 안 돼.”


철창 안에서 플러머가 재갈 걸린 입으로 뭐라 외치면서 버둥거리는 소리가 났다. 샤카자이아가 두 남자에게 말했다.

“잠깐 다른 데를 봐주지 않겠나.”


레스가 엄지로 철창 맞은편의 벽을 가리키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카니도 얼떨결에 레스하고 같이 벽을 바라보았다. 곧  남자 뒤로 뭔가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뭉개진 비명이 그들의 등을 때렸다.

“끅! 크윽! 깍! 끄아악! 으아아윽! 까아아악! 이윽! 어헙!”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소리가 끊어지자 곧 샤카자이아가 그들 앞으로 돌아왔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


레스하고 피카니가 철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그녀가 두 남자의 턱을 잡았다.  보는 편이 좋아. 그렇게 말하듯 샤캬자이아는 정중하게 눈짓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피카니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살아는 있는 거야?”

“날 너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레스는 여기서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오르려 했지만 바로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 볼일 남았나?”

바로 옆의 철창에 있는 레오포드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바로 움직였다. 레스는 굳이 필요 없다고 거절했으나 샤카자이아는 끝까지 그에게 달라붙어 부축해주었다. 철창 안에는 레오포드와 사람 몸집보다 큰 늑대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피카니가 자물쇠를 푸는 동안 샤카자이아가 늑대를 보고는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 굉장해! 이렇게 큰 아이는 처음 봐!”

레스가 손짓을 하며 늑대를 소개했다.


“이름은 슌카와칸이야.”

샤카자이아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레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서 레스에게는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할 말만 했다. 두 사람이 떠드는 사이 피카니가 열쇠로 철창을 열고 레오포드와 늑대를 꺼내주었다.


“슌카와칸? 진짜 이름이 그래?”

“왜?”


“슌카와칸은 우리 말로….”


“사연은 나중에  말해주마. 지금은 할 일이 쌓였다.”

레오포드가 레스와 샤카자이아 사이에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  본 사이에 이쪽에서도 뭔가 일이 있었는지 그는 몇 시간 전하고는 딴판으로 안색이 매우 나빠져 있었다. 상태가 안 좋기는 늑대도 마찬가진지 늠름한 몸집에  어울리게 행동거지에 기운이 없고 애처로웠다.


피카니가 물었다.

“그 사람 어디 있습니까?”

레오포드는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서 방향 하나를 가리켰다.

“은행 금고처럼 유난히 튼튼하게 만들어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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